349
2021-03-09 13:49:27
0
불교는 브라만교의 본질, 아트만에 대한 반발로 일체의 본질, 아트만을 거부합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사물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 영혼 따위는 없다는 것이죠. 목적론적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을 부정합니다. 재떨이는 담뱃재를 담는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물받이로 쓰거나 무기로 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재떨이의 본질이 있다면 그러면 안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과라는 것도 궁극적인 결과는 없습니다. 모든 사물은 인과 연이 만나 생성이 되고 생성된 결과물도 어떠한 사물을 위한 인과 연이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끊임없이 변화는 과정의 하나인 것입니다. 과정과 결과라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닌 인연론 혹은 연기론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이 극으로 달할 때 세상 무엇이든 본질은 없고 항상 변하는 것이라 찰나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불교가 허무주의라는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찾는 것이 한 끝이라면 모든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한 끝입니다. 양 극단의 중간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시초인 나가르주나가 말하는 중론입니다.
모든 것의 본질이 있고 영원하다고 보는 것이 상견, 모든것은 찰나에 불과하여 부질없다는 것이 단견이라고 부르며 그 사이의 중간을 택하는 것이죠. 영원히 변치 않는 벚꽃은 없으며, 피자마자 찰나에 없어지는 벚꽃도 없습니다. 벚꽃은 인연이 만나 피어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집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 벛꽃은 부질없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 꽃피울 순간을 기약하며 새로운 씨앗이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