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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8 2015-03-19 18:06:15 0
[새창]
다른 건 둘째치고 윤내현 교수는 획득 형질의 유전이라는 과학의 정설 마저도 부정하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지요.

이래저래 대단하신 양반인데 아무튼 음...간만에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궁금한건데 북한의 리지린 교수의 논문 베낀 아니 토씨하나 안틀리고 고스란히 복사한 일은 극복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학자로서의 양심은 이제 아예 포기하신건지 말입니다.
3987 2015-03-19 15:04:37 10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주의) 아이누족의 정체성 [새창]
2015/03/18 17:24:21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일본의 항복 선언을 들은 선생님이 교실에 뛰쳐들어와 일본이 전쟁에 졌다고 좋아하니 학생들은 왜 우리나라가 전쟁에 졌는데 좋아하시냐고 의아해 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만일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더라면 우리나라도 어찌보면 아이누인의 뒤를 따를뻔 했지요.
3986 2015-03-18 23:03:07 0
헐 노트에 관한 두서없이 간략한 이야기 상편입니다, [새창]
2015/03/17 21:12:41
사실 그 진주만 기습도 알고 보면 눈물 없이는 볼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대로라면 헐 노트를 거부한다는 답변을 선전 포고와 함께 작전 개시 1시간 반에 전달하기로 했는데, 해군이 적극적으로 항의하여 20분 전 그러니까 진주만 시각으로 7시 20분, 워싱턴 시각으로 오후 1시로 앞당겨 졌지요,

그런데 문제는 주미 대사관에서 13개의 전문을 겨우 해독을 하고 보고를 하러 서기관 실에 가보니 담당자들은 주말이라고 전원 칼퇴근 해버리는 바람에 타이핑도 못하고 그대로 책상위에 던져졌습니다,

결국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주재 무관의 보좌관이 우연히 출근길에 우편함에서 14번째 전문이 실린 전보를 발견하여 전파해 준 덕분에 모든 대사관 직원들이 달려들어 마지막 14번째 전문을 해독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원칙상 이걸 타자 칠수 있는건 외교관 뿐인데, 타자를 칠줄 아는 건 오쿠무라 1등 서기관 한명뿐이라 당연히 14개의 전문을 혼자 치려니 오타는 기본이요, 시간은 늦어지고 있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문에서는 시간 엄수 잘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노무라 대사는 왜 1시인지 정말 순수하게 이해를 하지 못해서, 2시로 약속을 미뤘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걸 몰랐나 하면 일본이 14번째 전문을 받아들기 전에 이미 통신을 가로채어 모든걸 알고 있었고 당일인 일요일 오전 6시 반 무렵에 출근한 마셜 대장에 의하여 극동 지역 육군 사령부, 카리브 해 육군 사령부, 하와이 육군 사령부, 제 4군 사령부, 아시아 함대, 태평양 함대 등에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하는 통신을 보냈습니다만 문제는 하필 이때 이 순간 워싱턴 상공에서 강력한 정전기 현상이 발생, 장거리 통신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민간 통신 회사를 경유하여 암호화된 전문을 발송했는데, 문제는 이 걸 지급 표시 없이 보내서 다른 일반 전보들과 섞여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한참을 빙글빙글 돌다가 군 기지에서 수 없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검문을 거쳐 도착한 시각이 하와이 육군 사령부에서는 진주만 기습으로부터 6시간이 지난 후였고, 태평양 함대는 8시간 후였습니다.

참 이 것도 어찌보면 천운이고 또 안타까운 일이지요.;
3985 2015-03-17 23:08:39 2
헐 노트에 관한 두서없이 간략한 이야기 상편입니다, [새창]
2015/03/17 21:12:41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할수 없는 일이지만서도 그럴 정도의 사고 능력이 있다면 사실 넷 우익이라는게 탄생할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3984 2015-03-17 20:14:44 0
일본제국 입장에선 미국을 향한 최후의 도박밖에 살길이 없었을까요? [새창]
2015/03/17 19:01:02
아...제가 답글을 잘못 읽었네요,

일단 헐 노트에 관한 글은 내용이 답글로 작성하기는 뭐하니 위에 새로 작성하겠습니다.;
3983 2015-03-17 19:42:17 1
일본제국 입장에선 미국을 향한 최후의 도박밖에 살길이 없었을까요? [새창]
2015/03/17 19:01:02
일단 원문이야 어쨌든 그 들이 듣기로는 이제껏 국운을 걸고 막대한 희생끝에 쌓아올려온 중국, 만주 일대를 비릇한 모든 해외 이권 자체를 포기하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었지요.
3982 2015-03-17 19:19:21 0
일본제국 입장에선 미국을 향한 최후의 도박밖에 살길이 없었을까요? [새창]
2015/03/17 19:01:02
간단하게 한줄 요약을 해드리자면 중국에 기어들어가 온갖 뻘짓, 만행을 벌여대는걸 보다 못해 그만하라고 말리니 싸다구를 올린 게 태평양 전쟁입니다.

딱히 전쟁 밖에 살길이 없었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Strictly Confidential, tentative and without commitment 를 잊어먹은게 문제였지요.
3981 2015-03-17 19:17:14 1
일본제국 입장에선 미국을 향한 최후의 도박밖에 살길이 없었을까요? [새창]
2015/03/17 19:01:02
일단 연합군 측의 금수 조치에 대하여 미국과 일본 간의 상호적 외교전이 진행된바 있습니다, 다만 코델 헐이 제시한 중화민국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철수와, 불가침조약 그리고 엔 달러 환율 조정, 자산 동결 해제, 통상 조약 제 체결등 10여개 항목에 동의하지 못했을뿐이지요,

뭐 여기에는 일본 측의 오해를 비릇한 문제들이 존재합니다만 아무튼 그러한 협상안에 대하여 보다 우위에서의 재 협상을 하고자 그러니까 굽시니스트의 명언을 빌자면 '내가 귀싸대기를 존내 맛깔나게 후리면 감동 먹어서 나랑 협상하겠지' 라는 마인드로 시작한게 태평양 전쟁일뿐입니다,
3980 2015-03-16 21:39:01 0
본삭금)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에 대해 질문있습니다 [새창]
2015/03/16 11:18:07
위에서 1월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2월이네요; 음 ​2월 12일 롬멜 중장과 함께 이탈리아 군이 도착했는데, 사실 이것도 문제입니다,

새로 편성된 독일군 제5경기계화사단 일부와 아리에테 기갑사단이 함께 도착한건 좋은데, 아리에테 기갑사단의 경우 여단급에 불과했고 예하 전차 연대는 달랑 1개 뿐이었으며 말이 좋아 완편이지 막 신형 M13/40을 배속받고 있었기에 아직은 CV33/35 117대와 47대의 M13/40이 전부였습니다,

그렇다고 독일군에 기댈만 하냐 그 것도 아닙니다, 제5 경기계화사단 예하 1개 연대만이 도착한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독일은 독일대로 힛총통의 지령인 방어에 치중하라는 말에 따르고 있었고, 이름뿐인 동맹국을 도울 생각은 없었지요, 물론 이탈리아 군도 남의 나라 명령에 따라줄 생각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롬멜의 실수로 그나마 모였던 전력이 또 반토막 아니 이제는 본전치기도 못할정도로 아작이 나는데 그 게 겨우 복구 된게 4월달입니다만 이미 너무나 늦은 시기였지요, 위에서 언급해주신 총체적인 부실과 난국도 사실입니다만 주요한 상대인 영국군도 도찐개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참 여러모로 if가 생각나는 시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당장 세모멘테 da 90/53만 1년 아니 몇달만 일찍 나와 배비되었다면 영국군에게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3979 2015-03-16 21:32:41 0
본삭금)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에 대해 질문있습니다 [새창]
2015/03/16 11:18:07
윗분의 답글에 첨언을 해보자면 이탈리아 군의 전적의 대부분은 상대를 얕보고 공격한건 아닙니다, 윗 분들이 보기에는 이 거면 충분하겠지 싶으셨던 거죠, 가령 위에서 언급한 아오스타 공작이 지휘하는 동아프리카군이 당시 영국의 땅이었던 소말리아와 남부 수단을 공격할때 영국군은 3만5천명에 불과했습니다,

숫자로 본다면 결코 질 싸움은 아니었지요, 단지 숫자로 보자면 말입니다;

그리고 M13/40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성능이 아니라 교리였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독일군이나 여타 국가들 처럼 수백대씩 한곳에 집중 운용 되었다면 충분히 이집트의 영국군은 물론이거니와 아프리카에서 큰 성과를 거둘수 있었겠습니다만 빈약한 경제력과 공업력 그리고 생각없는 최고 통수권자의 발칸 반도와 아프리카의 동시 공략 덕분에 모든게 엉망이 되었지요,

가령 40년 콤파스 작전이 실시될 당시 최일선인 시디바다니에서 이탈리아군의 전차전력은 CV 계열 220대와 M11/39 55대가 전부인 반면, 영국군은 비커스 MK IV 경전차 195대에다 크루세이더 MKI 114대, 크루세이더 중전차 64대, 마틸다II 중전차 48대, 장갑차 74대 등 도합 495대에 달하였습니다.

신형인 M13/40은 콤파스 작전이 시작된 이후에야 후방인 바르디아에 60대 토부룩 인근 엘 메칠리에 61대가 배비되었습니다, 비록 3개의 정규 기갑사단 모두 장비 교체와 재편성 중이라 7개 독립 기갑대대가 북아프리카 전력의 전부 였다고 하나 집중 운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 조차 망각한채 분산 운용하여 각지의 기지 경비 임무로 돌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中, 重중전차의 숫자 차이나 승무원의 기량 즉 제대로 전환 훈련을 받지 못한 승무원과 훈련을 받은 승무원, 그리고 똑같이 사막 한가운데 퍼졌으나 그러한 와중에 대전차 포와의 협력을 통한 집중적인 공략을 행하여 승기를 잡은 영국군 그러니까 교리와 생각의 차이가 전황을 가른 것도 빼놓을수 없는 이유 입니다만 잘 훈련된 전차병이 조종하면서 집중 운용될 수 있다면리에테 사단과 센타우로, 리토리오 사단이 개전 전에 모든 구식 탱케트들을 M13/40으로 교체하고 충분히 적응 훈련도 완료하여 그리스 전역이나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되었다면 이후의 전황은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봅니다,

아 물론 中전차의 조기 개발 및 투입도 빼놓을수 없는 가정이기도 하는데 아무튼 아리에테 사단과 리토리오 사단이 M13/40 전차의 완편을 마치고 도착한 41년 1월 무렵은 이미 이탈리아의 군세는 붕괴 직전이었고 화타가 와도 일으키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3978 2015-03-16 20:02:29 0
본삭금)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에 대해 질문있습니다 [새창]
2015/03/16 11:18:07
요약하자면 1코코리님이 언급하신 일화는 다소 과장된 실제 없었던 이야기 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간에 당대의 이탈리아 군은 일본 군보다 못한게 현실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도찐 개찐이기는 하지만 산업력과 자본력 등 여타의 측면에서 일본이 좀 더 우세하지만 아무튼 이탈리아 군은 빈약한 경제력, 엎친데 덮친 격인 경제난,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안이함이 어우러진 결과로 엉망이었지요.
3977 2015-03-16 19:59:18 0
본삭금)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에 대해 질문있습니다 [새창]
2015/03/16 11:18:07
하나 더하자면 육군은 더욱 심각합니다, 해공군에 비하여 예산을 적게 지급받았던 것을 떠나서 높으신 분들은 경제난과 예산 부족을 떠나 열의 그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니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 자체를 거부한 수준으로 병사 개개인의 능력을 떠나 성능은 어쨌든 값싸다는 이유만으로 넘치도록 생산한 CV를 보고 만족하고 있었으며 기갑 사단은 기계화 보병사단이라고 부르는게 맞을 정도로 너무나 안이하기 그지 없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지요.

요약을 하자면 빈약한 경제력, 엎친데 덮친 격인 경제난,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안이함이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당연히 아프리카 원정이 신통치 않을수 밖에요, 가령 아오스타 백작이 에티오피아를 넘을때 동아프리카군은 25만여명입니다만 기갑 전력은 경전차 수준인 M11/39 전차와 CV33/35 탱케트 각각 1개 중대입니다, 여기에 독일군과의 합동작전을 위한 어떤 노력도 없었고 지휘권조차 애매모호했습니다,

뭐 그 당시에는 독일군이나 이탈리아 군이나 신통치 않은 것은 도찐개찐이었다지만 참 이게 뭐랄까 여기에 비하자면 일본군이 대단해보이는게 아니 대단했던게 사실이지요.
3976 2015-03-16 19:49:36 0
본삭금)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에 대해 질문있습니다 [새창]
2015/03/16 11:18:07
물론 이러한 제반 사항과 별개로 무기 체계도 한 두세대는 뒤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 것은 다분히 상기에 언급된 재정적인 문제도 있으나 그와는 별개의 내부적인 문제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령 공군을 보자면 일본보다 뒤쳐졌던 빈약한 경제력과 스페인 내전에서 탕진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전체 국방비의 1/4을 받아내었습니다만 그 상당수는 제대로 쓰이지도 못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얻은 잘못된 교훈은 둘째치고 두체 각하께서 동맹국에 내리는 성의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품위 유지비를 비릇하여, 무 계획적으로 남발되었지요,

이러한 자본적인 문제와 또 높으신 분들의 시각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게 이탈리아의 기술력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엔진산업은 1940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는 1929년에 피아트제 AS.5나 이소타 프리치니제 Asso 750같은 1000마력대 엔진을 개발해놓았고, 사실 1940년에 레이싱용 엔진이긴 하지만 AS.6을 바탕으로 개량한 16기통 2250PS엔진인 AS.8을 개발하는데 성공할 정도로 루프트바페에 36%의 국방 예산을 쏟아붓고 있던 독일에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단엽전투기 개발단계에서 돈 많던 피아트 경영진이 프리코로를 포함한 공군수뇌부에게 기름칠을 열심히 한 덕분에 Asso 500이나 Asso 750이 떨어지고 피아트제 공랭식이 채택되어버립니다, 이소타 프리치니의 앞날이 창창한 액랭식 엔진은 폭격기에나 달리게 되었지요.

거기다 AS.8같은 피아트제 액랭식 엔진의 경우 물론 레이싱용이다 보니 군용으로는 재설계가 필요한 상황이긴 했지만, 이탈리아 군부는 그딴거 없고 독일에서 DB601Aa를 수입하여 각 회사들 생산라인은 라이센스한 DB601Aa 생산이나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액랭식 엔진 사업은 안드로메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즉 항공역학적 설계나 그 성능들을 놓고 볼때 독일에 전혀 뒤쳐질일이 없던 이탈리아의 군수 산업은 예산의 문제를 떠나 높으신 분들의 입김으로 말아먹은 셈이지요.

다만 생산성은 어떻게 쉴드를 칠수 없는게 이미 미국 독일 영국 심지어는 일본도 주조와 열처리 표면 처리 등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탈리아는 강철 단조를 통해 수압식 해머와 틀을 잡고 나무 망치로 때리는 고전적인 방식을 택하였으며 그나마 이러한 소규모 공장도 전국에 산재하게 흩뿌려 놓아서..답이 없었지요.
3975 2015-03-16 19:40:05 0
본삭금)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에 대해 질문있습니다 [새창]
2015/03/16 11:18:07
사족입니다만 이탈리아 군에 관한 1차 사료는 부족하고 2차 사료는 상호간에 충돌이 빈번하여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이탈리아 군에 관하여 적어보자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맹신하기만 하면 조금 곤란합니다,

이탈리아 군이 여러모로 그러한 이야기 만큼이나 어려워진 이유는 간략하게 1930년 에티오피아 원정으로 국제 연맹으로 부터 군수 산업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스페인 원정으로 가뜩이나 부족했던 재정이 고갈되었으며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의 7할을 수입으로 충당하였는데 주요한 대상 국가가 영국입니다,

거기다 이 양반들은 군수 산업은 숫자로 파악하기 어렵다 하나 GDP를 비릇한 사회 인프라 자체가 그 어렵다는 일본과 자웅을 겨루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쟁에 참여하자마자 상선의 2/3를 나포당하는등 가뜩이나 무너지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까지 했지요.
3974 2015-03-15 23:18:04 0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몽골의 역사인 것 처럼 [새창]
2015/03/15 21:12:40
일제강점기는 우리의 역사가 맞다고 봅니다, 일단 개인적인 소견이기는 한데, 일본에 의하여 지배된 시기이기는 하나 그 시기를 살아간 이들이 작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미치는 영향 을 비릇하여 그 바탕이 된바 등을 생각해본다면 그 것을 부정하고서는 어떻게 현재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가 우리만의 역사는 아닙니다,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지요, 현재의 일본이 과거 일본 제국에서 이어지는 만큼 그 일본 제국의 한 축이었던 과거 우리 나라의 식민지 시절을 부정할수는 없으니 말이지요,

이러한 것은 문화적인 측면에도 해당되는데, 문화 말살 정책이 실시되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는 하나 실상 그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라고 보는 것은 작금의 우리를 보듯 if의 영역이라 실상 문화적으로 봐도 일본제국과 우리나라 양측에 걸쳐진 시대라고 봐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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