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Lemonade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2-06-21
방문횟수 : 1328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793 2014-03-21 14:30:17 0
근대 유럽 해군의 역사 [새창]
2014/03/21 12:33:18
아무래도 배를 몰고 선원들을 통솔하며 적절한 상황 판단을 할수 있게 만드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판단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포를 쏘고 하는 것이야 견습 기간동안에도 충분히 배울수 있는 것이고 굳이 사관학교에서 배울만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을수도 있고 말입니다, 아무튼 언뜻 생각하면 꽤나 황당하기는 하지요.
792 2014-03-21 14:23:08 4
근대 유럽 해군의 역사 [새창]
2014/03/21 12:33:18
최초의 미 해군은 무장 상선 4척이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의용병들로 기타 상선에 자위용 함포를 단 것 정도로 대개는 해적과 구별하기 위하여 대륙 의회가 발급한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었지요, 그래도 숫자는 좀 괜찮아서 전 기간을 통틀어 참전한 선박은 2천여척에 다달았지만 그래도 영국 해군을 상대할수 없어 재해권은 늘 영국에게 있었습니다, 물론 정면 승부는 답이 없어 유격전을 하고 영국의 해상보급로를 교란하는 전술을 구사했지요.

그랬기에 서인도 제도의 항로를 사수하기 위해 파견된 프랑스 해군이 절실히 필요했고 대개의 주요한 해전은 이 들 프랑스 해군과의 공조 내지 프랑스 해군의 독자적인 작전이었습니다.
791 2014-03-21 14:14:40 3
근대 유럽 해군의 역사 [새창]
2014/03/21 12:33:18
좀 더 자세히 적어보자면 해군 본부, 제독 그리고 함장들의 추천에 의하여 1733년 개설된 왕립 해군 사관학교 이후에 입교자가 적어 1801년 폐지된후 5년뒤 왕립 해군 대학으로 개칭되는데 아무튼 이 곳에서 2년간 교육을 받고 5-6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 임관 시험을 보고 장교가 되었습니다.

한가지 재밌는건 1815년까지 해군 공통의 포술 교리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교육 기간중 각 함장들의 노하우에 따라 교육이 진행되었고 이게 이제 1830년에 접어들어 포츠머스에 포술 학교가 만들어지며 겨우 해결되게 됩니다.
790 2014-03-21 14:07:49 3
근대 유럽 해군의 역사 [새창]
2014/03/21 12:33:18
일단 해군의 병사들은 술 취한 사람 납치하기, 빚대신 사람 태우기, 길가던 사람 납치하기, 정박한 상선의 선원 납치하기, 어린 시절 코흘리개 꼬꼬마들 종신 계약하기 등등의 방식으로 충원되었지요.

장교들의 경우는 나라 마다 달랐습니다만 영국의 경우는 능력제이기는 하지만 후견인 제도라 하여 우선적으로 경력을 해결해주는 것부터 사관 후보생 시절 좋은 보직을 얻게 하거나, 임관 시험을 쉽게 통과 시켜줄수 있는 방편이 있었습니다.
789 2014-03-21 12:21:08 2
전술사 1. 기동력편 [새창]
2014/03/21 11:52:46
적이 미리 방비를 한다면 큰 효과를 보기 힘든 전략이 사행진이기는 합니다만, 기존의 고정 관념? 을 타파했다고 해야할지 참 기동성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지요.
788 2014-03-21 12:15:40 2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말은 보병과 기갑, 포병의 관계를 두고 한 비유입니다,

그리고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는 말은 도보 포병대와의 비율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워낙 비싸서 전부 대체하지 못하고 몇개의 부대만을 구성했는데 나폴레옹이 모든 병사와 장교의 이름을 외울 정도라고 하니 알만하지요.
786 2014-03-21 12:10:58 2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부족한 지식을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음 그래서 기동성을 중시한 프리드리히 대왕이 만든 포병 병과중에 이제 기마 포병대라고 기존의 그 것보다 압도적으로 방열 시간을 줄인 포병 병과가 있습니다, 기존에 보병 + 화포의 체계를 기병 + 화포로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병과이지요, 물론 생산성?이 낮아서 대육군 시절의 프랑스 군도 정족수는 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당시 군대의 비율은 지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게 보병이고 그 다음이 기병과 포병이 뒤를 이었지요, 정확한 숫자는 찾아봐야 하겠지만 기병이 가장 적을수 밖에 없는게 예나 지금이나 돈이 문제입니다.

보통 대왕 시절을 기준으로 몰디비아, 홀슈타인, 메클린부르크 등에서 수입을 하거나 동 프로이센, 폴란드 등지에서 구했는데, 이러한 구입 비용과 별개로 유지 비용이 만만치 않고, 훈련기간도 살아있는 생물을 다루다보니 상대적으로 길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쟁 등에 소모되는 양 만큼 채우기도 어렵고 말이지요, 더군다나 말을 사서 바로 쓸수 있는 것도 아니고 9살 이상의 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래 저래 기병의 숫자는 적을수 밖에 없었지요.

그에 반해 보병의 경우는 예비군이나 기타 징집 및 자원 병으로 얼마든지 충족할수 있으니 상시적으로 장비가 따라가지 못할정도였고, 포병의 경우는상대적으로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넘치지는 않았습니다,

어중간한 답변인데 그렇습니다, 예산의 문제라고 해야할지, 비단 10개 연대로 증가 시켰다고는 하나 여전히 절대 다수는 보병이었습니다. 그 뒤를 포병과 같은 병과가 잇고 나머지를 기병이 충족했지요.
784 2014-03-21 11:53:22 2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아무래도 대제 이전에는 선형진이 대세였지요, 후방의 화력 지원을 받으며 3열의 전열보병들이 전진하는 전술 말입니다, 여기서 이제 대제는 사행진으로 전방의 부대가 화력으로 적의 이목을 끌어 당기는 동안 별동대가 적의 균열이나 측면을 타격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질과 기동성 모두가 뒷받침 되지 않는 다면 어려운 전술이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기동성을 중시한 전술을 애용한것도 그렇지만 가장 대단한건 흉갑 기병의 돌격시 후사르와 같은 경기병을 같이 돌격시켰다는 것이겠지요; 기병이 부족한 까닭에 기병의 지원을 기병으로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경기병을 초반의 2개에서 10개 연대로 그러니까 전 군의 10%를 기병으로 대체한 것에서 볼수 있듯 기동성이야 말로 대제의 전략을 아우르는 키워드가 아닐까 합니다.
783 2014-03-21 11:44:41 2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대제의 기동성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지요, 기동성 덕분에 위력이나 사거리 모두 포병에서 외면받는 6파운드 화포를 지급하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기본은 8파운드 화포였습니다만 아무튼 프로이센의 기병들의 기동성은 대단하기는 합니다, 비단 전 군의 10% 가량을 경기병으로 대체한 것을 떠나 정말 무식하게 내달렸던 것은 사실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보통은 사람이나 말 둘 중 하나는 혹은 둘 다 배려하고 움직이는게 보통이나 그런 것 없이 멈추면 뒤에서 따라오는 이 들에게 짓밟힐정도로 달렸다고 하였고 또 프로이센 한정으로 경기병 처럼 달려라 라는 말이 명예가 아니면 죽음을 이라는 말이 되었으니 알만 하지요;
782 2014-03-21 11:30:48 2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점점 이야기가 좀 산으로 가는데, 경보병이 발달한 이유는 간단한게 상기의 이유가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전열 보병이나 척탄병들은 수류탄과 슬링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 총이 좀 기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지 육탄 돌격을 중시하는 까닭에 질적으로 떨어지며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은 매한가지 일수 밖에 없었지요.

반대로 경보병들은 대개 척후와 전초전, 게릴라, 대 게릴라 전 등에 특화되어 적 장교를 저격하고, 적을 고립시키고 예비대를 끌어내는등 가장 유기적이고 유연하게 움직일 것을 요구 받았고 실제로 그러한 임무를 담당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세분화된 병과는 각자 주로 하는 것만 다를뿐이지 대개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781 2014-03-21 11:23:31 2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좀 두서가 없는데 정리를 해보자면 그렇습니다, 훈련을 책임진 안할트 데사우 공작 레오폴트 1세의 전략적 기조는 보병의 근접전에 있습니다, 방어 할때는 일제 사격의 화력에 공격할때는 총검에 의지 하라는 말 그대로 그는 보병의 육탄 돌격(....)에 매우 큰 가치를 두었는데, 그 덕분에 보병의 신속한 기동력과 질에 있어 다른 국가와 차별화되었다고 할 정도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이제 경보병과 보병의 병과 분리와, 경보병의 세분화, 플린트 룩 머스킷의 보급과 같은 화력의 발달 등이 있겠지요.
780 2014-03-21 11:20:42 2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카빈보다 작은 소총을 든 이 들은 Schutzen이라고 따로 분류가 됩니다, 이 들은 퓨질리어가 아니지요.

오히려 퓨질리어, 전열보병, 척탄병 등 각 부대의 최고의 정예들을 끌어모은 경보병 부대입니다, 아무래도 프리드리히 대제의 선구안이라고 해야할지 군사 전략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부분이 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동성을 기조한 측면 공격 전술을 중시함에 있어 보병의 근접전을 중시하였고 이러한 근접전을 중시하시는 덕분에 보병 병과가 두 개로 나뉘게 되었는데, 근접전을 중시하다 보니 아무래도 기동성이 또 요구된 까닭이라고 해야하겠지요.
779 2014-03-21 11:15:11 0
갑툭튀~ 18세기 공기총 이야기 [새창]
2014/03/21 10:17:07
상기의 사진이 좀 작은데 가장 좌측에 있는 병사가 Schutzen입니다, 퓨질리어는 아래와 같은 이들입니다.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546 547 548 549 550 >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