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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3 2016-10-28 00:16:55 0
[스압]중세 동북아시아의 수사,사법 체계.jpg txt [새창]
2016/10/26 22:13:47
여담입니다만 무적자는 신분이 없는 존재로 재판을 걸수가 없으며 따라서 노비는 재판의 당사자 인 경우도 드물거니와 항소는 커녕 제대로 호소조차 할수 없는게 현실이었고 대전에 기술된 '만약 노비가 주인의 시키는 명령을 위범하였으므로 법에 의거하여 형벌을 결행하다가 우연히 죽게 만든 것과 과실치사한 자는 모두 논죄하지 아니한다' 라는 단서 아래에 세종이 언급한 바에 따라 포락炮烙 의형劓刑 이형刵刑 경면黥面 고족刳足 그러니까 중죄인에게 행하는 형벌입니다, 즉 가볍게는 두들겨 패는 것을 시작으로 무겁게는 불로 지지고 힘줄을 자르고 다리의 살을 발라내고, 코와 귀를 자르고,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것 등 참 재판 없이 많은 것이 가능했죠,
7512 2016-10-28 00:10:01 2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했으면 사회 부패가 없어졌을까요?? [새창]
2016/10/27 21:11:13
짤막하게 옮기는 두서없는 이야기이나 일본을 빠는 이야기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며 어떻게 본다면 불편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문제가 제기될때마다 말씀드리고 싶은게 사실 친일파를 배제한다 하여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졌으리라는 가정이 윗분이 말씀해주셨습니다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일제 강점기를 거친 뒤 고등 교육을 받거나 제대로 된 용병학을 익히고 또 쓸수 있으며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 간접 자본을 운용할수 있는 혹은 보유한 인력이나 자본가들이 대체로 어디에 속해있었습니까? 미국이 당시 신생 국가인 대한민국 정부가 친일파를 괜히 용인하고 받아들인게 아닙니다,

당장 행정, 경제, 군사적인 공백을 무엇으로 메꿀수 있겠습니까? 인적 자원뿐만 아니라 가령 군대에 지급할 군수 물자만 놓고 보더라도 구 일본 제국군의 그 것을 징발하여 지급하였으나 결국 정수에 미달하여 입총을 쏘거나 제대로 된 군복조차 입지 못하였던 것이 당시 상황인데 일본이라 하여 무조건적인 배제를 거친다면 뭐 까놓고 말해서 답이 없죠, 당장 소련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세계 유래없는 강대한 전력을 구축하였던 북한이 왜 그러한 상황에서 친일파를 받아들였을까요; 당장 그러한 지원을 업은 북한도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수는 없었던게 사실입니다, 아 물론 이승만이나 김일성이나 목줄을 채우고 조종하기 쉬운 까닭에 친일파를 받아들인 일면도 무시할수는 없습니다만 나름 고급 인력이라 부를수 있는 재원들은 쉬이 얻어지는게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 라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정의롭고 올바르다는 가정도 꽤 문제인게 사람의 인성은 경력과 비례하는게 아닙니다, 좀 웃긴 근래의 사례를 들자면 뉴라이트의 이영훈씨가 유명해진것은 일본 제국의 비 효율적 행정 체계 등을 비판해서 부터입니다만 그러한 민족주의적 어떻게 본다면 반 일본 제국을 이야기하던 양반이 정치를 맛본 이후 타락해버렸죠,

문학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김기진, 김동인, 이만식, 박영희같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친일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들의 업적에 대한 평가가 어떻던가요? 그 외에 가령 좀 멀리 다른 이야기를 들고 나가자면 아랍의 이슬람 무장 과격 단체들 역시 끔찍한 현실과 다르게 아이러니하지만 주장 자체는 좋습니다, 그 들이 바라는 이상은 결국 영혼이 없는 타락한 삶으로 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여 옳바른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니 말이지요, 하지만 그 이상과 행동이 일치하던가요? 그러니까 쉽게 말씀드리자면 이상과 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독립운동가라고 해서 그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인성이 옳다고 보기는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어렵죠,

또한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위에서 다른 분이 말씀해주셨습니다만 모든 부패의 원인이 친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자정 작용이 얼마나 이상적으로 돌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일텐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오랜 세월 큰 댓가를 치뤄가며 이루어냈고 그러한 민주화를 이루어낸 이후에도 당장 요근래 문제가 된 고스트 바둑왕 아니 대통령 문제에서 볼수 있듯이 그러한 자정작용이 이상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것을 오로지 친일에만 이유를 둘건 아니지요, 당장 친일파이나 별 다른 문제 없이 살다가신 분들은 그럼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요? 반대로 친일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경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분들은요?
7511 2016-10-23 16:14:14 1
[새창]
뭐 실전을 논하자면 최종 비기 '모잠비크 드릴'을 이길수가 없는게 없죠, 총기 소지 금지 국가를 놓고 논하자면 '테이져'라던가 '최루탄'도 빼놓을수 없을테고 말입니다.
7510 2016-10-23 16:12:32 0
[본삭금/질문]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새창]
2016/10/23 13:25:41
그렇죠,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불과 이십 삼십년도 안되던 예전에는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서도 제대로 먹고 씻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던 때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 흔히들 말하는 숯검댕이 같은 몰골로 돌아다니시는 분들이 많았지요,

첨언을 하나 해보자면 한가지 재밌는건 숯검댕이는 북녘땅에서 숯검정을 부르는 사투리라는 겁니다, 즉 표준어로 말하자면 숯검정이고 실제 어원을 찾아보더라도 물질인 숯과 색을 뜻하는 검정이 함께 쓰여야 옳겠습니다만 실질적인 사용 비중은 물질인 숯 +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그을음 혹은 연기 등이 엉겨 만들어진 검은색 물질을 말하는 검댕이를 붙여 부르는 비 표준어인 사투리가 표준어를 앞도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7509 2016-10-23 15:39:44 0
[본삭금/질문]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새창]
2016/10/23 13:25:41

이거랑 비슷하거죠, 윗분이 말씀해주신대로 햇빛에 그을린 얼굴에 음영까지 지고 뭐하면 그렇죠, 거기에 버짐이나 여타 피부 질환이 더해지면 더더욱 차이가 나고 말입니다.
7508 2016-10-09 01:11:11 1
예정 없는 전차 이야기 (5) 95식 경전차 하고 입니다, [새창]
2016/10/08 13:27:55
본문의 반복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세계대전에 있어 아니 어떠한 물건의 발전에 있어 반드시라고 할정도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바로 동기와 자본일것입니다, 무엇이든 내외부의 자극을 거쳐 그 것을 구상하고 생산에 이끌어내어 배비를 할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일본 제국은 그리 부유한 국가도 아니거니와 동기 부여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당장 일본 제국의 궁극적인 패망의 원인이자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온 중국의 군벌들을 놓고 본다면 말할것도 없는 상황이고, 소련의 경우 비록 그들의 오산과 소련의 삽질이라고는 하나 어쨌거나 과도기를 거쳐나가며 발전해온 전력을 실감하였습니다만 당장 대적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파악한 것과 별개로 이미 수렁에 빠져버린 중일 전선의 문제로 말미암아 어떻게 투자를 할 여력이 안된게 현실이지요, 덕분에 관동군의 마지노선으로 방향을 잡을수 밖에 없었고 말입니다, 일본 제국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정도로 낭낭한 국력을 자랑한 나라가 아닙니다, 경공업이야 현대 중국의 프리퀼이라 할만큼 세계 경제를 주름잡았으나 중공업은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수준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나아가는바 문제는 그 들의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 전차가 아닐뿐입니다,

가령 생각해보시면 재밌는게 한때 일본 제국은 이제 막 중공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원 수급 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할 무렵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해군 전력과 항공 전력을 배비하고 있던 국가중 하나입니다, 그 들이 초기에 개발한 전차는 동시기의 전차들과 크게 다를바도 없고 말이지요, 그러한 전력이 언제부터 뒤쳐지게 되었을까요?

전차는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추가적인 개량, 발전 어떠한 압도적인 신병기의 개발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물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엔진을 교체한다거나 업건을 한다거나 하는 수준은 있었지요, 다만 독일, 영국, 미국, 소련등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서로 쉬지않고 외통수를 치고 올라가야 할 상황이었나 한다면 그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 들이 전략 실패와 자원 부족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각지의 섬에서 끊임없이 내외적으로 반강제로 발전할수 밖에 없던 미군과 육군이 직접적으로 마주칠때까지 그러한 상황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좋은게 사실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선택과 집중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지요, 사실 이건 어느 국가나 비슷했던게 사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7507 2016-10-08 22:04:53 1
예정 없는 전차 이야기 (5) 95식 경전차 하고 입니다, [새창]
2016/10/08 13:27:55
95식 하고는 기병 전차를 목표로 삼은터라 보병 지원과는 다소 무관합니다, 포탑에 후방부의 마운트나 혹은 별도의 포탑을 얹어 기관총을 장착하는 것은 외부에 기관총좌를 얹기 이전 까지의 과도기적 트렌드였지요,
7506 2016-10-08 16:41:55 1
예정 없는 전차 이야기 (5) 95식 경전차 하고 입니다, [새창]
2016/10/08 13:27:55


7505 2016-10-08 16:39:24 2
예정 없는 전차 이야기 (5) 95식 경전차 하고 입니다, [새창]
2016/10/08 13:27:55

포탑 후방에 기관총좌를 위치하는 이유는 전차 내부에서 완벽하게 외부의 동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까닭에 사각에서 접근하는 적 보병 등을 빠르게 배제하기 위해서입니다, 하고를 비릇한 일본의 전차들 역시 동일한 이유로 기관총좌를 배비하였습니다만 특히나 하고의 경우 구조적으로 작은 포탑의 문제로 말미암아 포탑에 자리잡은 지휘관이 몸을 쉬이 돌리기 어렵고 특히나 차체 우측에 탄약고가 위치한 까닭에 우측 사선으로 비스듬히 배비하게 되었지요,
7504 2016-10-08 14:56:09 3
예정 없는 전차 이야기 (5) 95식 경전차 하고 입니다, [새창]
2016/10/08 13:27:55


7503 2016-10-01 15:11:56 1/7
[새창]
닉네임 언급은 하지 않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1. 사구체 논쟁이라하면 꽤나 흥미로운 관점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개인적으로 계급 투쟁적 개념으로 근대화를 정의 내릴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근대화라 하는 것이 물론 아시겠습니다만 어떠한 단일적 개념의 변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지요,

2. 웃기다는 말씀이 참 아이러니 한 것이 그럼 근대니 전 근대사회니 하는 구분이 왜 있을까요? 편법이라 단언하시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 과정을 무어라 규정짓고 부를수 있겠습니까?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으로 제시하실수 있으신지요, 당장 아주 간단한 사례가 우리 사회에 있어 기존의 왕실 복고를 벗어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그 생각이 저변에 깔리고 받아들여진 시기가 언제쯤이겠습니까? 언제부터 우리가 문화적으로 기존의 채식 중심의 사회를 벗어나 육류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을까요? 언제부터 사회 문화적으로 계급에 대한 이견을 공공연히 제시하게 되었을까요?

두번째로 저는 개인적으로 이출이라는 단어를 지지합니다만 다른 분의 말씀을 빌자면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는 형태로서의 수탈을 행한 것은 태평양전쟁시기이므로 그 이전에 있었던 수탈은 단순히 수탈이라는 말로는 정확한 설명이 어렵습니다. 물론 단순한 분들은 그 한마디로도 충분하겠지만 그 수탈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탈의 작동방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본주의체제하에서 발생하는 수탈은 그 본질이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역사를 통해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 식민지와 노동자, 농민을 수탈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수탈방식을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일부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은 당시의 일제를 자본주의적 수탈체제로 보는 것을 매우 불편해합니다. 그들의 시각에선 나쁜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일제여야하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할 점은 제국주의라는 체제자체가 자본주의의 가장 야만적 형태라는 점입니다.

민족적 감정으로 인해 일본을 악으로 두고 일본의 악성에서 수탈의 원리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매우 명쾌하고 간단합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대중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과연 현실이 그렇게 간단했을까요? 본문에 나와있는 당대의 수탈에 대한 설명처럼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제국이 친일지주층을 중간에 끼워서 농민들을 자본주의적 계약체제하에서 수탈하던 시스템이었죠. 오늘날의 어떤 시스템과 매우 비슷하지 않나요?

단순히 일본이 악해서, 일본이 조선민중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그런 수탈이 있었던게 아닙니다. 그런 단순하고도 심각하게 왜곡된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이해하면 일본이 아닌 다른 얼굴을 쓰고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세번째로 여기에서 일제 강점기의 강제 징용 및 성 노예 문제를 부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만 여러 소위말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만악의 근원으로 내몰리는 김낙년씨를 필두로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측도 그런 이야기는 안합니다.
7502 2016-09-30 00:44: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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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환단고기는 화하족의 자력 갱생 스토리가 아니라 자비로운 한민족, 환국인의 방치 플레이 스토리라지요.;
7501 2016-09-29 01:21:15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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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차례 반복되고 많은 분들을 지치게 만들어 결국 게시판을 무너뜨린 떡밥의 총합이라고도 볼수가 있겠네요,

아무튼 음...간략하게나마 이제껏 그래왔지만 별 의미도 없는 주제를 시간 관계상 공지등을 빌어 덧붙이자면

㉠ 내재적 발전론 + 근대적 발전은 없었다 + 오직 수탈만 당했다 = 식민지 수탈론
㉡ 근대적인 발전은 존재했다. + 근대적 발전을 통해 유입된 식민자본은 착취구조를 만들었다. = 식민지 자본주의론(개발-수탈론)
㉢ 근대적인 발전은 존재했다 + 근대적 발전은 독재시기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적 경험이 되었다. = 식민지 근대화론

여기서 상기 언급된 근래에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비판되는 대상들은 대게 ㉠이나 대체적으로 ㉡이고 정치적 영향으로 타락한 이병훈씨를 비릇한 이른바 시혜론자들이 주장하는게 상기 언급된 본문의 그 것과 같은 주장이며 현재 김낙년씨를 비릇한 낙성대경제연구소측에서 주장하는게 대략적으로 세가지를 적절하게 섞은 수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식민지 자본주의론'의 입장 내에서 근대적 발전에 대한 의견이 또다시 나뉩니다.

ⓐ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가치중립적인 근대화가 맞다. (이 개념은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차용중인 개념입니다.)
ⓑ 오직 경제적인 발전에 불과한 반쪽자리 근대화로 근대화가 아닌 공업화일 뿐이다.
ⓒ 식민지 근대라는 독특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낸 제3의 근대화일 뿐이다.

그리고 근대화란 결코 긍정적인 개념만이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 이면의 가령 자본주의적 수탈관계는 정말 작금의 현실에서도 알수 있겠습니다만 상상 이상이에요,

또한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 사실중 하나인데 허수열씨는 일제 시대의 발전 그 자체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그에 따른 수량적 견해에서 김낙년씨와 이견을 보일뿐입니다, 쌀 수출의 경우 지난 논쟁에서 언급된바 있습니다만 그 이면의 자본주의적 수탈과정을 배제할수 없는바 꼭 수출이라는 단어 사용이 부정적일수는 없는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수출과 수탈은 양립이 불가능한 개념이 아닙니다.;
7500 2016-09-24 01:27:26 0
[새창]
세줄 요약

호화 생활을 탄압한다 -> 먹고 살수 없으니 딴 길을 찾는다.
지방 호족을 탄압한다 -> 우리가 남이가?
부정 부패를 탄압한다 -> 먹고 살수 없으니 딴 길을 찾는다.

문제는 이게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도 그렇고, 또 비 호족 계층에서 굴러들어온다 한들 남들 다 하는 생활을 거부한다는건 사람이 아닌게 현실이지요.
7499 2016-09-24 01:13:33 1
[새창]
두서 없이 나마 첨언을 하나 해보자면 단순한 녹봉의 문제를 넘어 어느 시대가 다르겠습니까만은 지방 호족, 향신 세력간의 관계 역시 배제할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질적으로 앞선 원나라 당시에 비 몽골인이 성공하기 위하여는 크게 능력 혹은 핏줄이라는 두 요소 혹은 둘 중 하나가 필요하였습니다만 어느 하나이든 평민이 얻기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으며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에 대개 관리는 둘째치고 학자층 자체가 이 사회 계층에서 두텁게 자리잡았고 그 들이 자행하는 삶과 대비되는 그 들을 지탱하기 위한 비참한 삶을 경험하며 성장한 홍무제는 국자감이라는 기관을 통하여 기존의 호족, 향신 세력 등의 세력을 약화시키려 하였으나 그 것이 가능할리 없는게 일단 공부라는 행위 자체가 돈 한두푼 들어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노라 하는 지방의 사숙 그러니까 사립 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들과 아닌 이들은 출발선 자체가 달랐고 미래도 달랐으니 말이지요,

그러한 까닭에 지방 호족, 향신 세력과의 관리간의 유대관계는 늘 존재할수 밖에 없고 그 것을 바탕으로 하는 관리의 삶은 그 들 자신이 기본적으로 호족, 향신세력인까닭에 일반 민중에 비하여 호화스럽기 그지 없던게 사실입니다만 문제는 명나라에서는 그 걸 극심하게 탄압해 나갔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니 관리가 된 주요한 목적인 투자금 회수가 잘 될리도 없고 수십년간 이어온 생활 패턴을 한순간에 바꿀수도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던것도 간과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뭐 여러모로 난제이기는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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