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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9 23: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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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나마 답변을 드려보자면
1, 같은 경우 어찌보면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합리적 이었습니다, 능력만 있다면 신분 고하, 계층 무엇도 상관하지 않고 높은 자리가 보장되어 있었지요, 가령 저 아래의 미관 말직 부터 원나라의 각 왕국들의 요직 예컨데 왕부 몽골어로는 비치케치 라 하는 이들에 이르기 까지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꿈꾸고 또 해낼수 있었습니다.
2. 간과되는 부분입니다만 원나라 성립 이전 칭 기스 칸 시절 부터 대규모 원정에는 반드시 보급로의 사전 정리 작업과 보급창의 건설이 수반되었습니다, 그러한 잘 짜여진 보급로를 통해 원활한 원정을 펼칠수 있었고, 원나라 시기 이후?부터 거의 모든 칸 국에서 자주 실시되었던 전쟁은 약탈 전쟁으로 해당 지역의 점령이나 통치가 목적이 아닌 물자, 인력 등에 대한 강탈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이러한 약탈 전쟁은 멀리까지는 안 나갑니다,
3.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이 된다면 가리지 않고 다루가치로 뽑아 식읍의 통치를 맡기는 것도 정책중 하나이겠지만 그 지역의 유지들, 그러니까 몽골의 화북 점령 시기 몽골 정부에 귀부한 한인세족들로 기존에 보유한 세력을 인정받아 지배계층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았던 이 들의 자제들을 왕가로 보내어 볼모 + 세뇌?의 작업을 거치는 것도 통치 정책이었고 무엇보다 통혼을 통하여 강한 결속력을 구축하는 정책이 중요하게 실시되었습니다.
통제력이 미치지 못한 화북지역에 출현한 향촌자치집단의 수령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 식읍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통제력을 강화시키며, 정치적 역량을 증대시킨다는 서로에게 매우 유익한 '거래'가 오고간 것인데 가령 옷치긴 왕가에서 화북의 한인 군벌 이단에게 왕가의 여식을 시집보낸다거나 이단의 적자를 식읍의 총관으로 임명한다거나 아릭 부케와의 대립시 이단의 군세와 연합을 하였다는 것 등은 이러한 사안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수 있겠지요.
4. 서방 원정의 이유는 너무나 다양해서 포괄적으로 설명드리기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