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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 2014-06-09 21:24:31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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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트라님.. 의미를 부여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결론을 내고 거기에 자기의 입맛 대로 자료를 짜맞추어 나가면서 그 것이 진리다,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 라고 주장하는게 취사선택이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과거의 역사를 평가할때는 현재의 개념을 대입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것을 취사선택이다 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1902 2014-06-09 21:22:2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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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월드님 .. 그러니까 설명을 해보세요, 왜 친일적인 이야기입니까? 발전하면 친일이다? 그런 논리면 세상에 친일 아닌 학문이 어디있겠어요, 자본주의는 안 그럴것같아요?
1901 2014-06-09 21:17:47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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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월드님.. 식근론이 왜 친일인지 무엇때문에 시혜론과 같은 이야기인지 설명은 되세요?
1900 2014-06-09 21:14:16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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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근론이랑 식혜론이랑 구별도 못하시면서 그걸로 비판하시면 곤란하지요, 일본이 영향을 끼쳤다 와 일본 덕분에가 언제부터 동의어였나요?
1899 2014-06-09 21:12:05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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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역사 조작을 민족의 자긍심 운운하며 옹호하시는 분이 하실말씀은 아닌것 같네요.
1898 2014-06-09 21:09:45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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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트라님.. 그러한 행동이 역사에 대한 취사 선택이나 조작을 옹호할수는 없는 법이고 작성자의 전례를 볼때 오버라고 할수 없는 노릇입니다.
1897 2014-06-09 21:08:45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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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월드님.. 독해력에 문제가 있으신게 아니라면 답글을 좀 읽어보시지요? 훈제 청어는 너무 식상하지 않습니까?
1896 2014-06-09 21:02:3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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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이 언제 취사 선택을 하라고 했던가요?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친일, 식민사관, 역사를 종교로 믿는 사람들따위로 비하 비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니면 혐한에서 주어만 바꾼 극우는 또 어떨까요?, 역사 조작을 민족의 자긍심 운운하면 감싸는 행동은 어떻습니까?

정신을 차려야 할건 상대를 쓰레기라고 낙인찍는 오버월드님이신데요?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을 본받는 다는 사람이 저렇게 행동할까요?
1895 2014-06-09 20:15: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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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타임머신 개발 현장인가요?
1894 2014-06-09 18:33:36 1
프랑스 혁명사 연재 - 5 [새창]
2014/06/09 17:09:14
이를테면 총체적 난국이지요, 앞서 영국의 해군이 제임스 1세를 거치면서 무너져 내린 원인과 마찬가지로 장기간에 걸친 투자와 관십이 필요한 것이 해군입니다만 그 모든게 무너져 내린것이 프랑스에게는 프랑스 혁명기간이었던 것입니다, 해군의 상비군 화와 같은 이런 저런 문제가 있지만 말이지요.
1892 2014-06-09 18:30:02 1
프랑스 혁명사 연재 - 5 [새창]
2014/06/09 17:09:14
프랑스 혁명중에는 일단 프랑스 해군을 사례로 들어보자면 숙청이라고 밖에 표현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장교들이 국외로 도주하거나 단두대에서 끝장이 나야했습니다만 지도자가 로베스피에르든 언제든 늘 그래왔듯 영국과의 접전은 빈번한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결과의 대다수는 참담한 패배로 막을 내렸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1794년인가에 벌어진 신생 프랑스 공화국의 국운을 건 곡물 수송 선단의 호위 임무 당시 임무는 성공했습니다만 전열함 11척중 6척이 나포당하고 1척이 격침당하였으며 4천여명이 전사하고 3천여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반면 25척의 전열함을 끌고나온 영국 해군은 229명 부상에 724명 사망이라는 극적인결과를 얻어낼수가 있었지요.

이 상황은 어떠한 상황이냐면 당시 프랑스 해운 업계와 해군 전체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숙련된 장교나 지휘관은 이미 절단나 있는 상황이며 아무리 선원들이 날고 긴다 한들 어찌할 방도도 없었을 뿐더러 말씀과 다르게 프랑스는 아직까지 영국과 다르게 선장을 따라 배를 옮긴다거나 선장을 보고 배를 탄다거나 돈을 보고 이직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때 그때 일용직 처럼 충당을 했을따름이지요;
1891 2014-06-09 18:14:04 2
프랑스 혁명사 연재 - 5 [새창]
2014/06/09 17:09:14
혁명 이후에 해군의 상비화에 착수를 한것은 사실입니다만 사실상 재원이나 인력 그리고 규모 모두 왕정 시절의 그 것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재정이나 규모라는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할수 있겠지만 숙련된 인력이라는 것은 쉽게 얻을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지요,
1890 2014-06-09 18:07:42 3
프랑스 혁명사 연재 - 5 [새창]
2014/06/09 17:09:14
한솥매니아님.. 말씀대로 그 부분은 제가 좀 지나치게 표현한 것이 사실입니다, 비단 근대화라는게 어떠한 한 부분만 볼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부분에 의하여 좌우되거나 영향을 받을 문제도 아니니 말입니다.;
1889 2014-06-09 18:03:47 2
프랑스 혁명사 연재 - 5 [새창]
2014/06/09 17:09:14
본문과 점점 괴리되어가는 답글이라 참 민망스럽습니다만 영국이 프랑스에 앞서 해군의 상비화를 시작한 것은 맞습니다, 그리하여 기존의 부르주아 혹은 젠틀맨이나 어쩌다 귀족들이 부와 명예를 쫓아 해군이 되던 시기에서 보다 다양한 계층이 해군이 되었고, 일반 선원에 대한 대접도 달라지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프랑스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루이 15세를 기준으로 규모상 영국해군의 절반정도에, 영국에 버금가는 신예함과 숙련된 선원들 우수한 장교진을 해상 무역과 축척된 부를 통해 유지 확대해 나가고 있었고 영국과의 여러해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습니다만 그러한 결과물 대다수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를 거치며 무너지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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