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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13: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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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 당시의 기록은 한정되어 있어 판별하기 어려우나 비단 의자왕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리한 것이 현실이지요, 사실 백제 말기의 기록을 놓고 볼때 의자왕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대한 이견이 첨예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 것과 부차적으로 백제가 의자왕의 무능에 따라 손을 놓고있었다는 견해는 잘못된게 맞습니다.
당시 태종무열왕은 금돌성을 중심으로 삼년산성과 금돌성 등의 일대에 병력을 배비시켜 놓고 있었기에 백강과 탄현 일대는 실제 주 공격 루트라 판별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인터라 백제의 주요 병력은 임존성 및 웅진성에 배비되어 있었으며 탄현 자체가 소수가 다수를 방비하기 좋은 천혜의 요충지이기때문에 소수의 병력외의 병력을 추가 배비시키지는 않았지요.
그러하기에 탄현이 돌파 당했을때 뒷 수습이 안된 것 뿐입니다,
당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하하는 경로를 볼때 결성 인근 지역이 주 상륙 지역으로 판단되었기에 주 전력을 웅진성 일대에 배비시켜놓았으나 실제 상륙 지점은 금강 하구였고 이에 병력을 되돌릴 시간이 부족했기에 백강 하구에서 적을 요격하기 위하여 병력을 끌어모으려 했으나 좌평 의직과 중방령 여자진이 각 지역에서 병력을 끌어모으기에도 너무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더군다나 너무나 넒은 상륙지점을 생각하면 이건 뭐 답이 없는게 사실이었고 말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귀족간의 대립 및 의자왕의 타락, 그리고 신라군의 사기 진작만으로 단정짓는건 무리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