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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 2014-03-25 20:33:32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하기야 정신 승리 하는 양반들이 자기가 정신 승리한다고 말이나 하겠습니까? 뭐하러 이런 양반이랑 이빨을 털었는지 참 시간만 아깝네요.
882 2014-03-25 20:32:59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편협하다 뭐하다 하는데, 잘 대화하다 난 너랑 대화 안해 라면서 난장판 피우는건 정상일까요? 이건 자기 얼굴에 침뱉기이지요.
881 2014-03-25 20:31:33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결국 대화 하며 뭣도 안되니 나와서 하는 말이 상대방 트집 잡아서 난 너랑 말 안해 아닙니까? 그게 정신 승리가 아니고 뭔가요?

애초에 무슨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요동성 하나 지키고 있으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생각부터가 우습기는 했습니다만 대체 뭘 가지고 그렇게 고려를 높게 평가하는지 알수가 없네요,

홍건적 1,2차 친입에 있어 수도와 인근 지방 그리고 수도로 향하는 모든 지역, 기타 국경의 내외 등이 초토화 된건 큰 피해가 아니라는건 대체 뭘 가지고 하는 말일까요
880 2014-03-25 20:29:59 3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동북아 역사 재단 - 동북아 역사 논총 35호

(중략) 형제맹약 자체를 중국적 종번관계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있는 중국 학자들의 논리는, 초원 유목정권으로 출발한 몽골제국의 속성을 무시한 채 불평등을 전제로 한 중국 적·유교적 질서와의 연속선상에서 확대 재생산한 산물에 불과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셋째, 형제맹약이 양국 ‘조공’의 출발이라는 중국 학자들의 시각 역시 문제가 많다. 형제맹약에서 몽골의 우선적 목적은 금의 변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써 고려와 일정한 우호관계 수립이었다. 반면 몽골과 외교관계를 체결해 본 적이 없던 유교 문명권의 고려로서는 기존의 거란, 여진, 송 등과 같이 ‘책봉과 조공’이라는 외형적 틀을 빌려서 만든 자구책이었던 일정량의 세공을 제공함으로써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중략)

따라서 멀리 떨어져 있던 훌레구와 동방왕가들만 지지하는 상황에서 쿠빌라이가 장기간 항전 끝에 귀부해 온 고려를 발판으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려 했음은 당시의 현실적 필요에서 당연하다. 물론 이런 왕전과 쿠빌라이의 개인적 만남과 쿠빌라이가 불리한 상황에서 인정한 양국의 화의는 양국 통혼으로 연결되면서 고려에게 유리하게 작용된 부분이 적지 않다.

(중략)
879 2014-03-25 20:27:32 3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논쟁에서의 격파? 그저 웃음 밖에 안나오네요.
878 2014-03-25 20:27:07 3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네 정신승리 축하드립니다, 어차피 앞뒤없이 내뱉은 링크 한줄에 선동되는 양반이 뭔 말을 한들 들을리가 만무하지요, 그게 동북아 역사 재단이든 학계이든간에 통용되는 사실이라 할지도 말입니다,

되도 안되는 논리 찾느라 고생하셨습니다.
877 2014-03-25 20:24:30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쌍방이 의견을 교류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더라도 수렴한다 좋습니다 네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게 왜 상대에게만 적용될까요?
876 2014-03-25 20:24:00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그거야 그쪽 생각이지요, 잘 나가다 갑자기 감정 싸움으로 끌어내린게 저입니까? 아님 그 쪽입니까? 정 아니다 싶으면 반론이나 해보시던가 되도 안되는 짓거리로 난리 친게 누구일까요?
875 2014-03-25 20:23:19 3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절필한거 약속안지킨거? 네 그거 뭐 문제라면 문제이지요, 그런데 그게 왜요? 뭐 죽을죄라도 지었습니까? 저로 인하여 어떤 문제가 그렇게 야기되었습니까?

피차 알량한 지식은 마찬가지이나 대가리로 되도 안되니까 이제는 감정 싸움으로 해보시겠다? 어디 좀 들어봅시다 제 문제가 대체 뭔가요?
874 2014-03-25 20:22:17 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초코 틴틴님이 저 때문에 떠났다고요? 대체 뭘 보고 이야기 하십니까? 야 이거 참 사람 더럽게 나오시네요. 참 왜 글을 쓰거나 답글을 다는거에 반대가 달리냐고 하시는데 왜 인지 설명을 좀 해주시지요

제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잘나신 양반 소견좀 들어봅시다?
873 2014-03-25 20:20:54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아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것 같아 덧붙이자면 고구려의 계승국가로서의 고려의 명분은 사실 별 관계가 없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방왕가와 같은 황금 씨족의 견제와 친 중앙정부의 황금 씨족의 배비였고 이는 심양왕과 같은 이름 뿐인 작위라 하여도 어쨌거나 고려의 왕실 역시 몽골의 왕녀와 혼인을 하게 하여 황금 씨족으로 남게 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그리고 홍건적 을 이야기 하시는데 그 얼마 안되는 참 이런 표현도 그런데 패잔병과 기타 잔병들에게 국경이 돌파당하고 수도와 그 인근이 황폐화 된게 왜 별게 아닌지요? 잘 이해가 안되는데, 그 정도 병력도 제대로 현장에서 막지 못하고 항상 토벌군이 배비되야 하는게 어딜 봐서 강군입니까?>
872 2014-03-25 20:18:07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결과적으로 가질수 있는 것은 또 내세울수 있는 것은 지리적 이점 하나입니다, 그 지리적 이점이란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근대의 러시아 처럼 부동항이 필요했겠습니까, 아니면 송나라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이 중요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중앙 정부와의 관계가 부정적이던 동방 왕가들에 대한 견제 외에는 다른 대답이 뭐가 있습니까? 차라리 명분 대로라면 정복하고 마는게 훨씬 몽골에게는 이득입니다,

가령 나중에 벌어진 나얀의 난때 고려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세요, 또 쿠빌라이가 내세운 명분중 하나가 고구려의 계승 국가인 고려를 얻은 것이고, 고려 공략전에 동원된 동방 왕가들이 호의로 돌아선 것을 생각해보시지요, 고려가 잘싸웠다 뭐다 하시는데 이게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장기간의 전쟁 이상으로 잘싸운 나라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고려만이 매 전쟁때 마다 권항사를 맞아 고민을 해야 했을까요?
871 2014-03-25 20:13:30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지요, 고려가 가지는 가치가 대체 무엇입니까? 재화가 풍성합니까? 아니면 군사적으로 강성했나요?
870 2014-03-25 20:13:01 2/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어제 제가 뭘 어쨌습니까?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며 나 너랑 애기하기 싫어 한건 그 쪽일텐데요? 왜 저한테 책임을 넘기시나요?
869 2014-03-25 18:49:48 1
주변 대국과의 외교관계에 대해 [새창]
2014/03/25 17:43:38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1차때는 권항사를 보냈습니다, 2차때는 항복을 요구했지요, 3차때는 고려가 몽골에게 강화를 요구했고 이에 호응하여 고종의 입조를 조건으로 철수했습니다, 그나마도 왕이 못간다고 하니까 수긍하고 왕족을 보내라 하였지요, 4차때는 고종과 사신이 회담을 가졌습니다, 5차때는 왕이 육지로 나올것과 입조를 요구했지요. 6차때는 몽골에 다녀온적이 있는 김수강이 몽골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기다릴것을 간청해 철수했습니다. 7차때는 철병 교섭의 사신으로 김수강을 보내어 몽케 칸에게 고려왕의 친조와 출륙 즉 육지로 나오는 것을 조건으로 몽골군을 회군토록 하는데 성공합니다, 8차때는 선철군 후입조의 조건으로 철수를 간청해 성공하지요, 9차때에도 고려가 먼저 강화를 요청했고 이번에는 결국 전쟁이 끝났습니다,

자 여기서 볼수 있듯이 몽골의 요구가 무엇인가요? 왕의 입조 즉 정복이 아닌 고려가 몽골의 아래에 들어올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했는 가를 보면 말 그대로 살려두는게 이득이라서입니다, 당장 죽인다면 동방 3왕가를 견제할 단 하나의 카드도 없게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칸에 가장 근접해있던 그러했기에 동생과 견제할수 밖에 없었지만 지지층이 빈약했던 쿠빌라이로서는 초원의 귀족들을 돌려놓을 방책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결국 살려두는 것 외에는 달리 좋은 해결책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고려가 원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닙니다, 고려가 원했지만 몽골도 원했지요.

그 뿐입니다, 고려에게는 몽골이 골라주는 선택지외에는 답이 없었는데 그게 겹친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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