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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5 01: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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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관리와 국경을 가지고 논의할때 어떻게 대처 해야 하나 이야기가 오고 가는 부분입니다,
접반사(接伴使) 박권이 청대(請對)하여 임금에게 아뢰기를,
“청(淸)나라 차관(差官)이 넘어 온 뒤에 연변(沿邊)의 길이 끝나면 응당 백두산 위를 경유하여 갈 것인데, 생각건대, 반드시 험준(險峻)하여 가기 어려울 듯하고, 저 사람들이 만약 억지로 다른 길을 묻는다면 비록 산 남쪽의 길이 연변에서 조금 떨어진 깊은 곳이라 하더라도 또한 장차 지시(指示)하려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처음에는 험준한 곳을 지시하겠지만 억지로 묻는다면 형세상 장차 그렇게 지도(指導)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박권이 말하기를,
“저 사람들이 정계(定界)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백두산 남쪽의 텅 빈 곳은 우리 나라 백성이 들어가 거접(居接)하고 있지 않으니, 저 사람들이 만약 그 곳을 가리켜 그 지경 안이라고 이른다면 근거로 삼아 다툴 만한 문적(文籍)이 없습니다.”
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유(李濡)가 말하기를,
“이미 두 강(江)을 경계로 삼았으면 중간의 육지도 또한 마땅히 강물의 발원(發源)하는 곳을 가로로 끊어 한계(限界)로 삼아야 하니, 이것으로 쟁집(爭執)하되, 저 사람들이 만약 듣지 않는다면 따로 대신(大臣)을 보내는 것도 또한 안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강역(疆域)은 지극히 중요하니 반드시 힘써 다투되, 대단한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반드시 즉시 장문(狀聞)하라.”
하였다. 박권이 또 말하기를,
“장문의 왕복(往復)에 언제나 여러 날이 소요되니, 사기(事機)를 점점 그르치게 됩니다. 큰일 외의 사소한 절목(節目)은 남병사(南兵使)·북병사(北兵使)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적절하게 일을 처리할 것을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