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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5 21: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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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에 언급한 한양대 강진아 교수의 말을 빌자면
식민지시기를 ‘수탈과 억압’, ‘저항’의 시기로, 본격적인 ‘근대’의 형성으로 제각기 파악하는 것은 그 말이 다 맞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근대’ 자체가 수탈이기 때문에 아무런 모순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여하튼 뉘앙스에서도 차이가 있다. 나는 한국사학계와 경제학계의 감정적 대립을 해소하고, 근본에서부터 합의점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인류의 물질문명이 격변한 20세기 초반의 35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오로지 원료와 시장의 마이너스적 착취가 있고 아무런 투자가 없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투자가 있었고, 주민의 생활수준과 신장, 몸무게 등이 좋아졌다고 해서 그 지배가 시혜적이고 환영받는 것이었다는 주장 역시 어불성설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의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한국사가는 아니지만 관련된 연구도 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식민지 35년은 오히려 한국인들에게는 ‘잃어버린 35년’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에 남은 이도, 만주로 간 이도, 일본에 돈 벌러 간 이도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에 사로잡혔으며, 세계 여타 지역이 20세기 초반 인류 물질문명의 드라마틱한 폭발 속에서 맹진하고 있을 때―남들이 워낙 빨리 가니까― 후진 지역으로 계속 뒷걸음질 쳤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활력과 성장을 보면―비록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많지만―경제면에서 자주적 의사결정권을 가진 민족정권이 있고, 민중의 경제적 동기와 보상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을 때 얼마나 폭발력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식민지시기가 안타깝다.
식민지기에 뿌려진 근대성이 전후 발전에 뿌리가 되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오히려 20세기 35년 동안 이것밖에 하지 못한 식민지적 상황을 더욱 애도해야 한다.
역사학에서도 ‘미발의 가능성’을 이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보다 긴 20세기 전체의 한국사회의 근대적 성장이라는 맥락에서 식민지시기 연구를 배치하고 이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말에서 볼수 있듯이 일제에 의한 어떠한 발전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특히나 위키의 경우 신뢰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무작정 신뢰하시는 것을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물론 사문난적 적인 시각이 아니시라면 한번 식민지 근대화 론에 관한 반론도 좋고 재반론도 좋습니다,
현재 학계에서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관련 서적이나 논문, 기고문 등을 읽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최소한도 경제의 매크로적인 성장이라고 말할만한 현상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는 동의한 상태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고 있습니다,
김건태나 허수열은 이영훈이 광무양안에서 조선의 실측이 무능했고, 근대적이지 않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겉으로 보기엔 근대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으나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계문서에서 쓰이던 작전가라는 용어를 이영훈 교수가 시장가격이라고 해석한 것에 대해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일제의 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말하는게 아니라 일제 강점기 시기에 벌어진 근대화에 관하여 어떻게 조명할것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라 할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