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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5 19: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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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시절, 당구라는 신문화에 빠져 공강시간이나 강의가 끝나면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그때 자주 갔었던 당구장 사장님 수지가 2,000 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 분의 실력을 경험할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하루는 밤 세워 그곳에서 당구를 치게 된 날이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이 되자 사장님이 "한 큐 보여줄까?" 라며 나서시는 것이었다. 그러곤 자주 접할 수 있는 예술구 형태를 배치하셨는데, 빨간 공을 맞춘 뒤 끌어치기로 긴 다이를 맞고 옆으로 진행해 다시 짧은 다이를 맞고 계속된 끌어치기로 다시 긴 다이를 맞은 뒤 빨간 공을 맞히는 그런 배치였다. 사실 이 정도는 200 이상 정도가 되면 열 번에 한 번은 성공 가능하고, 500 넘으면 두 번에 한 번은 가능한 그런 수준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친 흰 공은 빨간 공을 맞고 뒤로 끌려 와 긴 다이를 맞고 튀기더니 계속 끌리면서 다시 긴 다이를 또 맞고 옆으로 진행 해 짧은 다이를 맞은 뒤 빨간 공을 맞히는 것이 아닌가. 밀어치기로 긴 다이나 짧은 다이를 두 번 연속으로 맞히는 공은 가끔 볼 수 있는 진행이었지만, 끌어치기로 같은 다이를 두 번 연속으로 맞는 진행은 나로선 생전 처음보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리는 바로는 프로에 도전은 하셨었는데, 내기 당구로 너무 많이 나선 전적이 들키는 바람에 프로 입문이 좌절되셨었다고 한다. 뭐, 부인 놔두고 당구장에 자주 놀러오던 여학생과 바람이 난 것이 들켜 본부인이 당구장에서 난리를 한 번 피웠었고, 결국 당구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떠나시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