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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3 2015-03-15 22:50:30 0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의 역사인 것 처럼 [새창]
2015/03/15 21:12:40
답글을 작성하는 사이에 답글을 달아주셨는데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그러니까 알렉산더 대왕 당시의 마케도니아와 원나라와 비슷한지는 제가 헬레니즘의 사회 구조에 미숙하여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지배층과 피 지배층이 분리되어 있되 이중적 지배 구조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볼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행정 구조 자체가 다르기에 완벽한 대치는 힘들지만 말이지요.
3972 2015-03-15 22:47:04 0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의 역사인 것 처럼 [새창]
2015/03/15 21:12:40
그리고 사실 법률상 제도상으로 볼때 원나라는 스파르타 그 이상의 냉혹 무비한 사회가 맞습니다만 문제는 행정력이지요,

절대 다수의 토지 및 그 토지에 거주하는 인력, 자원 모두가 전통에 따라 원정에 참여한 각 왕가들에게 배분되었고, 그 나머지도 왕족, 귀족들의 땅, 그 나마도 토착 세력의 군벌화 등으로 사실상 터치 불가라 실제 신분제가 엄격하게 실시되기는 무리인게 현실입니다.
3971 2015-03-15 22:38:17 0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의 역사인 것 처럼 [새창]
2015/03/15 21:12:40
두서 없게나마 간략하게 설명드려보자면 우선적으로 스파르타와 원나라의 차이점은 아무래도 동화 방식?이라고 부르면 좀 그럴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들과의 관계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스파르타는 그 들과 나의 구분을 명확히 하여 선을 그은 반면 원나라는 구분을 하되 그 들과의 협력을 거리낌 없이 이행하였습니다,

정해진 세금뿐만 아니라 비 정기적, 정기적 가릴것없이 온갖 목적의 세를 부과하여 식읍의 부민들을 고통스럽게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돌아간 이유가 바로 그 것인데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이 된다면 가리지 않고 다루가치로 뽑아 식읍의 통치를 맡기는 한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화북 점령 당시에 귀부한 한인세족들 중 기존에 보유한 세력을 인정하여 지배계층으로서의 지위와 세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한편 그 들의 자제들을 왕가로 받아 들여 그 들을 자신들의 이상에 동화시키는 것을 결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나라의 고려 왕실에서 볼수 있듯 왕가의 여식과 그 들 군벌, 혹은 세가 어느 것이 되었든 토착 지배 세력과의 혼약으로 그 들을 자신들의 질서와 문화, 이상에 묶어 두는 것을 거리낌없이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때 다분히 원주민들을 수탈의 대상 그 하나로만 바라보았던 스파르타와 원나라는 원주민들에 대한 처분을 놓고 볼때 다른 성격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3970 2015-03-15 22:05:03 0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의 역사인 것 처럼 [새창]
2015/03/15 21:12:40
더하자면 몽골인이라고 뭉뚱그려 묶기는 합니다만 실상 몽골 부족은 수많은 유목민 중에 하나일뿐입니다, 그 들과 자웅을 겨루던 콩키라트, 타타르, 케레이트, 오이라트 등을 비릇하여 우랑카이, 나이만, 키르키스, 탕구트, 몽구트, 구츄구트, 이키레스, 올쿠누트 등 수많은 부족과 씨족들이 모여 탄생한 것이 바로 원나라이고 지배층을 이룬 것도 이러한 사람들로 편하게 몽골인이라고 뭉뚱그리기는 합니다만 사실상 몽골인 즉 몽골 부족 출신자들만의 나라라고 볼수 있을지는 좀 의문이기도 하지요.
3969 2015-03-15 21:59:16 1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의 역사인 것 처럼 [새창]
2015/03/15 21:12:40
지배층은 몽골인이었지만 인구의 절대 다수는 몽골인이 아니었지요, 그러하기에 그 들과의 협력은 불가피 했습니다, 사실 그러한 면을 떠나 원나라의 인재 등용 방식은 제법 파격적인터라 능력만 있다면 국적이 어디이든 신분이 무엇이었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승진에 제약을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황금씨족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러한 측면을 놓고 볼때 과연 원나라가 오롯한 몽골인들만의 시대였다고 볼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기는 합니다.
3968 2015-03-14 22:18:06 0
[새창]
장제석의 성 불구 이야기는 확실하지 않은 낭설이라 어느 정도 가려 들을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3967 2015-03-14 21:29:04 1
[새창]
윗분 말씀대로 입증을 하시거나, 제대로 토론을 하신다면야 딱히 욕 먹을 이유가 있을까요, 대개 여기에서 이제 싫은 소리가 나오는 경우는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아집이나 훈제청어, 막말 정도 등이 전부라 제대로 된 논거를 제시하실수 있다면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것 같습니다.
3966 2015-03-13 22:02:08 2
사이토 마코토의 교육 시책 (上) [새창]
2015/03/13 21:52:15
왠지 그 논거가 기이할 정도로 안개에 쌓인 문제들을 두고 뿌리를 찾다보면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실감이 날 때가 많습니다, 하는 짓이 그렇게 증오해 마지 않는 일본 극우나 일부 기독교 단체들과 대동소이해요.
3965 2015-03-13 19:56:02 0
[새창]
??? 누가 이병도가 친일 안했다고 했습니까? 훈제 청어는 그만 던지시고 본문에 집중좀 하시지요.
3964 2015-03-13 19:37:52 0
[새창]
http://www.podok.com/bbs/board.php?bo_table=gaebyeok&wr_id=1

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오는군요,

29일 친일파 명단 발표에 맞춰 참회의식

"반민특위 법정에서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형해 매국의 교훈으로 삼아달라'며 민족 앞에 고백하고 속죄의 눈물을 흘렸던 최린의 심정이 오늘 천도교인의 심정이다."

동학정신에 뿌리를 둔 천도교가 과거 친일행적을 통렬하게 참회하고, 민족의 용서와 질정을 구했다. 천도교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 발표에 맞춰 일제시대 말기 교단과 일부 교인의 친일행위에 대해 이같이 사죄했다.

박남수 천도교 종의원 의장은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 참회문을 발표했다. 참회문은 (사)동학민족통일, 천도교 여성회본부, 천도교 청년회 중앙본부 명의로 작성됐다.

박 의장은 먼저 "일제 말기 최린, 이종린 등 일부 천도교인들은 일제 민족정기 말살정책과 침략정책에 동원되고, 나아가 협력하며 민족사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친일행위를 시인했다.

박 의장은 "일제 말기 교단의 일부 지도자들이 저지른 친일행적은 비롯 강압에 기인한다 하더라도 보국안민을 이념으로 하는 교단의 본질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순도 순국선열들에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의장이 참회문을 통해 밝힌 천도교단과 일부 교인의 친일행적은 ▲친일단체를 결성하고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과오 ▲일제 침략전쟁에 물자를 동원하고 민족의 젊은 동량을 전쟁터로 보내는데 앞장선 과오 ▲천도교 기관지를 동원해 일제 정책을 선전하고 정당화한 과오 등이다.

박 의장은 "지난 과오를 용서받고 천도교 민족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재삼재사 노력하려 한다"면서 "참회는 오늘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천도교 민족운동의 전통도 역사에 기록하여 다시는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정기와 본연의 이념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3963 2015-03-13 19:36:50 0
[새창]
누가 친일 부역자를 떠받들었는지 좀 답글을 보여주시지요, 저랑 다른 시공간에 사시는게 아니라면 제가 작성한 적 없는 답글을 작성 했다고 하실리는 없을테니 가지고 계신거 아닙니까?
3962 2015-03-13 19:35:5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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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입니다, 비행기 헌납은 비단 장로교 만의 업적은 아닙니다, 불교, 감리교 등 각 종교단체들에서 수 기의 전투기가 상납되었습니다,

그 뿐일까요? 지난 09년인가 10년도인가에 천도교에서 친일 부역을 인정하고 사죄하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어용 단체 조직, 모병 장려, 기관지의 친일 언론 등 말입니다, 여기가 무슨 친일과 무관한 청정 지역인줄 아시는데, 본인들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3961 2015-03-13 19:31:40 0
[새창]
좀 더 보충하자면 관에서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는 상황에서 내부의 자정 작용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했으니 문제라고 할수 있을까요, 스스로가 불러들인것도 아니고 신사 참배등 정신적 가치의 침탈에 따른 외세의 유입이라고까지 표현해도 좋은 일일텐데 말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내부의 친일파가 나오고 친일어용단체가 조직된게 기독교 교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지요.
3960 2015-03-13 19:27:52 0
[새창]
기독교의 자정 작용을 이야기 하시는데, 그게 가능했던 시기로 보이시나요? 대외적으로라도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생존할수 있었던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내부의 분열을 획책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그러한 계획에 있어 그 들 내부에서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겪어야 했던 시기인데 말입니다.

물론 기독교 내부의 친일파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본문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일본이 기독교의 포교를 지원한 것도 기독교의 모든 교파에서 앞장서서 친일을 외쳤던 것도 아니지요,
3959 2015-03-13 18:49:39 1
[새창]
기독교 포교를 일제가 지원해 줬다니 대체 뭘 가지고 이야기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당장 전북 노회의 경우 임원회와 헌의부 연석회의를 경찰부에서 모여 개최하고 사전 검열과 승인 등을 거쳐야 했는데요? 평안도 일대에서는 신사 참배 불응에 대한 관련자의 처벌과 관련 시설의 폐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강요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포교를 지원한게 아니라 도리어 그 세력을 꺾기 위해 기독교 계열 학교를 폐교하고, 매수하며, 변절자들을 종용하여 내부로 부터의 붕괴를 유도했지요, 그 결과 수많은 친일 어용 단체와 변절자들이 양산된거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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