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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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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중에는 일단 프랑스 해군을 사례로 들어보자면 숙청이라고 밖에 표현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장교들이 국외로 도주하거나 단두대에서 끝장이 나야했습니다만 지도자가 로베스피에르든 언제든 늘 그래왔듯 영국과의 접전은 빈번한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결과의 대다수는 참담한 패배로 막을 내렸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1794년인가에 벌어진 신생 프랑스 공화국의 국운을 건 곡물 수송 선단의 호위 임무 당시 임무는 성공했습니다만 전열함 11척중 6척이 나포당하고 1척이 격침당하였으며 4천여명이 전사하고 3천여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반면 25척의 전열함을 끌고나온 영국 해군은 229명 부상에 724명 사망이라는 극적인결과를 얻어낼수가 있었지요.
이 상황은 어떠한 상황이냐면 당시 프랑스 해운 업계와 해군 전체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숙련된 장교나 지휘관은 이미 절단나 있는 상황이며 아무리 선원들이 날고 긴다 한들 어찌할 방도도 없었을 뿐더러 말씀과 다르게 프랑스는 아직까지 영국과 다르게 선장을 따라 배를 옮긴다거나 선장을 보고 배를 탄다거나 돈을 보고 이직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때 그때 일용직 처럼 충당을 했을따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