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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4 21: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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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아룁니다. 동해(東海) 밖에 세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마한(馬韓)과 변한(弁韓)과 진한(辰韓)이었는데, 마한은 곧 고구려요 변한은 곧 백제요 진한은 곧 신라입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시대에는 강한 군사가 100만이나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쪽으로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를 침범하고 북쪽으로 유주(幽州)와 연주(燕州) 및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의 지역을 동요시키는 등 중국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황(隋皇 수 양제(隋煬帝))이 실각한 것도 요동(遼東)을 정벌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정관(貞觀) 연간에 우리 태종황제가 직접 육군(六軍)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천토(天討)를 삼가 행하였는데, 고구려가 위엄을 두려워하여 강화를 청하자 문황(文皇 태종)이 항복을 받고 대가(大駕)를 돌렸습니다.
우리 무열대왕(武烈大王)이 견마(犬馬)의 성의를 가지고 한 지방의 환란을 평정하는 데에 조력하겠다고 청하면서 당나라에 들어가 조알(朝謁)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그 뒤에 고구려와 백제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악행을 일삼자 무열이 입조(入朝)하여 향도(鄕導)가 되겠다고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고종황제(高宗皇帝) 현경(顯慶) 5년(660)에 소정방(蘇定方)에게 조칙을 내려 10도(道)의 강병(强兵)과 누선(樓船) 1만 척을 이끌고 가서 백제를 대파하게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그 지역에 부여도독부(扶餘都督府)를 설치하여 유민(遺民)을 안무(按撫)하고 중국 관원을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는데, 취미(臭味)가 같지 않은 까닭에 누차 이반의 보고가 올라오자, 마침내 그 사람들을 하남(河南)으로 옮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총장(總章) 1년(668)에는 영공(英公) 이적(李勣)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격파하게 하고 그곳에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를 두었는데, 의봉(儀鳳) 3년(678)에 이르러서는 그 사람들도 하남의 농우(隴右)로 옮기게 하였습니다. 고구려의 잔당이 규합하여 북쪽으로 태백산(太白山) 아래에 의지하면서 국호를 발해(渤海)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개원(開元) 20년(732)에 천조(天朝)에 원한을 품고서 군대를 이끌고 등주(登州)를 엄습하여 자사(刺史) 위준(韋俊)을 죽였습니다. 이에 현종황제(玄宗皇帝)가 크게 노하여 내사(內史)인 고품(高品)ㆍ하행성(何行成)과 태복경(太僕卿)인 김사란(金思蘭)에게 명하여 군대를 동원해서 바다를 건너 공격하게 하는 한편, 우리 왕 김모(金某)를 가자(加資)하여 정태위(正太尉)에 임명한 뒤에 절부(節符)를 쥐고 영해군사(寧海郡事)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그러나 겨울이 깊어 가면서 눈이 많이 쌓여 번방(蕃邦)과 중국의 군사들이 추위에 괴로워하였으므로 칙명을 내려 회군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동안 한 지방이 무사하고 창해(滄海)가 편안한 것은 바로 우리 무열대왕의 공이라 할 것입니다.
지금 치원이 유문(儒門)의 말학(末學)이요 해외의 범재로서, 외람되게 표장(表章)을 받들고 낙토에 조회하러 왔으니, 마음속으로 간절히 말씀드릴 내용이 있으면 모두 토로하여 진달하는 것이 예의상 합당할 것입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원화(元和) 12년(817)에 본국의 왕자(王子) 김장렴(金張廉)이 표풍(飄風)으로 명주(明州)에 와서 상륙하였는데, 절동(浙東)의 모 관원이 발송하여 입경(入京)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 중화(中和) 2년(882)에 입조사(入朝使) 김직량(金直諒)이 반신(叛臣)의 작란(作亂) 때문에 도로가 통하지 않자 마침내 초주(楚州)에 상륙하여 이리저리 헤매다가 양주(楊州)에 와서야 성가(聖駕)가 촉(蜀)으로 행차하신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고 태위(高太尉)가 도두(都頭) 장검(張儉)을 차출해서 그를 감호하여 서천(西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전의 사례가 분명하니, 삼가 원하옵건대 태사시중께서는 굽어살피시어 은혜를 내려 주소서. 그리하여 특별히 수륙(水陸)의 권첩(券牒)을 내리시어 가는 곳마다 주선(舟船)과 숙식(熟食)과 먼 거리 여행에 필요한 마필(馬匹)과 초료(草料)를 공급하게 하시고, 이와 함께 군대 장교를 차출하여 어가(御駕) 앞까지 보호해서 이르게 해 주시면 더 이상의 다행이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