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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3 2014-06-24 11:43:2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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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 안의 지방 자치 정권이 존재 했다는 논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그러한 분국설을 부정하는 논거가 뭐냐고 하면 대체 뭐라고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무엇을 논거로 제시하는지 부터 말씀하셔야 되는것 아닌가요?

칠지도의 문구는 앞서 언급했듯 고구려인의 사례나 당시 국제 정세 등을 놓고 봤을때 분국설의 근거가 될수 없습니다, 아니 교차 검증 조차 넘지 못해요, 그러한 상황속에서 무엇을 논거로 들고 나오셨는지 부터 이야기 하셔야 지요.
2262 2014-06-24 11:40:4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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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정너 이신분께 다시 이야기 해드려야 무슨 소용일까 싶습니다만 김태식씨의 주장은 5세기 이전의 기록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광개토왕릉비문이나 송서 왜국전의 문헌 기록은 과장되게 해석된 것으로 보인는 사실아래에 각종 교차 검증을 통하여 가야 지역에 왜와의 정치, 경제적 교류를 전담하는 기관이 존재하였다는 주장입니다.

두번째로 칠지도에 나와있는 백제의 관직은 미사 여구 이상이하로 밖에 보이지 않는게 지금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계시지요, 네 분국설의 논거인 백제인 지방 자치 정부의 실존 여부 말입니다, 외교적 관계에서 비릇되는 그러한 미사 여구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 틀렸다 라고 한다면 지금 주장대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백제에서 지방에 내리는 하사품에 지나지 않는다면 백제의 지방 자치 정부의 실존 여부는 입증하셔야 될텐데 그 논거가 뭔가요?

중국에서 바라보는 양 국의 입장이나 거기에 대한 반응 모두 동일한 국가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고, 어떠한 사료에서도 일본내의 백제인 지방 자치 정부의 실존 여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도 동일하고 말이지요.

더불어 고구려인에게도 내리는 관직인바 그러한 사실에 있어 외교적 관계에서 비릇되는 수사로 밖에 볼수가 없는데 구태여 분국설을 들고 나오시는 것은 뭔가 논거가 있을것 압니까? 그 분국설을 지지하는 논거가 뭔가요?
2261 2014-06-24 11:22:50 8
이홍범 박사의 책 안읽어보셨죠? [새창]
2014/06/24 11:21:47
환단고기 + 각종 음모론, 카더라 + 증산도의 완벽한 칵테일이군요.
2260 2014-06-24 11:15: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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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을 해드려도 안들려 안보여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나는 피해자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시는데 무슨 이야기를 더 할까요?

반대 드립니다.
2259 2014-06-24 11:00: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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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는게 김태식의 주장이지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대체 뭘 이야기 하는건가요? 김태식씨의 주장은 틀렸고 내 분국설은 가능성이 있으니 틀리지 않아? 죄송하지만 역사에는 if나 maybe가 없어요, 하신다는 그 실증사학에 따르면 사실 해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만 사실이라 주장하시는 그 분국설은 뭘로 입증하시는 겁니까?

답정너인것은 진작에 알았습니다만 대체 실증 사학을 한다는 이야기는 왜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2258 2014-06-24 10:56: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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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작성한 답글입니다만 옮겨보자면

712 임진 / 청 강희(康熙) 51년) 5월 15일(정유) 1번째기사
접반사 박권 등이 중국과의 국경선을 정하는 일에 대해 치계하다

“총관이 압록강(鴨綠江) 상류에 이르러 길이 험하여 갈 수가 없게 되자, 강을 건너 그들의 지경(地境)을 따라 갔으며 늘 천리경(千里鏡)16152) 을 가지고 산천을 보았습니다. 또 양천척(量天尺)이 있으니, 하나의 목판(木板)으로 길이는 1자 남짓, 넓이는 몇 치였습니다. 등에 상아(象牙)를 씌워 푼과 치를 새겼는데, 치가 12금이고 푼이 10금이며 위에 윤도(輪圖)16153) 를 설치하고 한가운데에 조그만 널을 세웠으니, 측량(測量)하는 기구(器具)인 듯하였습니다. 역관(譯官)이 백산(白山) 지도(地圖) 1건(件)을 얻기를 원하니, 총관이 말하기를 ‘대국(大國)의 산천은 그려 줄 수 없지만, 장백산은 곧 그대의 나라이니 어찌 그려 주기 어려우랴.’ 하였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백두산 이남은 땅을 다툴 염려가 없을 듯합니다.”

하였다. 이선부가 또 치계하기를,

“다시 혜산 첨사(惠山僉使)로 하여금 두만강(豆滿江)의 근원을 자세히 살피게 하였더니, 강의 근원은 백두산 산마루 중간에서 시작되어 거의 8, 90리(里) 흐름이 끊어졌다가 감토봉(甘土峰) 및 1식(息)16154) 남짓 되는 곳에 이르러 비로소 땅 구멍 속에서 솟아나와 무릇 세 갈래로써 두만강이 된다고 합니다.”

숙종연간의 기사입니다만 보시다시피 백산이니 장백산이니 백두산이니 다르게 부르고 있지만 모두 하나의 산을 가르키고 있지요
2257 2014-06-24 10:54: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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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실록과 같은 사료에는 장백산은 함경도의 장백산과 백두산의 다른 이름인 장백산 두 개가 나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감숙성의 태백산 즉 장백산도 나오지요, 조선에서는 장백산, 백산, 백두산 등을 혼용하고 있으나 여기서 장백산이 백두산이 아닌 다른 산을 가르키는 말만 있는건 아닙니다.
2256 2014-06-24 10:51: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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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게시판에 더 어울릴듯하여 반대 하나 드립니다.
2255 2014-06-24 10:49: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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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역사가 if이고 maybe를 포함하는 것이며 또 답정너인 태도를 견지하실것이면 뭐하러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자는 건지 알수가 없네요.

공부나 한자 더하라는 말씀은 오히려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대체 분국설을 주장하는 근거가 뭔가요? 실증사학에서 사실 해명을 제한 반쪽 자리 주장만 반복하시는데, 하다 못해 트로이는 교차 검증을 거쳐 실질적인 고고학적 성과까지 나왔습니다만 일본 내의 지방 자치 정권이 성립하였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입증하시겠습니까? 이게 왜 합리적이지요?

김태식 교수의 경우 말 그대로 일본서기까지 아우르는 교차 검증의 결과 일본과의 합의 하에 성립된 무역, 정치적 교류적 성격이 짙은 기관이 설립되었고 그 것이 우리가 흔히 임나 일본부라 부르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장하시는 분국설은 어떤가요? 처음 이야기가 나온 북한 학계에서도 별다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더 이상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볼수 있듯 사실상 실제 그러한 지방 자치 정권이 존재했다는 것은 틀린 이야기라는게 정론입니다만 그렇게 주장하시니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주 원류고라 하는 동북공정이나 다를바 없는 자기 미화, 프로파간다의 성격이 짙은 사료를 그러한 성격을 떠나 단지 어떠한 관직이 있었다라는 말 하나로 고구려의 동일한 관직을 받은 인물이 존재함에서 볼수 있듯 얼마든지 미사여구로 쓰일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지도에 그러한 관직 명이 있으니 그 것은 지방 자치 정권에 주어진게 확실하다, 그러니 지방 자치 정권이 존재했다 라고 하는게 어딜 봐서 합리적인 생각입니까? 사고의 비약이지요.

외교가 왜 나오냐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는게 나라대 나라의 일이면 외교이지 대체 그 것이 뭔가요? 답이 정해져 있고, 결론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짜맞추어 올라가니 당연히 인정하기 싫으실테지만 상식적인 일 아닙니까? 그럼 나라 대 나라의 일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만일 나라 대 나라가 아닌 지방 자치 정권에 하사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것이 백제의 권역이라면 그러한 사실은 대체 무엇으로 입증하시는 것입니까?

말이 좋아 실증사학이지 대체 어디가 실증사학입니까? 그저 많고 많은 유사 역사학 마냥 결론을 내고 거기에 자료를 짜맞추며 인정받으려 하는것에 불과한 일이지요.
2254 2014-06-24 07:25:38 3
식근론 자체가 이해가 안가는게 [새창]
2014/06/24 04:50:46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실질적인 신분해방은 한국전쟁이라고 하나 그러한 신분제 붕괴는 20년대를 전후하여 의식적으로 자리잡았고 성과를 거두었지요, 지역에따라 전근대적질서의 붕괴가 빠르냐 늦냐의 차이정도만 있을 따름이고 말입니다.
2253 2014-06-24 07:18:0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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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의심이 아니라 이건 인지부조화, 자기합리화수준 인데요.
2252 2014-06-24 07:13:15 3/4
식근론 자체가 이해가 안가는게 [새창]
2014/06/24 04:50:46
이러한 근대화라고 설명할수 밖에 없는 부분은 비단 경제 발전 그러니까 수탈과 양립하는 개발과 투자를 비릇하여 항일 독립운동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넒은 편이지요.
2251 2014-06-24 07:11:47 4/4
식근론 자체가 이해가 안가는게 [새창]
2014/06/24 04:50:46
그리고 식근론은 일본이 우리의 근대화를 도왔다는게 ㅇ니라 일제 강점기 시기 일어난 근대화 그 자체를 조명하며 더 나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으로
2250 2014-06-24 07:09:48 4/4
식근론 자체가 이해가 안가는게 [새창]
2014/06/24 04:50:46
근대화는 비단 경제적인 측면만 존재하는게 아닌데다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의 수혜자 이야기는 당위성의 문제이지 그 자체만이 근대화의 척도라 보기는 어렵지요, 가령 아일랜드가 근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았기에 대기근을 겪었을까요? 부의 편중이 어느쪽으로 기울었을까요?
2249 2014-06-24 00:41:08 4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이해와 그 비판 [새창]
2014/06/23 23:53:26
111열등감과 우월감이라 그저 웃지요, if와 maybe를 역사로 보실때 부터 느꼈지만 근대화를 대체 뭐로 보시는지 영 이해가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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