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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8 2015-05-26 10:15:33 4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국조 [새창]
2015/05/26 06:05:09
회계라는 단어가 나올 필요가 있는게 아니라 애시당초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디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뒤집고 있습니까?

당장 기사 중간에 '웅녀는 고기에는 웅이 여신 으로 화한 것이라 하나 이는 웅 토템족의 여자로 해석해야 옳다고 나는 연래 주장하고 있다' 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지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나열하며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는 말을 재 확인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4227 2015-05-26 10:00:17 0
대몽항쟁 -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 [새창]
2015/05/24 18:54:15
일단 첫 번째로 무신 정권이나 세도 정치가 고려와 조선의 직접적인 멸망 원인은 아니지요, 정치 권력을 한 집단이 독점한다면 나라에 해악은 될지언정 비단 그 하나만으로 하나의 국가가 붕괴된다 라고 설명하기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이면에 여러 다른 원인들도 병행되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북한이 주적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와 북한은 휴전 상태이지요, 또한 국방의 균형을 말씀하시는데, 비단 현대전의 정의나 주요한 요소에 관한 이야기는 빼고 우리나라의 해군 공군의 발전을 말할때 북한을 빼놓고는 말하기 힘든 것도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일본이 우리 나라에 처 들어올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유사시에 언제든 처들어 올수 있다고 하나 뭐가 이득이어서 밀고 들어올까요;
4226 2015-05-26 09:55:16 3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국조 [새창]
2015/05/26 06:05:09
이병도가 자신이 앞장선 지난 날에대한 회계도 여기는 환빠라 몰며 토론자체를 못하게 하는 그런 게시판 분위기 라고 윗 분은 말씀하시는데, 신문 기사 어디에도 회계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헤드라인의 굵은 글씨만 읽지 말고 신문 기사 내용을 좀 읽어보시는게 어떻습니까.
4225 2015-05-25 10:59:18 1
여요전쟁 - 0. 피할 수 없는 한 판 [새창]
2015/05/25 10:40:54
진짜 당시의 국제 정세와 지리학적 여건이 굉장하다는 말 밖에 나올수가 없는 상황 이었으니 말입니다.
4224 2015-05-24 19:12:25 3
대몽항쟁 -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 [새창]
2015/05/24 18:54:15
조심스러운 이야기 입니다만 일단 북한이 우리의 주적은 맞다고 봅니다, 다만 그 것을 거의 무슨 메카시즘 처럼 휘두르는 양반들이 문제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교 국가에서는 쉽게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명분, 정통성 이나 신료들과는 충성이라는 매개체를 사이에 두고 엮여 있는 관계로 한없이 어리숙하다 라고 보기는 좀 애매한게 사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4223 2015-05-24 19:06:29 1
대몽항쟁 -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 [새창]
2015/05/24 18:54:15
핑골핀 님.. 정확히는 고려의 왕이 살아 있는한 항복한 고려에서 자신의 가치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최우와 그 이후의 권력자들이 문제일텐데,강화도 천도는 답이 없지요; 아무리 지도부가 살아야 전쟁을 할수 있다지만 이 들이 바라는 것이 고려의 생존 혹은 승리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생존인지 말입니다.
4222 2015-05-24 15:32:05 0
무인의 패기 [새창]
2015/05/22 10:08:02
일단 답글을 덧붙이자면 무신 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쟁점인 것 같은데 글이 좀 있으면 3페이지로 넘어갈 것 같아 이 부분에 관해서 새로 글을 파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제 주장은 언급하신 양적 약화 등은 비단 무신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쪽이고, 여기에 대하여 이견이 지속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4221 2015-05-24 15:20:51 0
무인의 패기 [새창]
2015/05/22 10:08:02
1. 상명 하복 시스템의 붕괴가 반란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게, 언급하신 조위총의 난이나 망이 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 등이 군부의 상명 하복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조위총의 난 당시 진압하지 못하고 패전한 것이 상명 하복 시스템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요, 물론 이의방의 패전을 이용하여 정중부가 이의방과 그 세력을 제거 한 것은 맞습니다만 권력 다툼이 곧 상명 하복 시스템의 붕괴와 동음이의어는 아니지요,

또한 김사미 효심의 난 당시 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은 이의민이며 그나마도 후의 반 이의민 세력의 조작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신빙성은 낮은 편입니다.;

2. 네 그런데 그 것이 거란이 고려를 두려워 해서 그러했다는 논증은 되지 못합니다, 도리어 무신 정권 당시 내려오지 않은 이유는 그 들이 확장에 대하여 별반 관심이 없다는 논증이 되기도 하지요. 또한 보주의 경우 고려가 숙이고 들어오자 기뻐하며 준 것에 불과하며 이후로도 국경에서의 무력 시위를 비릇한 분쟁은 지속된 바 있습니다,

3 - 4 . 전쟁이 일어나니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병력 자체가 줄고 병력 자체가 주니까 양적으로 저하가 오는건 사실이나 그 것이 비단 여몽 전쟁 당시의 무신 정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시 당초 병력이 갈려 나간 것은 전쟁이 벌어졌으니 일어나는 일이고, 기존의 준비 태세나 여타 제도는 여몽 전쟁이든 아니든 달라진게 없습니다.

그리고 가져오신 글에서 볼수 있겠습니다만 주진군은 주현군과 비슷하나 행정조직의 분류를 따라 주진군이라 별도로 다루어지며 하나의 독립된 전투 단위를 기초로 한 행정 구역으로 주의 지휘관인 방어사나 진의 지휘관 진장은 해당 구역의 행정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북계와 동계는 그 구성이 조금 달랐는데 초군 抄軍 좌군 左軍 ·우군 右軍 및 보창 保昌 등의 군인 약 4만 명과 신기神騎 보반 步班) 약 2,000명에 백정 白丁 그러니까 농민들 6만 1000명 정도가 배치되어 있었던 북계와는 다르게 동계는 초군, 좌군, 우군과 더불어 영새군 寧塞軍 1만 1500명, 공장 工匠 전장 田匠 ·투화 投化 그러니까 귀화한 여진족 사공 沙工 등의 특수한 임무를 담당하는 이 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초군, 좌군, 우군과 보창 및 영새는 똑같은 근간을 이루는 이 들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인 초군, 좌군, 우군은 마대 馬隊 기병과, 노대弩隊 노병이 포함되어 독자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했고, 보창 및 영세는 순수한 보병만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불가능했다는 것이 그 것이지요.

즉 정예병 뒤에 일반 노역을 지는 군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반 노역을 지는 군인 뒤에 정예병이 있고 그러한 정예병으로 말미암아 독자적인 작전이 가능하냐 아니냐 정도가 행정 분류를 제한 주현군과 주진군의 차이의 전부입니다.

5. 위에서 무신 정권의 영향으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그러니까 운영에 있어 주현군의 문제를 드셔서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무신 정권을 기점으로 주현군과 중앙군의 붕괴가 일어난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문제는 여몽 전쟁 당시의 전쟁 양상이지요, 사병화 라는 것은 고금진리를 통틀어 중앙집권제 국가에 있어 안좋은 영향이 어쨌거나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 것이 곧 질적-양적 약화로 곧바로 이어졌는가는 의문입니다.

무신 정권으로 말미암아 여러 반란 이전에는 찾아볼수 없던 민란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조위총의 난으로 말미암아 서경 세력이 일소되는등 혼란이 지속된 것은 맞습니다만 그 것이 여몽 전쟁에 영향을 미쳤는가 라는 점에 대하여는 과연 시스템이 붕괴로 이어질만 했는가 라는 사실에 대하여 여몽 전쟁 초기의 북방에서의 선전과 별개로 의문일수 밖에 없습니다,

질적 양적 하락 현상, 시스템의 붕괴나 해체를 말씀하시지만 어떠한 것을 바탕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전자인 양적 하락 현상은 숫자가 줄어드니까 생각해볼수 있겠습니다만 무신 정권의 발호 아래에 정권 다툼이 지속되고 왕정 복고나 복수를 위해 또는 신분 변동의 흐름이나 불만 표출 등에 따른 반란과 민란 등에 있어 그 여파로 그 들의 방비 태세나 시스템에 따른 충원 등 여러 방향에서 큰 이상은 감지된바 없습니다,

말 그대로 반란이나 민란은 그 뿐입니다, 그 것으로 영향을 미칠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숫자가 줄어 들었다 하여 시스템의 문제를 이야기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것을 참이라 가정한다면 여진 정벌, 거란과의 전쟁, 하구와 해안을 포기하게 만든 왜구와의 대립 등 고려의 역사를 통틀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 적은 단 한차례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며, 그러한 상황에서도 기존 호족들의 사병과 요충지를 방비하는 군세의 제도적 정비책인 주현군은 흔들림 없이 그 역할을 다한바 있습니다,

아 물론 여진 정벌의 케이스 처럼 병력이 모잘라서 모든 남자를 긁어모은 적은 있기는 합니다만 고려의 경제 여건과 생산력의 문제로 오래 가지 못하기는 했지요.
4220 2015-05-24 12:39:48 0
무인의 패기 [새창]
2015/05/22 10:08:02
1. 언급하신바와 같이 관군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구태여 공병조직과 같은 화자에게만 익숙한 단어의 차용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신 정권의 상황을 보자면 반란은 상명 하복 시스템의 붕괴와는 연이 적은게 사실입니다, 신분 질서의 변동을 논하기에는 군의 상명 하복 시스템에는 별 이상이 없는데다, 의종의 복위나, 시해에 대한 각계 각층의 반란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민란의 발생 등에 대하여 지휘권의 혼란을 논할 필요성은 적지요, 당장 언급하신 조위총의 난이나 망이 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 어디에서 지휘권이 혼란을 겪은 양상을 보였습니까.

2. 여진 정벌에 대한 기억은 금나라에 있어 별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17만 대군으로 빈집 털이 외에 어떠한 전공을 세웠는지요? 그 17만이 상시적으로 문제 없이 병력을 동원할수 있는 숫자입니까? 금나라와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고려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상황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국경 분쟁이 없다 하셨는데 빈번했습니다, 심지어 고려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이후에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조위총의 사신을 통해 무신 정권이라는 혼란을 알고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려오지 않은 것은 내부 통제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을 놓고 볼때 영역을 늘리는데에 관심이 없다고 봐야지 고려를 대단한 맞수로 본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3. '일반 농민들이나 혹은 노약자들 까지도 징병의 대상이 되고 이는 과거의 보통 군대와 비교해보면 질적으로 하락할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게 주현군이고 주진군입니다, 주현군과 주진군은 정용과 보승과 같은 노역을 함께 담당하는 전투 병력과 더불어 절대 다수에 가까운 공역을 위해 편성된 전문적인 노동 부대인 일품군과 중앙 정부의 통제와는 무관한 그 지역의 촌장, 촌정이 운용하는 이품과 삼품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들 모두가 일반 농민과 노약자들입니다.

이러한 주현군과 주진군이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의 출정에 따라 징발되거나 그 지역의 방비를 하는 것인데 보통 그 지역의 지휘관 대개는 정부에서 내려오신 분과 해당 지역의 호족들의 지휘 등의 문제, 지형, 축성 등으로 질적인 수준이 오락 가락하는게 보통입니다, 이게 이상한 문제가 아니며 여몽 전쟁 당시에 국한된게 아닙니다.

4. 의지를 떠나서 저게 고려군의 현실입니다, 뭔가 이런 말은 좀 그렇습니다만 고려군에 대한 이해도의 문제인것 같은데 사실상 일반 농민병 = 주현군, 주진군입니다, 주현군이 별 다른 훈련을 받고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이 들과 정용, 보승과 일품, 이품, 삼품군이 다른 것은 전문적인 노동 담당이냐 그 거랑 같이 창을 잡는 일을 하느냐 둘의 차이 정도일뿐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러한 주현군, 주진군 외에 기타 군역에 해당되지 않는 노약자, 여성과 같은 이들도 같이 민병으로 참여를 하는 것이지, 주현군, 주진군과 농민들은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로서 질적, 양적 하락이 구태여 무신 정권의 문제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5. 여몽 전쟁 당시에 비단 3차 이후로 국력이 피폐해졌다고 하나 고려군은 몽골군과의 회전이나 야전을 꺼리는 양상을 보입니다, 중앙군의 운용에 관하여 언급하신 부분에 대하여 이견이 있지 않다는 것은 앞서 답글에서 언급드린바 있는데, 그 것을 떠나 가용 전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주현군의 절반 이상이 양계에 배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용 전력이 증발된 현재 어떠한 가용 전력을 두고 유기적 연계를 논할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거란과의 전쟁 당시야 가용 전력이 충분한 상황이니 가능하다 하지만 작금의 야전, 회전이 초래할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데다 가용 전력마저 없는데, 그 것을 못하는 이유를 왜 주현군, 주진군의 문제로 봐야 할런지요?

6.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신 정권이 고려군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에 관하여 마치 제가 반대하시는 것 처럼 말씀하시는 건 좀 그렇습니다,; 더욱이 부정하지 않는 외교 정책의 문제를 다시금 끄집어 낼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4219 2015-05-24 01:11:07 0
무인의 패기 [새창]
2015/05/22 10:08:02
두서없는 답글이나마 우선적으로 정리할 것이 몇가지 있는데, 저는 무신 정권 당시의 군 운용에 관하여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지금 그러한 운용이 긍정적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두번째로 용어 정리가 필요한 듯 싶습니다, 국가 공병 조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 이해가 안되는데, 보편적인 단어 선택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세번째로 외교 정책에 관하여 뭔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일어나지 않을수 있던 선택이라는 것은 앞서 답글에서 수차례 언급드린바 다시 말씀하실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답글에 이야기를 달아보자면, 여진 정벌로 인하여 고려를 업신 여기지 못하게 된 것은 분명하게 아닙니다, 처들어 복속시킬 이유가 없는 상황인데 구태여 어떠한 군사 행동을 할 이유도 없고 당장 고려로서도 어떻게 해볼 상대도 아닐뿐더러 스스로 북송이라 하는 파트너를 걷어찬 상황이라 고개를 처들 상황은 아니지요,

또한 여몽 전쟁 시기에도 성을 축조하거나 물자를 배비하는 것은 가능했고 이루어진바 있습니다, 물론 3차 이후로는 국토의 황폐화나 군사 거점의 연달은 붕괴 저항 능력의 상실 등으로 큰 의미가 없어진바 있습니다만 이 것이 주현군, 주진군, 중앙군의 질적 저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번상병으로 이루어진 중앙군의 6위이나 주현군, 주진군의 수적 감소는 무시할수 없겠습니다만 전쟁이 벌어질시 늘 발생하는 일을 구태여 여몽 전쟁 당시의 운용 문제로 돌릴 이유도 없고, 주현군, 주진군이 딱히 훈련을 한 바가 없다는 사실이나 중앙군의 경우에도 주력인 3위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 것도 아닙니다, 즉 질적 양적 저하를 인지할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 것을 사실로 볼 이유는 없겠지요.

국가 내정 실패로 인하여 가용 노동력이 줄어들어 주현군, 주진군이 줄어들수는 있습니다, 번상병의 규모가 줄어들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러한 일이 비단 여몽 전쟁에서만 일어났는가 하면 당장 언급하신 여진 정벌 당시에도 비슷한 사례로 나라를 뒤집어 가며 병력을 끌어모으고 올려보냈으나 유지가 불가하여 포기한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현군, 주진군의 역할은 특정 지역의 사수이지, 공세적 전환이나 유기적 연계가 아닙니다, 아니 유기적 연계나 공세적 전환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에 가깝겠지요, 아무튼 그러한 주현군, 주진군의 지휘부는 일단은 나라에서 임명하는 이들로 그 들에게 무언가 책임을 전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수하면 잘 지키는게 그 들의 역할인걸요;
4218 2015-05-22 23:09:49 0
무인의 패기 [새창]
2015/05/22 10:08:02
오늘 저녁 답글은 여기 까지 일듯 싶습니다, 추가로 달아주시는 부분은 내일 정도 확인하고 다시 달겠습니다,

일단 운영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말은 했으니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지요, 다만 백성들의 생산력과 물적 기반은 군사력 증강 내지는 전쟁과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로 비단 무신 정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당시 징집병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모든 국가들에 해당되는 말이며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당시의 거의 모든 전쟁에 해당되는 이야기 일테지만 몽골의 침입을 차단할 북방의 가용 전력이 붕괴된 이래 그 들의 남하는 필연적인 문제였으며, 이는 인적 자원의 소모로 이어지는바 필연적으로 국가 생산력의 저하로 연결되는데 비단 무신 정권의 착취가 아니더라도 발생할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또한 군사력의 증강, 징병, 차출 등은 반대로 생산력을 낮출수 밖에 없습니다, 여진 정벌 당시도 그러했고 자국내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겹치는 사례이나 거란과의 전쟁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가용 노동력을 차출하는데 국가의 생산력이 유지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테지요,

다음으로 지방 단위 국방력의 연결력을 말씀하시는데, 각 성곽간의 유기적 공조 체제의 붕괴는 앞서 설명드렸습니다만 북방의 경우 가용 병력의 증발로 무주공산이 된바 있으며, 남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원래 그랬다는 표현이 더 옳을수 밖에 없는게, 애시당초 주현군의 탄생은 현지 주둔 병력과 현지 징발 병력의 역할이 겹치기에 탄생한 것입니다, 즉 해당 지역의 방비가 목적이지 유기적인 연결이 목적이 아니지요, 또한 파견된 지휘관의 역량에 따라 그 지방의 안정이 결정되는 것도 원래 그런겁니다, 광군사는 해당 지역의 호족이 주가 되나 명목상이나마 관리가 파견되었고 그 관리가 무신 정권 당시 방호별감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제 앞서 언급했고 또 언급해주신 중앙군의 운영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야전을 걸어야 큰 성과를 기대할수 있겠느냐 는 것도 앞서 다른 상황에서 볼수 있듯 의문입니다만 if는 의미 없으니 넘어가고,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는지 모르겟습니다만 주현군 주진군은 어쨌거나 그 역할을 다한 건 맞습니다,
4217 2015-05-22 22:24:16 15
엔하위키 흑역사 甲.jpg [새창]
2015/05/22 21:45:43
언제인가 관련 글에 답글로 남긴 이야기와 비슷한 답글 입니다만 리그베다 위키의 논쟁에서 승리 하기 위해서는, 정말 시간이 남아도는 분이시거나 운영진과의 친목 혹은 다수의 이른바 네임드, 혹은 그 지지세력들과의 친목이 있어야 하지요, 딱히 웃긴 것도 무엇도 아닌 문제입니다.

역사 갤러리나 여타 유사 역사학 까페에 역사를 들고가 이야기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요, 이건 뭐 질수 밖에 없는 문제이지요.
4216 2015-05-22 22:08:40 0
무인의 패기 [새창]
2015/05/22 10:08:02
몽골과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요, 언급된 부분은 어디까지나 무신 정권이 존재하지 않았을시에 벌어진 전쟁이라는 가정하 즉 전쟁이 일어난 상황을 가정한 부분일뿐입니다,

두번째로 문관 출신 장군이 활약한 사례가 많다기 보다는 무신 출신의 활약상이 적은 것 뿐이라고 보입니다, 실제로 무관 이 중요한 상황에서 지휘 통제를 담당했던 중요한 사건들을 생각해본다면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번째로 고려의 역사를 놓고 본다면 군의 질적, 양적 보장은 사실 무신 정권과 대동 소이합니다, 가령 언급하신 부분들을 살펴본다면 광군은 필요시에 그 지역에서 가용할수 있는 모든 남성 즉 좋게 말하자면 병력을 끌어모아 충원하는 것을 요체로 하며 그 탄생 목적에 맞게 해당 지역의 호족이 담당하는 조직이며 진수군은 이름 그대로 각 지역의 요충지에 건설된 각 진에 복무하던 역시 현지에서 충원하던 병력들로 임무나 인재풀이 겹치는 관계로 이 둘을 합친것이 주현군이며 주현군을 지휘하는 것이 광군사로 별다른 조직이 아니라 그 지역의 호족들이 자리 잡은 것에서 볼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현지에서 충원한 병력을 지휘하는 지휘부일뿐입니다, 이 들중 다수가 주진군이라는 이름아래에 양계에 배비되었으나 역시 일하다 나오신 농민분들이라는 것은 사실 다를바가 없는 것이기도 하며 상시적으로 존재하던 이들일뿐입니다,

또한 군대의 징집령을 올리는 것은 직업 군인제가 아닌 이상, 사실상 불가능했으니 무의미한 가정이라 보이며, 무신 우대 정책은 문신 중심의 고려 사회에서 그 역효과 부터 생각할 문제라고 보입니다, 언급하신 문신 들의 주요한 공로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성곽간의 긴밀한 공조는 앞서 설명 드렸습니다만 사실상 주력이라 부를만한 가용전력 일체가 북방에서 붕괴되며 무너진 것이지 무신 정권에서 대비를 안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북방에 추가로 성곽을 축조하거나 여타 대비를 하는 것은 여지껏 양계 그 이상의 진출을 하지 못한 것에서 볼수 있겠지만 고려의 현실상 무리인것은 맞습니다, 당장 여진 정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우 실 것 같습니다, 아니 할수야 있지만 그 이후는 무리지요.

즉 무신 정권 이전이나 당시나 운용에서나 차이를 보일뿐 별로 다를게 없던게 고려군입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몽골의 목적은 대화입니다, 역시 앞서 설명드렸습니다만 일어나지 않을수 있던 전쟁이었고, 몽골로서는 동방 3왕가를 견제할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자 황금씨족으로서 자신들을 지지해줄 대상의 가치를 지닌 고려를 구태여 지울 필요가 없던게 사실이지요, 그랬다간 전통 대로 원정에 참여한 이 들에게 분봉을 해야하는데, 동방 3왕가라는 가장 계륵과 같은 목안의 가시와 같은 이 들만 배부르게 해주니 말입니다.
4214 2015-05-22 20:49:57 0
무인의 패기 [새창]
2015/05/22 10:08:02
이상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렀습니다만 요지는 그렇습니다, 첫째로 저는 무신 정권에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두번째로 그렇다 할지라도 무신 정권의 존폐가 곧 몽골군에 대한 긍정적인 전략적 승기로 이끌어지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세번째로 이게 처음으로 가야할것 같은데 아무튼 중앙군이 존재하나 어디까지나 고려군의 주력은 비 직업 군인들로 구성된 이들입니다, 공적 군사 조직 즉 중앙군은 손실과 별개로 고려의 멸망까지는 어찌되었든 붕괴된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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