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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3 2014-07-04 20:24:03 2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실록 읽고 있는데요. 백제 대륙 진출설 신뢰할만한가요 [새창]
2014/07/04 19:59:12
윗분 들이 이야기 해주셨지만 일단 당사자인 북조측 사료나 우리네 사료에 관련 기록이 등장하지 않으며 당시 상황이 영 좋지 않은터라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구태여 진출했다면 신라방과 같이 상업적인 측면에서 진출한게 아닌가 하는 상황입니다.
2471 2014-07-04 15:59:22 0
모든 프랑스 병사들은 탄약통에 원수봉을 넣고 다닌다. [새창]
2014/07/04 11:32:47
아...제가 위의 답글에서 이야기 한 것은 식민지의 유지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지금 언급하신 국가 신용, 정부의 권위, 그리고 다년간 축적된 적자의 문제를 만들고 악화시켰다고 볼수 있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을 포함한 7년 전쟁에서 식민지를 보전하였다면 혁명이 없었다고 가정할때 해군 유지에 좀 더 낫지 않았겠냐는 것이지요, 루이 14세의 해군 중흥도 생각해보면 식민지의 부가 중심이 되었고, 영국의 해군 중흥 역시 북미의 목재 수급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으니 말입니다.
2470 2014-07-04 15:10:27 0
모든 프랑스 병사들은 탄약통에 원수봉을 넣고 다닌다. [새창]
2014/07/04 11:32:47
근데 또 유지 못할게 없다고 생각되는게, 아시겠지만 루이 15세 보다 더 재정 부담이 컸던 루이 14세때 프랑스 해군의 중흥이 이루어졌고, 그 담당자가 재정 무역 담당이었던 쟝 밥티스트 콜베르 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1661년 20척의 배 밖에 없던 프랑스 해군 엄밀하게 말하자면 왕실 산하의 선박수가 6년후인 1667년에는 270척의 배를 보유하게 되었고 7년 전쟁 아니 프렌치 - 인디언 전쟁 이전까지는 식민지 확보 및 운영에 별 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제 프렌치 - 인디언 전쟁에서 해군의 주력을 날려버리면서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이 급감하기 시작한 뒤의 일이지요.; 그 걸 또 어찌어찌 복구를 한게 루이 15세때의 일인데, 바로 혁명이 터지면서 다시 무로 돌아가게 되었고 결국은 모든게 허사가 되었는데, 참 이걸 보면 역사에는 if가 없다지만 북미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랬다면 대 육군 이상의 프랑스 해군을 보았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말을 빌자면 유럽에서의 패권을 중시하는 귀족들의 구 엘리트적인 사고가, 신대륙과 상업적 이익의 수호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성향을 낳았다고 볼수가 있겠는데 아무튼 if가 재밌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468 2014-07-04 13:03:47 0
"고구려민족은 중화민족" 진화된 中 동북공정 [새창]
2014/07/04 09:48:34
답글이 끊겼는데 정통성을 잇는다 라는 측면에서 볼때 분명 발해나 고구려나 우리의 역사인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영토가 되는 곳이 현재 어디인가 부터 해당 국가를 구성했던 민족의 이주 정착 등을 생각하면 서양사의 변경사적 개념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 골치가 아프지요,
2467 2014-07-04 13:01:46 5/4
"고구려민족은 중화민족" 진화된 中 동북공정 [새창]
2014/07/04 09:48:34
1. 중화사상은 마오쩌뚱이 근본이 아닙니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의 용어가 나오던 시기 부터 존재했다고 봐야 하는데, 다른 민족을 흡수 통일하겠다는 것은 아니지요, 그냥 우리 중화가 세계 최고다 일따름으로 도리어 배타성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2. 조선이나 고구려나 고조선의 영토회복을 위한 전쟁을 한적은 없습니다, 아니 조선이 생각한 자국의 영토는 압록강 두만강 이남인데 할리가 없지요,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럴 능력도 안되고 말입니다.

3. 동북 공정은 자국의 영토 중심의 사관 정리 작업으로 중화 사상과는 엄밀하게 말씀드려 거리가 있습니다, 애시당초 고구려나 발해가 우리 민족'만의' 역사라고 보기에는 멸망 이후의 과정을 볼때 좀 골치 아픈 부분이 있지요,
2466 2014-07-04 12:06:22 3
모든 프랑스 병사들은 탄약통에 원수봉을 넣고 다닌다. [새창]
2014/07/04 11:32:47
두서가 없었는데 요는 그렇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해군은 몰락했습니다, 이후에 프랑스 육군이 영광의 나날을 달리고 몰락을 겪을동안 내내 침체기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였지요, 물론 영국 해군과 나포 대금의 차이나 사관 제도의 정도외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혁명으로 인하여 숙련된 인력이 증발한 현실에서는 무엇 하나 할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해군의 경우 능력 위주라고는 하지만 집안과 연줄을 무시할수는 없었지요, 어쨌거나 출세를 하거나 혹은 친하게 잘 지내기 위해서는 호의가 오고가야 하니 말입니다.;
2465 2014-07-04 12:00:39 3
모든 프랑스 병사들은 탄약통에 원수봉을 넣고 다닌다. [새창]
2014/07/04 11:32:47
이러한 문제는 1729년 이후 해군병학교가 설립된 뒤에도 마찬가지로서 군함에 배승하기 전에 약간의 기초교육을 실시하지만 병학교 출신자와 함장의 연고자의 두 종류의 사관후보생로 나누어 훈련을 받고 배에 태우게 되지요, 당연히 연줄과 집안을 타고 가기 마련입니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로서 원격 수역의 함대사령관이 된 장관은 자기와 연고가 있는 대위를 동반하고 가서 조그마한 전공을 이유로 현지 승진 케이스의 대령을 시키거나, 그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다른 유력자의 연고자를 대령으로 만들기 십상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집안과 연줄이 되는 이 들은 빠르게 승진하기 좋았지요, 오죽하면 자기 실력만으로 출세하는 사관을 plodders 라고 하고 고속 승진하는 사람들을 fortune`s favorites 을 받은 이 들이라고 구분하겠습니까;

물론 고속 승진하는 사람들이 무능력한것만은 아닙니다, 호레이쇼 넬슨은 백부님이 해군국 회계검사원장이라 고속 승진 루트를 탔지만 영국을 구했지요.
2463 2014-07-04 11:51:25 4
모든 프랑스 병사들은 탄약통에 원수봉을 넣고 다닌다. [새창]
2014/07/04 11:32:47
덧붙이자면 해군이 왕당파 지휘관의 축소 등을 거치며 다분히 능력 위주로 변모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줄과 집안 또한 무시할게 못됩니다, 해군의 선장이 되기 위하여 거쳐야 할 견습 과정에 있어 시쳇말로 가라로 떼울수 있는 것도 집안이 좀 될 경우의 일이고 좋은 근무지와 훌륭한 배의 순서는 능력만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지요.
2462 2014-07-04 11:47:04 6
모든 프랑스 병사들은 탄약통에 원수봉을 넣고 다닌다. [새창]
2014/07/04 11:32:47
여기서 중요한건 모든 영광의 나날 중에 오로지 해군은 예외라는 것이지요, 그 전까지 루이 15세기 일구어낸 프랑스 해군의 전성기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완전히 무너져 내려버립니다, 재정, 정치등 다양한 측면에서 프랑스 해운 사업과 해군에 돌이킬수 없는 타격을 주어 영국과 네덜란드에게 자리를 내주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나폴레옹이 영국을 넘지 못하게 만들었고 프랑스의 국력을 깎아 내렸지요,

다른 나라와의 해병의 대우가 나포대금의 분배정도에서만 차이를 보일정도로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선장을 따라 배를 옮긴다거나 선장을 보고 배를 탄다거나 돈을 보고 이직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각박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2461 2014-07-03 21:47:15 2
기병대 그 영광의 순간 [새창]
2014/07/03 16:03:58
기병의 장점은 기동력이며, 약점도 기동력입니다, 기동력이 발휘될때는 그 충격력은 이루 말할수가 없어지지만 반대로 제한되면 잉여롭기 그지 없어지지요.
2460 2014-07-03 17:00:21 14
이라크 반군세력 ISIS 가관이네요 [새창]
2014/07/03 16:53:31
꿈꾸고 있는 미래가 교조주의적 이슬람 단일 국가 그 것도 탈레반의 그 것과 동일한데 무엇이든 못 할까요.

참담한 일입니다, 정작 자신들이 명분으로 내세운 선지자 무하메드나 정통 칼리프 그 누구도 원치 않았고 권하지 않은 일을 광기로 합리화시키니 말이지요.
2459 2014-07-03 16:21:45 6
기병대 그 영광의 순간 [새창]
2014/07/03 16:03:58

덧붙이자면 우리나라는 한국 전쟁때까지 기병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기갑의 자리를 대신했던 기병 대대는 전쟁중 피해를 복구하지 못하고 해산되었기는 했지만 여러 전투에서 큰 공훈을 세웠고, 이러한 말들은 기병 대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전쟁 중은 물론이거니와 전후에도 한동안 보급품 수송에서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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