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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2 2014-07-08 17:18:19 7
환단고기와 판타지 [새창]
2014/07/08 13:35:01
최근의 환빠 라는 단어의 정의는 기존의 환단고기 추종자에서 유사 역사학을 추종하는 이들로 범주가 확대되었지요, 그렇기에 물론 썩 좋은 단어는 아니겠습니다만 대개의 경우 틀린 이야기도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2591 2014-07-08 17:13:39 3
환단고기와 판타지 [새창]
2014/07/08 13:35:01
이우혁씨 취향이 약간 그 쪽 계열이었지요, 퇴마록의 본문, 각주 등부터 치우천왕기라던가 하는 작품이라던가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는데, 뭐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이고 본인이 상상의 산물이라 규정한 이상 더 나올말이 없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2590 2014-07-07 23:37:31 10/11
고종이 부패하고 무능하고 방탕해서 조선경제가 망했다? [새창]
2014/07/07 23:26:13
무능한것은 그러니까 식견이 부족한건 사실이지요, 가령 고종이 수입한 화기는 수량 미상의 무라다 소총, 러시아 베르단 소총, 독일 마우저 소총, 드라이제 소총 그리고 엔필드 소총 1000정, 브릿치 로딩 소총 4000정, 미국 레밍턴 소총 3000정, 피바디 마르티니 소총 1000정, 육혈포 300정, 개틀링 6문, 맥심 기관총 6문, 청나라제 12파운드 청동포, 영국제 암스트롱포 10문, 독일제 크룹 75mm포 8문 등입니다, 연단위로 교관과 병기를 갈아치워왔고, 일설에는 한 부대 안에서 6종류의 화기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들릴정도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국방예산의 30%를 투자해 구입한 전함이라고는 폐선에 대포 몇개 올려놓은 선박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대금 지급이 미뤄지고, 운영비가 많이 나와 제대로 항해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아 하기는 했네요, 일본에 의하여 러일 전쟁 당시 어떠한 통보도 없이 징발되어 쓰였으니 말이지요.

거기다 고종실록을 본다면 나오는게 연회 기사이고, 재정 낭비에 대한 상소입니다, 거기다 자동차에 취미도 있으셨으니 사치도 없다고 말할수는 없겠지요.
2589 2014-07-07 23:01:34 2
[새창]
제대로된 사료와 논리가 없다니, 남제서 동남이전을 통하여 요서 경략설이 성립되지 않음을 설명한 답글은 존재하지 않는건가요?
2588 2014-07-07 21:31:09 3
[새창]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하겠지만 본인이 들고나온 사료에 대한 그 주장의 문제를 지적하니 바로 조롱에 정신승리가 나오는 걸 보면 참 이게 답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새삼 체감하게 되네요,
2587 2014-07-07 21:26:04 3
[새창]
' 신은 봉작을 받은 이래 대대로 조정의 영예를 입었고, 더욱이 신부와 부월을 받아 모든 변방을 평정하였습니다. 앞서 저근 등이 모두 영광스러운 관작을 제수 받아 신과 무리들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지난 경오년에는 험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역습케 하여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쫓아가 베니 시체가 들을 붉게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기가 꺾이어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그 흉포함을 감추었습니다.'

남제서 동이전에서의 전쟁 보고?입니다만 요서 지역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대목이 대체 어디에 있나요?
2585 2014-07-07 21:21:06 3
[새창]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말미의 답글에서 해석한 부분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입니다, 즉 승리 선언같은거랑은 관련 없는 내용이에요,

정말 본인이 가져온 그 사료 보시고 이야기 하시는건 맞나 싶습니다, 남한테 찾아봐도 안보인다고 할정도면 읽어봤다는 말인데 어떻게 저런 해석이 나오는지 알수가 없군요.
2584 2014-07-07 21:09:48 0
임진왜란때 진관체제가 유지되었어도 [새창]
2014/07/07 18:53:08
근데 또 생각해야할께 진관체제가 멀쩡하여 왜변이나 왜란에 능히 견딜수 있었다면 그로 인하여 탄생한 판옥선이나 조선 역사를 통틀어 유래없는 고속승진을 거치신 이순신 장군도 없었을 테지요.;
2583 2014-07-07 21:07:43 3
[새창]
'신이 파견한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 장사 신 고달,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 사마 신 양무, 행의위장군 겸 삼군 신 회매 등 3인은 뜻과 행동이 맑고 깨끗하며, 충성과 정성이 일찍이 드러났으며, 지난 태시연간(465-471)에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었고, 지금은 신의 사신의 임무를 맡아 험한 파도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으니, 그 지극한 공로로 따지면 마땅히 벼슬이 올라야 마당하므로, 선례에 따라 각자 가행직을 주었습니다. '

안보이시지요? 안들리시지요? 네 그렇겠지요, 풍림화산2님의 머리속에서는 바다 건너 갈만큼 떨어져 있는 백제가 존재할리가 없지요.

진짜 이건 뭐 관심이 필요하신건가 싶을 정도네요;
2582 2014-07-07 21:06:19 3
[새창]
뭐 답정너가 따로 있나요, 이런게 답정너지, 답글을 줘도 안 읽는걸 어떻게 하나요? 본인이 불리하면 안보여 안들려인걸,

위에서 언급했듯 남제서에 따르자면 바다를 건너 사신을 보내야 할만큼 중국과 백제는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백제가 북위와 영토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중국에는 북위가 있다는 말인데 이게 무슨 뫼비우스의 띠인가요? 고구려는 대체 어디로 갔답니까?
2581 2014-07-07 21:02:22 3
[새창]
상기 깨끗한? 버전을 보면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이렇습니다.

모대(동성왕)이 또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신이 파견한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 장사 신 고달,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 사마 신 양무, 행의위장군 겸 삼군 신 회매 등 3인은 뜻과 행동이 맑고 깨끗하며, 충성과 정성이 일찍이 드러났으며, 지난 태시연간(465-471)에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었고, 지금은 신의 사신의 임무를 맡아 험한 파도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으니, 그 지극한 공로로 따지면 마땅히 벼슬이 올라야 마당하므로, 선례에 따라 각자 가행직을 주었습니다. 항차 천자의 은혜는 신령하고 아름다워 만 리 밖까지 미치는 법인데, 하물며 몸소 천자의 들을 밟으면서 은헤를 입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바라건대 특별히 살피시어 정식으로 관작을 제수해 주십시오. 고달은 변경에서의 공적이 일찍이 드러났고 공무에 부지런 하였으므로 이제 가행용양장군 대방태수라 하고, 양무는 마음과 행동이 맑고 한결 같으며 공부를 항상 놓지 않았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 광릉태수라 하고, 회매는 뜻이 세우면 두루 치밀하여 여러번 공무에 성과를 나타내었으므로, 이제 가행광무장군 청하태수라 하였습니다."

라고 하니 이를 허락한다는 조서를 내림과 더불어 장군의 호를 주고, 태수의 관직을 제수하였다. (또 백제왕을) 시사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으로 삼고, 겸알자복야 손무를 사신으로 보내어 모대를 책명으로 조부 모대를 게승한 백제왕으로 삼았다.

(중략)

이해에 북위 오랑캐가 또 기병 수십만을 동원해 백제를 공격하여 그 지경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북위군을 기습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건무2년(495년)에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신은 봉작을 받은 이래 대대로 조정의 영예를 입었고, 더욱이 신부와 부월을 받아 모든 변방을 평정하였습니다. 앞서 저근 등이 모두 영광스러운 관작을 제수 받아 신과 무리들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지난 경오년(490년)에는 험윤(북위)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역습케 하여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북위)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쫓아가 베니 시체가 들을 붉게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기가 꺾이어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그 흉포함을 감추었습니다.

지금 천하가 조용해진 것은 실상 사법병 등의 꾀이니 그 공훈을 찾아 마땅히 표창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 사법명을 가행정로장군 매라왕으로, 찬수류를 가행안국장군 벽중왕으로, 해례곤을 가행무위장군 불중후로 삼고, 목간나는 과거에 군공이 있는데다 또 성문과 선박을 때려 부수었으므로 행광위장군 면중후로 삼았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천은을 베푸시어 특별히 관작을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조서를 내려 허락함과 아울러 장군의 호를 내려 주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게 뭐다?

'신이 파견한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 장사 신 고달,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 사마 신 양무, 행의위장군 겸 삼군 신 회매 등 3인은 뜻과 행동이 맑고 깨끗하며, 충성과 정성이 일찍이 드러났으며, 지난 태시연간(465-471)에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었고, 지금은 신의 사신의 임무를 맡아 험한 파도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으니, 그 지극한 공로로 따지면 마땅히 벼슬이 올라야 마당하므로, 선례에 따라 각자 가행직을 주었습니다. '

그렇게 한자에 자신감을 보이시고 본인이 가진 사료에는 없다고 주장하시던 분이 정작 넘기시는걸 보면 그저 웃지요,
2579 2014-07-07 20:58:06 3
[새창]
그럼요, 본인이 없다고 하면 없는거죠? 지금 내가 깨끗한거 가져다 준게 무슨 내용인지는 읽기는 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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