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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8 2014-06-22 11:23:31 3
송서 왜 5왕 육국 제군사에 대한 김태식씨 주장.. [새창]
2014/06/22 10:23:55
주장에 대한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요지의 답변이었고 제시한 논문은 찾지 못하였으나 그러한 작성자의 주장의 전제에 대하여 덧붙이자면

(중략)

문헌 사료만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왜국이나 백제가 가야를 200여 년간 통치하였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 문헌에 나오는 임나일본부는 가야 문화의 독자성을 배경으로 삼아 재해석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임나일본부 관계 사료를 가야사의 전개 과정과 관련해서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중략)

가야제국은 장기간에 걸쳐 백제나 왜의 복속 상태에 빠진 적이 없이 600여 년간에 걸쳐 발전하였으며, 任那加羅 및 任那日本府 문제는 가야제국의 발전 과정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들과 왜국과의 관계의 성격 및 왜국 내부의 상태는 앞으로 더욱 추구해 보아야 할 과제라고 하겠다. 는게 그 분의 주장이고, 육국 제군사에 관한 김태식씨의 주장에 대한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 할수 있겠지요.
2187 2014-06-22 10:59:57 3
[새창]
무덤 애기나 낙랑 열풍 이야기는 지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막 갔다더니 중요 유물만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조사가 무조건 무슨 없는 물건을 창조해 나간것도 아니고 그저 일본인이 했다더라 라는 그 감정하나로 시작한 주장이나 다를바 없는데다 이걸 다룬 방송사 본인들도 그러한 문제나 제대로 된 학술적인 측면을 다룰수 없는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보험을 걸어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무슨 신뢰성을 가져야 할까요?

말 그대로 이건 뭐 역사 스페셜에서 다루는 대개 흥미..만 있는 그런 이야기들보다 못하지요.
2186 2014-06-22 10:52:49 4
[새창]
막 던지는게 아니라 애시당초 sbs에서도 본인들이 다루는 이 주장의 신뢰성에 대하여 큰 기대를 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참 재밌는게 석암동 고분과 석암동 을분과 같은 제대로 된 조사는 둘째치고 알려진 것만 50~60건이나 되는 완전한 파괴와 뒤에가서는 처녀분 140여기를 뺀 1200여기의 무덤이 모두 도굴당하였고, 이 시기에는 낙랑 청동 거울이나 토기 항아리가 1~2원에 거래가 될정도로 유행이 된 도굴 그러니까 이른바 낙랑 열풍에 관해서는 입을 씻고 있네요, 그걸 떠나서 중요 유물만 골라서 쏟아져 나온게 아니라 발굴된 유물 가운데 주장을 뒷받침 할수 있는 것이 많았던 것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같은 말이지만 다른 이야기가 되지요.
2185 2014-06-22 10:46:15 1
송서 왜 5왕 육국 제군사에 대한 김태식씨 주장.. [새창]
2014/06/22 10:23:55
왜군이 한반도 남부에 군사침략을 하여 임나(미마나)를 지배했다는 가설을 포기하지 않는 학자들 중에서 군사지배의 시가와 폭을 축소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 ‘임나(미마나)지배’를 5세기 후반부터 562년까지약 100년 정도로 축소한 견해나 530년부터 531년까지 1년간으로 축소한 견해도 있다.임나(미마나)문제를 일본의 야마토 왜와 가야지역 사이의 직접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않고 그 중간에 백제의 역할을 중시하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즉 5세기 후반에 왜가 임나(미마나)를 직접 지배했으나 6세기 전반에는 백제를 사이에 끼고 간접 지배했다는 설, 아예 임나(미마나)일본부를 백제의 가야직할령 통치기관으로보면서 다만 백제가 왜로부터 왜인용병을 받아 그곳을 통치하되 왜계 백제관료가 이를 지휘하는 형태였다는설, 531년 이후 가야가 실질적으로 백제의 조종을 받고 있었으며 당시 백제는 왜군 파견을 구하여 받아들였으니 그들은 왜국에게 종속적 동맹관계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상당수의 학자들이 왜의 군사침략 사실을 아예 부인하고 양국 사이의 정상적인 외교 또는교역사실을 『일본서기』에서 과장되게 기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설은 ‘외교 교역설’이라고 부를수 있다. 그 중에서 6세기 전반의 ‘임나(미마나)일본부’가 가야지역에 파견된 단순한 왜국 사신 또는 사신단일 뿐이라는 사신단설, 또는 한반도의 선진문물 수입을 위해 임나(미마나)지역에 거주하던 왜국 대표 상인들로 보는 교역기관설, 또는 그들이 가야제국의 대외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이었다는 가야 외무관서설, 그들이규슈지방 왜인들과 가야제국 사이의 교역기관이었는데 6세기에 규슈 왜가 야마토 왜에게 정복되자 그대로가야지역에 머무르게 된 왜인들이라는 규슈 교역기관설 등이 있다.

또한 임나(미마나)일본부가 아니라 ‘안라왜신관(安羅倭臣館)’으로 백제가 안라에 설치한 대왜무역의 중개기관이라는 설이 있다. 안라왜신관은 안라국의 외교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왜인 관료들이 상주하던 안라의 특수 외무관서였으며, 왜나 백제의 임나(미마나) 지배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 김태식, 「임나일본부 논쟁사」『한국 전근대사의 주요쟁점』, 역사비평사, 2006, 92쪽.
2184 2014-06-22 10:26:34 5
[새창]
애시당초 실물을 통한 비교가 아닌 사진을 통한 대강의 검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데, 뭘 가지고 신뢰성을 이야기 해야할까요?

유물의 같고 다름은 비교할수 없다 해놓고 비교를 하는것도 아이러니 하고 말입니다.
2183 2014-06-22 10:24:55 4
[새창]
일단 동영상을 보니까 효문묘 동종을 이야기 해보자면 평양 선교리에서 출토된 효문묘 동종과 석암리 9호의 동종을 가져다 놓고 조작이라고 하고 있군요,

점제현 신사비 탁본의 경우에도아 탁본 실물도 아닌 탁본 사진과 비석을 비교하고 있으면서 탁본 실물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로 어떠한 근거도 없이 첫 탁본은 없애버렸다로 얼버무리고 있고, 아 보험으로 사진상의 왜곡일수도있다는 말을 하는군요.
2182 2014-06-22 10:07:30 4
왜 자꾸 한사군 이야기를 건드리는지 모르겠는데 [새창]
2014/06/22 07:33:33
사료 몇 줄을 들고 이미 발굴된 유물을 뒤집으려는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언제부터 고고학적 발굴이 역사에서 제외되었는지 말입니다.
2181 2014-06-22 07:43:42 4
왜 자꾸 한사군 이야기를 건드리는지 모르겠는데 [새창]
2014/06/22 07:33:33
이미 관련 유물이 발굴되고 있는데 그게 증거가 아니라니 참 편리한 주문이네요.
2180 2014-06-22 07:42:21 4
왜 자꾸 한사군 이야기를 건드리는지 모르겠는데 [새창]
2014/06/22 07:33:33
일단 나온 유물들부터 보고 말하세요, 무슨 식민사관이 무안단물도 아니고 모든걸 맘대로 바꿔줄수 있을것 같나요?

일제는 신이 아닙니다.
2179 2014-06-22 04:17:32 0
유신의 그늘이 한국 현대사를 뒤엎다(박근혜 부정선거). [새창]
2014/06/22 04:11:28
시사 게시판이 어울릴것 같아 반대드립니다.
2178 2014-06-21 21:59:17 0
벙커 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1775 [새창]
2014/06/21 21:43:38
음 그리고 저는 한국 전쟁의 벙커힐 전투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어째 전개 과정이나 결과도 비슷하니 말이지요.
2177 2014-06-21 21:55:48 1
자꾸 대륙대륙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드는 생각입니다만 [새창]
2014/06/21 21:49:39
일선 동조론의 영향일수도 있겠고 넒고 광활한 영토라는 일종의 판타지에서 오는 매력이 문제일수도 있겠지요.
2176 2014-06-21 21:54:29 0
벙커 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1775 [새창]
2014/06/21 21:43:38
워싱턴이 총 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것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뉴 잉글랜드와 버지니아의 정치적 거래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예컨데 버지니아에게 뉴 잉글랜드가 보험을 걸어놓은 셈이지요.

그리고 미국이 가장 처음 의결한 안건은 대륙군을 유지하기 위한 화폐 발행이었다는 사실에서 볼수 있듯이 사실상 신대륙의 여론이 사분 오열된 현실을 놓고 볼때 영국의 대처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2175 2014-06-21 21:43:08 1
[새창]
애시당초 환단고기만 놓고 보더라도 중국과 우리는 하나의 국가 아래에서 흘러나온 다른 민족으로 하나의 국가 안에서 성장하고 또 자리 잡아 갈라선 내용이라 사관 정리 할때 아주 유용하지요.;
2174 2014-06-21 21:42:10 1
아래에서 어느 분이 언급하신 백제의 위치에 관한 중국측 기록들입니다. [새창]
2014/06/21 21:08:17
대만이 청해진이던가요, 이건 나름대로 충격과 공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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