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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5 19: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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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중 이 글에 답글 달아 드릴께요, 실행중 아이콘이 뜬 상태에서 연타를 누르실만큼 다급하신 내용일까 싶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더 이상 토론의 진행이 어려우니 떡밥을 던지시는건가요? 뭐 아무튼 본문에서 맞는 내용도 있고 아닌 내용도 있고 또 언급된 당사자로서 몇가지 첨언을 더하자면
미국이 일본에 있어 동맹인적이 있었나 하면 네 있어요, 사실 끝난건 통상조약일뿐 양측의 외교적 동맹 관계는 위태위태하나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나아갔는걸요,
간단하게 언급하신 중일전쟁 당시부터 써보자면 중일전쟁 자체에 대하여서는 사실 별반 이야기가 없던 것이 사실이나 문제는 자국인 민간인들의 피해였고 그러한 피해가 누적되다 파나이 호 격침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3주후 모랄 앰바고 그러니까 무역 금제 조치를 일으킵니다만 어디까지나 민간인에게 폭격을 가하는 국가에 대하여 비행기나 그 관련된 모든 부품의 수출을 반대하는 것으로 미국측이 파악하고 있는 문제점이 크게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미일통상조약의 위배와 동남아로서의 진출이지요, 물론 일본측으로서도 막대한 부담을 안고 있는 일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다 사이토 히로시 주미대사가 현지에서 사망하면서 민간의 분위기는 달라지게 됩니다, 미국이 화해의 제스쳐를 담아 중순양함에 시신을 운구하여 일본으로 직접 보내주는데 민간의 분위기만 좋았던 것이 미 중순양함 이름이 갑자기 잘 생각이 안나는데 에스토리아?아스트레아 아마 그러할텐데 아무튼 이 중순양함이 미 국무성의 친서를 가지고 한창 태평양을 건널 당시에 일본은 중국 남부의 섬 하이난섬을 점령했거든요, 얼마 뒤는 스프레틀리 군도까지 넘어가는데 물론 동남아 진출의 야욕은 없다 하나 뭐 생각하기 나름인 일이었지요,
근데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칠수 있습니다만 충칭 미 대사관 인근의 미국인 소유의 교회에 그 다음날은 미국 국적 함선에 폭격이 날아들면서 도를 넘은게 역력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근 30여년을 이어온 미일통상조약의 파기를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선언하게 됩니다.
사실 일본 제국은 제 2차 세계 대전 초창기 무렵까지는 친 서방 국가중 하나였으나 군부의 폭주와 중일 전쟁에 대한 시각차로 서로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만 어쨌거나 단지 불쾌했을뿐이고 더 나아가 자국 민간인의 희생이 문제였을뿐이지 중일 전쟁 자체는 솔직하게 국가 대 국가로서 별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 페탱 정권의 묵인 아래에 북 인도차이나 반도 일대로 진출하는거야 중일 전쟁의 연장선상 정도이니 뭐라고 할것도 없었지요,
당장 지금 본문에서 범하고 있는 오류중 하나가 이러한 사실입니다, 미국이 일본에 대한 조치는 경제 제제에 국한되었으며 심지어는 중일 전쟁 그 자체가 직접적 이유도 아니에요, 가령 이후에 벌어진 국가 방위법을 본다면 더 적나라한데, 정확하게는 프랑스의 항복 이후 군수 물자를 비릇한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기계 등 모든 것을 수출하지 못하게 막을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안을 상정시키고 통과시켰는데 그 뒤에도 노무라 주미대사가 임명되며 양측의 치열한 외교전이 이어진바 양측의 외교 노선 자체는 이 때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기브 앤 테이크라고 가는게 있어야 오는게 있는 법인데 마셜 제도와 캐롤라인 제도 일대에 대한 군사 기지화를 서두르는 한편 동남아의 진출에 있어 비시 정부로 부터 인도차이나 반도의 통행권을 얻었다고 통보하고는 필리핀 바로 앞까지 내달리는데 무슨 호전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나온게 무역 금수 조치인데 이러한 조치들이나 상정된 법안들 어디에 외교적 동맹 관계의 파탄을 의미하고 있는 내용이 있던가요? 아 물론 없지요,
도리어 그 이후에도 수개월간 양측은 서로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최대한 낫은 개선책을 모색하고자 외교전을 이어나갔고 결국 이루어지지는 못했으나 고노에 수상과 루즈 벨트 대통령 간의 정상 회담까지 조율되고 약속되기까지 합니다,
예컨데 헐 노트는 단숨에 튀어 나온게 아닙니다, 물론 그 이면에 헐 국무장관이 고노에 내각에 가지는 불신이나 미국측 입장에 반하여 일제의 입장이 서로 상충하고 있었습니다만 어쨌거나 동맹이라는 표현을 쓴게 문제일수는 있겠죠, 네 그런데 양측의 관계가 그러한 단어를 쓸 정도가 아니었다라고 단언지을수 있을까요? 거기에 양보해서 그렇다라고 친다 하더라도 선전포고가 지연된 상황에서 양측의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황이었던가요? 아니면 진주만 공습 당시에 외교 관계가 중단된 상황이었던가요?
합리적인 지적이기는 합니다만 올바른 지적도 아니거니와 현재 논의하고 있는 사실과는 좀 논점이 많이 이탈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