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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3 2017-02-20 00:50:13 2
조선시대에는 사형을 아무때나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새창]
2017/02/19 14:04:09
이서구의 경우 서유영의 금계필담에 나오는 이야기로 기억을 더듬어 옮겨보면 이러합니다, 필자인 서유영의 8촌 되는 친척이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 서유영에게는 7촌 숙부 되시는 분이 이서구를 방문하여 담소를 나누던 중 행랑채에서 소란이 일어 무슨일인가 보니 노비 하나가 이서구의 이름을 부르며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서구는 두번이나 용서를 해줬건만 또 이러느냐며 수노 즉 노비들의 십장 정도 되는 이를 불러 때려죽이라 명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렵 수노가 돌아와 때려 죽였음을 이르는바 곧이어 형조에서 서리가 찾아와 관청에 알리지 않고 사사로이 사람을 매질하여 죽이는 것은 불법이라 하는데 이에 이서구는 죽은 이는 우리집 사노인데 윤리를 어긋나는 죄를 지은바 관청에 알려 입에 올린다면 이보다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있겠냐며 그 때문에 사사로이 죽였다 라고 고하자 서리는 그 말에 수긍하고 별 말 없이 돌아갔다는 내용으로

이를 전하며 7촌 숙부는 늘 사람을 만날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며 이서구는 나이가 젊으나 일처리가 엄정하면서도 번거롭게 만들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원대한 그릇이 아니겠느냐고 칭찬을 하였다고 합니다,

백정의 이야기의 경우 백정 각시 놀음은 희롱당하여 자살한 여성의 실화와 박경리의 토지가 특히 유명합니다만 당시 백정들의 처우를 본다면 자극적 소설로 폄하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가령 1900년대 초 황성 신문을 본다면 일반인과 똑같은 의복을 허락받자 수백의 부민이 부내 백정을 습격한 사건이 수록되어 있고 20년대에는 행상에게 차별을 항의하자 수십명의 부민이 린치를 벌인 사건도 있습니다, 사립 보통 학교에서 자제를 퇴학 시키는건 말할것도 없는 일이고 말이지요, 이러한 기록들은 독립 기념관 형평사 운동 콘텐츠를 살펴보시면 그 들의 처우와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기술되어 있어 보다 이해하시기 쉬우실것 같습니다.
8050 2017-02-19 19:49:12 0
조선시대에는 사형을 아무때나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새창]
2017/02/19 14:04:09
첨언을 하나 하자면 이러한 사실에 해당되는건 오로지 양민 뿐이라는거죠;

가령 노비의 경우 대명률직해 大明律直解 투구 鬪毆에 따르자면 주인을 폭행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참형에, 살해는 능지처참이되 과실 치사인 경우는 교수형에 처해지며 상해를 입힐시에는 장 1백대와 유배형에 처해졌습니다, 물론 주인외의 기복친 즉 외조부모를 비릇한 친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법률이 적용되었습니다, 또 같은 대명률직해 21권에 보면 노비가 주인을 욕할거나 꾸짖을 시에는 교수형에 처하도록 명시되어 있어 빠져나갈 틈이 없었습니다.

비록 강상의 도리 즉 자식이 부모를 고발할시 장 1백대와 징역 3년, 고소 사실이 거짓 즉 무고죄일 경우 교수형에 처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기는 하나 이건 뭐 그냥 명분일뿐으로 술에 취해 주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욕했다는 이유로 백주대낮에 길가에서 노비를 때려죽인 조선 후기의 문인 이서구의 사례에서 볼수 있듯이, 죽이고 관가에 고발을 안하더라도 그 처럼 번거롭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이유와 같은 '명석한 판단'이 있다면 오히려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마련일 정도로 이 들은 조선의 복지 정책이나 법률적 문제에서 벗어난 존재들이었습니다.

무적자인 백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정의 여식, 아낙이 공공장소에 나오면 의례 벌어졌던 백정 각시 놀음과 같이 대낮에 여성을 벌거벗겨 희롱하는 작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고 신분 해방에 따라 그 들이 신분상 양민과 같은 자리에 오르자, 양민들이 떼를 지어 그 들의 마을을 습격하여 사람을 때려 잡고, 불을 지르고 온갖 린치와 참상을 벌여도 누구도 뭐라 하는 이가 없었던 것처럼 조선의 복지 정책이나 법률적인 문제는 철저하게 양민들의 것이었고 그 들의 시각에서 집해되었습니다.
8048 2017-02-19 19:38:54 0
ㅋㅎ 제가 최초로 알아차린 거 아닐까요? [새창]
2017/02/18 23:10:20
표준어 그러니까 서울 사투리에서는 쓰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도 좀 다르기도 하구요, 다만 본문에서 언급하신 수분하와 같이 손 -- , 솔-- 과 같은 좁은 지형 탓에 붙은 지명이나 소름, 소나무, 송곳과 같은 단어의 흔적들이 남아있기는 하죠,

다만 이러한 솔다라는 말이 쑤아핀과 연결되는가를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만주어로 솔다와 같은 좁은을 가리키는 말은 hafirahvn이거든요, 우리가 쓰는 송곳이라는 말은 16세기가 넘어서야 나오고 그 이전 15세기 무렵까지는 솔옷이라는 표현이 더 쓰였으며 표기는 錐子를 썼는데 아시다시피 한어로서의 발음은 솔옷이나 만주어의 쑤아핀과는 전혀 다르죠,

그러하기에 양측의 연관성은 단순한 동일에 그치는게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앞섭니다.
8047 2017-02-19 01:38:53 1
ㅋㅎ 제가 최초로 알아차린 거 아닐까요? [새창]
2017/02/18 23:10:20
그리고 같은 분의 다른 글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본고는 ‘곶’ 계열 어휘를 대상으로, 그 조어 방식, 기원적 의미, 형태와 의미의 변화 및 그 변화의 원인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곶’ 계열 어휘에는 ‘곶감, -꽂이, 고깔, 곡괭이, 꽃게, 꼬치, 꼬챙이, 송곳’ 등 이 있다.

‘곳감’은 동사 ‘곶-’과 ‘감’이 결합된 형태로 ‘꼬챙이로 꽂은 감’이라는 의미를, ‘-곶이’는 동사 ‘곶-’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곶이’가 접미사화한 것으로 ‘꽂아 두는 것’이라는 의미를 띤다. 그리고 ‘곳갈’은 명사 ‘곶’과 ‘갈’이 결합된 형태로 ‘꼬챙이처럼 뾰족한 모자’라는 의미를, ‘곳광이’는 명사 ‘곶’과 ‘광이’가 결합된 형태로 ‘꼬챙이처럼 뾰족하게 생긴 괭이’라는 의미를, ‘곳게’는 명사 ‘곶’과 ‘게’가 결합된 형태로 ‘등딱지의 양쪽 끝이 꼬챙이처럼 뾰족한 게’라는 의미를 띤다.

‘*고치’는 ‘곶’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고지’에서 변한 어형으로 추정된다. ‘곳챵이’는 명사 ‘곳치’에 접미사 ‘-앙이’가 결합된 ‘곳창이’의 異表記이다. ‘송곳’은 ‘솔-[細]’의 관형사형 ‘손’과 명사 ‘곶’이 결합된 ‘*손곶’의 변화형으로 ‘좁고 뾰족한 꼬챙이’라는 의미를 띤다. ‘송곳’과 같은 의미의 ‘솔옺’의 흔적이 식물 이름 ‘소루쟁이’에 남아 있다.
8046 2017-02-19 01:36:21 1
ㅋㅎ 제가 최초로 알아차린 거 아닐까요? [새창]
2017/02/18 23:10:20
(중략)

지금까지 우리는 '고드름'의 기원형이 무엇이며 그 기원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그리고 '고드름'은 직접 어떤 단어로 소급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가를 문헌과 방언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우선 함경 방언을 토대로 '고드름'의 기원형을 '*고저름'으로 잡았다. 그리고 '*고저름'을 '곶'과 '어름'으로 분석하고 '곶'이 기원적으로 '꼬챙이'나 '좁고 길게 뻗은 산줄기'를 가리키는 '곶(串)'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물론 '어름'은 '氷'의 뜻이다.

그리고 '곳갈, 곳챵이' 등과 같은 합성어 속에서는 '곶'이 '뾰족함'을 지시하는 요소로 사용된다는 점을 들어 '*고저름'을 '뾰족한 얼음'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기존의 '곧은 얼음'이라는 해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곶'이 이른 시기에 아주 일상적인 단어였고, 또 뾰족한 대상을 지시하는 합성어에 적극적으로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는 '고드름'을 지시하는 단어를 만드는 데에도 '곶(串)'이 이용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파악하였다.

(중략)
8045 2017-02-19 01:34:32 1
ㅋㅎ 제가 최초로 알아차린 거 아닐까요? [새창]
2017/02/18 23:10:20
일단 찾아보니 이러한 글은 있네요,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조항범 교수님의 고드름의 어원과 의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중략)

(12) ᄀ. 송곳 츄 錐 <신증유합 상:28>

ᄂ. 송곳 錐子 <역어유해 하:17>

'송곳'은 '*손곶'으로 재구된다. '*손곶'이 동화 작용과 15세기의 표기 규칙에 따라 '송곳'으로 표기된 것이다. '*손곶'의 '손'은 '솔다(狹)'의 관형사형이다. 형용사 '솔다'가 '송곳'을 뜻하던 또 다른 중세국어 '솔옷'(12)에서도 확인된다. '솔옷'은 '*솔곳'에서 'ᄅ' 뒤의 'ᄀ'이 'ᄋ'으로 교체된 형태이다. '*솔곳'의 '곳'도 '곶'으로 소급한다. '옷'의 성조가 去聲이어서 '곶(串)'의 성조와 일치함을 보인다. 이렇듯 '송곳'이 뾰족한 대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성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송곳'이나 '*솔곳'의 '곳'을 '곶(串)' 이외의 다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곶'을 이용한 합성어에는 이들 이외에도 '고지, 곶매, 곶못, 곶뿌리, 곶섬, 돌곶, 질곶' 등과 같은 여러 지명도 있다. '곶'이 중세국어에서도 쓰였고, 또 합성어 형성에 적극적으로 이용된 것을 보면 이 단어가 어느 시점까지 대단히 왕성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꼬챙이, 고깔' 등에서 보듯 합성어의 선행 요소로 쓰인 경우에는 '뾰족함'의 뜻을 더하는 接頭辭的 의미 기능까지 보이고 있어 그 쓰임의 범위가 대단히 넓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략)
8044 2017-02-18 22:49:45 0
서양 사극 보면 중세에 대한 무신 스테레오타입이 있는 듯 시퍼요. [새창]
2017/02/18 21:52:42
사실 우리가 아는 중세는 만들어진 역사인 부분이 큰게 가령 실제 역사를 다룬다고 마을마다 공용 목욕탕이 있어 모두가 청결한 생활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현대식 병원의 시스템을 갖춘 의료 시설 및 조직, 상식과 학문적 진리를 강조하는 종교 조직 등을 말하는건 좀...그렇지요.
8043 2017-02-18 15:04:56 0
[새창]


8042 2017-02-18 12:57:40 0
아르메니아 의장대 [새창]
2017/02/16 15:25:23
우와 진짜 소름 돋을 정도네요; 얼마나 사람을 갈아넣으면 저 정도의 완성도를 보일지 대단합니다.
8041 2017-02-18 12:36:42 2
두서없이 옮겨적은 산포와 보병포의 차이? 입니다. [새창]
2017/02/17 23:33:42

도수 운반 하다보면 사람이 이상해 지기 마련이라지요 :)
8040 2017-02-18 12:30:08 9
뮬란 스토리 요약 [새창]
2017/02/17 22:48:02
코린토스 전쟁 당시 스파르타에 큰 타격을 안겨준 테베의 신성대가 어떠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네요;
8039 2017-02-18 12:26:05 34
뮬란 스토리 요약 [새창]
2017/02/17 22:48:02
종합 비타민이라니 아 진짜 부정할수 없네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TV 방영이 됬나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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