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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3 2015-05-15 10:12:5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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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을 해보자면 라스베가스나 물랑루즈 등지에서나 볼수 있던 쇼를 국내에 도입한 최초의 사례라고 하며, 본문의 사진은 워커힐 호텔 50주년 기념 사진식에 올라온 사진입니다.
4182 2015-05-15 10:11:01 5
[새창]
매춘과 기생 관광등과 무관한 사진들로 셰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50여년 전에 국내 최고의 스테이지쇼로 인기를 끌었던 하니비쇼의 무희들입니다.
4181 2015-05-15 01:15:48 2
간략히 적어본 일제 강점기 시대의 제주도의 가치와 일본군 주둔 현황입니다 [새창]
2015/05/14 23:09:40
가령 제 2 육군병 지원자 훈련소 명부등 당시의 관련 자료들을 보면 강제 징용된 분들중 상당수가 17방면군 산하 제대로 나가신걸 볼수 있습니다.
4180 2015-05-15 01:10:31 2
간략히 적어본 일제 강점기 시대의 제주도의 가치와 일본군 주둔 현황입니다 [새창]
2015/05/14 23:09:40
후자입니다, 상기 부산과 전남에서 창설된 부대들은 결호 작전등을 사유로 45년 초에 한반도에서 창설되어진 17방면군의 편제하에 신설된 부대들이지요.
4179 2015-05-14 22:16:46 0
일본군 항공대 파일럿 훈련 과정이 개판이었다? [새창]
2015/05/13 21:46:35
아참 그리고 제로의 퇴물화에는 남방작전 하루 한척 꼴로 격침당하던 해군의 수송함의 현실이 한 몫했습니다, 뭐 이탈리아 보다는 그래도 낫지만서도 미국에 비하자면 참담하기 이를데 없던 공업력이나 중일 전쟁 당시 과반수 이상을 증발 시켜버린 자원의 수급 문제 등도 존재하지만 말이지요;
4178 2015-05-14 22:14:39 0
일본군 항공대 파일럿 훈련 과정이 개판이었다? [새창]
2015/05/13 21:46:35
다른 글에서 달았던 답글을 가져와 보자면

1.

제로센을 이야기 해주셨는데 몇 가지 장점을 보자면 우선 527kph라는 속도는 물론 5분 지속 가능한 출력이기는 했지만 F4F나 P-40E도 최대 속도는 5분이니 큰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 고도가 내려갈수록 효율이 좋아 해면에서 463kph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므로 동시기 A6M이 상대해야 했던 F4F의 해면 최대속도 447kph이나 P-40E의 458kph보다 빨랐지요.

추중비에 기반한 상승률은 제로센의 최대 장점으로 12 엔진 자체의 출력은 F4F나 P-40에 장착되어 있던 엔진보다 출력은 낮았지만, 해면 기준 마력 대 중량비가 0.183정도인 A6M은 주로 상대하던 F4F-3(0.159), F4F-4(0.162), P-40E(0.148), P-40F(0.139)의 추중비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화력의 경우에는 독일의 MG FF와 동일한 거니 넘어가고 선회율은 익면하중 116kg/m²(일반주익은 107kg/m²)로 대전기 최저입니다, 항속률은 1941년 당시 기준으로 폭격기와 비슷했습니다,

문제는 기수를 숙이는 기동을 할 경우 엔진 연료 공급이 중단되어 엔진이 꺼지는 문제점이 있다거나 미국이 주로 사용하는 50구경 API탄의 특성상 다른 곳은 몰라도 연료통은 어찌 할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기골 역시 문제로 강하제한속도가 621kph였습니다;

그리고 전비 중량도 문제이기는 하네요,

이러한 문제들이 이제 기술의 발전을 따라 더욱 극심한 문제로 야기 된 것이지, 당대에 못써먹을 기체가 아니었습니다.

가령 42년 미 육군 항공대 정보부의 말을 빌자면

제로와의 교전이 예상되는 전역에서 작전하는 모든 파일럿은 다음 지시를 따른다:

1. 절대 제로와 독 파이트에 들어가지 말 것.
2. 제로가 직후방에 있는 상황이 아닌 한, 300mph이하의 속도에서 절대 제로와 기동전투를 벌이지 말 것.
3. 낮은 속도에서 제로의 상승을 따라가지 말 것.(제로가 가장 기동에 적합한 속도에 도달했을 때, 아군의 기체는 가파른 상승각에서 실속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제로는 완벽한 루프를 돌아 아군 기체 후방의 공격 위치로 들어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로와 교전하게 되는 기체들은 전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비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제거하여 가능한한 가볍게 한다.

라고 하고 있지요.

2.

이건 작성했던 다른 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만 아무튼 일본 제국군에 입대하여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과정을 거쳐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해군 병학교와 두번째로 예비 연습생 이른바 예과련입니다, 이 중 전자인 해군 병학교가 사관을 후자인 예과련이 하사관을 배출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하사관만 존재하는건 아닙니다.
4177 2015-05-14 22:08:34 2
일본제국이 이른바 본토결전을 준비할때 조선반도는 어찌할 생각이었나요?: [새창]
2015/05/14 19:21:10
일단 제주도에 총 5개 사단이 증파되었고, 진해 요항부가 경비부로 승격되는 등 전쟁 준비에 박차가 가해졌습니다, 일본이 항복하기 이전에 연합군이 상륙하고 소련군이 남하했다면 최소한 제주도는 오키나와 시즌 2를 찍었을테고, 남한이나 북한 어디도 전화를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인게 사실이지요;
4176 2015-05-13 22:43:30 2
일본군 항공대 파일럿 훈련 과정이 개판이었다? [새창]
2015/05/13 21:46:35
덧붙이자면 이 당시만 하더라도 최소한의 전투를 할줄 아는 즉 그럭 저럭 굴릴수 있는 파일럿을 얻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가령 사카이 사부로의 경우 조종사학교에 합격한 것은 37년이었고, 첫 실전투입은 38년에 중국에서 있었습니다. 영국의 에이스 로알드 달의 경우 39년 말에 자원 입대를 했습니다만 파일럿 이수 과정은 6개월 뒤에 수료했고 40년 7월에 실전투입되었지요.

즉 이 당시의 조종사 양성 기간은 그렇게 생각처럼 길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서 답글로 달았던 바 처럼 수급을 할수 있는 여건이 미국에 비할바가 못된게 사실이었던 탓에 소모율을 따라가지 못했지요, 아 물론 소모율을 촉진시켜준 문제인 자원이나 기타 공업력 등의 차이를 보더라도 이건 뭐 답이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4175 2015-05-13 22:41:06 2
일본군 항공대 파일럿 훈련 과정이 개판이었다? [새창]
2015/05/13 21:46:35
윗분의 답글에 이견을 달아보자면

1. 골상학과 손금의 이야기는 초기의 선발 모집 인원에 비하여 지나치게 많은 인원이 몰려 걸러내는 와중에 나온 이야기이지, 실제와는 다릅니다,

2. 훈련생을 서전트 점프로 날게한다는 과목은 없습니다, 그 들은 국어, 한문, 수학, 지리, 역사, 영어, 화학 등 12과목의 보통학, 운용술, 항해술, 포술, 수뢰술, 통신술, 항공술, 기관술, 정비술, 전측술 등 9과목의 군사학, 그리고 유도, 검도, 럭비, 수영, 스모, 축구, 배구 등 10과목의 체육으로 이루어져 치밀하게 잘 짜여 있는 편이었습니다, 여기에 100시간 이상의 항공 모함등에 배비될 경우는 추가로 50여 시간을 더하여 초등, 중등,고등 과정 비행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3. 소수 정예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아니라 애시 당초 예상한 인원 소모율에 충당율이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지요.

4. 항공기를 운용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문제가 아닌 만큼 최소한의 자질이 필요한데 이 자질을 갖춘 이 들을 배출해낼 일본의 인재풀은 미국에 비할게 못되었습니다, 더하여 교육 기관의 숫자나 선발 인원, 규모 무엇하나 미국을 앞지르는 것이 없었지요,

이러한 문제로 뒤늦게 비행 훈련 시간과 교육 기간을 단축 시키는 등 수급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질적 약화를 가져와 항공기의 조종 기술이 심각한 수준으로 후퇴하기까지 했습니다,

가령 대전말 미군의 경우 초등 비행 교관이라 할 지라도 평균 1천 시간 이상의 비행 을 거친 사람만을 요구 했고 3명, 중고등 교육 과정은 5명 이내의 학생만이 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경우 평균 70시간의 비행 을 거쳤다면 한 사람의 파일럿으로서 제 몫을 해낼것이 요구되었습니다,
4174 2015-05-13 16:47:49 0
[새창]


4173 2015-05-13 00:20:15 0
인류 역사에서 꽃 이름이 붙은 전쟁은 장미전쟁뿐일까요?? [새창]
2015/05/13 00:09:59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잡은 포로를 인신 공양하는 우이칠로포치틀리의 제사때 꼭 꽃이 빠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한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꽃과 연관된 전쟁으로는 인류 역사상 이 쪽이 가장 기간도 주기적이다보니 길기도 하고 직접적이라고도 볼수 있겠네요;
4172 2015-05-13 00:18:14 0
인류 역사에서 꽃 이름이 붙은 전쟁은 장미전쟁뿐일까요?? [새창]
2015/05/13 00:09:59
남 아메리카의 꽃의 전쟁 혹은 꽃 전쟁이 있습니다, 장미 전쟁이 가문의 문장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면 이 것은 말 그대로 꽃으로 장식한 지휘관 들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4171 2015-05-11 21:38:06 0
조선의 인쇄술은 실제와 다르게 무지막지하게 발달했습니다 [새창]
2015/05/11 17:18:47
음 아무래도 뭔가 착각하신게 아닐까 싶은 것이 최소한 10여년 전의 기사에는 경복궁에서 대량으로 서책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아마 다른 기억과 혼동하시는게 아닐까 싶네요.
4170 2015-05-11 20:36:35 0
조선의 인쇄술은 실제와 다르게 무지막지하게 발달했습니다 [새창]
2015/05/11 17:18:47
검색어는 경복궁 소설, 경복궁 서책, 경복궁 발견, 경복궁 발굴, 경복궁 잡서, 진사류 소설, 조선 시대 소설 입니다, 이 중 조선 시대 소설에서 필사본 발굴 기사가 나왔습니다.
4169 2015-05-11 20:34:50 0
조선의 인쇄술은 실제와 다르게 무지막지하게 발달했습니다 [새창]
2015/05/11 17:18:47
나오는 건 하나 있긴 하네요, 고전소설 '정수정전' '옥단춘전' 필사본 발굴(대체) 04년 10월 기사인데, 여성이 주인공인 영웅기담을 다룬 정수정전과 몰락한 양반 이혈룡이 과거에 급제하여 기생 옥단춘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춘향전과 비슷한 플롯의 옥단춘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외에는 02년 부터 05년까지 경복궁에서 1만 5천여권의 잡서가 나왔다는 본문의 주장을 입증할 기사나 궁녀들이 즐겨 읽는 진사류 소설 이야기는 전무한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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