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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14: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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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웩......"
-괜찮아?
"어, 대략...."
말을 흐리며 걱정해주는 이에게서 눈을 피한다
콰르르르......
변기의 물을 내리자 점심으로 먹었던 편의점 도시락이 쓸려 내려간다. 아깝네. 맛있었는데. 진심으로 생각하며 입을 씻었다.
그 이야기는 진짜였을까?
주사기 속의 포도당을 자신의 몸에서 나온 XX한 액체로 생각하도록 유도한 후 주사해, 남자를 미치게 만든 이야기는.
그게 계속 떠올라서 결국, 간 밤엔 정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실제라면 상당히.......
무섭겠지.
그런데 대체 그들은 누굴까? 나와 같은 일반 사람? 아니면 정신병자? 그것도 아니면.....?
한 번 의문을 가지니 다른 의심 역시 솟아난다. 그들은 대체 무엇이기에 소원을 이루어주는거지? 동물 가면 밑에 얼굴을 숨기고, 그 밑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거지?
종잡을 수 없는 양 가면여자, 과묵한 중년의 순록 가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토끼 가면의 꼬마, 말 많은 경박한 말 가면.
그들은 '왜' 날 불러낸거지?
혹시 날 해하기 위해?
.....이번에 갈 때는 별도의 채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제 그냥 나를 돌려보낸 것은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애초에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부터 의심해봤어야 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개미지옥을 아는가? 개미가 한 번 그 근처로 발을 딛으면, 걷잡을 수 없이 딛고 있는 모래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오게 해서 개미를 제 입으로 밀어넣는 사냥꾼을.
나는 어쩌면 그 개미지옥의 덫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 아래 무엇이 있더라도 난 아래로아래로 내려갈 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오늘 밤은 어제보다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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