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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3 2015-03-29 00:15:0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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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여나 싶어 첨언하자면 대동합방론에서 말하는 것은 대등한 합방이고, 또한 인종 주의에 근거한 아시아의 역량을 집결시키자는 말이지, 후에 나오는 순수한 의미의 서구 열강에 맞선 집결이 아닙니다, 물론 안중근 의사나 당시의 소위 말하는 아시아 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이들이 따른 것은 본문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대동아 공영론 내지는 소위 말하는 텐노 헤이카 반자이도 아니고 말이지요.
4032 2015-03-29 00:12: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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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답글에는 반론이나 여타 이견이 없으신 것 같군요, 아무튼 참 보면 볼수록 그렇네요, 어떻게 한 중 일 삼국이 힘을 합쳐 서구 열강에게 대항하자는 말이 일본이 주장하는 대동아 공영론으로 탈바꿈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동양 평화론은 러일 전쟁을 계기로 탄생한것이 아닙니다, 러일 전쟁이 마치 러시아의 야욕에 갈곳없는 일본이 들고 일어선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당장 1885년 다루이 도키치의 대동합병론을 통해 언급된바 있는데, 대체 러일 전쟁은 언제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말입니다.
4031 2015-03-28 22:40:1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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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데 일본이 바라보고 있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동양 평화론에 대한 시각과는 다른 이들의 시각차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그러한 일본의 행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 담겨질 예정이던 책이 왜 안중근 의사는 일본에 동조를 했나로 흐르는지 알수가 없군요.
4030 2015-03-28 22:37: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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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이치이다. 지금 세계는 동서(東西)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도 각각 달라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실용기계연구에 농업이나 상업보다 더욱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새 발명인 전기포(電氣砲: 기관총), 비행선(飛行船), 침수정(浸水艇:잠수함)은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물을 해치는 기계이다.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물(犧生物: 하늘과 땅이나 사당의 신에게 제사 지낼 때 쓰는 짐승, 소, 돼지, 양 따위)처럼 버려,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밝은 세계에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근본을 따져보면 예로부터 동양민족은 다만 문학에만 힘쓰고 제 나라만 조심해 지켰을 뿐이지 도무지 한치의 유럽 땅도 침입해 뺏지 않았다는, 오대주(5大洲)위의 사람이나 짐승, 초목까지 다 알고 있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런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가까이 수백 년 이래로 도덕을 까맣게 잊고 날로 무력을 일삼으며 경쟁하는 마음을 양성해서 조금도 꺼리는 기색이 없다. 그 중 러시아가 더욱 심하다. 그 폭행과 잔인한 해악이 서구(西歐)나 동아(東亞)에 어느 곳이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악이 차고 죄가 넘쳐 신(神)과 사람이 다같이 성낸 까닭에 하늘이 한 매듭을 짓기 위해 동해 가운데 조그만 섬나라인 일본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강대국인 러시아를 만주대륙에서 한주먹에 때려눕히게 하였다. 누가 능히 이런 일을 헤아렸겠는가. 이것은 하늘에 순응하고 땅의 배려를 얻은 것이며 사람의 정에 응하는 이치이다.

당시 만일 한·청 두나라 국민이 상하가 일치해서 전날의 원수를 갚고자 해서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를 도왔다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나 어찌 그것을 예상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한·청 두 나라 국민은 이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일본군대를 환영하고 그들을 위해 물건을 운반하고, 도로를 닦고, 정탐하는 등의 일의 수고로움을 잊고 힘을 기울였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거기에는 두가지 큰 사유가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할 때, 일본덴노('천황'으로 되어 있는 것을 필자가 고쳤음--필자)가 선전포고하는 글에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 독립을 공고히 한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대의(大義)가 청천백일(靑天白日)의 빛보다 더 밝았기 때문에 한·청 인사는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일치동심해서 복종했음이 그 하나이다.

또한 일본과 러시아의 다툼이 황백인종(黃白人種)의 경쟁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난날의 원수졌던 심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도리어 큰 하나의 인종사랑 무리[애종당(愛種黨)]를 이루었으니 이도 또한 인정의 순리라 가히 합리적인 이유의 다른 하나이다.

통쾌하도다! 장하도다! 수백 년 동안 행악하던 백인종의 선봉을 북소리 한번에 크게 부수었다. 가히 천고의 희한한 일이며 만방이 기념할 자취이다. 당시 한국과 청국 두 나라의 뜻있는 이들이 기약없이 함께 기뻐해 마지않은 것은 일본의 정략이나 일 헤쳐나감이 동서양 천지가 개벽한 뒤로 가장 뛰어난 대사업이며 시원스런 일로 스스로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슬프다! 천만 번 의외로 승리하고 개선한 후로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며 어질고 약한 같은 인종인 한국을 억압하여 조약을 맺고, 만주의 장춘(長春)이남인 한국을 조차(租借: 땅세를 주고 땅을 빌림)를 빙자하여 점거하였다. 세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의심이 홀연히 일어나서 일본의 위대한 명성과 정대한 공훈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만행을 일삼는 러시아보다 더 못된 나라로 보이게 되었다. 슬프다.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와 같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로다.

동양 평화와 한국 독립에 대한 문제는 이미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 이목에 드러나 금석(金石)처럼 믿게 되었고 한·청 두 나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음에랴! 이와 같은 사상은 비록 천신의 능력으로도 소멸시키기 어려울 것이거늘 하물며 한두 사람의 지모(智謀)로 어찌 말살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오는 [서세동점(西勢東漸)]환난을 동양 사람이 일치 단결해서 극력 방어함이 최상책이라는 것은 비록 어린 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순리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치고 우의(友誼)를 끊어 스스로 방휼의 형세[방휼지세(蚌鷸之勢):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물리며 다투는 형세. 이때 어부가 나타나면 힘 안들이고 둘 다 잡아가게 된다고 해서 어부지리(漁夫之利)라는 말이 생겼다--필자]를 만들어 어부를 기다리는 듯 하는가. 한·청 양국인의 소망은 크게 깨져 버리고 말았다.

만약 일본이 정략을 고치지 않고 핍박이 날로 심해진다면 부득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한·청 두나라 사람의 폐부(肺腑: 체내의 모든 기관, 부아, 깊은 마음 속--필자)에서 용솟음쳐서 상하 일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의 앞잡이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형세이다. 그렇게 되면 동양의 수억 황인종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인사와 정의로운 사나이가 어찌 수수방관(袖手傍觀:팔짱을 끼고 앉아 남의 일 바라보듯 함--필자)하고 앉아서 동양 전체가 까맣게 타죽는 참상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래서 동양 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르빈에서 개전하고, 담판(談判)하는 자리를 여순(旅順口)로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바이다. 여러분의 눈으로 깊이 살펴보아 주기 바란다.

서문을 옮겨오자면 이렇습니다, 본문의 주장과는 정 반대되고 있지요.
4029 2015-03-28 22:36:1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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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생략한 이유는 뻔하다고 해야할까요, 전형적인 취사 선택이네요. 원하는 부분을 골라 묶어 결론에 맞게 배송하니 말입니다.;
4028 2015-03-28 22:14:3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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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 글에도 답글로 언급했습니다만 결론을 정해놓고 자료를 취합하고 생각을 전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중근 의사는 죽을 생각도, 그리고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지 않았고, 구명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대체 뭘 가지고 그러한 결론을 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러시아어로 외친것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런 말은 뭐하지만 소설을 써놓으셨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소련은 이전의 러시아 제국과는 별개의 국가입니다, 러일전쟁에서 패한것은 러시아 제국이지 소비에트 연방이 아닙니다,

애시당초 살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면 얼굴을 모르는 상대를 죽이러 가면서 아무런 2차 3차 계획도 없었겠습니까? 그나마 좀 논리있게 설명하던 것은 온데간데 없이 갑자기 소설로 빠지기에 좀 당황스럽네요.

더욱이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정벌을 막아낸 인물이 아닙니다, 조선에 대한 합병과 속국 사이에서 이득을 계산하고 있던 다분히 제국주의자에 가까운 정치가를 어디에서 평화주의자이고 그가 설계한 미래가 이상적이라 봐야 합니까?

무엇보다 목숨을 구걸한 안중근이라는 부분에 촛점을 두었는데, 안중근 의사는 전쟁 포로로서 자신을 대우해주기를 원하였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원 글쓴이 께서는 그 분의 필체를 보자면 죽음을 각오한 통쾌한 일격이라는 것에 가까울 글을 작성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토 히로부미 더 나아가 일본의 죄상을 하나 하나 밝혀가며 공정한 재판을 원했던 이가 구차하게 삶에 매달리다 어머니의 편지에 희망을 놓어버린 이가 될수 있는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4027 2015-03-28 22:02:3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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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도 느꼈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결론을 정해놓고 관련 자료를 취합하여 글을 작성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가령 2차 세계 대전의 경우 미국이 랜드리스를 돌리고 있는 이상 독일이 어떻게 할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만일 랜드리스가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동부 전선을 승리로 마감할수 있었겠지만 미국이 소련에게 막대한 물자를 퍼붓고 있는 상황에서 하이드리히가 살아있었다고 해서 달라질 결과는 존재하지 않지요,

하이드리히의 존재가치는 유대인 학살에 비할게 아닙니다, 물론 유대인 학살이 가볍다는 말은 아니나 정말 다른 국가들의 그 것에 비하자면 공기 친구와 손을 잡은 추리 동호회 수준이었던 정부 부서를 그나마 학교 동아리 수준으로 끌어올린게 하이드리히입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도 신설 계획안을 20분 안에 내 앞에서 만들어 보라는 히틀러의 말에 즐겨보던 스파이 영화와 소설 등을 참고해서 써내서 출세한 사람이라는게 뭐 대단하다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하이드리히라는 존재를 저렇게 평가하다니 좀 당황스럽군요, 대체 어떤 학자들이 하이드리히를 저렇게 높게 평가하는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일합방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에 대한 보복성 성격이 아닙니다, 이미 정한론이라는 것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 내려왔으며 문민 정부가 힘을 잃은 전제 정권이 국민들의 막대한 지지를 사고 있던 일본 내에서 이러한 정한론을 비릇한 그 들의 폭주를 제지할 방도는 전무한 상황이었지요.

또한 데라우치의 강경한 통치는 일본의 침탈에 반하는 조선의 정세에 따른 것입니다, 결코 조선이 그 이전에 일본을 받아들인게 아닙니다, 그랬다 라고 한다면 안중근 의사도 없었겠지요.
4026 2015-03-28 19:30:09 5
19세기에는 마약이 불법이라는 규정이 없었나요? [새창]
2015/03/28 19:16:04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2차 세계 대전이 참 어떤 의미에서는 큰일은 한건 맞습니다, 물론 매스암페타민 같은 물건이 각성제로 소련을 제외한 여러 국가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남용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국제적인 마약 거래의 물동량을 분질러뜨려서 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고통으로 내몰았고, 또 중독의 확산을 어느 정도 차단시킨 점도 있지요.
4025 2015-03-28 19:27:42 5
19세기에는 마약이 불법이라는 규정이 없었나요? [새창]
2015/03/28 19:16:04
예컨데 그렇습니다, 마약이 지금 처럼 세계적으로 터부시되고 금지된건 그리 오래 안됬습니다, 국가별로 위에서 언급드린바와 같이 차이가 있습니다만 시쳇말로 끽해야 수십년? 도 안된게 사실이지요,
4024 2015-03-28 19:26:39 5
19세기에는 마약이 불법이라는 규정이 없었나요? [새창]
2015/03/28 19:16:04
홍콩 같은 경우에는 2차 세계 대전이 아편으로 부터 민중을 구해낸 역할을 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헤로인에 대하여는 강경한 태도를 취한 반면 아편에는 가벼운 시각만을 가졌는데, 이는 헤로인이 가지는 중독성이 아편보다 더하다는 것이었고, 아편세의 삭감이 가져올 파도를 견딜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으며, 무엇보다 아편굴은 일선 경찰들의 좋은 수입원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밀수를 차단할 방도가 전무했던 것도 사실인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진주하며, 열악한 물자난과 차단된 교통 등의 문제로 아편굴은 씨가 말라갔고, 이윽고 전쟁이 끝나고 등장한 영국의 군정 아래에 완전히 차단되게 됩니다,
4023 2015-03-28 19:23:17 7
19세기에는 마약이 불법이라는 규정이 없었나요? [새창]
2015/03/28 19:16:04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약이라는 헤로인, 모르핀, 아편 등은 그 당시에는 타임즈 지에 아편의 무해를 주장하는 기고문이 정식으로 실릴 정도로 이견이 분분한게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아편은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다거나 아편 중독을 근절하기 위해 대체품인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여하는 것이 더 좋다 부터 아편을 삼키지 않고 주사를 하면 중독성이 덜해진다까지 온갖 이야기가 오고갔지요,

즉 아편의 부작용에 관해서는 어떠한 확신이 어려웠던 것이 당시 사회의 통상적인 모습이었고, 이러한 마약이 금지된 것은 가령 미국에서의 아편 같은 경우에는 20세기 초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19세기 말엽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20세기 초까지 많은 주에서 아편 흡연 금지 조례가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법에 따르자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이러한 문제는 1914년 해리슨 마약법이 통과되면서 연방에서도 금지되었습니다만 법안의 허점, 남용 그리고 마약 특유의 문제로 진통이 오래되었습니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미국에서 이러한 아편의 부정적인 시각을 뿌리내린 장본인들을 이야기 하자면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빼놓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들은 남부의 더러운 노예들이나 하는 천박한 짓으로 아편을 몰아갔고, 미국의 수많은 백인 시민들로 하여금 아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만들었지요.
4022 2015-03-27 23:08:5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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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노론 음모론까지 나올줄은 몰랐습니다, 뭐 도덕경 관련해서 이리저리 까이시던 것을 생각하면 그런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참 그래도 음모론을 들고 나오실줄은 몰랐네요; 사실 일본 제국에 이토 히로부미만 인물이라고 하신 것에서 그가 죽으며 일본 제국이 미완성이라 결론을 지으신 것에서 이미 끝난 이야기 이기는 합니다만 자화자찬에 앞서 조금 만 더 조사를 해보시고 글을 쓰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021 2015-03-27 23:06:4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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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름타운 여기에서 볼줄은 몰랐네요; 이경숙씨 참 그 글을 떠나 잡음이 많은 분이시지요,

뭐 그 걸 떠나 동양 평화론이 이토 히로부미의 전유물은 아니지요, 잊지 말아야 할께 이전의 대동아 공영론이라는게 아시아가 하나되어 일본에 대항하자라는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찬 측면만이 부각되었고, 특별히 그게 문제다 싶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국 주의니 뭐니 하는게 끼얹어지면서 슬슬 문제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다들 일본이 생각하는게 아시아가 하나되어 서구 열강에 대항하자는게 아니라 일본의 아래에 모여 서구 열강에 대항하자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정한론의 선두에 서있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우리의 분노가 몰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컨데 이토 히로부미가 동양 평화론의 원 저작자도 아니고, 안중근 의사가 표절을 한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을 베낀 표절범이게요?
4020 2015-03-27 21:50:15 1
역사는 반복된다 [새창]
2015/03/27 21:27:04
일반명령 제1호
General Order No. 1
1945년 8월 17일

일본이 항복함에 따라 미군 합동참모본부가 만들고, 1945년 8월 17일에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한 것이 바로 일반명령 제1호이다.

이것은 연합국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군에게 내린 첫번째 명령으로, 일본군이 연합국의 누구에게 항복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일반명령 제1호는 북위 38도 이북의 일본군은 소련군에게, 이남은 미군에게 항복하라고 규정하면서, 이것이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의 분단으로 귀결되었다.

일반명령 제1호의 일본군의 항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었다.

a. (만주를 제외한)중국, 대만과 북위 16도 이북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모든 일본군 선임 지휘관은 장개석 장군에게 항복한다.
b. 만주와 북위 38도 이북의 한국, 그리고 남부 사할린의 모든 일본군 선임 지휘관은 소련 극동군 사령관에게 항복한다.
c. 안다만 제도, 니코바르 제도, 미얀마, 타이, 북위 16도 이남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말레이, 보르네오,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 뉴기니, 비스마르크 제도와 솔로몬 제도의 모든 일본군 선임 지휘관은 동남아시아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항복한다.
d. 일본의 보호령 섬과 오키나와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 및 태평양 섬들의 모든 일본군 선임 지휘관은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에게 항복한다.
e. 대본영과 그 선임 지휘관들, 그리고 일본 본토와 부속 도서, 북위 38도 이남의 한국과 필리핀의 모든 일본군은 미국 태평양육군 사령관에게 항복한다.

http://kk1234ang.egloos.com/2931238

위에 마치 각국에 명령한 것 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옮겨왔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4019 2015-03-27 21:45:27 1
역사는 반복된다 [새창]
2015/03/27 21:27:04
중간에 잘못된 혹은 과장된 내용이 있어 첨언하자면 일본군의 항복 이후 뒷처리를 위하여 모든 일본 군 및 관련된 이들은 중국․대만 및 북위 16도 이북의 인도차이나에서는 중국에게 투항하며, 만주를 포함한 북위 38도 이북의 한반도 지역과 사할린에서는 소련이 항복을 받도록 하고, 일본과 필리핀 및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에서는 미국이 항복을 받도록 한 태평양 전쟁에 임했던 각 국의 영역을 분할하였던 미국의 일반 명령 제 1호를 제시 받은 스탈린이 수정하여 보낸 제시안이 첫째로 크림 회담의 결정에 의거, 소련이 영유하기로 된 쿠릴열도를 일본군의 소련의 영역에 포함시킬 것과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의 소야해협 북방에 접하고 있는 홋카이도 북부를 일본군의 소련의 영역에 포함시킬 것 이 두가지 요구 였습니다,

말 그대로 간청도 무엇도 아닌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있어 승리한 이후에 제시한 내용에 대한 수정 '제의 '였고 이는 미국의 비위를 맞춰주거나 소련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무엇도 아니며, 한반도 분할 이후에 일본의 거취가 결정된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일본 본토에 대한 영토 할양을 이유로 미국의 요구 조건을 승인한 것에 가깝다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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