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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8 2015-09-27 13:44:18 0
식민지 근대화론 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다 개XX 들입니다. [새창]
2015/09/27 12:55:31
참 게시판이 좋게 말하자면 산으로 간다는게 여실히 느껴지네요.
4947 2015-09-27 13:38:52 3
역사게시판 절필선언 [새창]
2015/09/27 06:09:52
말씀대로 ㅈㄴ어이없지요, 지금 까지 의견 수렴하고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일말 관심도 없고 니들이 뭔데 떠드냐고 그냥 닥치고 잇으라고 하니 이게 쿨병 아니고 뭔가요? 공지 만들겠다고 얼마나 의견 수렴하고 다듬었는지는 관심도 없지요? 그냥 내 말 안들으니 짜증만 날뿐이지 참 어이가 없기는 없네요.
4946 2015-09-27 13:37:37 1/5
역사게시판 절필선언 [새창]
2015/09/27 06:09:52
그러니까 여기서 문제가 되는게 트롤링과 어그로 같은 문제를 포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당한 논거를 제시했는데 포용을 안하는건가요? 대체 왜 전자를 수용해야하는데요?

네? 아니 참 웃기는게 지금 우리가 역사 게시판에서 역사를 말하고자 하여 그러한 바탕을 즉 지금껏 문제가 되어온 어그로와 트롤링을 차단하고 보다 건설적인 토론 논쟁을 하자는게 왜 문제인데요? 네? 지금 역사 게시판 공지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뭘 만드는지 그 목적은 알아야 이야기가 되지요,

잘났고 못났고가 아니라 역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게 뭐가 잘못됬는데요? 네 의견 제시하는거 틀어막고 아집이라도 피웠습니까? 뭘했습니까? 제대로 된 논쟁은 커녕 안들려 안보여 내의견만 들어라 식 외에 뭐가 있었는데요? 환뽕이든 나발이든 토론 하자고 하자고 해도 안나오고 난장피우다가 하다못해 운영자님께서 직접 판까지 벌렸는데도 안기어나오는걸 뭘 어쩝니까? 그렇게 의견 수렴 정리해서 만들려고 하니 난장 피우는게 왜 정당성인데요?

참 앞뒤모르고 달려드는 쿨병이 사이트 하나 망치는건 진리가 맞는것 같네요, 지금 과학 게시판도 그러한 전례가 있고 이 역사 게시판의 공지도 운영자님께 의견 수렴하여 제시한 겁니다, 역사 게시판의 유저끼리 싸우고 나발이고 아집으로 만든게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의견 수렴하고 다듬고 해서 제시한거라고요,
4945 2015-09-27 13:08:15 4/5
역사게시판 절필선언 [새창]
2015/09/27 06:09:52
역사 게시판의 공지를 만드는 데 역사 게시판 말고 다른데 어디에 가서 어떤 의견을 구한답니까? 오만 운운하지 마세요, 그냥 하는게 맘에 안들어서 강짜 부리는 것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대체 지금 이게 어디에 의견이 있습니까? 제대로 된 논거를 제시하며 반론을 한 사례가 몇건이나 될까요? 그냥 일본이 싫어서 게시판에서 그네들 표현을 빌자면 주류사학 나부랭이가 떠드는게 맘에 안들어서 등등이 전부입니다, 트롤링과 어그로라고 단순 폄하가 어쩌고 하시기 이전에 방문수 1짜리 양반들이 뭔 소리를 하는지 부터 보고오세요, 공지에 반대하는 이유가 뭔지부터 보고 오시라는 말씀입니다.

진행 과정에 관심 하나 없어 아님 말고로 내뱉는게 무슨 의견입니까? 내의견 안들어주면 너넨 틀렸다는 논지가 무슨 정당성이 있습니까? 오유 유저 전체 의견 운운하기 이전에 생각을 좀 해보세요, 수백 수천번의 논의가 의미가 있으려면 어쩌고 하기 이전에 대체 여지껏 저 공지가 무슨 연유로 만들어지고 의견을 수렴하는게 생각도 안나십니까?

그저 트롤링이든 나발이든 의견을 들어주고 모두 수렴해야만 정당성이 있고 공론화가 제대로 된걸까요? 좀 제대로 된 반론을 들어 보기나 햇으면 좋겠네요, 뭐 의견 수렴한다고 공지 띄우고 뭐할때는 안들려 안보여이더만 이제 좀 가이드가 만들어질려니 달려들어서 징징대고 물어뜯기 바뿐게 무슨 정당성을 부여합니까? 참 기가차서 말도 안나오네요, 오만이요? 차라리 그런게 오만이라면 수용하겠습니다,

대안없는 반대에 역사도 아닌 소설 나부랭이를 받아들여달라고 징징대고, 제대로 된 논거도 무엇도 없는 강짜를 왜 받아들여줘야 하는데요? 뭐때문에요? 진행과정에 관심도 없이 내뱉는 이따위 말을 뭐하러 수급을 해야합니까?
4944 2015-09-27 12:21:41 0
이순신의 전술과 해상전의 패러다임 [새창]
2015/09/27 04:05:55
아 그리고 임진 장초의 이야기를 적었으니 하나 더 올려보자면 한산도 대첩에 관한 장계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出洋中, 更令諸將, 鶴翼列陣, 一時齊進, 各放地·玄字·勝字, 各樣銃筒, 先破其二三隻, 則諸船之倭, 挫氣退遁. 而諸將軍吏, 乘勝踴躍, 爭先突進, 箭丸交發, 勢若風雷, 焚船殺賊, 一時殆盡.

바다 가운데 나와 장수들에게 명하여 학익진을 벌려 각종 총통을 각각 쏘아 적선 2~3척을 격침시키니 여러척의 일본군이 그 사기가 떨어져 일시에 도망가려 하여 이에 흥분한 장수들이 승세를 타고 흥분하며 앞다투어 돌격하여 화살과 탄환을 쏘아 적선을 분멸하고 적을 해치웠다는 기록입니다,

즉 언급하시는 화포 사격 위주의 전술 체계는 이순신 본인이 올린 장계 들에서 부정되고 있습니다.
4943 2015-09-27 12:17:51 0
이순신의 전술과 해상전의 패러다임 [새창]
2015/09/27 04:05:55
제가 말하는 전술적 패러다임의 문제는 화포의 사거리, 판옥선의 건조 목적, 세키 부네등 적선과의 체급차,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격을 유지하는 것의 불가능함을 들어 설명드렸지요, 언급하신 근대적 함선전의 기초를 말씀하시지만 하향사격과 같은 문제는 둘째치고 하다 못해 체계화된 수치 체계도 없던 상황에서 뭘 더 이야기 해야할까요?

또한 조선 수군이 화력전을 위시로한 백병전을 펼쳤다는 사실이나 화력전이 근거리에 기초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기록에 나온바, 이순신의 그 것을 보자면 가령 임진 장초를 들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이순신이 올린 장계중 하나를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當日曉頭, 移到唐項浦外口, 俄有一倭船, 果自海口而出爲白去乙, 僉使不意突衝. 一船所騎, 幾至百有餘名, 而我船先放地·玄字銃筒, 一邊長·片箭·鐵丸·蒺藜炮·大發火等, 連續射投爲白乎亦中, 賊倭等, 奔遑罔措, 退遁設計次, 要鉤金以牽出中洋, 半餘投水沈死.

당항포에 도착했더니 왜선 한척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여 접근한 뒤' 총통을 쏘고 질려통을 비릇한 활과 철환등 개인화기를 투척하여 적을 살상하며 이후 접선을 위해 요구금 즉 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내었더니 반수 이상이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기록입니다.

두번째로 1598년 흥양 현감 최희량이 군선을 건조하며 보고한 문서를 보면 소철환과 화살이 여타의 그 것들 보다 많은 것을 볼수 있습니다, 즉 인명 살상이 주 목적인바 어디까지나 조선 수군의 전술은 백병전을 회피하되 거부하지는 않는 것임을 알수 있지요.

그리고 왜구보다 강한 조선병사라는건 대체 어디에서 나온 말입니까? 그리고 지휘관의 능력이 전술적 패러다임의 혁파로 이어지나요? 뭔가 새로운 전술을 창안하고 규범화 시킨것도 아니고 새로운 무기 체계를 만든것도 아닌 그냥 있던 인력과 물자를 활용하고 지휘를 잘 하여 승리한 것인데 말입니다.
4942 2015-09-27 12:03:27 0
이순신의 전술과 해상전의 패러다임 [새창]
2015/09/27 04:05:55
고기동 함포사격의 논리같은거 없었습니다, 그냥 그당시의 전술에 따라 지휘를 잘하신 것 뿐입니다, 지속적인 거리 유지를 통한 일점사라는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이미 원양 항해에 익숙한 서양의 함대들에서도 익히 보이는 상황이며, 애시당초 제대로 된 수치화도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조선 수군에 있어 체계적인 근대전의 그 것을 따라갈 역량 자체가 안됩니다.

두번째로 이 당시의 전술이 화력전을 위시로한 백병전을 통한 적선의 무력화인데, 기존의 전술을 혁파했다고 봐야 할 게 뭐가 있습니까? 또한 조선 수군의 판옥선 수가 뭐가 어떻다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전라 좌수영이 보유한 판옥선이 24척입니다, 네 그리고 원균이 자침 시킨게 100여척이 되지요, 그런데 조선 수군이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일개 지휘관이 곧 조선 수군이라는 그런 말씀이신지요?

세번째로 어선까지 전투에 동원했다는건 낭설입니다, 조선 수군에는 연락선을 비릇하여 판옥선외의 선박도 상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율의 관리나 조정의 허가 아래에 배를 건조 수리한 것이 대체 무슨 전술적 패러다임을 혁파 했다는 것입니까? 이건 본문에도 이야기 했지만 지휘관의 능력일뿐이지 뭔가 없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과거와 일변하였다고는 하나 뭐가 달라졌습니까? 전술? 무기 체계?

그런 논지라면 의병들이나 명장들은 조선 군의 패러다임을 혁파한 존재입니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그저 있던 체제와 물자 등을 이용하여 승리한 것인데 뭐가 전술적 패러다임의 혁신이라는 건가요?

다음으로 두번째 답글인데 하향사격 이전에 이미 대형 조총과 불랑기 등 적의 화포에 대한 화력 교환은 꾸준히 이어져 옵니다, 그걸 떠나 하향 사격의 사거리까지 들어온다면 사실상 저 쪽도 조총이나 활 등을 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이미 전고 차이가 무슨 공성전 하듯 벌어지는 상황에서 아래에 붙은 배가 위를 공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건 무리한 일이고 이 전략은 유지 될수 없다는게 아니라 이 전략을 위하여 판옥선이 대형화 된 것입니다, 위에서 활을 쏘고 질려통을 던지고, 백병전을 회피함과 동시에 유리함을 점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것이며 하향 사격은 고려되지 않은 전술이라는 건 이순신 이전에 총통이 배에 실리는 여말 선초부터 제기된 문제이고 해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기동과 사격을 중심으로 하는 전술이 아니라 필요가 없던거에요, 어디까지나 전술 교리는 백병전을 중심으로 곁들어지는 화력전이니 말입니다.
4941 2015-09-27 11:53:54 0
이순신의 전술과 해상전의 패러다임 [새창]
2015/09/27 04:05:55
첫번째로 해상에서의 해당 교리는 해당 시기의 포격전 사양을 고려한 근거리 맞습니다, 화포의 사거리의 1/10도 채 안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조건 하의 최대 사거리로 잡은것이 시대적 배경을 무시한 결과물로 보시는지요? 오히려 현재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그 내용을 좀 더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두번째로 메가레부네의 이야기는 지금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전술의 패러다임이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한 반론이었습니다,

세번째로 지금 가장 간과하시는 부분이 기록의 간과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들은 장림포 전투를 비릇하여 그 사상자가 나오지 않거나 어떻게 전투가 진행되었는가를 묘사하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 그런거 없다 라고 맺음을 지시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요? 또한 세키부네와 판옥선과의 차이는 어떠합니까? 말도 안된다고 하시기 이전에 10배가까이 차이 나는 배수량 부터 생각해보십시요,

무엇보다 유효사거리와 최대사거리를 왔다갔다 하신다고 하시는데, 사거리에 영향을 주는 롤링 피칭 등에 있어 체계화된 규범이 있습니까? 이순신 장군이 그러한 산술적 데이터를 정리했다면 그 것은 어디에 남아있습니까? 여지껏 없던 것을 정리했다면 뭔가 잇어야 할텐데 그게 뭘까요, 지금 그냥 자신의 추측을 사실로 받아들여라 일뿐 아닙니까? 더욱이 일정 사거리를 유지하며 접근하는 적선을 교란하면 된다고 하시는데, 그게 말이나 될까요?

지금 사례로 드시는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해전을 본다면 더욱 명확한게 그거 이해를 전혀 잘못하고 계십니다, 영국해군이 초전에 사격전을 펼친것은 할수 있는게 그 것 밖에 없어서 였으며 이는 상대의 목적이 해전이 아니라 상륙에 있는바 엄호를 목적으로 강력한 화력을 배비하여, 영국 해군이 할수 있는 것은 그나마 긴 사정거리를 이용하여 깔짝대는게 전부였지요.

그리하여 칼레항에 무사히 입항했고, 그 상황에서 화공을 당하나 이역시 피했습니다만 북해를 통해 스코틀랜드를 우회하여 귀환하던 도중 태풍을 만나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적함대와의 결전이며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초전에 이 당시의 전술 그대로 화력전을 위시로한 백병전을 시도하여 성과를 거두나 무모한 행동을 이유로 좌천당했습니다.

끝으로 영국 해군의 지휘관은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아니라 찰스 하워드입니다.
4940 2015-09-27 11:40:54 9
역사게시판 절필선언 [새창]
2015/09/27 06:09:52
공론 따위로 포장할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최소한 의견 개진을 하려면 여지껏 어떠한 문제로 이야기를 했고 어느 선 까지 진행이 되었는가를 파악할수 있어야 지요, 그나마도 제대로 된 논증 따위 없이 트롤링과 어그로를 끄는게 무슨 공론입니까? 어설프게 공론을 정한다고 떠드시는데 말이야 쉽죠, 근데 같은 말을 얼마나 더 해야 되고, 얼마나 더 자기 말만 떠들고 안들려 안보여 하는걸 들어줘야 합니까? 이게 공론입니까? 의견 수렴도 수렴 나름이지 전혀 진행 과정에 신경도 안쓰고 떠드는게 무슨 공론입니까,

또한 공지를 만드는데 하루 이틀 상황보고 결정한것 같아요? 수십 수백번을 떠들고 또 이야기를 듣고 수용하려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결과 나온 공지가 무슨 하루 이틀만에 너 맘에 안드니 가이드로 강제하겠다 라고 만든건가요?
4939 2015-09-27 10:24:33 0
이순신의 전술과 해상전의 패러다임 [새창]
2015/09/27 04:05:55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빠르게 기동하며 접근하는 상대를 두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사격을 퍼붓는다는 것은 바람과 해류를 타고 움직이던 범선의 시대에는 더욱이 롤링과 피칭등 사거리에 변화를 주는 요인등을 고려하면 성립할수가 없지요, 물론 순수한 화약 병기의 화력만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말입니다.
4938 2015-09-27 10:18:36 15
역사게시판 절필선언 [새창]
2015/09/27 06:09:52
의견을 수렴할때는 가만히 있다가 정해지려 하니까 온갖 트롤링에 어그로를 끄는 게 왜 용납해야 하는 행위인지? 꼰대들 마인드 운운하시는데 저 양반들 논거가 뭐가 있는지는 보셨나요? 그냥 안들려 안보여 내말 안들어주는 니들이 틀렸어 이게 전부인데 대체 이게 무슨 논거가 되는지요?

거기에 방문회수 1의 난장질이 왜 용납해야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오히려 지나친 말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쿨병에 걸리신것으로밖에 안보여요.
4937 2015-09-27 08:05:03 18
역사게시판 절필선언 [새창]
2015/09/27 06:09:52
대다수의 반대의견들이 의미없는 트롤링에 어그로로 점철되다시피한 현 상황을 반론이라 부를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대로 건설적인 반론이라면 누가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것이며 누가 절필 선언을 하겠습니까, 참 의미없는 난장판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밖에 할수없겠네요.
4936 2015-09-27 07:19:44 1
이순신의 전술과 해상전의 패러다임 [새창]
2015/09/27 04:05:55
덧붙여 쓰다가 와이파이가 끊겨 글이 날아갔는데 다시 써보자면 당시의 해전은 복잡미묘합니다, 세키부네를 기준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를가 없던 배수량 차를 돌파하고 빠른 접전을 통해 공성전이나 다를게 없던 현실에서 승기를 잡아야 했던 일본군이나 일정한 사거리의 이상적인 화력투사는 내연기관의 발전뒤에나 나오는 현실에서 하향사격이 불가능하는 등 화약 병기의 제약을 극복해야 했던 조선군의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의 지휘는 분명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나 수백년 뒤의 전술을 끌어오리 만큼 굉장했던 것도 기존의 전술을 혁파 했던 것도 아닙니다.

비단 조선 수군의 공터 위에 새로운 건물을 세운게 아니라 관리를 잘하신것이지요.
4935 2015-09-27 06:58:53 1
이순신의 전술과 해상전의 패러다임 [새창]
2015/09/27 04:05:55
일단 휴대폰이라 짧게나마 답글을 달아보자면 첫번째로 중 원거리 포격전 위주로 왜군을 상대하셨다고 하시지만 이거 불가능한게 사실입니다, 가령 수조규식을 보자면 조선 수군이 보유한 총통의 최대 사거리는 롤링과 피칭을 고려하여 200보 조총의 사거리는 100보 활은 50보입니다. 즉 200 - 240m의 사거리가 최대인 현실에서 중 원거리전으로 전투를 풀어나갔으리라 단언할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교리 교범을 고치지 않은 이상 무리이지요.

두번째로 다른 답글과 합쳐지는 부분이나 이순신 장군의 피해가 적었던 것은 판옥선의 특징상 전고를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합니다, 무슨 말이신지 잘 이해가 안가실수 있겠습니다만 세키부네 고바야등의 전고를 생각해볼때 이 문제는 상당히 큰 전술적 잇점을 가져오는바 이순신 장군의 전투에 있어 사상자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들은 중 원거리 전 위주가 아닌 화력전이 뒤섞이고 곁들어진 접근전 위주의 당시의 전투 상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요리조리 피하며 화포로 농락한다고 하시는데 기록상 등장하는 묘사는 둘째치고 하향사격이 불가능한 현실과 롤링 피칭 등에 따른 사거리 감소 문제 등 부터가 극복이 안되는 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럴것이다 라고 단언하는 것은 무리이지요, 또한 일본이 이순신 장군의 능력을 높게 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메구레부네와 같은 배를 만든 것이 이순신 장군의 전술적 패러다임을 논할 계제는 아닌 것이 이순싯 장군이 거북선을 만든 사람도 아니고 일본이 해상전에서의 화기 사용에 미숙했던 것도 아닙니다.
4934 2015-09-27 01:19:28 0
두서없이 작성한 이순신 장군의 전술적 패러다임의 혁파의 문제입니다, [새창]
2015/09/27 01:04:09
일단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나폴레옹의 경우 전술이나 사고의 틀을 바꾸었다 보기는 힘들지요, 탱크의 경우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참호전에 대한 돌파책으로 제시된 것이고 말입니다, 이러한 언급하신 사례들과 다르게 기존의 조선 수군을 가지고 조선 수군이 내포하고 있던 한계를 넘었다 라고 봐야 하겠습니다만 본문에서 언급드린바와 같이 그렇게 보기는 힘든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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