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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4 2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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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군의 세 아들, 하원군, 하릉군, 하성군을 불러다 익선관을 주고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성군이 제대로 답했기에 후계자로 낙점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가 유일하게 거론 되는 것이 야사를 모아 작성한 연려실기술 즉 야사에 불과한 것을 떠나 현실적으로 별로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허황됨은 당장 돌아가시기 2년전 병으로 드러누워 오늘 내일 할 때 조차 어땠는가를 본다면 쉽게 알수 있습니다.
(생략)
“요즈음 신하들을 접견하지 않으신지 오래되었으므로 신들이 한번 천안(天顔)을 뵙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여 날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특별히 인견하여 주시니 신들은 고맙고 기쁠 뿐만 아니라, 천안도 매우 화평(和平)하셔서 오래지 않아 쾌차하실 날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더욱 기쁘고 다행스럽습니다. 그런데 동궁을 오래 비워두고 국본(國本)을 아직 정하지 않으시니 요즈음 인심이 불안해 하고 의심하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성상의 춘추가 한창이시고 인신(人神)이 모두 도우니 머지않아 성사(聖嗣)의 탄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본은 반드시 미리 정해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해야 인심이 매이는 바가 있고 종사가 힘입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상께서 이 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신들은 항상 절박하게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늘 인견하시니 감히 이 뜻을 여쭙니다.”【이때에 상이 열이 심하여 잠시도 듣기 힘들어 하므로 이 계사를 올렸는데, 상이 보시고 불편한 기색이 많았다. 재삼 읽어보고 오래 있다가 답하였다.】하니, 답하기를,
“요즈음 오랫동안 인견하지 못하였는데 오늘 인견하니 참으로 우연한 것이 아니다. 또 나의 걱정도 항상 세자에 대한 일에 있다. 그러나 큰 일을 미리 정할 수 없으니 지금 형편으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일이다.”하였다. 준경 등이 재차 아뢰기를,
“군신(群臣)들의 뜻도 감히 즉시 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께서 만일 생각하고 계신 곳이 있으시다면 미리 마음속으로 정하시고 가끔 인견하시어 배양하는 뜻을 보이시면 종사는 그래도 힘입는 바가 있게 될 것이고, 후일 성사가 탄생하게 되면 저절로 물러가게 될 것이니, 이것이 대계에 통달한 생각입니다.
고사를 상고하면 송 인종(宋仁宗)은 춘추가 24세였는데도 오히려 계사(繼嗣)를 생각하시어 종성(宗姓)을 궁중에서 양육시켰고, 고려(高麗)의 성종(成宗)·목종(穆宗)은 모두 성현의 자품은 아니었으나 겨우 30 남짓한 연세에 현명한 단안을 내려 계사를 정하였는데 논하는 자는 이것을 아름다운 일이라고 칭송합니다. 고사에도 이와 같은 전례가 있었으므로 감히 아룁니다.”하니, 상이 답하기를,
“내전(內殿)에서 생각하여 처리할 것이다.”
당시 명조 실록의 기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말 그대로 오늘 내일 하는 그 상황에서 조차 명종은 후계자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명종의 행동은 2년후 눈을 감는 그 순간 까지 계속되었지요, 총애를 받고 공부도 많이하고 뭐하고는 근거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가져오신 네이버 캐스트는 볼수 있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이 주이지, 실질적으로 논거가 제시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역사는 명종의 총애가 하성군에게 향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야사를 빼면 그러한 내용이 언급된 것도 없고 인순왕후가 하성군을 총애했다 하지만 그 논거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