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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2014-03-30 11:09:12 5/9
과연 조선수군은 갑옷을 입었을까? [새창]
2014/03/30 10:25:06
일단 몇 글자 덧붙이자면 전군에 갑주를 지급하는 것은 만기요람 등의 기록을 들지 않더라도 무리인 것은 자명한 노릇입니다, 중앙군이야 물론 완벽하게 무장을 잘 하고 있다지만(당장 세종때의 기록만 보더라도 장구류를 팔아 여비를 마련하고 출근이나 점호를 안하고 있기는 하지만서도) 주력이라 할수 있는 지방의 잡색군까지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들은 자비로 무장을 해야했기에 전복 혹은 전포라 불리는 갑옷 안에 입는 일종의 튜닉과도 같은 옷을 걸치는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고, 그 장비나 질적 수준역시 잡색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했겠지요.
1002 2014-03-30 10:33:59 5/9
과연 조선수군은 갑옷을 입었을까? [새창]
2014/03/30 10:25:06
일단 조선 전역 해역도 자체가 사실상 패전한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전투를 다룬 그림이라 상대적으로 적 그러니까 조선을 좀 과장되게 표현한 감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가령 갑옷의 문제도 그렇지만 팽배수가 검을 들고 있다거나 연노를 사용한다거나, 해전에서 쌍검을 쓴다거나 하는 것등 상대적으로 고증에 취약한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무엇보다 전 군이 일관되게 두정갑을 입는 다는 것은 좀 아니지요;
1001 2014-03-30 10:30:35 16/16
(펌)조선시대 병사들도 갑옷을 착용하였다. 임진왜란 [새창]
2014/03/30 09:40:32
구루지마 해군이 원균에 대한 승전보를 올리는 조선전역해역도가 100% 고증이 맞는 것은 일단 아닙니다, 가령 일본 수군의 화포 거치 문제라던가 갑주 문제가 그러한데 본문에서 언급하는 갑옷문제는 윗 분의 말씀대로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수군에서는 경장?을 택하고 있는게 맞습니다.

그리고 몇가지만 더 언급을 해보자면 일본의 경우 화포에 대한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사실상 조총의 사이즈만 늘려도 대개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바 구태여 대포와 같은 장비를 택할 이유가 없었지요,

또한 수류탄의 경우 비단 조선만이 표준 무장으로 택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중국의 경우 송나라 시대부터 쓰여왔습니다,

끝으로 팽배수는 투창을 사용했지, 검을 들고 적과 대적하는 임무를 담당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도깨비 팽배라고 했지만 저거 사실 용입니다.;
1000 2014-03-29 22:22:00 1
성종실록에 이러한 책들을 수거했더는 기록이 있던데 [새창]
2014/03/29 21:05:25
그 내용을 봐서는 천문, 지리, 음양,과 같은 선상에서 다루어지는 바 어떤 역사서라고 보기는 힘들고, 명경수라는 책은 정도전의 야사에 관련된 일종의 점을 보는 도구와도 같은 서적인바 민간 신앙과 같은 서적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999 2014-03-29 22:15:35 1
성종실록에 이러한 책들을 수거했더는 기록이 있던데 [새창]
2014/03/29 21:05:25
여러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전일에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志公記)》·《표훈천사(表訓天詞)》·《삼성밀기(三聖密記)》·《도증기(道證記)》·《지리성모(智異聖母)》·《하소량훈(河少良訓)》, 문태(文泰)·왕거인(王居仁)·설업(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 권과, 《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명경수(明鏡數)》와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보낼 일을 이미 하유(下諭)했으니, 상항(上項) 《명경수(明鏡數)》 이상의 9책과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도선참기(道銑讖記)》는 전일의 하유(下諭)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收納)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收納)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

하였다.


라는 기사가 즉위년 말에 있군요.
998 2014-03-29 21:32:59 0
[새창]
일단 반대를 드립니다만 지금 흐미나에서 예토전생 하신것을 인정하시는겁니까?
997 2014-03-29 17:29:11 0
세종대왕이 20여년간 황희의 사직을 윤허하지 않은게 사실인가요? [새창]
2014/03/29 15:08:22
최대밝기님.. 그도 그럴게 황희의 치사가 윤허된지 넉달인가 몇달뒤에 세종 대왕께서 붕어하셨지요.
996 2014-03-29 15:19:44 0
세종대왕이 20여년간 황희의 사직을 윤허하지 않은게 사실인가요? [새창]
2014/03/29 15:08:22
네 대략 18여년 동안 그러니까 세종대왕 본인께서 붕어하기 직전까지 사직을 윤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능력이 있고 또 대안이 될 인재가 궁했다는 말이겠지요.
995 2014-03-29 14:49:21 1
[새창]
반대를 드립니다, 그 이유는 본인이 너무나 잘 아시리라 봅니다, 흐미나님
994 2014-03-29 13:56:01 1
(닉언죄) 월천선녀님 [새창]
2014/03/29 01:00:27
예토전생을 하다보면 신통력이 샘솟는 모양이네요;
993 2014-03-29 01:00:29 0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본 요동 정벌 -_- [새창]
2014/03/27 21:02:08
어줍잖은 양비론은 좀 그렇지 않나요? 누차 말씀드리지만 의의를 말하는게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며 의의와 같은 것을 무시한바 없습니다.

다만 그 현실적인 맥락에 있어 비현실적인 가정은 솔직하게 소설의 영역일수밖에 없을정도의 상황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쌍방과실 운운하시는데 저에 대한 악감정일랑 치우시고 생각해보세요, 만일 제가 고려님과 대화중 불리해지니 갑자기 고려님의 허물을 물고 늘어지며 너는 도덕적으로 틀러먹었으니 너랑은 대화 안해 이유? 몰라서 묻나? 같은 태도를 수차례 반복 했다고 생각했을때 그에 대하여 감정을 내비춘게 그렇게 비판 받아 마땅할 천인ㅌ공노할 소재입니까? 물론 미숙한 태도이기는 하나 원인 제공과 왜 같은 선상에서 비판 받아야 합니까?

네 이빨 털지 말라고 말씀드렸지요, 양비론의 범주가 닥반러의 옹호 부터 이제는 앞뒤없이 비판하는 상황까지 그 감정 만큼이나 구구절절하게 밀고 들어오는게 신물이 나서 말입니다.

솔직하게 심한 말 일수 있다는건 압니다만 그 양비론이나 감정은 좀 치우고 뭐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시면 안됩니까?

얼마나 고결하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게 양비론이라 생각합니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우월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시는지 알수가 있어야지요.
992 2014-03-28 21:41:06 1
짧게 보는 에도시대 여자들의 화장 [새창]
2014/03/28 10:12:00

아 그러고 보니 남들이 보면 흉하니 모두가 잠들어 깨어나기 전 새벽에 하라고 도호조쿠케쇼덴에서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세부적으로 나온 사진이 좀 섬찟하게 나와서 삭제하고 묘사한 그림 하나로 바꿉니다.;
990 2014-03-28 21:38:02 2
짧게 보는 에도시대 여자들의 화장 [새창]
2014/03/28 10:12:00

일단 검은 이빨을 만드는 법은 철 조각을 식초나 술에 담그고 적당량의 물을 더해 툇마루 혹은 마루 밑에서 몇개월을 삭힌뒤 놋쇠 그릇에 끓인 액체를 붉나무 분을 묻힌 깃털이나 붓, 이쑤시개와 같은 것으로 도포한 뒤 물로 헹궈내는 것이라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흑치를 도포?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화장의 일종으로 하는 것을 봐서는 일본만의 독자적인 무언가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네요.
989 2014-03-28 10:17:18 3
짧게 보는 에도시대 여자들의 화장 [새창]
2014/03/28 10:12:00
이런 것을 보면 상업적인 발전을 실감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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