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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8 2015-08-01 22:16:37 14
미국의 대단한점... [새창]
2015/08/01 10:39:08
한번 생각해보십시요, 지금 왜 아베노믹스가 나오는지 이해가 전혀 안갑니다만 그 것을 제쳐두고 과연 본문의 언급된 사례들에 있어 미국 단독의 영향력으로 이루어지거나 직접적인 개입이 이루어진 것이 무엇이 있는지 말입니다, 미국은 분명 대단한 국가가 맞으나 본문의 사례는 잘못된 이야기 인것도 맞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지금 반론하는 것은 미국이 틀려먹었다는 것도 아니지요.
4647 2015-08-01 22:15:01 13
미국의 대단한점... [새창]
2015/08/01 10:39:08
미국의 국제 질서 아래에 편입되어 그 질서에 따랐을때 얻을수 있는 이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거대한 소비 시장과 생산력 등을 무시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그 것이 이제 본문과 같은 쇠락하고 무너졌으며 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었던 어떠한 국가들의 경제 부흥 내지는 경제 발전에 직접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요, 둘은 교집합이지 합집합이 아닙니다.;
4646 2015-08-01 21:53:52 12
미국의 대단한점... [새창]
2015/08/01 10:39:08
1. 독일의 전후 보상은 동서 분단과 더불어 냉전에 따라 강화조약의 미 체결이 따르는바 나치즘 박해의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채권국과 독일 사이에 1953년 2월에 체결된 독일의 대외채무의 지불유예에 관한 협정인 런던 채무협정은 독일의 교전국, 피점령국 및 그 국민의 전쟁에 기인한 독일에 대한 청구권의 심사는 배상문제의 최종적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유보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58년 12월에 이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스, 프랑스, 영국 등의 국가에 보낸 각서에 따라 배상한 상황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속지 주의에 입각한 배상과 자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것을 볼수 있는바 이 것을 미국의 도움만 있다고 볼수는 없겠지요,

또한 동독의 채무의 문제의 경우 소련은 동독을 배상의무로부터 해방 시키는 한편 폴란드 역시 배상 문제에서 손을 땠습니다. 역시 미국과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53년 2월에 체결독일의 대외채무의 지불유예에 관한 협정을 놓고 볼대 역시 미국의 도움만 생각할게 아닌것이 사실이지요.

2. 미국의 전폭적인 도움이라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일본의 산업을 다시금 부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볼수 있는것은 한국 전쟁 특수로 인한 산업의 부흥을 빼놓고 이야기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통계를 놓고 본다면 한국 전쟁 특수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16억 1천만 달러에 육박합니다, 이를 놓고 볼때 GARIOA 16억 달러와 비등할지 모르나 산업 시설의 재건이라는 측면은 이루 말할수 없는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유엔 연합군 장병들의 유흥비나 이로 인한 관련 산업의 이득 창출은 집계도 안됩니다.;

>아시겠지만 EROA는 변제금이라 제하였습니다, 통계 수치는 곽양춘 교수의 것을 참조했지요.

3.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 알것 같다 라고 하시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물론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 막대했다 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하나로 인하여 쌓아올려진 산업 체제라고 보기에는 이미 줄기 자체가 다르지 않습니까?
4645 2015-08-01 20:40:57 12
미국의 대단한점... [새창]
2015/08/01 10:39:08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배비로 서독에 밀집한 병력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NATO AFCENT 즉 나토 중부 유럽군 입니다, 미군 단독 파병 및 유지가 아니라 서독을 비릇한 나토 각국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는 말이지요, NATO Jutland 지역 지상군 NATO 북부집단군, NATO 중부집단군 등에 서독,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미국 각국의 병력들이 때로는 자국 보다 우선시한 장비 및 인력 배비까지 해가면서 그 소임을 다했습니다.
4644 2015-08-01 20:37:08 14
미국의 대단한점... [새창]
2015/08/01 10:39:08
음 조금 진지 먹고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 본문의 상관 관계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휴대폰이라 간략히 적어보자면 라인강의 기적은 탄광 산업에 기반한 것이며, 일본의 산업 부흥은 패전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경제적으로 가장 큰 이윤을 남길수 있는 물자 보급 창구를 물색하던 연합군 아니 미군에 의하여 군정법에 따라 압류되었던 산업 시설이 풀려나며 막대한 물자 생산에 박차를 가했기에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 역시 이견이 있을수 밖에 없는 문제이나 당시에는 ? 일수 밖에 없었던 무모한 도전인 중공업 육성이라는 도박이 성공함에 따라 이루어 진 것이지요,

덧붙이자면 해상 자위대가 흥한 것은 간단하게 작금의 영국 군축을 보면 됩니다, 육군보다 해군, 공군의 비중이 높은 것은 그 만큼 전략적인 비중 과 지형적 특성 탓이지 어떠한 미국의 요구에 따른게 아니지요, 한국군 역시 주적인 간부 아니 북한과의 대립 국면을 놓고 볼때 육군의 비중이 높을수 밖에 없는게 사실입니다, 뭐 그 이면에는 이제 경제적인 사유 등도 존재하겠습니다만 미국의 버프와는 무관한게 사실이지요.
4643 2015-07-31 23:45:32 1
사우디 제2왕국 - 내부 분열로 홍역을 앓다 [새창]
2015/07/31 23:09:48
정리를 해보자면 투르키 빈 압둘라 빈 무하마드 -> 무샤리 빈 압둘라흐만 빈 무샤리 -> 파이살 빈 투르키 빈 압둘라 -> 칼리드 빈 사우드 -> 압둘라 빈 쑤나이얀 -> 파이살 빈 투르키 빈 압둘라 -> 압둘라 -> 사우드 -> 압둘라 빈 투르키 -> 사우드 -> 압둘라흐만 -> 압둘라 -> 압둘라흐만

인데 이 와중에 정상적인 평화로운 승계는 한번 밖에 없다는게 함정 아닌 함정이지요.;
4642 2015-07-31 23:43:20 1
사우디 제2왕국 - 내부 분열로 홍역을 앓다 [새창]
2015/07/31 23:09:48
본문에 첨언을 해보자면 제 1왕국 시절과 다르게 제 2왕국 시절에는 국제 질서 그러니까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질서에 편입된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오스만 투르크 제국 역시 이집트의 견제를 위하여 어느 정도 용인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그러나 투르키 빈 압둘라 빈 무하마드가 이집트의 폭정에 대항하는 형태의 쿠데타를 일으켜 제 2 왕국을 재건한지 채 6?7?년도 안되 무샤리 빈 압둘라흐만 빈 무샤리라는 친척의 쿠데타에 쫓기다 암살당하고 이맘의 자리를 빼앗기나 그의 아들인 파이살 빈 투르키 빈 압둘라가 다시금 왕국을 되찾습니다만 이번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 측에서 그의 통치를 불편하게 여깁니다, 또한 이집트는 사우드 씨족의 칼리드 빈 사우드를 지지하고 있었지요.

이에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타밈 씨족으로 도주 재기를 노리나 실패하고 5년동안 카이로에서 군만두만 먹게 됩니다, 그 이후에 결사의 탈출을 감행 리야드로 돌아와보니 칼리드 빈 사우드는 쿠데타(.....)로 내 쫓기고 그 자리를 압둘라 빈 쑤나이얀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대로라면 여기에서 아무런 지지 세력도 재산도 무엇도 없던 파이살 빈 투르키 빈 압둘라가 뭘 할수 있을리가 없습니다만 라쉬드 씨족이 일족의 운명을 건 도박을 감행 대대적인 지원을 해준 덕분에 재기에 성공했지요.

뭐 여기까지는 좋습니다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의 네 아들을 보면 정말 답이 없는게, 장남 압둘라와 삼남 무하메드는 라쉬드 씨족 출신이고 차남 사우드와 막내 압둘라흐만은 베두윈 족인 아즈만 씨족 출신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씨족간 갈등이 모든 걸 좌우하는 전통 아닌 전통을 좀 극복해보고자 장남을 군 사령관으로 차남을 남부 알카르즈의 주지사로 보내는데, 무능의 정점을 찍는 낙하산 소리를 듣던 장남을 비웃듯 차남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파이살 사후 장남 압둘라가 이맘이 됩니다만 역시나 차남 사우드는 동부의 씨족들과 오만, 아부다비, 바레인의 힘을 모아 그를 몰아내고 이맘의 자리에 오르는데, 오른지 얼마 안되어 사촌 압둘라 빈 투르키가 동부 외에 별다른 지지 세력이나 기반이 없던 사우드를 몰아내고 이맘의 자리를 탈취합니다,

그렇다고 압둘라 빈 투르키가 동부의 패자라고 할수 있던 사우드를 어떻게 누르기는 어려운 지라 오스만 제국의 바그다드 주의 영주 미드하트 파샤에게 손을 벌렸고 동부를 쓸어버렸습니다만 잡초 같은 인생이라는게 다른 말이 아닌지 아즈만 씨족의 힘을 얻은 사우드는 일본 아니 리야드를 공격 이맘의 자리를 다시 탈취합니다.;

그러나 But 얼마 안되어 천연두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사망했고, 미드하트 파샤의 도움으로 동부에서 탈출한 사남 압둘라흐만과 장남 압둘라에게 기회가 돌아와 압둘라흐만이 이맘의 자리에 오르나 1년도 안되어 압둘라가 그 자리를 뺏습니다.;

근데 여기에서 사우드 빈 파이살의 아들 즉 조카가 권력욕도 아닌 막연한 증오로 쿠데타를 일으켜 압둘라를 생포하는데, 여기에서 라쉬드 씨족의 무하메드 빈 압둘라 알 라쉬드가 압둘라흐만과의 교환을 전제로 석방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압둘라를 리야드의 진정한 군주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공백을 노리고 이맘의 자리를 탈취한 압둘라흐만이 그 걸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쿠데타를 일으켜 리야드를 사수합니다만 라쉬드 씨족의 이븐 사흐만의 체포를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킨 무하메드 빈 압둘라 알 라쉬드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추방당하였고, 2 왕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4641 2015-07-31 23:12:32 3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들 [새창]
2015/07/31 16:41:44
첨언을 하나 해보자면 따로 독립군의 총체적인 하와이 지부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해당 지역의 교민회나 임시 정부 산하 정당의 지부 정도가 있었을 뿐으로 미주의 각 단체에서 각자 알아서 기부금을 충당했을뿐 어떠한 미주 지역의 독립 운동 자금의 총책을 맡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로 소련의 여군 스나이퍼가 유명한 까닭은 그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집중력 인내심을 이유로 조직적인 양성을 꽤한것이 아니라 그냥 인적 자원이 부족했기에 여성도 데려다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성이 여성을 쏠 경우의 트라우마 같은건 사실상 그 인명 피해로 볼때 없다고 봐야 할테지만 저격수가 포로로 잡힐 경우는 늘 안좋은 결과가 남습니다만 특히나 여성이 사로 잡힐 경우의 처분은 음 이루 말할수가 없지요, 가령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포로로 잡혀 즉결 처형 당한 어느 소련 여성 저격수 한명의 몸에서 독일군 1명 분량의 군장이 나왔습니다.

뭐 여성이고 남성이고 따로 없고 오히려 여성이기에 더 안좋은 결과가 남기 마련이지요.
4640 2015-07-29 22:44:51 3
유사 역사학이 왜 위험하다고 난리들인지... [새창]
2015/07/29 22:08:47
이전에 쓴 글에서 발췌해보자면

>최동 - 일본에서 교육 받으신 분으로 친일파 단체 조선기독교연합회의 주축을 역임하시고 조선 침략에 앞장섰던 흑룡회와 손을 잡으신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지원하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이시기도 합니다.

>문정창 - 일제 시대 고등 문관 출신으로 동래군 서기와 경남 도청, 조선 총독부를 거쳐 황해도 은률군 군수에 황해도 사회과장까지 지내신 분이며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명단 관료편에 당연하게도 수록 되어 있습니다,

>이유립 - 어용 출판사인 일본 청년사에서 주최한 공덕표어 공모전에 당선되어 동메달을 받은 경력이 있으며, 삼육사라는 동인 단체를 조직했는데, 구독 목록에 대일본사회대학 강의록이 있는 것은 둘째치고 동아 일보에 수록한 내용을 보면 저축을 장려하고 주재소에 검열을 자진해서 받겠다 하는 등 일제에 매우 순응적인 모습을 보이시고 계십니다.

이 외에도 조선 총독부 발행 월간지에 적극적으로 시를 투고 하기도 했고, 아 그러고 보면 친일 단체인 조선 유교회에 가입하여 조선 총독이 격려까지한 기관지 일월시보의 주필을 맡기도 하셨군요, 또한 일제의 나팔수로 전락한 동아일보의 삭주 지국장을 역임하셨으며 친일 단체 조선 유교회의 산하 지부 신풍 학원을 설립하시기도 했습니다.

>임승국 - 본인 말로는 고대를 졸업했네 어쨌네 하시지만 졸업 논문이 존재하지 않고 동문회에서 검색이 안될정도로 일단 학력 위조는 거의 기정 사실화된 이야기이고, 한단고기를 출판할때 마치 원본을 직역한 것인양 이야기 하셨지만 실제는 일본에서 출판된 것을 중역하신것에 불과하지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구국의 결단이라 칭송하고, 군부 독재 정권에 온갖 아부라고 밖에 볼수 없는 미사 여구로 치장한 글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국가의 힘으로 학계를 숙청해 주시기를 원하셨지요, 일본과 나치 독일의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 이유립도 대차게 깐적이 있습니다, 비단 같은 유사 역사학 관련 동료 학자들을 비판하는게 하루 이틀일은 아닌 분이시라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만 책을 만들고 뭐할 능력도 안되는 양반이라 환단고기를 가짜라 볼수 없다는 논조로 폄하를 할 정도인것을 보면 답이 없습니다.

>안호상 - 초대 문교부 장관으로 당연할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교육 받으셨습니다, 주위 평과 글, 어록을 종합해 볼때 파시스트 of 파시스트 이시고, 한민당의 발기인이시며 일민주의라 하는 이승만 정권의 철학을 만든 장본인이시자 이승만을 최일선에서 추앙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자신과 반하는 사상의 교사들을 숙청 하시기도 했지요, 49년 3월 17일자 동아일보에서 파악하기로는 국민 학교 교원만 1600여명이 숙청당했다고 합니다.

아 신문 사설에서 1,2차 세계 대전을 독일의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찬란한 결과라 말한적이 있기도 하시네요.

여기에 이제 근래에 인기를 끄는 이덕일이니 하시는 붠들이 붙지요.
4639 2015-07-29 22:30:17 1
두서 없는 글이지만 유사 역사학 분들께 몇 마디 드려보겠습니다 [새창]
2015/07/29 21:30:51
그래도 깝깝해서 마지막이나마 글 한줄 적어보았습니다, 뭐 어차피 자기 합리화 인지 부조화라는게 누구 말 듣고 고쳐지는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4638 2015-07-29 21:35:00 1
두서 없는 글이지만 유사 역사학 분들께 몇 마디 드려보겠습니다 [새창]
2015/07/29 21:30:51
글이 중간에 끊겼는데, 몇마디 덧붙이자면 예컨데 그렇습니다. 심판자니 뭐니 떠들 계제도 아니고 문제도 아닙니다, 내가 왜 타인에게 배척받아야 하나 잘 생각해보세요.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건 공개 게시판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는건 얼마든지 오류를 수정할수 있는 기회이고 다른 주장 이야기 생각을 나누고 듣고 이야기 할수 있는 거에요.

그냥 내 생각에 무조건 적인 찬성을 듣고 싶다면 여기 오시면 안되지요.

거기에 그러한 반응에 대하여 트롤링을 하고 분탕을 일으킨다? 생각해보세요.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 어떠한 규칙이 있는지 아니 그 걸 떠나 사회라는게 내 맘대로 안된다고 징징거리는 곳입니까? 우리는 어른 이고 역사를 말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잖아요.

그럼 최소한의 규칙을 따르고 학문이라는 사실 관계에 따른 반응을 즐겨야지요, 그냥 내 의견에 반대하다니 견딜수 없어 부들부들 거릴게 아니라 말입니다.
4637 2015-07-28 23:47:17 0
일본 열도 분국설(삼한/삼국인들이 열도에 분국설치) [새창]
2015/07/28 13:09:01
중요한건 작금의 북한 학계에서도 이 가설은 더 이상 언급되거나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즉 본문에서 언급되는 한계점과 문제를 그 들 역시 무시할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4636 2015-07-26 18:05:29 2
[새창]
아이러니 한건 정작 와하비즘을 국가 이념으로 밀고 있는 사우디 왕실은 와하비즘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정작 와하비즘을 사회적 제도에 개입한 것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후의 일이고 그나마도 이제는 좀 개방적으로 돌아서려고 까지 하고 있는걸 보면 과연 진짜 와하비즘이라는게 명분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걸까 싶기만 합니다.
4635 2015-07-25 23:20:42 0
사우디 제1왕국 - 과격함과 종교에 너무 심취했던 나라. [새창]
2015/07/25 17:38:40
그리고 이건 아래 답글에 대한 이야기인데, 와하비즘에 따른 국가 운영의 부작용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다 꽤 유명한 편입니다, 다만 IS와 다른 점은 IS의 교조주의적인 행각이 와하비즘 그 자체에 따른 종교 운동에 의한다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란 혁명 등의 시대적 변천에 따라 사회적 통제를 강제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라는 것이지요,

가령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45세 이하 여성이 가족 외 남성과의 접촉, 여행 등이 차단되는 한편, 운전이 금지된 것은 78?9?년 이후의일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사회 통제적 정책에 대하여 현 사우디 왕가의 입장은 슬슬 통제를 풀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지요, 다만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종교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려 문제 등이 겹쳐 그 것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울뿐입니다.

끝으로 테러에 대한 지원에 대하여 공식적인 채널로 모두 끝난 것은 알 카에다등 테러 단체의 화살이 사우디 아라비아로도 돌아오는데다, 미국의 압력이 여러모로 작용한바가 큽니다, 미국 정부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거나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지요; 물론 사우디 아라비아도 그러한 미국의 대대적인 행보에 따른 자제?를 한 것도 이유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4634 2015-07-25 23:07:59 0
사우디 제1왕국 - 과격함과 종교에 너무 심취했던 나라. [새창]
2015/07/25 17:38:40
문제는 사우디 왕실은 한없이 와하비즘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지요, 그 들이 휴가를 빌미로 해안을 봉쇄한다거나, 한달에 수십말 달러의 생활비를 탕진하는 사치 그리고 뇌물, 마약 밀수, 매춘, 토지 강탈 등 을 일삼으나 정작 와하비즘에서 중요시 하는 언행록이나 꾸란에서는 그러한 방종과 타락을 당연시 여기지 않지요, 오히려 경계하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사우디 왕실에서 그러한 타락과 방종을 경계하던가요? 국가로서는 와하비즘을 추종하나 정작 지도층과 와하비즘은 거리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예컨데 와하비즘은 사우디 라는 국가를 놓고 볼때 사우디 왕실의 통치 수단 중 하나일뿐이지, 왕실에서 그러한 와하비즘에 대하여 정말 뿌리 깊게 신심을 다하여 섬긴다 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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