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Lemonade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2-06-21
방문횟수 : 1328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1183 2014-04-27 10:33:57 0
조선의 노예제에 관하여 - 2 - [새창]
2014/04/26 16:23:34
제가 시마다 류토의 글은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국사편찬위의 그 것과 상이한 사실을 떠나 뭔가 이상하군요, 10여년간 연당 1백만톤의 구리를 수입했다한다면 물경 1천만톤의 구리가 수입된 것이나 그러한 구리의 유입과 별개로 해당 자원의 부족에서 빚어지는 여러 이야기가 기간 내내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실록에도 돈을 녹여 기구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돈을 추가로 주조해야 되는 이유에 있어 반드시 부차적으로 캐고 쓸줄을 몰라, 즉 부족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1690년에 동래부에서 한해 유석을 포함하여 동철을 받아들이는 양이 은으로 1천여냥 그러니까 뒤에 언급된 당시 은의 시가로 볼때 2천 6백여냥이라고 합니다, 언급하신 바에 의하자면 구리 1톤에 1.1냥 그러니까 당시에는 지금 주장하시는 바와 다른 전혀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1182 2014-04-26 23:05:52 0
고려의 경제와 조선의 경제 간단비교 [새창]
2014/04/16 21:03:52
cckk님.. 제게 질문 하신 거라 보고 답변을 드리자면 그러한 은의 경우는 물품 더 정확히는 인삼의 대금입니다, 그러한 은을 가지고 조선은 청나라에서 물품을 구입하는 일종의 중계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은을 일본에서 따로 구입하거나 일본에 요청한 사실은 없습니다.
1181 2014-04-26 22:58:03 0
조선의 노예제에 관하여 - 2 - [새창]
2014/04/26 16:23:34
아 오타가 있네요, 동북아 역사 재단이 아니라 국사 편찬위 입니다, 막상 적고 보니 제가 단단히 잘못 적었습니다.
1180 2014-04-26 22:56:47 0
조선의 노예제에 관하여 - 2 - [새창]
2014/04/26 16:23:34
본문과는 무관합니다만 1주일 전의 글에 있어 여전히 답변을 주지 않으셔서 다시 질문드립니다, 1684년 한해 조선이 수입한 구리의 양이 102만 톤이라 하셨는데 어디에 근거하는 내용인지요, 제가 동북아 역사 재단 쪽 서적의 경제 파트를 참조해 본바에 의하자면 숙종 연간 대마도가 막부에 요청한 양이 20만근 정도 그러니까 약 120톤이고, 막부에서 허용한 양이10만근 그러니까 60톤이라 뭔가 엇나가는 것 같아 질문드린바 있는데 이런 말은 그렇습니다만 흐지부지 끝내신듯 하여 다시금 질문드립니다,
1179 2014-04-26 12:54:50 2
[새창]
일단 고려는 원나라와 독립된 하나의 별개의 국가입니다, 원나라의 어떠한 종속된 세력이 아니라 말이지요, 그러한 독립된 국가에 대하여 자신의 입맛에 따라 왕을 결정하겠다고 무력을 동원하는 것은 그 국가 여기서는 고려의 입장에서 볼때 충분한 매국으로 비추어 질수 있다고 봅니다, 기황후는 고려인이지 원나라 인이 아니니 말입니다, 말 그대로 고려 출신의 원나라 황후이지요.

그리고 인재 등용의 이야기는 언급하신 순혈주의적 민족 차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일종의 카스트 제도적인 차별은 상존하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게 원나라의 직할령이 되었든 아니면 다른 영주들이 되었든 말이지요, 그러나 어떠한 직위에 따른 인재 등용은 기황후에 의하여 그 기준이 약화되거나 변화된거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화북이냐 강남이냐 하는 문제는 일단 넘어가고 이미 징기스 칸 생전부터 그랬듯이 능력이 있다면 크게 제약받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 말이지요.
1178 2014-04-26 12:03:12 2
[새창]
끝으로 순혈주의적 민족 차별이라 하셨는데 기황후 이전에도 원나라 아니 몽골의 인재 등용의 폭은 무척 넒었습니다, 능력만 있다면야 누구든 어디서 온 인물이든 가리지 않았지요, 다만 기황후의 경우는 운이 좋았던 상황입니다, 과거 고려에 유배를 온 황태자가 자기 가족들의 철천지 원수를 장인으로 모시고 있던 상황이었고 스폰서가 잘 밀어주기도 했었으니 말이지요.
1177 2014-04-26 11:59:55 0
혹시 일본의 풍습에 대하여 잘 아시는분 계신가요? [새창]
2014/04/26 11:01:48
그거 근거없는 낭설인것 같네요, 애시당초 어떠한 종교적 근거나 사회적 근거?가 성립하지 못하는 이야기라 사상누각이기는 합니다만 그 것을 떠나 이지메라 하는 근대의 풍습이 오래전 부터 내려온 뿌리 깊은 전통이라는 사실은 대체 어디에 근거하는지 그 연결고리를 언급하신 내용에서는 알수가 없네요.
1176 2014-04-26 11:56:26 2
[새창]
아 그리고 원이 중원에서 쫓겨나는 상황에서 이미 기황후의 입지는 끝났습니다, 사실상 자정원의 바탕은 원나라 전역에서 올라오는 자원 및 재화의 수탈에 근거하는 바 그 바탕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어떠한 세력을 구가했으리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북원의 중추세력을 구성하게 만들었다 보기도 역시 어려운게 애시당초 아유시리다라의 재위는 확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 외의 최 우선 재위 계승권자는 없는 마당에 그 것이 기황후의 공이라 보기는 어렵지요.
1175 2014-04-26 11:53:50 3
[새창]
1. 원종과 기황후의 비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애시당초 몽골의 요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친이었으며 고려가 몽골에 대항하여 얻는 이득은 전무한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그러한 대항 능력 자체가 사실상 없는 상황입니다, 이길 확률도 없는 무의미한 희생을 언제까지내야 할까요?

2. 몽골에 있어 그러니까 원나라에 있어 기황후가 좋은 인물이라는 말은 충혜왕이 성군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국정을 농락하고 매관 매직등 부정 부패의 정점에 서있던 인물을 왜 좋은 인물로 보아야 할지 이해가 잘 안갑니다, 무엇보다 고려에 있어서도 그리 좋은 인물은 아닙니다, 개혁에 따른 처벌에 있어 도리어 형제들의 부정을 눈감아주는 것은 물론 구원까지 해주는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공녀 제도를 재개한 인물을 무어라 보아야 할지요?

무엇보다 자기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나라의 왕을 갈아치우려 군대를 동원한 상황에서 매국이 아니라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3. 고려는 원나라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동방 3왕가가 붕괴되어 그 세력이 완벽하게 흡수되는 한편 황금씨족이 대칸에게 완벽한 절대 충성을 바치지 않는 이상 고려의 가치는 퇴색되지 않습니다.
1174 2014-04-24 20:31:52 0
[새창]
윗 분들이 잘 설명해주셨는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휘관의 능력을 무시할수는 없지요, 당장 가장 근래의 사례?라고 할수 있는 육군과 해군의 극심한 대립으로 육군이 잠수함을 만들고 해군이 전차를 만들던 일본 제국군의 경우 아니그냥 독립 유공자인 무다구치 렌야, 도미나가 교지 등의 사례만 보더라도 상부의 무능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잘 드러나고 있지요.
1173 2014-04-24 20:27:24 0
Anglo-Zulu War>Battle of Isandlwana,1879 [새창]
2014/04/24 20:11:41
첨언을 하나 하자면 보어 전쟁에서 영국은 독일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요, 네 강제 수용소 말입니다, 수 만명이 죽고 그 중 태반이 어린 아이라는 점에서 할말을 잊게 만들지요,
1172 2014-04-23 10:16:11 3
환단이 대체 뭐에관한 내용인가요? [새창]
2014/04/23 01:49:35
윗분의 말씀에 더하자면 빙하기 시절 신석기 문명으로 근대 서구 문명에 준하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이른바 환국의 경우는 중국인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씀드려 좋게 좋게 내려온 올바른 적통은 이제 동이족 즉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고, 이 들과 다르게 내려온 틀려먹은 방계?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이 들이 이제 화하족 즉 중국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라는 것이지요.
1171 2014-04-21 08:04:34 1
역덕으로서 안타까운 사건 4가지 [새창]
2014/04/21 00:53:40
마야 문명의 가장 큰 타격은 앞의 사례들과 다르게 문자 그 자체가 사어가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가뜩이나 도시별로 다양한 상황에서 전염병과 전쟁으로 인구가 괴멸적이라 칭해도 좋을만큼 감소했으니 말입니다.
1170 2014-04-21 07:58:21 2
고대 동이족의 한자 창제론에 대해 질문합니다 [새창]
2014/04/21 04:29:55
유사역사학 그 자체로군요;언어학적으로 절대 나올수 없는 공식도 그렇고 동이족을 단수로 보는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1169 2014-04-19 06:32:18 0
[새창]
종교 게시판은 옆에 있습니다, 반대 하나를 드리지요.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516 517 518 519 520 >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