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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8 17: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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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는 자본주의화와 산업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변화와 함께 (혹은, 그러한 변화로 인해) 찾아오는 총체적인 구조적 변화"
라고 하셨네요. 글이 길어 요점만 보고 넘어가려다 보니 원론적인 건 제끼면서 세세한걸 놓친거 같구요.
그럼 식민지시대가 산업화와 자본주의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우선 봐야하지 않나요?
인과의 역전이란 표현은 정상적인 산업화와 자본주의화를 식민지 상태가 막아서 그에 대한 반향으로 여러 저항이 일어난 것을 말씀하시는듯 한데
요약하자면 식민지는 정상적인 근대화를 저해했고 그에 대항 저항이 일어났을 뿐이죠.
이걸 기여했다고 하기는 애매한 부분이죠. 다만, 특수성이 반영되어 인과의 진행이 달라질수는 있겠죠.
맨처음 작성했던 제 댓글에 나와있는 수렴모델이론이 그러한 것을 지적하는 거겠죠.
반면 종속이론이나 신근대화이론은 식민지상태는 최종적으로는 근대화에 이르는데 저해된다는 우려를 지적하는 거겠죠.
또한 중간에 근대화는 전체적 총제적인 발전의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제 입장이 정확히 그러합니다.
구체적인 근대화의 완성 표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바로 윗댓글에 작성하였으니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겠죠.
근대화의 물적 표지인 대량생산 산업화를 일차 부차적인 요소로 보고
가치적 표지인 서구적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상의 태동에 초점을 두신 듯 하니 그러한 것들을 보죠.
근대화에 있어 가치의 변화란 것이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죠.
프랑스식의 급격한 혁명으로 나타나기도
독일쪽과 같은 위로부터의 근대화양상이 나타나기도 하죠.
굳이 우리 식민지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아도 근대화는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종래 이론중 수렴이론은 특수성을 반영해도 최종정착지는 같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고, 종속이론은 어떤 특수성(종속 식민지)은 근대화를 저해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되겠네요.
조선은 자생적으로 근대화 완성에 실패했다는 것은 맞다고 봅니다.
근대화를 이루기도 전에 망해버렸으니까요.
그렇다면 조선은 근대화를 하지 않았냐 하면 그건 틀린 말이죠.
언급하셨다시피 근대화는 발전의 전체 과정이니까요.
식민지전에 노비제도도 혁파했었고, 근대적 관료체제, 학교체제 등등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고
일본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정변을 일으켜 한번에 뒤엎을려고 한 근대화의 급격한 시도도 있었죠.
본문의 글은 상당부분 공부할 가치가 많습니다.
식민지 상태의 억압 상황이 우리의 인식전환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평가하는 논리적인 글이니까요.
그러나 그 글이 식민지근대화론 이라는 이론을 정당화하려는 글이라면 많이 어긋나 있다고 보입니다.
결론에서 식민지경험이 조선의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는가? yes라고 하셨고
식민지 경험이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는가라는 평가는 지양한다고 하셨죠.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시죠.
식민지의 가혹한 상황이 근대화로 나아갈수 밖에 없는 긍정 영향의 과정만 기술하고 계십니다.
식민지의 상황이 근대화 "과정"에 영향을 미친것은 맞죠.
그렇지만 식민지상황이 근대화에 기여했느냐는 의문일수밖에 없습니다.
첫댓글에 작성한 근대화에 대한 일반 이론들은 언급이 없으며, 수정이론인 종속이론에 비춰보면 완전종속상태인 식민지 상태와 근대화의 관계는 부정적으로 평가할수 밖에 없어 보이네요..
물론, 식민지근대화론은 식민지와 근대화 사이에 기여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계시죠.
그러나,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인과인지가 아니라, 긍정인과를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B%9D%EB%AF%BC%EC%A7%80_%EA%B7%BC%EB%8C%80%ED%99%94%EB%A1%A0
그리고 저는 진행된 인과성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정법을 사용한것은 오래된 필연성 검토인 "선행사실이 없었다면 결과도 없었는가"로 인과성을 검토하는 방식에 따라서 식민지와 근대화는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독창적 이론을 주장할만큼 필연적인 인과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