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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 2014-06-06 16:16:2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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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눈 님.. 틀렸다고 누가 인정을 안했을까요? 분명하게 실수를 저지른바 있다는 말 한건 안보이세요? 이성적 비판운운하면서 하는 행동은 답변을 회피하고 트롤링을 행하는데 그 것을 두고 아 그렇구나 합니까?
1752 2014-06-06 16:11:5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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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잘하신다는 이성적 반론은 어디가고 매번 하실줄 아는게 이런 겁니까?

뭔 역사 왜곡을 늘상 해댄다면서 그 논거는 온데 간데 없고 이성적 반론을 운운하시면서 하시는건 남의 실수 트집잡기라 참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1750 2014-06-06 16:08:5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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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내가 늘 역사 왜곡을 했다는 논거는 대체 뭔가요? 실수를 하고 잘 못적었습니다 네 그래서요? 없는 내용을 만들었습니까?

하 참 이제는 별 수작질을 다 하시네, 이러면서 난 이성적인 반론을 한다 그렇게 자위질을 하십니까?
1749 2014-06-06 16:00: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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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차 말씀드리지만 사실상 공험진의 기록은 그 인식에 주목해야지 실효지배도 할 생각이 없었던 영토의 넒이에 매달릴 문제가 아닙니다.

조선은 공험진 이남의 영토에 대한 안전권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여진족에 대한 관할권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증거로 두만강 이북의 여진족들에 대해서도 귀부하고 싶어했다느니 조공을 바쳤다느니 하면서 자기들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록이 나오고 있지요.

즉 조선은 공험진 이남의 영토에 대한 실효 지배를 한 적도 없거니와 할 생각도 없었다는 겁니다.
1748 2014-06-06 15:59:0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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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논의에 대한 반론에 대하여 답변을 뭘로 하셨는데요?

★ overworld (2014-06-05 23:16:54) (가입:2014-05-22 방문:15) 추천:0 / 반대:0   IP:  
글을 수정한게 아니라 님이 대충 읽었나 보지요

이게 답변인가요?
1747 2014-06-06 15:58: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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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역사 왜곡을 한다고 하시는데, 언제 역사 왜곡을 했습니까? 누구 처럼 근거도 없이 영토 비정을 하여 고조선은 위대하다고 주장을 했습니까, 아니면 환단고기를 이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까? 이게 상승 작용이고 이성적인 비판인가요?
1746 2014-06-06 15:55:5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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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종때의 기록을 취사선택이라 볼수 밖에 없는게

동북 지경은 공험진(公嶮鎭)으로 경계를 삼았다는 것은 말을 전하여 온 지가 오래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본국(本國)의 땅을 상고하여 보면 본진(本鎭)이 장백산(長白山) 북록(北麓)에 있다 하나, 역시 허실(虛實)을 알지 못한다. 《고려사(高麗史)》에 이르기를, ‘윤관(尹瓘)이 공험진(公嶮鎭)에 비(碑)를 세워 경계를 삼았다. ’고 하였다. 지금 듣건대 선춘점(先春岾)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 하는데, 본진(本鎭)이 선춘점의 어느쪽에 있는가. 그 비문을 사람을 시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 비가 지금은 어떠한지. 만일 길이 막히어 사람을 시키기가 용이하지 않다면, 폐단없이 탐지할 방법을 경이 익히 생각하여 아뢰라. 또 듣건대 강밖[江外]에 옛 성(城)이 많이 있다는데, 그 고성(古城)에 비갈(碑碣)이 있지 않을까. 만일 비문이 있다면 또한 사람을 시켜 등서(謄書)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아울러 아뢰라. 또 윤관이 여진(女眞)을 쫓고 구성(九城)을 설치하였는데, 그 성(城)이 지금 어느 성이며, 공험진의 어느쪽에 있는가. 상거(相距)는 얼마나 되는가. 듣고 본 것을 아울러 써서 아뢰라.”

보시다시피 강 이북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것을 떠나 공험진이남 지역이 국경으로서 실효 지배되었다는 사실은 기록 어디에도 없지요, 세조 이후로는 사실상 국경을 논할때 언급도 안되고 말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진족의 문제를 논할때만 등장하곤 하지만 말이지요.
1745 2014-06-06 15:54: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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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태종 4년의 기록 중에 '임금이 즉위한 뒤에 적당히 만호(萬戶)와 천호(千戶)의 벼슬을 주고, 이두란(李豆闌)을 시켜서 여진을 초안(招安)하여 피발(被髮) 569) 하는 풍속을 모두 관대(冠帶)를 띠게 하고, 금수(禽獸)와 같은 행동을 고쳐 예의의 교화를 익히게 하여 우리 나라 사람과 서로 혼인을 하도록 하고, 복역(服役)과 납부(納賦)를 편호(編戶)와 다름이 없게 하였다. 또 추장에게 부림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모두 국민이 되기를 원하였으므로, 공주(孔州)에서 북쪽으로 갑산(甲山)에 이르기까지 읍(邑)을 설치하고 진(鎭)을 두어 백성의 일을 다스리고 군사를 훈련하며, 또 학교를 세워서 경서를 가르치게 하니, 문무(文武)의 정치가 이에서 모두 잘되게 되었고, 천 리의 땅이 다 조선의 판도(版圖)로 들어오게 되어 두만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강(江) 밖은 풍속이 다르나, 구주(具州)에 이르기까지 풍문(風聞)으로 듣고 의(義)를 사모해서, 혹은 친히 내조(來朝)하기도 하고, 혹은 자제들을 보내서 볼모로 시위(侍衛)하기도 하고, 혹은 벼슬 받기를 원하고, 혹은 내지(內地)로 옮겨 오고,' 라는 부분이 나오면서 사실상 공험진을 고집하는 것은 무의미한 이야기가 됩니다.

태종을 위시한 조선 그 자체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이남을 국경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지요.
1744 2014-06-06 14:48:5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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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당한 글 운운하는데 언제 부터 게시판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거나, 극우와 역사 조작을 정당화하는 글이 정당한 글이 되었는 모르겠네요.

2.3. 당장 극우와 역사 조작 운운하는내용을 떠나 트롤링을 반복하시며 내 의견에 반대하면 친일이고 알바이며 카르텔이라고 낙인찍는 상황에서 뭐라고 이야기가 더 나올까요?

모든 건 남탓입니까? 본인의 탓은 전혀 단 하나도 없고요?

3. 그리고 간도 문제는 이미 태종 시대에 끝나요, 당장 본인이 생각한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세종때 강 건너에 뭐가 있는지 전혀 파악도 안되고 있는데다 세조 이후로 국경은 오로지 압록강과 두만강만으로 그 경계를 파악하는데 언제부터 조선이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 간도 일대를 실효 지배를 하였나요?
1741 2014-06-06 14:21:3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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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역사라 역사 조작을 민족의 자긍심이라는 명분 아래 두둔할때부터 이미 무의미한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여지껏 본인이 저질러온 트롤링과 같은 행동으로 볼때 반대가 의미가 없다 알바다, 친일이다 라고 단정짓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요?

훼방꾼 운운하시며 역게의 건전한 토론을 이야기 하시지만 정작 자기 의견에 반대하면 알바에 친일이라 눈과 귀를 가리시는 상황을 보면 거울을 보고 이야기 하는것 같은데 말입니다.
1740 2014-06-06 14:09:4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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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erworld (2014-06-05 23:16:54) (가입:2014-05-22 방문:15) 추천:0 / 반대:0   IP:  
글을 수정한게 아니라 님이 대충 읽었나 보지요

이게 답변입니까? 그리고 친일파 운운하시는데 본인의 의견에 반대하면 친일인가요? 아 그 사이에 친일 사관으로 바꾸셨는데, 극우 사상에 찬동하지 않고 역사 조작에 적대적이며 그 것을 떠나 본인의 주장에 반대하면 친일이라는 게 그렇게 주장하시는 균형잡힌 역사관이고 이성적인 사고입니까?
1739 2014-06-06 14:00:2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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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하고 명나라하고 요동에서 충돌을 했다는 건가요? 지도 한장 올려놓고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당장 조선 건국이래 본인들이 생각한 실효지배가 미치는 국경이 압록강 두만강 일대를 벗어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상황에서 심지어는 강 건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말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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