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
2017-07-02 10:22:31
6
저저번 알쓸신잡 본 이후로 부터 젠트리피케이션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유시민작가가 대단한 사람이고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안에 쏙 들어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약간 잘못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댓글에 써도 볼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한분이라도 보실 것 같으니 제가 아는 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 홍대나 경리단길, 가로수길 이런 곳일 겁니다.
초기에 소소하게 모여서 하고 싶은 가게, 하고 싶은 뭔가를 하다가 그게 유명해지면 하나의 "관광상품형 네임드"가 되는 형태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자본이 투자되면서 아직 안들어와있던 예전 가게들이 하나씩 나가고 리모델링한 비싼 인테리어를 두른 가게들이 들어오죠. 동시에 프렌차이즈들도 하나씩 들어오고. 그정도 상권이 형성되면 원래 이름을 날렸던 가게들에 비해서 훨씬 깔끔하고 훨씬 예쁜 인테리어를 하는 가게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도 초기에 있던 가게들이 나름 돈을 벌어요. SNS나 TV를 통해서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이름보고 찾아오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데 사실 그 초기에 있던 가게들 중, 그 가게 건물을 갖고서 하는 "그 지역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임대로 들어와 있는 거지.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 아무리 그들이 원래 하던 가게에서 이득을 빼도 임대료의 폭등과 교차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경쟁적인 장사로 변형되면서 스트레스도 발생하고, 특히! 가장 중요한 주차 및 소음문제가 아주 심각해지기 시작하죠. 동네 자체가 시끄럽고 더러운 동네가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자 이게 초기의 우리 나라 젠트리피케이션이고, 딱 유시민 작가도 여기까지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 나왔던 그 경주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이 경우랑 똑같을까요?
제 대답은 no 입니다.
최소한 우리나라 자치단체 및 정부기관들은 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성공"으로 봤습니다.
TV에도 화려하게 나오고 방송타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해지는 것 만으로 그 거리가 살아났네 어쩌네 난리도 아니죠.
그래서 이러한 성공사례는 "베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전국에 몇개의 "거리특화사업"이 존재하는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겁니다. 그리고 전통시장활성화 사업에 1년에 얼마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지도 말이죠. 지자체, 그리고 문광부, 문화재청 등, 공공기관은 그러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성공"이라고 판단하여 국가 사업의 롤모델로 삼아버립니다.
그래서 소위 "문화기획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런 활성화 사업들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거의 대부분 타 지역 사업을 말이좋아 롤모델이지 그대로 베껴서 옮겨놓습니다.
엊그제 대학생이 암걸리는 만화 그리신 분 글에도 남겼지만 이런 분야에서... 아니 거의 우리나라에서 잘 쓰이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한국최초(전국최초)" (외국 거 베꼈다는 얘기임)
"oo(지역이름) 최초" (타 지역꺼 베꼈다는 얘기임)
"새로운, 트렌디" (이미 몇 개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빠른 편임)
그래서 거의 모든 지역특화 사업이 공통적인 작업들로 이루어 집니다. 벽화사업, 예술가 모아놓고, 지역주민 예술학교 뭐 이런 거 하고, 길가에 화분 돌리고, 예술품을 길가에 쳐박아서 공공미술이니 뭐니 하고... 어차피 서로 베껴서 만드는 거라 대충 비슷하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베끼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딱히 죄의식도 없어요. 기획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배치하는 데 있다고 말들 하니까요.
여튼 국가 주도로 몇십억 단위의 돈이 계속 그렇게 전국에 쏟아져 내리고 있으니 그 사업을 따서 저런 활동들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망하면 안되니, 저렇게 꾸며놓고 홍보를 때려요. 곳곳에. SNS니 뭐니.
그런데 저렇게 조성하면 언제나 그 거리나 도시에 원래 살던 사람들은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들이 원해서 생긴 변화가 아니거든요. 국가는 보통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하는데 그건 주민자치위원회 정도 수렴했을테고, 실제로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을 위한 사람들인지 정치인들과 연을 닿아서 뭔가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의 모임인지는 몸을 담아본 사람들만 어느 정도 알고 있겠죠.
그 쯤 되서 국가 돈으로 몇십억 들여서 사업이 쏟아져 내리고 정비가 되고 그러면 그 때쯤 자본이 있는 사람들이 밀려들어옵니다.
네. 알쓸신잡에 나왔던 경주 거기 처럼요. 거기가 옛날부터 유명한 게 아니라, 거기서 유명하다는 (SNS나 TV에서 봤다는)집은 죄다 그런 사업이 시작되고 나서 들어온 케이스라는 거죠. 이건 뭐 만들어진 전통 이런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지 2달된 빵집 앞에서 "여기가 유명한 집이래"이러면서 SNS에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진짜 멘붕이 옵니다.
결국 그런 젠트리피케이션의 불편함은 주민들에게 다 돌아오게 되어있어요. 주차문제 쓰레기문제 소음문제... 장난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못참고 나가면 그 자리에 건물 밀고 또 다른 디저트샵, 커피샵, 맛집(열자마자 맛집이 되는 마법의) 들이 열게 되죠.
더 중요한 건 어차피 그런 방법으로 크게 된 동네는 다른 동력이 없다는 겁니다.
즉, 그 거리는 돈 벌러 들어온 가게들의 거리가 되어서, 밤이 되면 공동화가 극심해져요. 원래 주민들이 저녁 느즈막히 다니던 가게들 다 없어지고, SNS 관광객, SNS 쇼핑객들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대부분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추가타로, 국가는 사실 그 사업을 3년에서 5년이상 지속하지 않아요. 균형발전이니 뭐니 때문에 한 지역에만 계속 돈을 쏟아부으면 말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 지역 정치인의 재선을 위한 사업처럼 되기도 하고... 그래서 얼마 후에 지원이 끊깁니다.
국가 지원이 끊기면 자본적인 사업들, 그러니까 커피숍 뭐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됩니다만 (SNS에 계속 이쁘다고 잘 먹고 있다고 올리니까) 그게 얼마나 유지 될지는 미지수 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동력을 잃어요.
왜냐면 '또 다른 개발처'를 국가와 아까 그 "문화기획자"라는 인간들이 찾아다니거든요. 그리고 거기가서 똑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거리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똑같이 개발하고 똑같이 예쁜 커피숍 예쁜 사진 찍을 공간들을 만들어서 다시 새로운 가게들을 불러들이죠.
그럼 아까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동네는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 새로운 동네를 찾아서 (어차피 임대였으니까) 가게를 옮깁니다. 잘되는 곳으로 가게를 옮겨다니는 게 문제는 없겠죠. 그런 식으로 가게들이 빠져나가면 땅값과 임대료가 폭등한 동네라서 가게가 잘 안들어옵니다. 잘 모르고 속아서 시작하는 사람들 제외하고는 말이죠.
그래서 슬슬 손님이 줄어들면서 가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공동화는 급속도로 진행이 됩니다.
남은 사람들 중에 뒤늦게 속아서 들어왔거나, 자기 재산 다 털어서 시작한 사람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국가가 이렇게 여기를 띄웠으면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아둥바둥 국가에 사업을 직접 내거나 지자체를 못살게 굴기 시작하죠. 그 정도로 패기 있지 않은 분들은 그냥 조용히 정리하면서 다른 동네로 떠납니다.
그렇게 한번 폭풍이 불고간 그 동네는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아마 초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은 동네들이 지금 이런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지역개발사업을 보는 방법과 하는 방법이 둘다 왜곡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잡아먹힐 수 있는 방식으로 지역개발을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이유는 뻔합니다. 그렇게 개발을 해야 그 지역 지자체든 어디든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역개발 하면 나오는 사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부러 회피하는 사례 중 하나가, 영국의 거대 식물원인가 뭔가를 지었던 사례인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거대한 개발 사업이 하나가 들어오면 마을 전체, 지역 전체의 경제구조부터 많은 것이 바뀌기 때문에 그걸 지역 사회에 충분한 이득과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합의하는데 10년이 걸렸거든요. 그리고 나서 그 개발 사업이 시작되었죠.
우리나라는 자기가 의원자리에 앉아있을 때 삽을 떠야 자기 공적이 되는 거라서 그렇게 못하는 거고, 거기다 그렇게 빨리 삽을 떠야 그걸로 돈 좀 벌어보려고 투기한 인간들이 돈방석에 앉기 때문에 빠르게 삽을 뜨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주의의 선택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이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오고 있는 독은 또 다른데 있어요.
바로 소비문화의 변화입니다. 평소의 소비를 극도로 가성비를 따지고 주말 같은 때 딱 하루 차려입고 나가서 사진찍고 커피숍 맛집 투어하는 것. 지금 우리의 소비문화가 너무 고정된 패턴으로 가고 있는데 거기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평소의 소비"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내수경제는 지속적인 위축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런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 가서 까페와 맛집투어를 하는 것으로 소비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국가의 개발사업은 계속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거구요.
제가 말을 하다보면... 주체를 못해서 방향성을 잃고 그냥 길기만 한 글이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