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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8 2015-07-15 18:02:22 19
천조국의 경찰이 서민 노점상을 단속하고 있다. [새창]
2015/07/15 11:16:18
네?
4617 2015-07-14 22:39:23 14
아직도 시노자키 아이로 왈가왈부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참 충격입니다. [새창]
2015/07/14 21:16:46

어느 분의 답글에 공감하시는 남녀 콜로세움 건설자 모두를 만족 시킬수 있는 그림입니다.
4616 2015-07-14 22:24:22 4
선조 재평가설.jpg [새창]
2015/07/14 17:36:38
덧붙이자면 어디까지나 정치적 목적일 가능성이 높은게, 하성군의 뒤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지 세력, 집안, 재력 그 무엇도 받쳐주지 않는 데다 나이도 어린터라 다른 후보자?들에 비하여 월등한 가치라고 하기는 뭐한데 아무튼 쉽게 쉽게 갈수 있는 길을 가지고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4615 2015-07-14 22:21:19 4
선조 재평가설.jpg [새창]
2015/07/14 17:36:38
덕흥군의 세 아들, 하원군, 하릉군, 하성군을 불러다 익선관을 주고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성군이 제대로 답했기에 후계자로 낙점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가 유일하게 거론 되는 것이 야사를 모아 작성한 연려실기술 즉 야사에 불과한 것을 떠나 현실적으로 별로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허황됨은 당장 돌아가시기 2년전 병으로 드러누워 오늘 내일 할 때 조차 어땠는가를 본다면 쉽게 알수 있습니다.


(생략)

“요즈음 신하들을 접견하지 않으신지 오래되었으므로 신들이 한번 천안(天顔)을 뵙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여 날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특별히 인견하여 주시니 신들은 고맙고 기쁠 뿐만 아니라, 천안도 매우 화평(和平)하셔서 오래지 않아 쾌차하실 날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더욱 기쁘고 다행스럽습니다. 그런데 동궁을 오래 비워두고 국본(國本)을 아직 정하지 않으시니 요즈음 인심이 불안해 하고 의심하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성상의 춘추가 한창이시고 인신(人神)이 모두 도우니 머지않아 성사(聖嗣)의 탄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본은 반드시 미리 정해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해야 인심이 매이는 바가 있고 종사가 힘입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상께서 이 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신들은 항상 절박하게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늘 인견하시니 감히 이 뜻을 여쭙니다.”【이때에 상이 열이 심하여 잠시도 듣기 힘들어 하므로 이 계사를 올렸는데, 상이 보시고 불편한 기색이 많았다. 재삼 읽어보고 오래 있다가 답하였다.】하니, 답하기를,

“요즈음 오랫동안 인견하지 못하였는데 오늘 인견하니 참으로 우연한 것이 아니다. 또 나의 걱정도 항상 세자에 대한 일에 있다. 그러나 큰 일을 미리 정할 수 없으니 지금 형편으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일이다.”하였다. 준경 등이 재차 아뢰기를,

“군신(群臣)들의 뜻도 감히 즉시 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께서 만일 생각하고 계신 곳이 있으시다면 미리 마음속으로 정하시고 가끔 인견하시어 배양하는 뜻을 보이시면 종사는 그래도 힘입는 바가 있게 될 것이고, 후일 성사가 탄생하게 되면 저절로 물러가게 될 것이니, 이것이 대계에 통달한 생각입니다.

고사를 상고하면 송 인종(宋仁宗)은 춘추가 24세였는데도 오히려 계사(繼嗣)를 생각하시어 종성(宗姓)을 궁중에서 양육시켰고, 고려(高麗)의 성종(成宗)·목종(穆宗)은 모두 성현의 자품은 아니었으나 겨우 30 남짓한 연세에 현명한 단안을 내려 계사를 정하였는데 논하는 자는 이것을 아름다운 일이라고 칭송합니다. 고사에도 이와 같은 전례가 있었으므로 감히 아룁니다.”하니, 상이 답하기를,

“내전(內殿)에서 생각하여 처리할 것이다.”

당시 명조 실록의 기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말 그대로 오늘 내일 하는 그 상황에서 조차 명종은 후계자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명종의 행동은 2년후 눈을 감는 그 순간 까지 계속되었지요, 총애를 받고 공부도 많이하고 뭐하고는 근거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가져오신 네이버 캐스트는 볼수 있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이 주이지, 실질적으로 논거가 제시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역사는 명종의 총애가 하성군에게 향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야사를 빼면 그러한 내용이 언급된 것도 없고 인순왕후가 하성군을 총애했다 하지만 그 논거도 없지요.;
4614 2015-07-14 21:22:55 0
미국이 국력의 10%만을 기울였다는 태평양 전선 이야기 [새창]
2015/07/13 21:34:13
어떤 글인지 궁금해지네요, 2011년이라 참 이게 저도 찾기가 어렵기는 하네요 아무튼 제 필력보다는 좋은 글일것 같아 보다 이해를 쉽게 해주실듯 싶으니 기대됩니다.
4613 2015-07-14 21:21:15 0
미국이 국력의 10%만을 기울였다는 태평양 전선 이야기 [새창]
2015/07/13 21:34:13
이런 문제는 고금진리를 통틀어 반복되는 일인것 같습니다, 그만큼 군대가 돈을 많이 먹는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지요;
4612 2015-07-14 21:20:31 0
미국이 국력의 10%만을 기울였다는 태평양 전선 이야기 [새창]
2015/07/13 21:34:13
아무래도 이게 문제가 뭐냐면 기술적 격차 내지는 발상의 전환이 가저오는 이점을 오래 유지를 못했지요;

사실 자원이 정말 바닥난 상태에서 벌인 전쟁이라 어찌보면 당연했습니다만 이게 보통 무서운게 아닌 것인듯 싶습니다.
4611 2015-07-14 21:18:33 8
선조 재평가설.jpg [새창]
2015/07/14 17:36:38
경쟁은 물론 이거니와 제왕학을 교육 받은 적도 명종이 붕어하기 이전에 세자로 책봉된 적도 무엇도 없습니다, 어머니 상중에 왕이 되었고 그 이유가 정이 두터웠다 라고 할 정도로 정말 이건 뭐 상상할수도 없던 일이었지요.
4610 2015-07-13 23:56:28 0
미국이 국력의 10%만을 기울였다는 태평양 전선 이야기 [새창]
2015/07/13 21:34:13
예나 지금이나 예산, 인력 등 전쟁에 필요한 그 모든 것은 항상 언제나 부족할뿐이지요;
4609 2015-07-13 23:52:48 0
미국이 국력의 10%만을 기울였다는 태평양 전선 이야기 [새창]
2015/07/13 21:34:13
어느 글인지 확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4608 2015-07-13 21:41:31 3
유사역사 신고해주세요 [새창]
2015/07/13 20:08:40
그나저나 깨알 같은 비공감이라니, 아이디 터놓고 말할수는 없고 반대는 하고 싶은건지, 강단 사학 카르텔의 만행에 부들부들 떨리는 건지, 참 애절하기 그지 없네요;
4607 2015-07-13 21:37:57 9
일본군의 전쟁 패턴 [새창]
2015/07/13 17:53:21
태평양 전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가령 상륙전이라는 개념, 교리 자체가 처음인터라 상륙을 지원할 함선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것은 둘째치고 상륙정에 탈 인원을 분대로 할것인가 소대로 할것인가 심지어는 상륙 주체를 육군과 해병대 누구로 할것인가 까지 정말 답이 없는 시행 착오의 연속이었지요.
4606 2015-07-13 21:36:14 3
유사역사 신고해주세요 [새창]
2015/07/13 20:08:40
아아 무쏠리니라니 정작 파시스트들에게서 시작된 이론을 바탕으로 하시는 분들이 자아 비판 하시는 것도 아니고, 자기 주장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4605 2015-07-13 21:33:27 2/9
일본군의 전쟁 패턴 [새창]
2015/07/13 17:53:21
일단 진주만 공습에 대하여 일본은 선전 포고를 하려 했고, 미국도 사전에 이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한 사정과 불운이 겹치며 전선에 전파가 안되었고, 선전 포고가 늦게 이루어 지게 되었지요.

또한 미군이 태평양 전쟁에 30% 혹은 10%의 힘을 쏟았다는 것은 사실 무근입니다, 따로 글을 파기로 하고 간략히 언급해 보자면 태평양 전선보다 유럽 전선을 더 급박하게 여기는 상층부와 연합군 간의 이권 다툼의 결과물로 절박한 태평양의 상황을 토로하여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이권을 좀 줏어먹고자 했던 것이었지요.

그리고 일본의 승전 이면에는 미군이 싸움 준비가 안되있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력의 차로 인한 기술의 발전 및 인적 물적 자원의 투입양 등의 차이가 벌어지는 바람에 일본 제국이 쇠락한 것으로 상기의 보고서 역시 이러한 문제를 두고 나오게 된 것이지요;
4604 2015-07-12 22:48:24 2
진짜 김덕령은 왜 유명할까요? [새창]
2015/07/12 22:36:34
당대에 상당한 기대를 받았지요, 물론 그 당시에도 애가 이렇게 푸시? 받는게 거품이 아니라는 보장은 있나 부터 이거 아무리 봐도 거품인것 같은데 까지 수없는 의구심을 샀습니다만 여하튼 시쳇말로 포텐이 터지면 굉장할거라는 기대를 샀던 인물이기는 했던게 사실입니다, 물론 당시는 이제 강화 회담이 진행되던 국면이라 그 능력을 다 할 기회가 없었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아무래도 유명한 이유를 찾자면 유난히 그 능력을 높이 산 야사에 기인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찌보면 이렇게 야사에 이름을 남긴것도 당대에 기대받던 능력을 다하지 못한 점 등을 놓고 나온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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