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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0 09: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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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문에서 언급하신 해답에 하나 더 정답이 있기는 합니다, 여몽 전쟁 당시의 일입니다만 야전에서 적의 주력 병력을 끌어내어 격멸시키면 된다는 사실을 입증시켰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우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불안 요소인 후방의 안정화를 이루어 낼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이게 아마 1차때일일텐데, 최우의 장인 어르신이던 대집성님의 고집 덕분에 한큐에 서경 이북의 가용 병력이 동났고, 덕분에 각 성의 연계가 끊기는 바람에 무주 공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뭐 말 할것도 없는 일이지요.
사실 이원화된 군제가 나쁜 것 만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상비군을 배비하기에는 생산력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데다 무엇보다 예산을 어찌할수 없는 노릇이라, 군역을 통해 각 요충지를 틀어 막는 한편 중앙군이라는 소수의 상비군을 운용, 부족한 부분을 충당한다는 것이고 고금을 통틀어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린바 있습니다, 일단은 말입니다.
다만 이러한 이원화는 필연적으로 관련 제도의 원활한 가동과 위정자들의 인식을 요구하는바, 대체로 그러한 것이 충족되지 못했을때 항상 문제는 야기되 왔다는 것이지요, 가령 속오군 체제의 천례화라던가, 진관 체제의 변질같은 문제 말입니다.
또한 질적으로도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앞동네 소키우던 총각을 갑자기 끌고와 창한자루 쥐어준다고 이 사람이 만부부당 의 장수가 될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러한 것이 이제 성곽에 의지하는 수성전이 가장 발달할수 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두서가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음 그렇습니다, 고려 시대라고 해서 딱히 대규모 상비군을 구성하여 야전을 중시한것은 아닙니다, 거기서 거기인데, 이제 외부 환경도 차이가 있고, 조선 전기의 중앙군의 탄생에서 볼수 있듯, 조선군은 고려군을 근간으로 삼는바 학습은 충분히 되어 있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