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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1 21: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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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체제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니 참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어디서 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진관 체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하여 도입한 이래 성공적으로 국가 방위의 근간을 이룬 것이 왜 중요하지 않습니까?
또한 전쟁 초기에 중앙군을 내려보냈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것은 사건의 전말을 아는 현재의 시각에서나 나올법한 일입니다, 당시 조선군은 왜란에 대하여 충분히 당시의 시각에 따르자면 매우 합리적이고 적절한 행동을 취했으나 사실상 단순한 왜구의 변란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라는 상정하지 못한 상정할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여 순식간에 밀려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오군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하시는데, 오군영에도 집중한 것 뿐입니다, 그나마도 조선의 재정 문제로 큰 효용성을 거두지도 못했지만 아무튼 포기한건 아니지요, 포기하면 대체 해당 지역은 누가 지킵니까? 각 지역에 배비되어 배비를 하고 있는 현대의 상비군을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전혀 이루어질수 없는 가정아닙니까?
2. 주인장이 전혀 무엇인지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히데요시 앞으로 조선 봉행 이시다 미쓰나리가 언급한 11개 조의 보고장이 다루는 전략적 실패는 이순신이 아니라 평양 전투입니다, 그리고 병량미 분담 계획은 한성 점령 이후의 계획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조선의 전진 기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육로 보급의 불가능이 아니라 말이지요.
그리고 노량 해전을 수군 단독으로 치루는게 왜 이상하지요? 이게 무슨 태평양 전쟁 말 일본 제국군도 아니고 왜 육군이 해전을 치뤄야 합니까? 또한 전쟁에 여파를 미쳤을 만한 전투를 이야기 하시는데, 이게 뭔가 야전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둬야만 가능하다 라고 착각하시는건가요? 조명 연합군의 전략적 성공을 부정하시려면 우선적으로 그 들의 전략적 목표와 그 것이 실패한 원인 부터 이야기 하셔야겠지요. 이순신 만 물고 빨고 핧으실게 아니라 말입니다.
당시 일본의 시각까지 이야기 해드렸는데 이렇게 논거도 없이 자기 주장만 반복하시면 참 이야기가 진행될수 없습니다.;
3. 지금 우리가 말하는게 이순신의 대체제 입니까? 직산 전투 이후에 명군을 유인해 처리하면서 수군의 보급을 받아 한양을 점령하고 진격한다는 논지의 방침으로 전환된건 대체 뭐라고 보십니까? 조명 연합군은 충분한 전략적 성공을 거둔게 사실입니다.
4. 그러니까 지금 계속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어찌보면 순망치한의 관계라고 말입니다, 조명 연합군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조선 수군은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전략적 목적을 달성해 나갔기에 승리할수 있었지요.
육지에서 승리를 거두어 봤자, 해전에서 거두지 못하면 말짱 꽝이듯 해전에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거둔다 한들 육지에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쟁은 끝나지 못할뿐더러 수군은 고사할뿐입니다.
5. 지금 이순신 장군의 수군만으로 해안가를 지킬수 있다면서요, 그럼 일본군은 그냥 놀고만 있습니까? 그걸 바라만 볼까요? 이해가 안되는데 왜 일본군이 그냥 수동적으로 움직일거라 생각하시는 것인지요? 보급, 지원 그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것 같습니까? 해군의 화포 지원이 아무런 훈련도 생각도 없이 할수 있는 겁니까? 당장 배가 접안할수 있는 지역은 어디고 사거리는 얼마이며 적의 화력부터 경로 등 그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겁니까?
정리 해보자면 수군의 진영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영역은 누가 지키고 있나요? 수군이 육군과 완전히 독립된 군사 작전을 할수나 있을거라고 보십니까? 진짜요? 이건 지금의 발달된 군사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상황인데요?
그리고 정유 재란은 이순신의 부재로 일어난게 아닙니다, 가서 다시 한번 레퍼런스를 뒤져보세요, 명이 조선을 배제한 채 강행하던 강화 회담이 실패한 이후에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경상남도 가덕도의 성을 보수하고 군량을 축적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을 시작으로 앞서 벌어진 평양 전투를 비릇한 일련의 전략적 실패에 대한 극복을 지시하면서 시작된게 정유 재란입니다.
이순신은 그 공이 굉장했던 것은 사실이나 조명 연합군의 한 사람일뿐 별개의 어떤 존재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