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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6 2022-04-12 22:12:53 4
비아그라를 여성이 먹을 경우 [새창]
2022/04/11 08:32:16
[부연설명] 비아그라는 1998년 화이자에서 개발한 남성용 발기부전 치료제이다. 원래 목적은 동맥 주위 근육을 이완시켜 동맥을 확장, 혈류 증가로 심장 질환 치료 목적이었으나 임상실험 과정에서 남성 발기에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발기부전 치료제가 되었다.

그럼 이 비아그라는 여성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초기에는 여성이 비아그라를 먹을 경우 질분비액이 증가하고 오르가즘에 빨리 도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었고, 클리토리스 주변의 혈류 개선을 향상시킨다(성적인 만족과는 무관)는 연구결과가 있으나 효과가 없다, 위약 효과를 봤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성이 비아그라를 복용할 경우 안면홍조나 두통 등의 부작용이 나온다는 연구도 있다.

여성용 성기능 개선제로는 '에디'가 있는데 전전두엽 피질에 영향을 끼쳐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늘리고 세로토닌 분비를 줄이는 작용을 한다. 최소 2개월 이상 꾸준히 복용해야 하며 복용중에는 술을 절대 마시지 못하는 등의 한계가 있어서 비아그라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에디도 원래는 항우울제로 개발하다 여성 성욕 증가 '부작용'이 발견된 케이스이다.)
14415 2022-04-11 19:28:21 1
톰 크루즈 인성 [새창]
2022/04/11 07:53:02
이거 내용이 하나도 안맞는 국뽕 레카라고 하던데
14414 2022-04-11 19:26:01 0
[새창]
배팅이 제일 신기하네.
14413 2022-04-03 12:39:17 0
한쿡인이 좋아하는 효능시리즈 : 해장국 [새창]
2022/04/02 00:43:07
인정
14412 2022-03-28 16:09:38 0
수직이 아니군.manhwa [새창]
2022/03/28 13:45:31
[부연설명] 산양은 보통 해발 6~700m 이상 되는 산속의 풀숲이나 경사가 심한 산악 지대에 사는데 몸집에 비해 발굽이 아주 작고 발굽 한복판에 틈이 지고 가장자리가 고무처럼 탄력이 있어서 험한 절벽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또한 다리가 굵고 튼튼한 편이고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길어 한 번에 2m 정도까지 도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암벽등반가 전문 의족인 'KLIPPA'가 산양 다리와 발굽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따서 만들어졌으며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의 '카프라'는 산양 발굽의 접지력을 따와서 기능성을 살렸다. 워낙 험한 곳에 살아서 생태 연구가 잘 되지 않고 연구가들도 대부분 배설물과 발자국만으로 산양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천연기념물 217호이며 멸종위기생물 1급이다. 국내에 약 1천마리 정도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411 2022-03-25 10:29:34 0
ㅇㅎ) "존 시나, 선수들은 어떻게 의자에 맞고도 괜찮은 건가요?" [새창]
2022/03/24 23:43:51
저걸 짜고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생각을... 저 많은 관중이 있는 데서 연기하면서 액션하면서 한번도 실수하지 말아야 함...
14410 2022-03-22 13:15:48 1
냉혹한 영국의 전통 [새창]
2022/03/21 09:50:55

[부연설명] 보어인 강제수용소
제2차 보어 전쟁 당시 영국군은 보어인 게릴라가 발붙일 곳을 없애기 위해 초토화전술을 시행했다. 보어인들과 아프리카인이 살던 집과 농장은 모두 불태워졌으며 이들은 집결캠프라는 이름의 강제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는데 여기에 수용된 보어인만 12만명이었다. 모두 109개의 캠프가 건설되었는데 전쟁 포로의 대다수는 해외로 보내졌고, 현지 집결캠프에는 대부분 여성과 아이가 수용되었다.

수용소 운영은 허술했고 식량 배급도 부족했으며 낮은 위생수준과 과밀 수용으로 이들 중 2만 8천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이중 2만 2천명이 16세 이하였다. 또한 이당시 흑인들도 1만 4천명이 기아로 사망했는데 백인들인 보어인과 영국인들의 전쟁에 끼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제2차 보어 전쟁은 1902년 5월 보어측이 항복하면서 끝났는데, 영국은 승리는 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본국에서조차 '같은 기독교인 백인을 이렇게 죽이냐?' 며 많은 반발에 휩싸였다.

영국은 강제수용소화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이전까지 영국이 가지고 있던 국제 사회의 영향력을 많이 잃었다. 짤방은 블룸폰테인 강제수용소이다.
14409 2022-03-22 13:15:37 1
냉혹한 영국의 전통 [새창]
2022/03/21 09:50:55
[부연설명] 벵골 대기근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약 200만명이 아사한 벵골 대기근은 전쟁과 자연재해, 그리고 현지 시스템의 문제 등이 얽힌 종합적인 재해였다. 당시 뱅골 연안에서 발생한 사이클론과 해일로 경작지와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갈색 점 포자라는 병이 퍼져서 주식인 쌀의 생산량이 급감되었다. 또한 벵골 대기근이 발생한 시점은 독일 U보트가 활개를 치고 다닐 때였고, 벵골만은 일본군이 진을 치고 있었던 때였다. 즉, 진짜로 식량을 보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영국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식량난 때문에 실제로 배급제를 시행하며 '자기 집 마당에서 농작물을 지어 자급자족하세요.' 라는 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계란은 임산부한테만 지급이 되던 시기도 있었다. 또한 당시 인도 내부도 토후국들간의 폐쇄적인 보호무역과 인도 현지정부의 무능, 부정확한 통계, 상인들의 사재기, 운송망 미흡, 혼란스러운 정세불안 등이 겹쳐 있었다.

물론 영국 정부가 벵골 대기근에 대한 심각성을 너무 늦게 알았던 건 사실이나 처칠 내각은 실제 벵골 대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다했다. 직선거리가 가까운 호주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미국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또한 실제로 영국 정부는 2차대전 와중에 이탈리아 남부와 그리스 지역의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1943년부터 1944년까지 100만톤에 달하는 식량을 벵골로 보냈다.

벵골 대기근이 영국 때문에 발생했고 처칠이 지원을 안해서 인도인을 다 죽인 학살자다라는 얘기는 무케르지란 뱅골계 미국인 여성 소설가가 2010년 발간한 '처칠의 비밀전쟁'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친 것이 퍼지게 된 것이다. 사실 무케르지는 역사학자가 아닌 물리학자인데 처칠을 인종차별자로 규명하며 히틀러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그녀의 주장이 퍼지게 되었다. 그밖에도 그녀는 영국 정부가 기근의 원인이다라고 주장하면서도 당시가 세계대전 상황이었다는 사실과 인도 내부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전쟁의 원흉인 독일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에 대해서 '영국의 적이니 좋은 편'이라는 논리로 미화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14408 2022-03-22 13:15:20 2
냉혹한 영국의 전통 [새창]
2022/03/21 09:50:55
[부연설명] 아일랜드 대기근.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아일랜드 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 아일랜드 감자기근이라고도 한다. 당시 유럽 전역에 감자역병이 대유행했는데 당시 아일랜드인인 감자가 주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피해가 컸다. 아일랜드인이 감자를 주식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국인 지주들이 아일랜드인을 소작인으로 부리면서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은 모두 영국으로 수탈해 가고 아일랜드인은 감자밖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영국인 지주들은 감자대기근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군대를 이용해서 아일랜드인을 내쫓고 곡물을 수탈해서 아일랜드인들은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기근이 퍼지자 미국과 영국에서 밀을 공급하고 밀의 수입을 자유화하는 등의 구제책을 마련하였지만 이미 감자농사를 망친 대다수의 아일랜드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고, 들어올 수 있는 곡물의 양도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껏 들어온 곡물도 운송수단의 부족으로 항구도시와 그 인근 지역에만 유통되거나 창고에서 썩을 수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국은 당시 아일랜드인이 보낸 도움 요청을 묵살했다. 기근 초창기에는 공공근로를 실시하는 등의 구제책을 시행했으나 정권이 교체되고 자유당이 집권하자 '자유방임주의적 원칙'에 의거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인프라 개선으로 지원 방향이 바뀌었고 곡물유통업자들이 구호 곡물이 퍼지면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도 원인이었다. 심지어 영국 내부에서는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아일랜드인을 더 풍요롭게 할 디딤돌'이라거나 심지어 '멍청하고 게으른 아일랜드인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했다. 기근이 심각해지자 자유당에서도 구호소를 마련하였으나 여기에서도 '구호에 드는 비용은 너네가 직접 마련해라' 라면서 지주들에게 떠넘기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아일랜드 구제 법안이 영국 의회에 꾸준히 올라갔으나 상원과 하원에서는 끊임없이 거부해서 성사되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아일랜드 농부들을 위해 10,000파운드를 보내겠다고 하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1,000파운드만 보내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는 2,000파운드밖에 내기 않았기 때문. 술탄은 1,000파운드만 보내는 대신 영국 관리들의 저지를 피해 식량을 가득 채운 3척의 배를 몰래 아일랜드로 보냈다고 한다. 이 기간동안 약 100만명이 굶어죽거나 병에 걸려 죽었고 100만명이 해외로 이주해서 아일랜드 인구는 20~25% 감소했다. 이후에도 아일랜드인의 해외 이주는 계속 증가하여 1900년대 중반까지 아일랜드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800만명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또한 당시까지 다수로 사용하던 아일랜드어가 영어에 밀려나서 소수어로 전락하게 되었다.
14407 2022-03-22 13:12:56 3
냉혹한 영국의 전통 [새창]
2022/03/21 09:50:55
[부연설명] 아일랜드 대기근.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아일랜드 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 아일랜드 감자기근이라고도 한다. 당시 유럽 전역에 감자역병이 대유행했는데 당시 아일랜드인인 감자가 주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피해가 컸다. 아일랜드인이 감자를 주식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국인 지주들이 아일랜드인을 소작인으로 부리면서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은 모두 영국으로 수탈해 가고 아일랜드인은 감자밖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영국인 지주들은 감자대기근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군대를 이용해서 아일랜드인을 내쫓고 곡물을 수탈해서 아일랜드인들은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기근이 퍼지자 미국과 영국에서 밀을 공급하고 밀의 수입을 자유화하는 등의 구제책을 마련하였지만 이미 감자농사를 망친 대다수의 아일랜드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고, 들어올 수 있는 곡물의 양도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껏 들어온 곡물도 운송수단의 부족으로 항구도시와 그 인근 지역에만 유통되거나 창고에서 썩을 수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국은 당시 아일랜드인이 보낸 도움 요청을 묵살했다. 기근 초창기에는 공공근로를 실시하는 등의 구제책을 시행했으나 정권이 교체되고 자유당이 집권하자 '자유방임주의적 원칙'에 의거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인프라 개선으로 지원 방향이 바뀌었고 곡물유통업자들이 구호 곡물이 퍼지면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도 원인이었다. 심지어 영국 내부에서는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아일랜드인을 더 풍요롭게 할 디딤돌'이라거나 심지어 '멍청하고 게으른 아일랜드인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했다. 기근이 심각해지자 자유당에서도 구호소를 마련하였으나 여기에서도 '구호에 드는 비용은 너네가 직접 마련해라' 라면서 지주들에게 떠넘기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아일랜드 구제 법안이 영국 의회에 꾸준히 올라갔으나 상원과 하원에서는 끊임없이 거부해서 성사되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아일랜드 농부들을 위해 10,000파운드를 보내겠다고 하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1,000파운드만 보내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는 2,000파운드밖에 내기 않았기 때문. 술탄은 1,000파운드만 보내는 대신 영국 관리들의 저지를 피해 식량을 가득 채운 3척의 배를 몰래 아일랜드로 보냈다고 한다. 이 기간동안 약 100만명이 굶어죽거나 병에 걸려 죽었고 100만명이 해외로 이주해서 아일랜드 인구는 20~25% 감소했다. 이후에도 아일랜드인의 해외 이주는 계속 증가하여 1900년대 중반까지 아일랜드 인구는 계속 감소하여 800만명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또한 당시까지 다수로 사용하던 아일랜드어가 영어에 밀려나서 소수어로 전락하게 되었다.
14406 2022-03-21 19:47:32 5
"우리는 미술에서 뭘보는가" [새창]
2022/03/19 10:43:15
어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30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들고 워싱턴 D.C.의 지하철 역에서 공연을 했는데 43분동안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고 고작 7명만이 바이올린 연주를 듣기 위해 1분 정도 서 있었다고 함. 바이올린 통에 돈 넣은 사람은 27명에 모인 돈은 32달러 17센트밖에 안되었다고...
14405 2022-03-09 17:58:09 3
역수입)살인청부 하는 여친. [새창]
2022/03/09 15:06:17
아.. 이거 후일담 본 기억 남. 저 복싱 3개월 한 남친 본인이 페이스북인가에 글 올렸는데 자기가 어딜 감히 최민호 선수한테 덤비겠냐고, 여친이 자기 맘대로 쓴 거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그 글 쓴 여친한테 일병 때 차였다고....
14404 2022-03-09 17:54:01 0
사진작가가 이야기 해주는 사진 잘찍는법.jpg [새창]
2022/03/09 16:05:51
오.. 좋은 팁이다.
14403 2022-03-09 17:50:42 2
나 하나쯤 투표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증거 [새창]
2022/03/08 15:00:08
[부연설명] 2008년 6월 4일 강원 고성군수 보궐선거 결과 무소속 황종국 후보가 전체 투표 수 14,744표 중 4,597표를 획득하여 차점자 윤승근 후보를 단 1표차이로 물리치고 고성군수에 당선됨. 1차 개표 결과 두 후보 다 4,597표가 나와서 재검표에 들어감. 재검표를 할 때는 기존 3명이었던 각 후보 참관인을 10명으로 늘림. 재검표 결과 윤승근 후보 표로 분리되었던 1표가 다른 후보 투표칸과 겹쳐져서 찍혔는데 윤승근 후보쪽으로 많이 넘어가서 이쪽으로 체크된 것으로 확인되어 무효표 처리됨.

사실 원래 선거법상 최다 득표자가 복수로 나올 경우 연장자를 당선 확정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표가 나왔어도 황종국 후보가 나이가 많아서(당시 황종국 71세, 윤승근 53세) 당선될 상황이었음. 황종국 군수는 2008년 선거에 이어 2010년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34, 35대 고성군수를 역임하게 되었는데 이 선거에서도 차점자는 윤승군 후보였고 두 후보의 표 차이는 겨우 208표밖에 되지 않았음. 그러나 군수에 당선된 황종국 군수는 재임중 암에 걸려 투병하다 2013년 별세함. 이후 2014년 치러진 민선 6기 선거에서는 윤승근 후보가 드디어 당선되어 고성군수자리에 오름.
14402 2022-03-04 21:28:45 10
전쟁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준 사극영화 [새창]
2022/02/28 00:21:28

"호랑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 거여!"

김선아가 특별출연으로 나왔었는데도 인상깊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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