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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3 2018-10-04 22:05:55 41
지하철에서 옆에 아줌마랑 어색해짐 [새창]
2018/10/04 19:03:48
아줌마: 오유의 따뜻함으로 살려냈지요?
우리 번번히 살려내지요??
벼랑끝이고 죽을 결심이면
여기 글 올리지 마 삐발 다 살려낼거니까
6722 2018-10-04 13:17:40 87
일본이 없애려고 했던 한국 토종 벼 [새창]
2018/10/04 10:40:29
1결국 일본탓 맞네요?!
6721 2018-10-04 07:23:48 19
오징어제조기에서 살아남은 개.jpg [새창]
2018/10/03 16:01:25
여기 가을운동회가 개최되었단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저도 박 터뜨리기 참여해도 되나여?
6720 2018-10-03 10:14:01 0
이방카 몸매.jpg [새창]
2018/10/02 17:15:08
어디보자..
6개월, 6개월, 6개월, 6개월, 6개월, 6개월...
6719 2018-10-03 10:09:16 3
[한식대첩]코리안 수비드 요리방식 [새창]
2018/10/02 22:38:02
백종원을 힐링캠프...

한국 골목식당들이 스트레스로 괴롭혀 놓은 백종원을 살리기 위해 세계 유수의 셰프 5인이 고군분투한다는 컨셉...
6718 2018-10-03 09:59:07 4
한국화장과 일본화장이 차이점(Feat.사쿠라) [새창]
2018/10/02 14:48:16
오빠쨩 오늘 나 뭐 바뀐거 없어데스까?
6717 2018-10-03 09:55:43 55
죽을뻔한 주인 살린 애플 워치 [새창]
2018/10/02 12:13:05
공연장에서 박수 치고 있는데 왼손목의 워치가 소심하게 드르륵 진동 울리더니 뭔가하고 보니까 “ㅇㅇ님 혻 지금 운동 중이신가요? 운동중이시면 지금까지 하신 것도 다 소급적용해 포함시켜드릴게요 헤헤” 이러고 있음...

친절한건 고마운데 너 좀 바보 같애 시리야..
6716 2018-10-03 09:48:55 44
근처에ㅋㅋ해장국집이 있는뎈 왜ㅋ 다른데섴 밥먹었냐곸ㅋㅋㅋㅋㅋㅋ [새창]
2018/10/03 00:41:23
어제 뉴스 보다가 계속 빵빵 터짐...

밤 9시 10시 11시까지 야근하던 사람들이 밥 사먹으러 나가서 두명이서 4-5만원 4명이서 10만원씩(심지어 이건 치킨집...)끊은 영수증 가지고 고급 술집이네 맥주파티네 ㅋㅋㅋㅋㅋㅋ

재철아, 그러게 니가 일을 좀 해봤어야 알지.. 우리나라 직장인들 야근 안 해본 사람 거의 없을거고, 그 시간까지 야근했으면 웬만큼 개막장 회사 아닌 이상에야 그정도 밥값은 다 내주는거고, 그 시간에 밥 먹으려면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술도 같이 파는 치킨집, 선술집, 이자카야 같은데도 가게 되는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거기서 인당 2-4만원 정도 쓴걸로 고급 술집 운운해??

나도 직장 다녔을적 늦게까지 야근한날 회사서 준 돈으로 선술집 들어가서 안주거리 메뉴에 공기밥 시켜서 끼니 해결한 기억이 수두룩 하구만.. 재철아 일 좀 하지?

고오급 술집 고급 술판 벌이면 인당 얼마 이상 나올지 재철이 너도 잘 알거 같은 사람이 그런 웃기지도 않은 억지를 부리니 ㅋㅋㅋㅋㅋ

니놈이 고급 술집 운운하며 흔들어재낀 그 영수증 속에서 나는 청와대 직원들 사람 냄새밖에 못 맡았다.
6715 2018-10-02 21:43:30 5
놀라운 이집트의 역사 [새창]
2018/10/01 11:10:56
그리고 성서와 이집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성서 속에 나타난 이집트의 모습을 더 펼쳐보자면, 창세기 말미에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총리자리까지 오르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문에 이 시대가 힉소스 왕조 시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힉소스는 가나안(현 팔레스타인) 지역 출신의 이민족인데 이집트를 점령하고 자기네 왕조를 세운 족속이죠. 본인들이 이민족 왕조니 마침 같은 지역에서 온 이민족 청년 요셉을 고위직에 앉힐 이유가 충분하지 않느냐는 가설입니다. 실제로 창세기에서 요셉으로 인해 환대받던 그의 일가 이스라엘 부족 70여명이 몇백년 뒤 출애굽기 시대에는 완전 핍박 받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시간이 흐르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란 구절이 힉소스 지배가 끝난 후 이집트 본토인들에 의한 새왕조가 들어선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거죠. 한때 자신들을 지배했던 이민족 힉소스와 같은 지역 출신의 이민족 이스라엘 민족이 엄청난 수로 불어나 자신들에게 융화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니 위협을 느껴 밟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론이긴 하지만 이렇게 맞춰보면 꽤 재미난 추정들이 됩니다.

또, 창세기 말미에 요셉의 공으로 인해 이스라엘 부족 70여인이 이집트 ‘고센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나오는데, 이 지역이 나일강 최하류의 아주 풍족한 삼각주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 말한 나일강 범람으로 인한 풍부한 영양분 혜택을 아주 제대로 보는 지역이요. 이런 알짜 땅을 이민족들에게 덥썩 내어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은 그 땅이 풍족하긴 하나 그닥 매력적이진 못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사막으로 둘러싸여 외적의 침입을 적게 받은 축복의 땅이었지만 외적이 거의 유일하게 침공해 올 수 있는 지역이 나일강 하류,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이 만나는 방면이었죠. 즉 고센 지역은 이집트 유일의 전쟁위험이 있는 국경지역이었던 겁니다(실제로 이후로도 이집트에 대한 외부의 공격은 거의 이 지역을 통해 일어납니다. 훗날의 해양민족 침공도 이곳이고, 먼 훗날 신바빌론 제국과의 일대 결전도 이 통로를 통해 이뤄집니다. 웃긴게 이집트가 바빌론 홈그라운드 침공했던건 다 깨졌고 반대로 느부갓네살의 신바빌론이 이집트 원정 왔던거는 바빌론이 다 깨짐..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남유다 왕국은 딱 그 사이 중간에 껴 있어서 이집트의 바빌론 원정 실패때는 바빌론에 붙고 바빌론의 이집트 원정 실패때는 이집트에 붙는 박쥐짓하다 개발살나고 결국 바빌론에 의해 멸망 테크...) 성경에선 당시 이집트에서는 목축업을 천시했다고 나오며, 이스라엘 족속은 하필 딱 가축을 치며 유랑하는 민족이었죠. 그래서 이 핑계로 당시 이집트의 메인 지역에 같이 어울려 살기보다 국경지역에 따로 떨어져 거주하겠다 말한거죠. 당시 파라오의 입장에서도 외부민족, 그것도 자기네가 상을 내려줘야 할 입장의 민족이 자진해서 국경지대로 가서 외부와의 완충작용을 자청하고 나서니 싫을 리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의 이집트는 딱히 외부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던 평화로운 시절이었고, 덕분에 국경지대의 전쟁위협 리스크는 받지 않은채 그 땅 특유의 풍족함은 마음껏 누린 덕분에 불과 몇백년만에 70명의 이스라엘 부족이 장정만 60만에 가까운 큰 민족으로 발전한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게 이 이론인거죠. 이집트 본토인들과 구분되어 따로 살았기에 서로 섞여 민족 정체성을 잃고 흡수되거나 할 위험도 피했던거죠. 다만 훗날 새 왕조가 세워진 출애굽시대는 히타이트 제국과의 갈등-화해-해양민족의 침략으로 동지중해 연안 초토화 등이 일어난 시기여서 이집트도 국경 방어에 신경써야 했을겁니다.(성경에 나오는 골리앗으로 유명한 ‘블레셋’ 사람들이 이 해양민족의 한 부류라 보고 있습니다. 얘네 거주지가 딱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중해 연안 지역이었습니다. 쭉 내려가면 이집트와 맞닿게 되는 그곳이요) 그래서 국경지역에 전쟁을 대비해 물자를 비축하고 방어를 위한 성들을 건축합니다. 이 노역에 이스라엘 민족을 부렸다고 나오죠. (다만 그 성 이름이 비돔과 라암셋 성으로 나오는데, 람세스의 이름을 딴 도시명을 봐선 이 시대가 최소 람세스1세 시대 이후일거다!라는 주장도 있고, 아니다 람세스1세 이전에도 람세스란 단어는 있었고 오히려 람세스 왕이 그것을 따서 지은 이름일 뿐이니 이게 연대 추정 근거는 되지 못한다!란 주장도 있습니다. 역사 연구란게 이렇게 어려운거죠...)

뭐 여튼 성서 속 이런 내용들을 통해 당시 이집트의 어느시대 어느 연대 이야기인지 추론도 되고, 이집트의 생활상 같은 것도 연구도 되고 그런게 있다보니 성서 이야기가 나오게 됐습니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여러 이론들 중 하나, 혹은 여럿을 섞어 풀어둔 이야기임을 감안해 주세요:)
6714 2018-10-02 20:50:45 4
놀라운 이집트의 역사 [새창]
2018/10/01 11:10:56
//딥군
1.성서의 창세기는 물론 역사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창세기 안에도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죠. 모두가 익히 잘 아는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 바벨탑 이야기 등은 창세기 전체의 1/5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아브라함부터 그의 증손자인 요셉까지 ‘족장들의 시대’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을 이야기 하고 있죠. 이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한 연대까지는 아니고, 또 이견도 많이 있긴 하지만 대략적은 연대 추정이 가능합니다. 구약성서 속에 포함된 역사서들에 나타난 연대로부터 역으로 연대를 계산해 들어가는 방법으로요.(성서 속에는 여러 종류의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신학적 메시지를 담은 책들도 있지만 편지도 있고 묵시문학도 있고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역사서도 여럿 있습니다. 그것도 두가지 다른 역사관에 입각한 역사서가 동시대를 그리고 있기도 하죠. 물론 역사서 외의 나머지 문서도 ‘사서’가 아닌 ‘사료’로써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기능합니다. 동시대 중근동 지역의 다른 역사서, 사료들과의 교차 검증을 통해서 말이죠) 팔레스타인(그시절 가나안) 지역의 다른 유물들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최초 등장한 시기 등의 자료와 성서 속 역사서의 연대기록(솔로몬 왕이 출애굽 시대로부터 몇백년 뒤의 왕이다, 이런 식의..) 교차검증 등 여러 계산들에 의해 대략 출애굽 연대가 언제쯤일 것이다 라는 몇가지 이론들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안에 있었던 년수를 또 빼면 요셉의 시대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아브라함까지 역산하면 아브라함이 대충 언제쯤 사람일지 추정은 가능해지는거죠.(가나안지역 출신 이방인인 요셉이 총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로, 당시가 똑같이 가나안지역 출신 이방인의 점령왕조였던 힉소스 왕조 시절이었기 때문이란 가설도 요셉시대 연대를 추정하게 해주는 근거가 됩니다. 이런식으로 창세기라 해도 아브라함 시대부터의 연대는 대략으로나마 추정 가능하긴 합니다)

톰엔제리//
2.성서에 피라미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고왕국 시절의 피라미드들이 성서 이야기를 통해 익히 알려진 아브라함이나 출애굽 등 오래오래전 중근동 역사 속에서조차 훨씬 이전의 고대 유적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약간 과장된 예시였지요. 착오를 드렸다면 죄송합니다ㅠㅠ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집트 방문한 내용은 그 당시 ‘아브람’이었던 개명 전 시절이 맞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다만 모두에게 익히 알려진 개명 후의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가나안 지역의 흉년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파라오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한 사건으로 등장하죠. 그리고 거석 피라미드가 지어진 고왕국은 아마 30몇세기에서 22세기 사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 중간기, 중왕국 등의 시대가 있었죠.

Wushining//
3.모두에게 잘 알려진 거석 피라미드(특히나 쿠푸왕 피라미드 등)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 과장해 이야기 한 면이 있습니다. 이후의 벽돌 피라미드
등 추가 정보로 정정해 주신 점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의 연대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설이 있지만 대략 기원전 1500년대 쯤의 사람이라는 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6713 2018-10-01 21:47:08 6
스압) 한국과 일본의 인류 문명 기여도.jpg [새창]
2018/10/01 21:18:37
과거 일본이 제국주의에 미쳐서 수많은 아시아 나라들의 로컬 문화와 언어와 문화재 유물을 파괴하고 유린했으며 인류에 대한 보편적 낙관주의와 희망을 꺾어놓은 심각한 전쟁범죄를 일으킨 역사, 그리 멀지도 않은 최근의 역사 속 반인륜적이고 반문명적인 범죄행각을 생각하면 확실히 인류 문명에 우리나라보다 훨 큰 영향을 미치긴 했었죠. 눈부시게 발전해오던 인류 문명의 역사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하루아침에 인간을 짐승과 다를바 없는 존재로 전락시킨 졸라 큰 악영향 말입니다ㅋ
6712 2018-10-01 15:44:43 62
놀라운 이집트의 역사 [새창]
2018/10/01 11:10:56
5.보통 피라미드라면 왕의 무덤 용도로 아실텐데, 이집트의 또다른 왕릉 유적인 ‘왕가의 계곡’은 그럼 또 뭐냐 의문을 가지신 적이 있을겁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고대 피라미드에서도 더 고대의 고왕국 시절엔 피라미드를 지어 왕의 사후 세계를 준비했다면, 수천년이 흐르고 왕조가 몇번 바뀐 후엔 피라미드를 지을 기술도 소실되고 지을 여력이나 상황도 되지 않고 지을 필요도 없어진 시기였기에 왕가의 계곡이란 형태의 왕들의 무덤을 사용한 것이죠.

6.피라미드라 하면 보통은 마인크래프트나 레고 블럭처럼 계단 형태의 모양을 떠올리시게 될텐데, 사실 원래의 피라미드 형태는 윗분들 말씀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진 직선들로 이뤄진 뿔이었답니다. 세월이 흐르며 풍화작용을 겪기도 하고, 아무래도 대형 고급 석재라는 건축자재가 구하기도 운반하기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관계로 후대 다른 왕들이 선대, 혹은 왕조가 아예 바뀐 후 이전 고대 왕조의 고대 왕들 무덤의 고오급 석재를 슬쩍(.....)해서 자기꺼 만드는데 써먹기도 했고, 헬라-로마 시대를 거치며 대제국 이집트가 슬슬 남들 동네북으로 떨어진 시기들을 거치기도 하면서 관리가 되질 않아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막 돌 떼다 자기 집 짓거나 고치는데 막 쓰고(...) 그러다보니 저 모양이 된 것이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년간 웅장하게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게 오히려 더 대단한거죠.
6711 2018-10-01 15:33:04 66
놀라운 이집트의 역사 [새창]
2018/10/01 11:10:56
이집트와 피라미드의 역사에 관한 재미난 사실들

1.고대 중근동 역사에 관한 가장 유명한 사료 중 하나인 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의 고대 사람이죠. 흔히들 아시는 요셉과 이스라엘 부족의 이집트 이주, 그 후 수백년이 지난 뒤 출애굽 등의 이야기보다도 한참 더 전에 아브라함고 이집트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수천년 전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방문했던 당시에도 이미 피라미드는 이집트 내에서 그 제작 기술조차 소실됝 오래인 수천년 전의 고대유물이었음. 아브라함이 피라미드 보고 “헐 슈바 저거 뭐임? 너네 문명 짱이네?!” 하니까 이집트 사람들도 “헐 슈바 저거 뭐임 진짜 짱이네?!” 이런 격이었던게죠. 당대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이미 피라미드는 몇천년 전, 왕조로 따져도 몇번은 바뀐 시기 이전의 고대유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만든건지 방법조차 모르게 된 유물이요. 지금의 우리가 석굴암 보듯 그런 느낌일테죠.

2.성서 출애굽기에 보면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고 대형 건축 노역에 동원했다고 나오는데, 보통 이집트의 거대 건축물이라 하면 피라미드를 떠올리기 마련이라 이스라엘 민족이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된 것으로 오해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처럼 피라미드는 이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 들어오기도 전, 아니 아직 나타나기도 전인 시조 아브라함으로부터도 몇천년 전의 고대 건축물로, 이후 몇차례 왕조가 바뀌면서 이제는 더이상 건축되지도 않았고 건축기술조차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동원되었다는 건축 노역은 성서에도 기록된대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성이었습니다. 이집트 윗쪽 동네 국경 부근에 지어진 성들이었죠. (당시 이 방면으로는 해양민족의 진출이 활발했었고, 이집트에 대한 외세의 침공은 주로 이 루트로 이뤄졌기에 군사적으로 방비를 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대 기준으로 이집트의 직전 왕조가 이쪽 국경 너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넘어온 힉소스 족속에 의해 이집트가 점령되어 외부민족 왕조가 세워졌다가 막 독립된 참이었으니 외세에 대한 방비 필요성도 높았고 힉소스와 동향(...)에서 넘어온 이스라엘 민족의 성장을 밟아줘야 할 필요도 컸거든요)

3.이집트가 나일강을 바탕으로 세워진 문명인 것은 당연히 다들 잘 아시는 사실일 겁니다. 그런데 이 나일강은 매년 특정시기(상류지역의 우기+그곳에서부터 이집트까지 물이 흘러올 시간)에 대량 범람을 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범람이었냐면, 이 시기 이집트 지도가 바뀌게 될 정도의 사이즈였죠. 매년 범람기가 되면 일정 국토가 물에 잠겨버리는 단점은 있었지만, 범람 시기에 상류로부터 온갖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과 자연 비료가 미친듯이 쏟아져 내려왔기에 이집트인들은 딱히 어떤 별도의 토질 개선 노력이나 지력소모에 대한 걱정 없이 매년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땅의 이런 특이한 자연적 특성은 이집트인들의 생활 습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것과 더불어 종교/문화/정신적 영향도 크게 미치고 과학기술의 발달도 촉진시켰습니다. 문화/정신적으로는 근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비해 여유가 넘치고 낙관적인 경향이 컸죠. 사망지형에 둘러싸인 천혜의 방벽이 있었고 그 안에서 나일강을 통해 풍족한 수확을 거두며 살았는데 심지어 매년 지력을 영양만점 상태로 리셋해주는 축복까지 받았으니 외세의 침공은 적게 받고 경제적으로는 딱히 뭘 안해도 손쉽게 풍요를 누린 것이 문화/종교/정신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입니다. 그리고 매년 엄청난 규모로 지형이 바뀌고 바다 같은 강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니 이 모든 것을 관측하고 측량하고 통계를 내야 할 필요가 컸기에 자연스레 과학기술도 발달한거죠.

4.피라미드는 이런 과학기술의 정점이었습니다.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 목재와 석재 등을 운반하기에는 물길을 통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죠. 그래서 상류로부터 이런 건축 재료를 나일강 길을 통해 운반했습니다. 피라미드 같은 초거대 건축물을 짓기 위한 거대 석재와 많은 양의 목재를 강물을 따라 운반한거죠. 그러나 문제는 위에 말했듯, 매년 돌아오는 범람기에 맞춰 강의 모양과 지도가 바뀝니다. 한때 강변인 곳이 범람기엔 강 한복판인 일이 매년 벌어지는거죠. 여기서 평상시의 강변 지역을 기준으로 건물을 지으면 매년 물에 잠기는 사태가 날테니, 범람기의 강변 지역을 기준으로 그곳에 피라미드를 옹기종기 모아 지었다고 합니다. 범람기에 재료를 줄줄이 운반해 와서 건축했단 것이죠. 강변에서 너무 멀면 육상 자재 수송 거리가 멀어져 자금과 시간과 노력이 너무 커지고, 너무 가까우면 자칫 파라오의 사후 자택에 물난리 침수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당대의 측량 기술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수천년의 역사동안 침수된 기록이 몇차례 없었다고 합니다.
6710 2018-10-01 13:31:59 2
어떤 감독의 간단한 요청 사항 [새창]
2018/10/01 10:56:03
씨집이 별로 마음에는 안들지만 우리나라서 아맥 보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죠...

용산 아맥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사이즈 ‘레이저 아맥’관입니다. 아맥 좋아해서 자주 가는데, 용아맥 개장하고 처음 가본 후 진짜 신세계를 맛봤죠. 그때 본게 덩케르크였습니다.

용아맥에서 지난 영화들 중 아맥 포맷이거나 아맥에 적합한 것들 재상영하는 기회가 간간히 돌아오는데, 만약 덩케르크 재개봉 하는 날이 오면 무조건 가서 보십시오. 놀란 영화 좋아하고 아맥 좋아하신다면 무조건 가보십시오. 전쟁의 한복판에 뚝 떨어진 미친 체험을 해보실 수 있을겁니다.

전 처음에 까만 화면에서 영화 첫장면이 훅 켜지는 순간부터 완전 실신했음....
6709 2018-10-01 11:52:39 13
대학물드립 [새창]
2018/10/01 07:46:40
요즘 유학 핑계로 해외 나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하다 오는 사람들 많다더니 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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