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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8 2015-04-19 23:49:5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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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목욕 행위를 터부시 하게 되었던 것은 르네상스 시대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그리고 흑사병 창궐 이후의 일로 사실상 중세와는 무관한 현상입니다, 가령 이베리아 반도 일대에서 목욕행위가 터부시 된 것은 레콩키스타 이후의 무슬림적인 행위로 조명되면서 부터이고 그나마 목욕이 터부시 된 배경에는 패션 산업? 등의 발전과 잘못된 의학 상식의 전파, 혼탕이 기본이었던 터라 발생하였던 매춘 등의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 등이 자리잡은 것이지 목욕탕의 질병 전파가 문제는 아닙니다.

당장 목욕탕이라고 하니 뭔가 현대적인것을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수차 시설이라는게 그렇게 고도의 기술이나 질병의 감염을 촉진시키는 존재가 아닙니다, 막말로 냇가에서 수차 하나 설치하고 칸막이 넣은 정도가 보통의 대중 목욕 시설이었지요.

그리고 동로마 시대 그러니까 비잔틴 제국을 사례로서 로마가 기독교를 탄압한 이유를 드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인지 레퍼런스를 듣고 싶네요, 제가 아는 바로는 황제에 대한 충성과 같은 의례를 거부했기때문이지 종교적인 배타성은 별다른 이유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슬람 의사의 사례는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궁금합니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근대적인 병원 시설과 제도를 갖추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뇌종양 수술도 할 정도였고 도리어 비잔틴 제국 출신의 기독교 의사들이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에서 이슬람의 의술을 선도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4107 2015-04-19 14:29:5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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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분의 답글에 몇가지 간단하게 첨언해보자면

1. 카를루스 대제는 이베리아 반도 원정을 비릇하여 작센 전쟁 등 수없는 일생의 전쟁들 속에서 숱한 패배를 겪은바 있습니다, 애시당초 이슬람 해적과 같이 손도 못댄 문제도 존재하지요.

그리고 언급하신 작센족 4,500명은 부족장이 아니라 부족장을 포함한 부족이며, 단순한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직전에 겪은 참담한 패배 즉 근위대까지 털려나감과 동시에 여지껏 근 10여년간 해온 전쟁이 모두 물거품이 되버릴 상황에 놓이자 행한 행동으로 봐야 할것 같습니다, 다시 봉기한 작센족의 기세는 물론이거니와 여지껏 정리해온 정복지와 부족들까지 모두 등을 돌리는 판국이니 말이지요.

2. 중간의 노섬브리아 왕국이라 하시는 지도는 단순하게 바이킹의 목표가 된 지역들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요? 866년 기준으로 북의 노섬브리아 중앙의 머시아 남의 웨식스가 존재하는데 전혀 구분이 안되어 있네요.

가령 언급하신 알프레드 대왕은 웨식스의 왕입니다.

3. 요크의 성에 알레라는 왕이 살고 있었고 뼈 없는 이바르라는 거구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요지의 글을 적으셨습니다만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천상 당시 기준으로 약골의 이미지였고, 그의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노섬브리아의 아엘레 2세에게 사로잡혀 독사로 가득한 항아리에 던져저 죽임을 당했습니다.

물론 이바르 로드브로크 단독으로 복수를 한것은 아니고, 여타 다른 군세도 가담했었고, 그가 아엘레 2세에게 행한것은 고문이 아니라 피의 독수리라 불리는 처형법입니다, 그러니까 갈비뼈를 등 쪽으로 열어 젖힌뒤 폐를 그 갈비뼈에 걸치는 방법이지요.

그리고 아일랜드와 전투를 치룬게 아니라 웨식스와의 전투가 끝이었고 그의 장례가 치뤄졌다는 곳은 잉글랜드의 정복지 어딘가이지, 정복지인 잉글랜드가 아닙니다, 바이킹은 메르시아와 노섬브리아 까지는 멸망시켰습니다만 그 이외는 행정 체계가 온전한 편이었습니다,

사실 브리튼의 방비가 취약했다기 보다는 쉽게 설명하자면 왜구와 같습니다, 소식을 듣고 여기서 무언가 준비를 갖추고 나가면 이미 상황은 끝난 뒤이지요.
4106 2015-04-19 14:23:19 2
고대 로마에서는 수도기술이 발달하여 [새창]
2015/04/19 09:05:21
때릴꺼야 님.. 네 쓰고 말리고 쓰고 말리고 뭐하면 줄 채로 갈고 그랬지요; 아 물론 새끼줄 뿐만 아니라 볏짚이나 나뭇잎등도 사용되기는 했습니다.
4105 2015-04-19 14:00:09 18
고대 로마에서는 수도기술이 발달하여 [새창]
2015/04/19 09:05:21
뒤늦게 확인하니 위에 잘못 적은 부분이 있는데, 가운데 수조는 손 닦는 용도이고, 막대에 감은 해면은 발 아래에 흐르는 수로에 헹구는 겁니다.
4104 2015-04-19 13:50:17 56
고대 로마에서는 수도기술이 발달하여 [새창]
2015/04/19 09:05:21
여담이지만 저거 개인용 아닙니다, 공용이에요, 그러니까 행궈서 다음 사람이 쓰고 또 행궈서 그 다음 사람이 쓰고 하는것이지요.
4103 2015-04-19 13:49:27 38
고대 로마에서는 수도기술이 발달하여 [새창]
2015/04/19 09:05:21
저 사람들이 들고 있는 건 스폰지 밥...아니 해면을 감아놓은 막대기로 가운데 있는 수조에 헹궈서 뒤를 닦는 용도에 사용했습니다.
4102 2015-04-18 11:20:2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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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두서 없는 답글을 접자면 유스타니우스 1세 이후로도 서로마 일대의 비잔틴 제국의 영토는 남아있었습니다, 비록 끝임없는 아랍의 공격과 여타 문제로 위태로웠지만 갑자기 모든 끈이 끊어진건 아닙니다.;
4101 2015-04-18 11:16:5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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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보니 니카의 반란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었는데, 전후 관계의 이를 빠뜨리셨더군요, 폭동을 일으킨 시민 군중들이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비릇하여 각종 공공 시설과 시내의 곳곳을 불태우고 그 들의 요구 조건을 듣고 수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화에 나선 황제의 손을 거부하고 황제를 옹립하였으며 주요 시설과 요충지등을 점거하여 극도로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뒤집은게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였고, 테오도라 황후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맞습니다만 황제를 만류한게 전부입니다,
4100 2015-04-18 11:06:5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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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녀 재판에 쓰이는 Malleus maleficarum에 사용되는 방법들을 클레비스 1세의 시대에 나온 업적이라 하셨는데, 구체적인 레퍼런스를 들을수 있을런지요, 이 책이 쓰여진 시대는 인노켄티우스 8세때로 전혀 다르며 당시에는 아직까지 살리카 법이 좀 더 통용되던 시대라 이런 것은 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4099 2015-04-18 10:59:5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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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문에서 알라리크의 이야기를 적어주셨는데, 로마 포위는 식량난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일전에 약탈로 막대한 부를 쌓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로마 측으로 부터 일리리쿰의 총독직을 미끼로 회유 받은 전례가 있으며 일방적으로 서로마 측으로부터 폐기되었지만 서로마 측으로 부터 정착할 땅을 이유로 회유 받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1차 로마 포위 당시 막대한 재화를 듣어낸 전례가 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이제 로마 측의 거듭된 배신과 이유없는 행동으로 분노하여 로마를 함락한 것이지 마냥 포위하고 기다린건 아니지요.;
4098 2015-04-18 10:54:4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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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간단하게나마 본문에 언급된 몇몇 내용들에 대하여 첨언을 해보자면 집뒤나 집 앞으로 하수로를 파놓고 거기에 오물을 버리는 행위는 비단 로마 시대에는 없던 행위도 아니었고,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관계 규정을 세우는 것 정도는 중세 시대에도 충분히 이루어 졌던 일입니다,

즉 로마 이후로 쓰레기도 못치우고 이런건 없는 이야기이며 기독교에서 청결하게 씻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이라 말할정도로 중세인들에게 청결은 매우 권장되며 또한 모두가 중요시하는 덕목이었습니다,

또한 로마나 그리스 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벽돌 집에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나 중정 정원이 갖추어진 장원만 존재하는 건 아니지요.

예컨데 로마 멸망 이후 문명이 퇴보한건 아닙니다,
4097 2015-04-16 20:00:19 0
로마의 목욕탕 문화 [새창]
2015/04/15 14:30:22
알래스카 수협님 문제가 되는 그러니까 지적해 주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BC312년 부터 건설한 로마의 수로는 AD1세기 경에는 수로교 6개를 건설했고 100년 뒤에는 11개로 늘었는데, 여기서 공급되는 물의 양은 일간 11억 3600만 리터 가량이었습니다.'

여기서 볼수 있듯이 AD 100년 기준으로 11개의 수로에서 공급되는 용수의 총량이 11억3600만 리터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1개 수로당 대략 1억 리터 정도 되는데, 하루는 8만 6천 4백초 정도 됩니다, 이를 나누면 1156?7? 정도 나오지요, 음 그렇습니다.; 답글의 지적은 매우 감사드리오나 본문을 다시 한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096 2015-04-15 20:06:41 6
로마의 목욕탕 문화 [새창]
2015/04/15 14:30:22
역둔토님.. 지금는 관리가 안되서, 정확히는 던져넣는 동전이나 기타 문제들로 손을 넣으면 손이 썩는다고 가이드 들이 말한다는데,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아닌 전통이었군요;

tynet 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이 목욕탕 이야기 일까요, 로마 시내의 면적 이야기 일까요, 또한 전염병의 창궐과 확산이 목욕탕과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 것입니까? 목욕탕이 주요한 전파 매개체 이거나 발병 원인인가요? 아니면 위생 보건 의료 등의 문제가 오로지 목욕탕 하나로 해결되는 것입니까?

쥬엔류 님..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닐테니 어찌보면 때밀이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군요.

스피드_웨건님.. 정말 국가 주도의 주요 면밀한 토건 계획은 예나 지금이나 경이롭기 그지 없으나 특히나 기술의 격차가 심각하던 시절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한것 같습니다.

Shrike 님 암살을 피하려면 면도만 조심해야 할게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위험하게 보이네요;
4095 2015-04-15 14:47:16 2
로마의 목욕탕 문화 [새창]
2015/04/15 14:30:22
제가 알기로는 말씀하신 영국의 로마 목욕탕은 온천이 맞다고 합니다, 아주 펄펄 끓는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도 꾸준히 나온다는군요.
4094 2015-04-15 14:15: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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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을 짧게 해보자면 AD 100년 기준으로 로마의 수로는 총 11개로 로마 시내에 일간 11억 3600만 리터 가량의 물을 공급하였는데, 이중 절반은 목욕탕 등에 공급되는 용수였습니다, 물이 갈아졌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은 사용량을 배제한 추측에 가깝다고 보이네요,

두번째로 로마의 목욕탕에도 공중 화장실은 있습니다, 입구의 탈의실을 지나면 바로 나옵니다, 욕탕 안에서 볼일을 보는건 뭐 지금도 간혹 보이는 추태이지만 그렇다고 화장실이 없어서 거기다 볼일을 보시는건 아니지요.

세번째로 오일을 바르고 하는 곳은 열탕과 냉탕을 지난 다음에 네 로마의 목욕탕은 양 공간이 분리가 되어있었는데 아무튼 그 다음에 나옵니다, 바르고 들어가는게 아니에요.

네번째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말은 목욕탕에서 혼욕을 하는 것을 비릇한 여러 문제에 대한 지탄이지 원래부터 더러웠던 목욕탕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끝으로 목욕탕이 전염병을 퍼트릴 수 있다는 관념은 중세를 지나 종교가 일상 생활 아니 사회의 저변에 뿌리깊게 자리잡음으로서 혼욕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목욕탕에 대한 배격과 동시에 의류 및 향수 등 패션 업계의 발전?이 가속화 되며 나온 이야기이지, 목욕탕이 무조건 더럽고 뭐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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