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3
2015-09-27 12:17:51
0
제가 말하는 전술적 패러다임의 문제는 화포의 사거리, 판옥선의 건조 목적, 세키 부네등 적선과의 체급차,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격을 유지하는 것의 불가능함을 들어 설명드렸지요, 언급하신 근대적 함선전의 기초를 말씀하시지만 하향사격과 같은 문제는 둘째치고 하다 못해 체계화된 수치 체계도 없던 상황에서 뭘 더 이야기 해야할까요?
또한 조선 수군이 화력전을 위시로한 백병전을 펼쳤다는 사실이나 화력전이 근거리에 기초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기록에 나온바, 이순신의 그 것을 보자면 가령 임진 장초를 들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이순신이 올린 장계중 하나를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當日曉頭, 移到唐項浦外口, 俄有一倭船, 果自海口而出爲白去乙, 僉使不意突衝. 一船所騎, 幾至百有餘名, 而我船先放地·玄字銃筒, 一邊長·片箭·鐵丸·蒺藜炮·大發火等, 連續射投爲白乎亦中, 賊倭等, 奔遑罔措, 退遁設計次, 要鉤金以牽出中洋, 半餘投水沈死.
당항포에 도착했더니 왜선 한척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여 접근한 뒤' 총통을 쏘고 질려통을 비릇한 활과 철환등 개인화기를 투척하여 적을 살상하며 이후 접선을 위해 요구금 즉 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내었더니 반수 이상이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기록입니다.
두번째로 1598년 흥양 현감 최희량이 군선을 건조하며 보고한 문서를 보면 소철환과 화살이 여타의 그 것들 보다 많은 것을 볼수 있습니다, 즉 인명 살상이 주 목적인바 어디까지나 조선 수군의 전술은 백병전을 회피하되 거부하지는 않는 것임을 알수 있지요.
그리고 왜구보다 강한 조선병사라는건 대체 어디에서 나온 말입니까? 그리고 지휘관의 능력이 전술적 패러다임의 혁파로 이어지나요? 뭔가 새로운 전술을 창안하고 규범화 시킨것도 아니고 새로운 무기 체계를 만든것도 아닌 그냥 있던 인력과 물자를 활용하고 지휘를 잘 하여 승리한 것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