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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8 2014-03-26 07:46: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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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이특님이 잘못생각하시는게 그 넒은 요동 땅에 이주시킬 둔전병과 군호, 민호를 넣을수 있는 능력은 물론이고 갈 사람도 없다는게 당시의 현실입니다, 지금이야 이러이러하면 될거 아니냐 하시지만 일단 고려에는 둔전병 제도도 없거니와 솔직하게 요동을 커버할 능력도 안되는게 사실입니다, 고구려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그 만한 인력을 부울수 있습니까? 당장 수만의 병력 파견도 국운을 거는 상황에?

그리고 화포는 무적이 아닙니다, 응당 숙련된 병사와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나 이미 원정군을 보내기 이전부터 재정은 늘 긴박한 형편이라 모든 지역에 배비시킬수도 없고 따로 중앙군을 또 만들 여력도 안되는 상황에서 그 들을 무장시킬 어떠한 상황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고려의 내노라 하는 명장들은 다 원정나간 터라 신뢰할만한 인선이 부족한것도 그렇지만 일단 병력을 차출할 길이 없어요.

주현군은 집에서 일하다 나오신 분들이며 6위의 정상가동?은 번상입역을 통해 이미 차출할수 있는 인력은 모두 동원 되었음을 말합니다,

국가총동원령이 아니라면 추가 징발은 할수도 없거니와 그러한 행동은 가뜩이나 쇠락해가는 고려를 채찍질 할뿐이지요.
897 2014-03-26 00:06:1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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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님께서 본문에서 하신 말씀들을 반복한 셈이라 참 그렇습니다만 요컨데 하고싶은말은 고려에게 뒤는 없다는 사실이지요.

원정군이 전멸하거나 큰 타격이라도 입는 날은 사실상 고려군의 괴멸 더 나아가 전력의 공백이 발생하는 날이라는 겁니다.
895 2014-03-25 23:55:3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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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을 넣자면 고려사 병지를 기초로 볼때 주현군의 기록상 남은 정용, 보승, 일품군을 다 합친 숫자가 정확히는 29만여명 정도 됩니다만 그 절반 이상은 양계에 배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양계의 행정조직이자 군사조직인 주진의 경우 하나의 독립된 전투 단위를 기초로 한 행정 구역이라 하나 전문적인 군인들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주현군과 마찬가지로 그 대부분은 집에서 일하다 나오신 농민분들이셨지요.

중앙군인 6위는 번상입역이 기반이라고는 하나 유기적인 활용이 가능한 전략 자산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요컨데 주현이나 주진이 고정되어있는 수동적인 측면이 크다면 중앙군은 그 반대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문제는 고인돌을 빼서 괼수 없듯이 주현군에서 전력을 차출할수가 없는게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당장 지방에 노동력을 감소시켜가며 병력을 추가로 확충해봐야 장단기 통틀어 나라에 해악만 끼치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왕실을 호종하는 2군 용호위나 응양군을 급하다고 뺄수도 없고 말이지요, 원정군은 이래저래 참 현실적으로 문제이기는 합니다.
894 2014-03-25 23:39: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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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3만 8천이 고려의 주 전력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상 고려가 동원 가능한 전력은 중앙군의 신호위, 좌우위, 흥위위 32령 3만 2천명이 전부인데, 아마 여기서 얼마를 차출하고 나머지는 장수들의 사병과 기타 전력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말씀대로 고려에게는 뒤가 없다는 것으로 사실상 원정군에 파병된 장수들과 병력은 고려의 거의 유일 무이한 제대로 된 전력인데, 이게 소모가 된다면 보충할 길이 요원하지요.
893 2014-03-25 21:01:06 4/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그냥 뭐 대단한건 아니니 제가 화면만 잘라서 보여드리지요,
892 2014-03-25 20:59:02 4/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아 그러고 보면 박사 학위 논문도 있네요, 내용을 긁어올수가 없어 riss에서 찾으셔야 될텐데 蒙元 帝國期 옷치긴家의 東北滿洲 支配 : 中央政府와의 關係 推移를 중심으로 - 윤은숙 님의 박사 학위 논문입니다.
891 2014-03-25 20:57:01 4/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아 위에 오타인데 '최소한 동북아 역사 재단부터 학계의 학술 논문'이 아니라 '최소한 동북아 역사 재단부터 학계에 이르기 까지 학술 논문'이 맞습니다.
890 2014-03-25 20:56:21 4/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아 진짜 빵터지는데, 제가 올려드린게 전부 한 사람의 그 것입니까? 답글 좀 읽어보시지요?
889 2014-03-25 20:56:00 4/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최소한 동북아 역사 재단부터 학계의 학술 논문으로 통용될 정도로 여러 사람들이 인정한바 있습니다, 최소한 이 쪽 주장은 이러한 학계의 통설을 기반으로 하는바 가버나이특님이 말씀하시는 그 고려의 강인함에 기초한다는 사실은 무엇에 기초합니까?

기정 사실 마냥 떠드는게 아니라 현재까지 연구된 바로 볼때 가장 합당한 사실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단 이 문제 뿐만은 아닌데 대개의 기록이 뒷받침 될수 없는 상황의 경우 완벽한 기정 사실이란 존재할수가 없는 것은 잘 아실텐데요?
888 2014-03-25 20:46:50 1/4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한 학자가 연구하는 별거 아닌 가설인데 학사 학위부터 학술 논문, 동북아 역사 재단에서 발간하는 서적까지 단순한 구글 검색임에도 다양하게 나오네요?
887 2014-03-25 20:46:01 1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중략)

한편, 제국의 서방이 불안한 가운데 동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던 쿠빌라이로서는 자신의 즉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동방왕가가 동북만주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지배권을 확대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11) 그러나 그의 통치초기는 아직 제국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제국의 실제 영역이 북중국과 몽골 일원에 국한되어 있어 그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남송과 일본에 대한 원정을 추진하고 있었던 상태였다.12)

이러한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그는 동방왕가의 공로를 인정하여 이들의 행동을 묵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정하건대, 쿠빌라이는 남송과 일본에 대한 원정과 동방왕가에 대한 견제를 위해 또다른 인접국인 고려를 매우 중요한 전략적인 가치로 주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먼저 고려는 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쿠빌라이는 동방왕가와 인접하였던 고려를 원의 親중앙세력으로 끌어들이면서 제국 내의 지위를 격상시켜 동방왕가와의 세력관계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게 하면서, 동방왕가의 세력확대에 대한 견제를 하기 위해 고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국방부 군사연구 134집 학술 논문 고려 충렬왕대 일본원정 참전과 군사력 강화 - 원 제국의 정치적 동향과 관련하여 -

김진수
886 2014-03-25 20:41:15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중략)

고려 원 왕실간의 통혼설은 원종 10년 임연의 국왕폐위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원이 처음 언급하였다. 이후 고려는 양왕실간의 통혼성립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고려 왕실은 이 혼인을 통하여 원 황실의 권위를 빌어 무인집권기에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통혼성립은 고려 내의 반몽투쟁 격화 등을 이유로 원황실이 불허하여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원은 고려와의 왕실통혼으로 일본원정의 효율성과 고려의 귀부에 대한 불안함 해소 및 강대한 동방 3왕가의 견제로 제국의 지배체제가 견고해 질 수 있음을 기대하였다.

(중략)

상기와 동일합니다.
885 2014-03-25 20:40:14 2
고려의 충선왕과 심양왕에 대한 이해 [새창]
2014/03/25 19:41:53
(중략)

고려와 인접해 있었으며 고려 정벌 전21) 등을 통해 고려와 일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2) 따라서 고려로 세력을 확대하여 서부 울루스들처럼 독립적 세력화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원 황실은 동방 3왕가의 세력과 고려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것을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원 정부는 고려왕을 부마로 삼아 지위를 높여주어 동방 3왕가와 세력간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서 통혼을 결정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중략)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 지도교수 조인성

대강 구글 검색만 해보더라도 저 혼자만의 망상은 아니네요? 초성체가 절로 나옵니다.
884 2014-03-25 20:36:5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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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원이라면 비싼 가격은 아니네요, 배달료까지 포함된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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