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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8 2014-06-19 16:06:22 0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답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장 상단의 그 것을 제하면 사실 해명을 해달라는 말인데요? 뭐가 길고 긴 복사 붙여넣기인지요?
2127 2014-06-19 15:57:40 12
청나라에서 돌아온 조선의 여인들, 환향녀. [새창]
2014/06/19 15:53:36
그러고 보니 비슷한 사례가 임진왜란때 사로잡혔던 여성들이 비구니가 되어 아이를 낳고 마을 이뤄 살았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바 있네요, 설령 그 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과연 그 녀들이 가족들에게로 돌아갔을지 알수가 없는 것을 보면 무엇보다 나라의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던 것을 보면 정말 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2126 2014-06-19 15:49:22 0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실제 일본 내에 백제의 지방 정권이 존재하였다는 사실 해명은 대체 어디에 버리신건가요? 실증사학 운운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수 있는 것을 제하시고 입맛대로 평가를 하시는데, 후왕이라는 작위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사료 비판에 해당합니다만 그러한 사실이 일본내에 존재하는 백제의 지방정권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 해명입니다, 반쪽짜리를 들고와 실증 사학을 했다고 주장하시는건가요? 문제가 있더라도 사실 해명 단계에 이르른 이병도의 그 것보다 대체 어떠한 점에서 우월한건가요?
2125 2014-06-19 15:47:08 0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사료비판과 사실해명은 역사연구에 있어서 선후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과정이다. 이들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물론이다. 실증사학자들의 실제 연구에서도 그러한 작업의 면모는 뚜렷하다.

그러나 같은 실증사학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연구의 경향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시라도리 등 1세대 학자들이 사료비판을 더 중시했다면, 이병도 등 2세대 학자들은 사실해명에 더 치중했다고 할 수 있다. 사료비판은 사실해명의 전제가 되는 것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역사 연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실해명에 있다.

따라서 1세대에 비하여 2세대 학자들이 사실해명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역사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발전을 뜻한다. 사실해명의 단계에 나아가게 됨으로써 한국사 연구는 비로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의 해명에 있어서 실증사학자들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특성을 드러내었다.

첫째로 실증사학자들은 개별적 사실을 개체적·독립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면 실증사학자들은 특정한 지명이나 연대를 고증하는 일이나 어느 한 인물에 대한 연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개별적 사실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다른 사실과의 연결 속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예가 많았다. 이것은 개별적 사실을 개체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적 태도를 반영하여 주는 일이다.

둘째로 실증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변화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시간의 선후 관계를 따져서 사실들을 인과관계로 이해하는데 철저하였다.

예를 들면 특정한 사건·제도·사상 등 사회적 현상을 먼저 발생·유래·연원을 따지고 다음에 과정·경위·전개 따위를 알아보고, 끝으로 결과나 영향을 지적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이들이 중시한 것은 결과보다는 원인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기원을 찾아서 유래를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셋째로 실증사학자들은 정치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정치사 가운데서도 정치를 끌고 가는 군주와 귀족들이 중시되었다. 지배자 중심의 역사인식은 실증사학자들에게 있어서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지배자의 정치적인 동향이 무엇보다도 커다란 관심사였던 것이다. 대외관계를 크게 주목했던 것도 그들의 연구에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실증사학 [實證史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뒤의 글에서 볼수 있듯 단순하게 사료 비판에 그치는게 아니라 사실해명에 치중하는게 실증 사학입니다, 언급하신 것에서 어디에 사실 해명이 있습니까? 단순하게 사료 비판이면 실증 사학이던가요?
2124 2014-06-19 15:42:20 0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정리해볼까요? 후왕이라는 관직 그러니까 공훈이 있는 사람 등에게 내리는 것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칠지도의 그 것이 모든 외교적 관계를 무시하고 들어갈 절대적인 것이냐 그건 아니지요, 앞서 중국으로 부터 받은 장군직은 고작해야 한 품계차이입니다, 즉 양국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절대적이지도 않거니와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분명하게 나라 대 나라의 관계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후왕이라는 문구를 삽입한 배경이 뭐냐 라고 본다면 외교적 수사나 관계에서 비릇되는 말에 그칠따름인게 당장 왜는 백제의 종속국도 아니고 왜에 백제의 지방 정권이 존재한 사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고구려에도 고구려 왕의 신하가 그러한 칭호를 받은 사실이 존재합니다, 즉 반드시 백제안의 자국민에게 주는 칭호로 국한되는게 아니라 외교적 수사 등에도 쓰일 단어라는게 사실이며 단순하게 후왕을 받았으니 백제인일것이다 라는 것은 실증 주의가 아니라 사고의 비약에 지나지 않습니다.
2123 2014-06-19 15:34:59 1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그 후왕이라는 작위를 고구려인도 받았는데요? 당장 여기서 어긋나는 사실은 뭘로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누차 설명드립니다만 그 후왕이 외교적 치사나 관계에서 비릇되는게 아니라 정치적인 그러니까 지방 정권의 존재 유무를 설명한다면 지방 정권이 실존했다는 사실은 뭐에 근거합니까? 받는 사람이 그러한 지방 정권의 지도자라는 사실은 어디에 나오는 사실인가요?

이건 실증 사학도 뭣도 아니지요.
2122 2014-06-19 15:33:38 1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없기는 왜 없어요, 나라대 나라의 관계이니 외교적 관계라는 거지 참 이해가 안가는데 대체 백제의 지방 정권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뭐에 근거합니까? 사고의 비약을 빼고 말입니다.
2121 2014-06-19 15:32:53 0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사고의 비약이지요, 제후를 뜻하는 후왕이라는 작위가 존재했다고 한다 -> 칠지도에 후왕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 받는 사람은 백제의 제후다 -> 일본 안에 백제의 지방정권이 있었다.

이게 비약이 아니고 뭔가요? 당장 왜와 백제의 관계는 어디로 갔으며, 일본 안의 백제의 지방 정권의 유무를 입증하는 사실은 또 어디로 갔습니까?
2119 2014-06-19 15:30:29 0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당연히 나라 대 나라이니 외교적이지 그럼 뭔가요?

지금 주장대로라면 고구려 덕흥리 고분 묵서명에 고구려 왕의 신하였던 진도 후왕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럼 고구려에도 백제의 지방 정권이 있었다는 사실도 참이 되는데요?
2118 2014-06-19 15:29:34 0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실증주의하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하시는건 실증주의도 뭣도 아니에요, 그냥 상상의 비약이지, 당장 일본에 지방 정권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무엇에 근거합니까?
2117 2014-06-19 15:28:58 1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이것이 왜에 대한 외교적인 그런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언급하신 말 그대로 지방 정권이 존재하였고 그러한 지방 정권에 대한 하사품이다 라고 한다면 지방 정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시면 됩니다, 사고의 비약을 거치실게 아니라 말이지요.

지금 언급하신 것은 칠지도의 그것이 외교적인 그러한 사례냐 아니면 백제가 우월해서 나온 것이냐 하다못해 근거없는 분국론이 사실이냐에 대한 어떠한 해답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2116 2014-06-19 15:27:02 1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네 이병도의 칠지도에 관한 주장은 문제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를 두고 참이라 볼수 없는 내 주장을 놓고 봤을때 확실히 실증사학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덧붙이자면 이북에 관심이 많다기 보다는 그냥 칠지도가 뭔지 보다보면 접하게 되는 내용들 중 하나입니다, 지금 주장하시고 계시는 분국론은 일본의 문물 전파에 따른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등 각국의 공동체가 지방 정권으로서 일본 내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주장이나 한 일 양국에 의하여 논파되었고 아니 논거도 없어서 그냥 신기함만 안겨준채 이북에서도 더이상 그 주장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후왕은 분명 칠지도를 받는 왜왕인것은 사실이나 백제가 천자와 같은 입장에서 왜를 제후와 같이 표현했다고 보는 입장과 금문에 쓰이는 상투적인 길상구로서 상하관계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유가 간단한게 제후라 표명하기에는 왜라고 하는 나라에 있어 앞서 분국론의 침몰 사유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타국의 지방 정권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할수가 없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장 5세기 중엽을 기준으로 백제와 일본은 한 품계 차이만 있지, 중국으로부터 각각 왕들이 안동장군과 진동장군으로 책봉된바 있습니다, 즉 외교적으로 양 국이 절대적인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후왕이라는 작위가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를 가지고 일본에 백제의 지방 정권이 존재하였으며 칠지도는 그러한 지방정권에 대한 하사품이라 하는 것은 순수한 상상의 나래일따름입니다.

애초에 이건 실증주의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고 말이지요.
2115 2014-06-19 15:15:32 1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아니 그러니까 대체 일본에 백제의 지방 정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뭐에 근거하냐니까요? 고구려 덕흥리 고분 묵서명에 고구려 왕의 신하였던 진도 후왕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럼 고구려에도 백제의 지방 정권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답글을 제발 좀 읽어보시지요, 지금 주장하시는 분국론을 이북에서 주장한 학자가 김석형입니다.
2114 2014-06-19 15:12:40 2
이병도가 실증사학 맞습니까? [새창]
2014/06/19 11:00:49
문법이 어긋난다니 이제는 문법을 가지고 트집이십니까?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이병도가 식민사학자이고 전두환 아래에서 일했다는 사실로 그를 비난하셨던 주장은 기억안나세요? 그런데 정작 본인께서는 그러한 이병도보다 더한 인물의 논리와 주장을 담습하고 계시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요.

이건 앞서 말했듯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튼 이북에서 김석형인가 하는 분이 주장한 이래 논파되어 침몰한 분국론, 그러니까 백제의 지방정권이 일본에 존재하였고 거기에 대하여 하사품을 내렸다는 사실은 뭐에 근거합니까?

후왕이라는 직책이 있었다는 기록 하나 말고 말이지요.

그리고 외교가 뭔지 모르세요? 나라 대 나라의 관계입니다, 왜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당연히 이 문제는 외교가 되지 대체 뭐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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