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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9 16: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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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느낀 그대로 씁니다.
솔직히 저도 글쓴님과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오버클럭 상태라고나 할까요. 내 능력치 이상으로 나 자신을 들들 볶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글쓴님 입장이 이해가 가요.
그래도 여태 잘 달려오셨네요. 아마 주변에 많은 좋은 분들이 계신가봅니다. 남편분도 좀 쉬라고 하시는 걸 보면 그래도 좋은 분 같아요. 아내를 걱정하는 게 느껴져서요.
저는 누가 잡아주지도 않은 채 열불나게 달리면서 살다가 잠깐 멈춰 뒤돌아봤더니... 참 허무하더군요.
남들 인생 즐기며 살 때 저는 쉼없이 달렸어요. 대학 다니면서 여행 다니고 워홀 가고 휴학하며 다른 미래를 꿈꾸던 친구들 옆에서 혼자 비웃듯이
니들은 멈춰라 난 달릴테다, 하고 쉼없이 공부하고 매진해서 대학도 1등으로 졸업하고 취직도 남들보다 빨리 했죠.
그리고 일찍 사회에 뛰어들어 끊임없이 돈 벌었어요. 저는 지금 10년 째 직장 생활 중인데 한번도 쉰 적이 없어요.
다음 이직도 반드시 다음 회사가 정해져야만 사직서를 내고 딱 하루 쉬고 바로 다음날 새 회사에 출근하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이 모든게 참 부질없게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아무도 제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거든요.
그냥 언젠가부터 저는 당연히 그런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었고
힘든 일이 생기면 저를 찾았어요.
근데 좋은 일엔 저를 찾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당사자보다 더 열심히 참견하고 참여하고 일하니까 당사자는 그게 부담스러웠던 거예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신나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걸 깨닫고 난 후부터 너무나도 인생이 허무하고 참담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20대를 흘려보낸게 너무너무 아까웠어요. 왜 조금 더 즐기지 못했을까, 왜 조금 더 놀지 않았을까,
조금은 쉬었어도 되는데, 조금은 여유로웠어도 되는데,
나중에 더 나이 들면 정말로 그땐 쉬고 싶어도 못 쉬게 되는데, 그걸 모르고 왜 그랬을까.
결국 남들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고 돈을 엄청 모은 것도 아닌데... 시간만 보냈다는 자책과 허무감이 너무 심했어요.
사실 지금도 약간은 그게 남아있어요. 그치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은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남은 인생은 오롯이 저 하나만을 가장 위하며 살아보기로 했어요.
저도 글쓴님처럼 그런 말을 들었어요. 퀘스트 그런 것도 다 이해 가요. 저도 그렇거든요. ㅋㅋ
직장에 다니다보니 살림이 어설퍼요. 시간도 별로 없고. 그래서 금요일에 남들 놀러갈 생각할 때 저는 주말에 집안일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웠어요.
그리고 주말 내내 쉼없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저 역시 신랑에게 맡기는 건 어쩐지 맘에 안 들고 내키지도 않고 해서 제가 거의 다 했어요.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후다닥 하면 또 금방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어느날 신랑이 그러더라고요. 화장실 청소하고 있는데 제게 오더니,
주말인데 안 쉬어? 안 힘들어?
이러면서 짓던 표정이 참 애매하더라고요. 불쌍하다는 듯, 안쓰럽다는 듯,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그런 묘한 표정이었어요.
그걸 보는데 약간 부아가 나서 당연히 힘들지,라고 했어요
저는 그러면 왜 말을 안 했냐며 타박 한 번 하고 자기가 뺏어들어서 청소해줄줄 알았거든요.
근데 신랑 왈,
그냥 좀 더러워도 되니까 청소 그만하고 앉아서 좀 쉬어
라고 말하고 휙 가버리더라구요?
ㅋㅋㅋ
뭔지 아마 아실 것 같아요 그때 제 기분이 어땠는지
그때 뭔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어요
일단 벌려둔 청소니까 마무리는 어찌어찌 했는데 도무지 그 다음 해야할 일에 손이 안 가더라구요
의욕이 뚝 떨어져서 결국 안 했어요
내내 눈에 거슬렸지만 끝내 주말 내내 하지 않았죠
신랑은 그걸 했는지 안 했는지 관심조차 없었고요
그렇게 또 일주일이 흘렀고 이젠 정말로 해야 하는데
이제는 그거 외에 다른 일도 아예 다 하기가 싫은거예요
신랑한테 털어놨죠. 나 너무 하기 싫다고.
그랬더니 신랑이 뭐라고 했냐면...
그래? 그럼 도우미 아줌마 하루 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그때 저는 깨닫기를
바보 같이 그걸 낑낑 부여잡고 있는다고 딱히 기뻐하지도 않는구나
그냥 내 일이라고만 생각했지 관심이 없구나... 였어요
친정에 말했더니 우리 사위 기특하네~ 이러고 끝.
아무도 '그간 혼자 고생했겠네' 라던가 '집안일 참 힘들지'라던가 그런 저의 수고는 아무도 몰라주고 딴소리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요즘은 좀 놔버렸어요 ㅎㅎㅎ
글쓴님 삶의 방식이 나쁘다던가, 저와 똑같다던가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보다보니 저랑 비슷한 점은 느껴져서 댓글 다는 거예요
근데 글 보다보니.. 제가 보기에도 글쓴님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좀 안쓰러운 마음도 들어요
생각보다 이 수고를 알아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약간은 내려두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이제서야 좀 하는 거지만, 글쓴님도 뭔가 집안일 하기 전에 남편분께 물어보셔도 좋지 싶어요
청소할 생각이라면 '나 이번 주말에 청소 어디어디 할건데 같이 하자, 언제 할까?'라던지 '물김치 할 생각인데 얼마나 할까? 도와줄 수 있어?'라던지요
저희 신랑 투덜거리면서 그래요 자기도 손발 다 달렸다구...
도와달란 말 좀 하라는 뜻이겠죠... 남편분도 그런 뜻 아니었을까 해요. 남편 옆에 있다, 힘들면 말을 해라, 라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