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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8 2016-01-04 19:01:4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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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대중적 지성에 대한 모독이자 오염이라는 강경한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만 오히려 그 부분은 제가 더 느끼는게 뭐냐면 이러한 강단 학계 카르텔 설은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라는 거죠, 가령 학계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뭘 어쩌고 있다는 것인가요? 아니 늘 궁금한건데 환빠 소위 말하는 유사 역사학자들이 무슨 논문을 제출하였으며 제대로 된 논거나 만들었습니까?

당장 본문에서 언급하는 위대한 역사 학자 어쩌고 하는 윤내현씨처럼 결론을 만들고 줄기를 만들며 기껏해야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를 덧붙이고 있지요, 이런걸 볼때 타 학자들에게 반론을 받고 논파를 당하는게 배척이라고 착각하시는게 아닐까 궁금해집니다, 근데 그 건 비단 유사역사학자들만 겪는게 아닐텐데 왜 학계가 배척하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참 궁금하기 이를데 없지요, 자신들의 주장을 가다듬고 숙고하여 틀린 부분을 수정하고 하는 일련의 아주 기초적인 과정은 대체 어디가있는겁니까? 거기에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이들을 친일이니 알바니 뭐니 하는 맹목적 비난은 왜 하는건가요? 내 주장은 손하나 댈게 없는 완벽한 주장인데 감히 손을 댄다 뭐 그런건가요? 그런데 그런건 누가 보증하는겁니까?

그리고 이병도가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폭력과 음모를 행사한다는데 그게 뭔가요? 오히려 일제에 반하는 주장을 펼치며 지나친 국수주의로 후대의 제자들을 비릇한 학계에서 많은 비판을 들으신 분이라 오히려 주장에 반하는 논증인바 한심하고 허접하다고 보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5547 2016-01-04 18:10:44 1
I Love You, Leon [새창]
2016/01/03 11:40:09
진짜 금손은 존재하는 거였군요.,
5546 2016-01-04 18:09:4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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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걸로 따지자면 환단고기도 읽히기야 많이 읽혔지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한 것일까요? 또한 그 책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책일까요?
5545 2016-01-04 18:07:5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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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가 있겠습니까, 풍---2님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김태식 교수는 임나일본부이라는 명칭을 부정하고 안라왜신관으로 교정한것에서 알수 있듯 외교적, 정치적 타협의 결과 탄생한 가야에 위치해있던 기관이라는 것인데 이게 열도의 자치 정권을 인정하거나 혹은 가능성을 열어둔 내용이겠습니까? 이걸 유사 역사라고 볼수 있을까요? 유사 역사학자라는 건 본문에 나오시는 김상태 교수라던가 윤내현 교수 같은 사람들이지요.
5544 2016-01-04 16:37: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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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사기를 무조건 적으로 믿는다는건 얼마전에 올라온 게시물에서 물론 말이 안되는 주장이었습니다만 국학이 종교위에 세워진 학문이라는 이야기처럼 역사 라는 학문 체계는 종교 위에 세워진 학문이라는 거죠, 아닌 말로 사람이 수백년씩 살고, 마이너스 열 세살 부터 이름을 알리는게 말이나 될까요; 이게 과연 그렇게 비판하는 일본서기에 대한 무조건 적인 신봉과 뭐가 다른지 참 궁금해집니다, 내로 남불도 아니고 말이지요;
5543 2016-01-04 16:29:2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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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무 위키를 떠나 강단 학계 카르텔 설은 너무 우려먹어서 사골도 안나오는 철지난 떡밥이기는 하지요, 물론 비유로 든 쇠말뚝 이론도 답없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윤내현 교수의 주장도 가령 골자가 되는 주장에 대하여 환단고기를 근거로 삼는 것을 보면 만만치 않은 문제가 상당합니다, 그런 학자를 위대한 학자 운운하며 타 학자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깎아내리는 걸 보면 영 그렇지요;
5542 2016-01-04 16:19: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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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나무 위키의 평가를 빌자면 이런 사람입니다,

https://namu.wiki/w/%EA%B9%80%EC%83%81%ED%83%9C(%EC%9E%AC%EC%95%BC%EC%82%AC%ED%95%99%EC%9E%90)

해당 학자의 설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라는 말 그대로 내용이 어떻든 자기가 생각하는데로 자기 할말만 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 주장에 있어 신뢰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5541 2016-01-03 15:03:18 0
정우성, "내 잘생김에 반기들면 쿠데타 수준이죠." [새창]
2016/01/03 12:04:43
하...세월은 내가 다 먹는건가, 저 형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네요.
5540 2016-01-03 11:46: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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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게 초기 로마의 기록간 의견이 분분하나 대저 신뢰성을 따지자면 자체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속령의 인력과 자원에 기댔던 것을 떠나 그 역사를 로마의 역사를 통틀어 볼때 국가의 자체적인 능력보다는 대저 상선의 징발이나 속령의 인력과 자원 등에 기댔던 점이 큽니다, 비단 전간기뿐만 아니라 후기 로마 역시 유럽의 그 것들 처럼 상선을 징발하거나 베네치아, 제노바 등 여타의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했지요, 즉 일장일단이 있으니 동아시아의 그 것이나 유럽의 수군은 크게 다를바가 없습니다, 보다 해양에 필요성을 통해 관심을 기울였으나 아니냐의 차이정도이지요.
5539 2016-01-03 11:41: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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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상황은 영 좋지 않았던게 어디까지나 선원은 해군에 포함이 안되는 존재로 선주가 알아서 모아야 했던 것이 사실이라 어찌본다면 훨씬 낙후되어 있던 점도 있던게 사실입니다, 즉 기본적인 운영 자체는 소속을 떠나 해군의 자율적 체제에 방임되어 있었으며 그 때문에 사략선단이 큰 인기를 끌수 밖에 없었지요, 더군다니 제임스 1세때는 모든 왕실 소유의 군선의 출항을 금지하는 한편 민간에 발급되면 사략 면허를 중단시키는 바람에 해군의 존폐 위기까지 내몰렸으며 이후에 찰스 1세 당시에 해군 재건을 위하여 투입된 자금은 고작 15만 파운드로 재건은 커녕 선원들 월급 주기도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5538 2016-01-03 11:36:5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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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영국 해군을 보자면 그 시작은 국가가 아닌 민간 군사 조직과의 계약을 통해 시작했습니다, 플랜태저넷의 에드워드 1세의 윤허 아래에 영국 해협에 인접한 헤이스팅스, 도버, 샌드위치, 롬니, 하이스의 5개의 항구 도시들이 신퀘 포트 Cinque Ports 즉 5개의 항구라는 이름 아래에 서섹스부터 켄트에 이르르는 해안 지역의 사법권을 행사하여 평시에는 해적 등을 처리하다 전시에는 왕실에 선박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한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따로 군선이 있었던게 아니라 이러한 민간 선박들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비릇하여 북방의 야만족 스코틀랜드 등과의 전쟁에 있어 주력이 되었습니다, 군정과 민정이 분리되며 왕실 소유의 선박이 주요한 전력이 되는건 뒤의 헨리 8세의 치세에 이르러 겨우 일어난 일입니다.
5537 2016-01-03 09:46: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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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은 둘로 나뉘어 6개월 마다 교대하되 전시에는 한번에 모이는 구조였으니 상비군에 준한다 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5536 2016-01-03 03:54:17 2
미영전쟁에 대해 알아보자 - 1편 - [새창]
2016/01/02 18:31:06
본문 중간의 1807년 체사피크 호 사건이라면 상선이 아니라 미 해군 소속 프리깃입니다, 그 것도 침몰이 아니라 나포이고 말입니다, 정확히는 3명 사망 십수명 부상 4명 납치인데 당시에 영국 수군의 처우가 비단 그 들만 그런건 아닙니다만 열악하다 보니 탈영이 빈번했고 이러한 탈영병들이 미 해군이나 미국의 상선으로 재 취업을 많이 하다보니 탈영병 재입영의 권리를 내세워 이러한 강제 검열 및 나포 행위를 많이 했지요.

문제는 이제 이 사건의 후속조치로 제퍼슨이 세계 어느 항구든 미 선박이 국외에 정박하지 못하도록한 사실상의 쇄국 정책인 출항 금지법을 만들어 경제를 아작냈다는 점입니다;
5535 2016-01-03 03:35: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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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상비군의 기록은 역시나 수군의 그 것과 마찬가지롵조선 시대의 기록들 안에서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오위도총부와 금군으로 시작하여 훈련도감에 이르기까지 중앙군은 늘 존재 했지요,
5534 2016-01-03 03:23:45 1
[새창]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조선 수군의 함선은 사사로이 민간의 상선으로 전용된 바 없습니다, 포작선이라 하여 고기 잡이등 잡무에 쓰이는 선박이 따로 있고 비전시에 조운선으로 쓰이는 맹선이 있지요.

그리고 조선 수군의 유지 근간은 전간기의 유럽의 해군 조직과 비슷하게 자급 자족입니다, 고기 잡이와 둔전으로 유지를 했는데 실상 조선군의 사정은 대동소이한터라 사병으로서의 복무가 그 성질상 형벌로서의 의미가 크다는 걸 빼면 조선군에서 수군만 특별한건 아닙니다. 군수 물자는 중앙의 군기 별조청을 비릇하여 각 지방의 진 영등에서 수요에 따라 제작 배비되었고 말입니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기록들은 중앙에 보고서로 올라가거나 역으로 중앙에서의 상세한 기록들로 남아있습니다, 가령 대중적인 자료로서 비변사등록이라던가 만기요람등이 하는게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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