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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15: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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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피라미드의 역사에 관한 재미난 사실들
1.고대 중근동 역사에 관한 가장 유명한 사료 중 하나인 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의 고대 사람이죠. 흔히들 아시는 요셉과 이스라엘 부족의 이집트 이주, 그 후 수백년이 지난 뒤 출애굽 등의 이야기보다도 한참 더 전에 아브라함고 이집트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수천년 전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방문했던 당시에도 이미 피라미드는 이집트 내에서 그 제작 기술조차 소실됝 오래인 수천년 전의 고대유물이었음. 아브라함이 피라미드 보고 “헐 슈바 저거 뭐임? 너네 문명 짱이네?!” 하니까 이집트 사람들도 “헐 슈바 저거 뭐임 진짜 짱이네?!” 이런 격이었던게죠. 당대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이미 피라미드는 몇천년 전, 왕조로 따져도 몇번은 바뀐 시기 이전의 고대유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만든건지 방법조차 모르게 된 유물이요. 지금의 우리가 석굴암 보듯 그런 느낌일테죠.
2.성서 출애굽기에 보면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고 대형 건축 노역에 동원했다고 나오는데, 보통 이집트의 거대 건축물이라 하면 피라미드를 떠올리기 마련이라 이스라엘 민족이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된 것으로 오해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처럼 피라미드는 이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 들어오기도 전, 아니 아직 나타나기도 전인 시조 아브라함으로부터도 몇천년 전의 고대 건축물로, 이후 몇차례 왕조가 바뀌면서 이제는 더이상 건축되지도 않았고 건축기술조차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동원되었다는 건축 노역은 성서에도 기록된대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성이었습니다. 이집트 윗쪽 동네 국경 부근에 지어진 성들이었죠. (당시 이 방면으로는 해양민족의 진출이 활발했었고, 이집트에 대한 외세의 침공은 주로 이 루트로 이뤄졌기에 군사적으로 방비를 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대 기준으로 이집트의 직전 왕조가 이쪽 국경 너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넘어온 힉소스 족속에 의해 이집트가 점령되어 외부민족 왕조가 세워졌다가 막 독립된 참이었으니 외세에 대한 방비 필요성도 높았고 힉소스와 동향(...)에서 넘어온 이스라엘 민족의 성장을 밟아줘야 할 필요도 컸거든요)
3.이집트가 나일강을 바탕으로 세워진 문명인 것은 당연히 다들 잘 아시는 사실일 겁니다. 그런데 이 나일강은 매년 특정시기(상류지역의 우기+그곳에서부터 이집트까지 물이 흘러올 시간)에 대량 범람을 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범람이었냐면, 이 시기 이집트 지도가 바뀌게 될 정도의 사이즈였죠. 매년 범람기가 되면 일정 국토가 물에 잠겨버리는 단점은 있었지만, 범람 시기에 상류로부터 온갖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과 자연 비료가 미친듯이 쏟아져 내려왔기에 이집트인들은 딱히 어떤 별도의 토질 개선 노력이나 지력소모에 대한 걱정 없이 매년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땅의 이런 특이한 자연적 특성은 이집트인들의 생활 습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것과 더불어 종교/문화/정신적 영향도 크게 미치고 과학기술의 발달도 촉진시켰습니다. 문화/정신적으로는 근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비해 여유가 넘치고 낙관적인 경향이 컸죠. 사망지형에 둘러싸인 천혜의 방벽이 있었고 그 안에서 나일강을 통해 풍족한 수확을 거두며 살았는데 심지어 매년 지력을 영양만점 상태로 리셋해주는 축복까지 받았으니 외세의 침공은 적게 받고 경제적으로는 딱히 뭘 안해도 손쉽게 풍요를 누린 것이 문화/종교/정신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입니다. 그리고 매년 엄청난 규모로 지형이 바뀌고 바다 같은 강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니 이 모든 것을 관측하고 측량하고 통계를 내야 할 필요가 컸기에 자연스레 과학기술도 발달한거죠.
4.피라미드는 이런 과학기술의 정점이었습니다.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 목재와 석재 등을 운반하기에는 물길을 통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죠. 그래서 상류로부터 이런 건축 재료를 나일강 길을 통해 운반했습니다. 피라미드 같은 초거대 건축물을 짓기 위한 거대 석재와 많은 양의 목재를 강물을 따라 운반한거죠. 그러나 문제는 위에 말했듯, 매년 돌아오는 범람기에 맞춰 강의 모양과 지도가 바뀝니다. 한때 강변인 곳이 범람기엔 강 한복판인 일이 매년 벌어지는거죠. 여기서 평상시의 강변 지역을 기준으로 건물을 지으면 매년 물에 잠기는 사태가 날테니, 범람기의 강변 지역을 기준으로 그곳에 피라미드를 옹기종기 모아 지었다고 합니다. 범람기에 재료를 줄줄이 운반해 와서 건축했단 것이죠. 강변에서 너무 멀면 육상 자재 수송 거리가 멀어져 자금과 시간과 노력이 너무 커지고, 너무 가까우면 자칫 파라오의 사후 자택에 물난리 침수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당대의 측량 기술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수천년의 역사동안 침수된 기록이 몇차례 없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