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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21: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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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정은의 권력쟁취 과정은 잔인했던게 맞습니다. 이건 일종의 그.. 과거 왕정시대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관 차이 때문이라고 볼 수는 있죠. 북한은 상당히 독특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제정일치 왕정사회라 볼 수 있죠. 핵심 사상인 주체사상은 정치 사상이라기 보다 (사이비) 종교에 가깝습니다. 이 종교사상을 기반으로 김씨일가를 실질적 왕으로 모시는 왕정시대인거죠. 고대 이집트가 파라오를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의 힘을 바탕으로 왕정을 유지한 것 처럼요. 김씨 일가의 강력한 권력과 그것을 세습시키는걸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바로 이 제정일치 구조에 있습니다.
그러나 약점 역시 있는게, 형식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거라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씨 일가가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고는 있지만 다른 반항 세력에게 반기를 들 (허울뿐이긴 하지만) 명분을 쥐어주고 있는 셈이죠.
또한 이러한 왕정 사회는 왕이 죽고 아들에게 왕위가 세습되는 순간이 가장 취약합니다. 귀족이나 다른 왕족들이 호시탐탐 왕좌를 빼앗을 욕심들을 숨기고 있는데, 그 혼란기가 아주 좋은 찬스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로 왕위에 오르는 왕자는 자기 형제들이나 강력한 귀족세력을 숙청, 제거, 밟아 누르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형제들 본인이 왕좌에 대한 욕심이 없더라도, 다른 귀족, 친족, 왕족들이 그를 내세워 왕좌를 빼앗고 허수아비 왕을 세운 후 실권을 차지할 좋은 재료가 되니까요.
김정은의 김정남 암살은 아마도 김정남 본인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기 보다는 북한 국내의 다른 귀족 세력들이 훗날 김정남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김정은을 몰아낼 도구로 사용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 겁니다. 자기 고모부를 비롯한 권력 핵심층의 살벌한 숙청 과정도 이렇게 자기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경쟁자 처치 차원이었을거에요. 당시 탈북민들 소식통에 의하면 정말 무시무시하게 칼을 휘둘러 조금의 핑계라도 잡히면 다 숙청해버렸다죠.
어린 나이이지만 상당히 머리가 좋고 행동력이 대단합니다. 재빠르게 자기 정적들을 제거하고 귀족세력을 짓밟은 다음 권력 세습을 완료하고 자기 기반을 단단히 다졌어요. 그 과정에서 선대에게 물려받은 핵개발을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진행하면서 말이죠.
웃긴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김정은의 원래의 목적이 뭐였는지 이미 처음부터 확고했었다는 겁니다. 김정은은 완성되어가던 핵을 빠르게 완성하면서(그로 인한 미국의 북한 김씨정권 군사적 제거 플랜 시행 리스크를 안고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과 제재를 받아가면서까지) 자기 반대파를 철저히 숙청했습니다. 그래놓고 핵이 완성되자마자 그걸 ‘포기하는 것’을 강력한 외교카드로 내세워 자기 정권 안전보장(미국과의 종전+불가침 확정), 제재 해제와 경제 원조+개혁개방으로 경제 발전을 노리는 큰 그림 도박을 이미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거죠. 여러 운이 따르고(트럼프, 문재인 당선 등) 아슬아슬한 전쟁 직전의 위기를 겨우 버텨나오긴 했지만, 외국 유학을 통해 얻은 지식과 안목, 그리고 젊은 자신감을 가지고 지금 김정은이 스스로 그려내고 있는 개혁개방을 통한 북한 경제개발 플랜들의 상세함을 보자면 이건 처음부터 본인이 꿈꾸고 그려왔던 거란 걸 알 수 있죠.
문제는 김정은이 핵 완성 후 그 핵을 교환용 카드로 써서 경제 개혁개방 노선을 펴는 것을 북한 내 강경파 세력이나 선대의 가신들은 결코 좋아하지 않았을 거란 겁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이런 일을 벌이기 전에 자기 계획을 꽁꽁 숨긴채 미리 정적 숙청을 해둘 필요가 있었던거죠.
그런 정황들을 보면, 김정은 입장에선 자기 권력을 지키고 자기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고 정상국가로의 전환이나 개혁개방 경제정책 추구 등등 합리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만, 어쨌거나 그 정적 숙청의 과정이 잔인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가짜뉴스의 탓이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개념을 가진 우리 눈에 보기에 잔혹한 왕정체제 하의 권력암투, 왕좌의 게임이 잔인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