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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2 10: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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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이 한반도 남부에 군사침략을 하여 임나(미마나)를 지배했다는 가설을 포기하지 않는 학자들 중에서 군사지배의 시가와 폭을 축소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 ‘임나(미마나)지배’를 5세기 후반부터 562년까지약 100년 정도로 축소한 견해나 530년부터 531년까지 1년간으로 축소한 견해도 있다.임나(미마나)문제를 일본의 야마토 왜와 가야지역 사이의 직접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않고 그 중간에 백제의 역할을 중시하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즉 5세기 후반에 왜가 임나(미마나)를 직접 지배했으나 6세기 전반에는 백제를 사이에 끼고 간접 지배했다는 설, 아예 임나(미마나)일본부를 백제의 가야직할령 통치기관으로보면서 다만 백제가 왜로부터 왜인용병을 받아 그곳을 통치하되 왜계 백제관료가 이를 지휘하는 형태였다는설, 531년 이후 가야가 실질적으로 백제의 조종을 받고 있었으며 당시 백제는 왜군 파견을 구하여 받아들였으니 그들은 왜국에게 종속적 동맹관계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상당수의 학자들이 왜의 군사침략 사실을 아예 부인하고 양국 사이의 정상적인 외교 또는교역사실을 『일본서기』에서 과장되게 기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설은 ‘외교 교역설’이라고 부를수 있다. 그 중에서 6세기 전반의 ‘임나(미마나)일본부’가 가야지역에 파견된 단순한 왜국 사신 또는 사신단일 뿐이라는 사신단설, 또는 한반도의 선진문물 수입을 위해 임나(미마나)지역에 거주하던 왜국 대표 상인들로 보는 교역기관설, 또는 그들이 가야제국의 대외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이었다는 가야 외무관서설, 그들이규슈지방 왜인들과 가야제국 사이의 교역기관이었는데 6세기에 규슈 왜가 야마토 왜에게 정복되자 그대로가야지역에 머무르게 된 왜인들이라는 규슈 교역기관설 등이 있다.
또한 임나(미마나)일본부가 아니라 ‘안라왜신관(安羅倭臣館)’으로 백제가 안라에 설치한 대왜무역의 중개기관이라는 설이 있다. 안라왜신관은 안라국의 외교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왜인 관료들이 상주하던 안라의 특수 외무관서였으며, 왜나 백제의 임나(미마나) 지배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 김태식, 「임나일본부 논쟁사」『한국 전근대사의 주요쟁점』, 역사비평사, 2006, 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