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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014-06-13 23:30:16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그러니까 대체 왜 사상의 변천을 이야기 하는게 일본을 처빠는 행동이고 친일인지부터 설명하시지요?

그리고 그러한 변천과정의 시작이 일제 강점기이면 또 뭐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주장한 적도 없는 걸 어쩝니까? 제 생각도 그거랑 다르고 말이지요.
2007 2014-06-13 23:19:20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민주주의 역시 근대화의 척도가 될수 없었다 라는 사실을 떠나 그러한 의식적인 변화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체득한게 아니라 오랜 기간 그러한 변화가 존재하였기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수 있었지요.
2006 2014-06-13 23:17:50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지금 자꾸 이야기가 엇나가는데 그러한 사상적 의식적 변천 과정은 해방 직후로 볼수가 없습니다, 말씀대로라면 사실상 조선에서는 일부 지식인들만이 독점하게 되어 그러한 변화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며, 이는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이라 하는 변천 과정이 존재 할수 없었다는 아이러니를 낳을뿐입니다,

즉 10년대 왕정의 복고에서 나아가면 안된다는 말이 되지요, 하지만 그러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요? 이미 그러한 의식적, 사상적 변천과정이 존재 하였기 때문입니다.
2005 2014-06-13 23:12:51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아 여기서 말하는 이는 월트 휘트먼입니다, 요즘도 고등학교에서 배울지 모르겠는데, 자유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지요, 점점 답글이 이상하게 나아가는데 사상과 이념의 변천 유입 정착 등의 과정은 실상 일제 강점기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해방 직후가 아니라 말이지요.

이러한 것 중에 이제 민주주의가 국가 이념으로서 발전되게 된 것이 해방 이후의 일이지요.
2004 2014-06-13 23:07:27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일제 강점기 지식인들이 휘트먼을 민주주의의 사도 정도로 이념적 색채를 강조한 반면 이은상은 보편적 인간 해방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예컨데 이은상은 휘트먼의 시와 사상을 정치적 민주주의로 좁게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자유 추구라는 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인데 반하여 다른 이 들은 대개 정치적 민주주의로 평가했다는 말이지요.
2003 2014-06-13 23:05:53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NoirCafé 님이 잘 설명을 해주셨고 그러한 사상과 의식의 변천등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인데 일단 김형원이나 이은상등 당대의 문학사를 놓고 볼때 당대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른건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지요,
2002 2014-06-13 22:52:16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일단 여기서 상기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민주주의나 기타 이념 사상이 해방 후에 갑자기 들어온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왕정의 복고가 아닌 새로운 근대 국민 국가의 건설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게된 그러한 의식 등의 변화가 초래된 시기 역시 해방 직후에 생긴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민주주의라 하는 이념, 사상의 발달 과정과 별개로 그러한 민주주의가 의식에 자리잡은 시기는 분명하게 일제 강점기이지요.
2001 2014-06-13 22:43:33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일제 강점기= 아무것도 이룰수 없고 이루어서도 안되는 암흑기, 근대화 = 어쨌든 선, 역사 = if, maybe 뭐 이런 공식인가요?

대체 뭘 해야 친일이 아니라고 하실지 궁금해지네요.
2000 2014-06-13 22:30:50 0
솔직히 식근론이 참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새창]
2014/06/13 19:31:53
pei님.. 누차 질문 드립니다만 친일의 정의가 뭔가요? 수탈이나 착취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두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일본을 처 빠는 것이고 친일이라 하시니 참 궁금하기 이를데가 없네요?

if나 maybe를 역사로 끌어들이는 건 그렇다 치지만 사람에게 그렇게 대놓고 비하 비난을 하실 정도면 뭔가 논거가 명확하실것 같은데 그게 뭔가요?
1999 2014-06-13 21:53:22 3
폴란드의 기병이 독일 전차에 돌격했다는 이야기에 관한 글입니다. [새창]
2014/06/13 11:20:15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신지?
1998 2014-06-13 21:14:13 3
폴란드의 기병이 독일 전차에 돌격했다는 이야기에 관한 글입니다. [새창]
2014/06/13 11:20:15

스탈린그라드의 다른 군마 사진입니다,
1997 2014-06-13 21:13:03 3
폴란드의 기병이 독일 전차에 돌격했다는 이야기에 관한 글입니다. [새창]
2014/06/13 11:20:15

미국에 의하여 소련의 기계화 비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만 여전히 상기 사진의 그 것 처럼 상당수 군마를 비단 코사크나 몽골을 제하더라도 꾸준히 애용한 기록을 보면 과연 전군의 기계화라는 것이 2차 세계 대전중 미국에 의하여 이루어 진 것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합니다.
1996 2014-06-13 16:06:13 9
폴란드의 기병이 독일 전차에 돌격했다는 이야기에 관한 글입니다. [새창]
2014/06/13 11:20:15
딱히 돈이 없었다기 보다는 그 시대에는 정말로 말을 모는 기병이 꽤나 흔한 병과였습니다, 폴란드나 독일, 소련, 프랑스 등 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도 기병 병과를 운용했는데 기록상 미국과 영국의 기병들은 동남아시아에서 활약하기도 했었지요.

그리고 폴란드의 경우 딱히 약소국도 아닌게 7TP나 TKS 등의 전차 및 장갑 차량을 라이센스 및 자체 설계 생산하기도 했고, 비커스 Mk. E나 르노 R-35등 다수의 검증된 경전차들을 구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주력은 이미 낡아버린 신세의 르노 FT-17이었으며 독일에 대한 수적인 열세나 전세의 불리함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1995 2014-06-13 14:06:50 2/4
게으른, 남한테 신세지는 DNA라고? 이 강의를 들어봐. [새창]
2014/06/13 13:41:41
자주 올라 왔다면 올라온 글로 좋은 글이기는 한데 여러 모로 신뢰성이 부족한게 사실입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우리만의 무언가는 절대 아닌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나, 이미 존재하던 지도를 통해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에 관한 이야기, 역시 우리만의 독창적인 무언가는 아닌 수학이나 달력에 관한 이야기 등이 그 것이지요.

음 그리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올라간 글에 달린 전격님의 답글을 하나 가져와 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내용이지만 자민족중심주의에 경도되어 잘못된 내용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쿠시 왕조: 나일강 유역의 아프리카 고대 문명. BC 900년 경 ~ 350년까지 약 1250년 존속
악숨 왕조: 북아프리카 고대 왕조로 BC 4세기 경 성립, 왕조 체제를 완비한 것은 1세기 경으로 10세기까지 약 900여 년 존속
압바스 왕조: 이슬람의 전성기를 이룬 왕조로 750년부터 1250년 경까지 약 500여 년 존속
일본 왕조: 명목상으론 단 한 번도 왕조가 바뀐 적 없음. 기네스북에 등재

새벽이라 당장 기억나는 것만 쓰는데, 애당초 왕조 존속 기간을 저렇게 따지는 거 자체가 일종의 열등감의 발로입니다. 제3세계의 역사를 뒤져보면 500년 이상 간 왕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저는 사대주의와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그들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봅니다.

각 지역의 역사는 그만의 고유한 지리적, 정치적, 역사적 특성을 갖고 있는데 존속 년수만으로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제국은 도대체 왜 배제하는 줄 모르겠군요. 당시로선 가장 높은 수준의 국가 형태였는데 말입니다. 전혀 의미 없는 사관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국가의 역사와 왕조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라 역사 1000년은 국가의 역사이지 왕조의 역사가 아닙니다. 신라가 왕조 체제를 정비한 것은 6세기 지증왕 경이고, 그 전에는 이사금, 마립간 체제로 석박김의 순환 통치 형태였지요. 신라 왕조가 1000년이라는 것은 호도입니다. 백제와 고구려 역시 비슷합니다(고씨, 해씨 논쟁, 비류백제 온조백제 이야기는 일단 넘어가더라도). 연맹왕국에서 고대왕국으로 전환되는 동안을 하나의 왕조로 퉁치는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집트 왕조는 3000년 역사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서구에는 국가를 상속 가능한 걸로 봤기에 왕조가 바뀌면서 국가가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이고, 동양에서는 왕과 국가를 동일시했기에 '역성혁명'이라는 개념이 생겼던 겁니다. 문명의 비교는 그러한 차이를 찾고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지, 무엇이 더 낫네 못하네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과도한 자민족중심주의는 이렇듯 사실을 왜곡하고 시야를 흐립니다. 서양에 주눅이 드는 건 오늘날의 모습 때문일지언정 과거의 역사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오늘날 비교적 나약한 모습 때문에 지난 역사를 과대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쓸데없이 비교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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