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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8 2016-01-19 11:39:03 4
신라에게 만주까지 정복하라고 기대하는 건 사실 무리한 거죠. [새창]
2016/01/19 10:47:21


5967 2016-01-19 10:30:11 1
일제시대 경제성장에 대한 통계의 문제점. 사족 첨부. [새창]
2016/01/18 23:56:14
한국 GDP 신뢰도 조사 링크를 보았는데 그건 요 근래 조사 결과 아닌가요? 정확한 조사 기간과 소스도 파악되지 못한 상황에서 신뢰성을 논하는 건 좀 무리라고 봅니다, 더욱이 저 자료는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자료로 한국이 아닌 일본 제국의 자료입니다, 그 것에 한국 GDP 의 신뢰성을 대입하기는 좀 어렵겠지요.
5966 2016-01-19 10:28:49 5
일제시대 경제성장에 대한 통계의 문제점. 사족 첨부. [새창]
2016/01/18 23:56:14


5965 2016-01-19 10:26:13 1
역사아동도서 보면 왜 이케 엉터리가 많죠? [새창]
2016/01/19 10:13:34

작가분들을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대개는 전공자 분들과 거리가 먼데다, 애시당초 목적이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는 거리가 멀어 원하는 내용만 담기 마련이지요,
5964 2016-01-19 10:24:01 6
84년전 경성천도 검토-일본 수도가 서울에 들어선다면? [새창]
2016/01/19 09:27:38


5963 2016-01-19 10:23:47 5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5962 2016-01-19 00:18:56 59
우리집 멍멍이 중성화 수술을 문의하려고 동물 병원에 전화를 했다 [새창]
2016/01/18 18:34:09


5961 2016-01-18 23:58:45 2
일제시대 경제성장에 대한 통계의 문제점. 사족 첨부. [새창]
2016/01/18 23:56:14
뭐 역사 게시판이라는 게시판은 운영 팀장이 거하게 불지르고 운영자님이 공지를 버렸을때 진작 끝나기는 했지요.
5960 2016-01-18 23:49:25 0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혹여나 덧붙이자면 인프라 라는 측면에서 분명 당대의 동아시아 일대에서 일본 제국 만큼 다종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되어 있던 나라도 없을 겁니다, 그러한 인프라가 의외로 잘 살아남아 한국 전쟁으로 인한 부흥기에 큰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러한 인프라 라는게 일본 제국 시절에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중일전쟁 등 주요한 전란의 요인으로 만들어지고 배비되어졌고 엔화 블록이라 통칭될 식민지 및 영향권 내의 국가와 지역들로 지탱되었지요,
5959 2016-01-18 23:30:45 0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IF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만 군부 독재가 일어나든 아니든 뭔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겠지요, 그 이후의 일은 저도 예상하기는 참 그렇습니다만 경제난으로 문민 정부를 아작낸 대중들이 그때를 넘겨 다시 경제난을 맞이했을때 어떤 행동을 할지는 너무나 당연한 일일겁니다.

다만 분명하게 현실적인 내용을 보자면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생산력과 인프라에 한계점을 맞이한 일본에 전환점을 안겨준 한국 전쟁을 무시할수는 없는 노릇일겁니다, 미군정에 의하여 통제되고 억압된 내수 시장과 인프라 일체를 부활시키는 한편 비슷한 길을 걸어간 독일과 다르게 그 들의 국제 사회의 복귀를 용이하게 만들어버린 이 사건은 작금의 일본에 빼놓을수 없는 일 이겠지요;
5957 2016-01-18 23:20:41 0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여담으로 하나 더하자면 20년대 일본 제국의 민중들이 문민 정부를 끌어내리고 군부 독재를 용인하든 아니든 일본 경제는 심각한 위협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섬유 관련 직군이 난초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간략하게 나마 적어보자면 영국의 경우 직공 1인당 기기는 평균 6대가 배비되는 반면 일본은 평균 40대가 배비됩니다, 근무시간도 영국은 8시간인데 반해 일본은 8시간 반에 2교대이지요, 거기다 직공들의 임금도 30-36년 동안 절반 이상 떨어질 정도로 낮은터라 가격이 매우 저렴하였고 매년 10%이상씩 가격을 낮춰가며 덤핑을 시도하여 인도, 이집트 가릴것 없이 유럽 열강과 미국 등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에 인도는 일본 면포에 50%의 관세를 영국은 75%의 관세를 매기는 등 불공평 관세를 매기는 것으로 화답하였고 호주, 네덜란드 등은 수입 할당제를 매겨버렸습니다, 뭐 아직은 금본위제에서 이탈한 이후의 엔화 가치 하락으로 버틸수 있다지만 35년 이후 꺾여버린 수출세에서 볼수 있듯 뭐 그 것도 하루 이틀일이지요, 거기에 다른 완구, 고무신, 종이, 전구 등의 제품군에 있어서도 관세 인상과 비관세 정책 강화등으로 나가는 터라 미래가 암담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5956 2016-01-18 23:01:24 0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요점만 꼽아보자면 1기업 1독점 체제가 용인되었고, 오로지 수입/수출 시장을 일본으로 한정 지었으며 닛산을 비릇한 주요 기업이 이전하였고, 정부가 경제를 주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덕택에 중공업 관련 경제 성장을 할수 있었지요,
5955 2016-01-18 22:59:17 4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22345&s_no=22345&kind=search&search_table_name=history&page=1&keyfield=subject&keyword=%EB%A7%8C%EC%A3%BC

끝으로 이전에 미욱하게나마 관련 글을 작성하기는 했습니다만 옮겨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만주국 산업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된 37년에 일본의 공업력 확충에 대한 장기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육군성'은 37년 중순에 중요 산업에 대한 5개년 계획의 개요를 발표, 일본과 만주 일대를 묶어 하나의 경제 블록화를 추구하는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즉 제조업 생산량의 단순 수치 비교로 4배가 넘는 소련에 맞서기 위한 나름의 최선의 방책을 수립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중일 전쟁입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 막대한 자원의 소모에 따라 이를 확충하기 위한 것으로 본디 관동군은 산업 개발 5개년 계획에 그 들이 소모하는 병기며 관련 군수품을 자급 자족하기 위한 이상을 투영하였습니다만 육군성은 원료 산지 및 반가공 제품 산지로서의 만주를 요구 했고, 이 것이 받아들여져 38년 초에 만주국은 산업 개발 5개년 계획을 개정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이 엄청난 국가적 프로젝트가 단순하게 정부 주도의 출자로만 이루어질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가뜩이나 돈이 없어 교본에서 설명하는 현실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바람에 중세 수준의 보병 돌격이나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닛산의 아유카와 요시스케, 가와사키 조선소의 마츠카타 고지로, 니혼 질소의 노구치 시타가오 등의 제계 인사들을 초청 현장을 시찰하고 경제 개발 계획의 초안을 공개 자문을 구하고자 한바 이 시찰이 끝나고 귀국한 아유카와 요시스케는 몇가지 문제를 지적하는데 첫째로 '육군성'의 이 경제 계획 및 관리는 정말 기초적인 수준으로 아무런 산업간 조율이나 체계적 분업 관리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른바 Big Push로 산업간 상호 보완을 통하여 서로간의 효율성을 증진시켜 나갈수 있으므로 연관된 기업들이 함께 확장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호 보완은 종래의 국가의 개입이 아닌 민간의 개입이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문제는 이제 돈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37년 만주국의 한해 수입은 27억엔에 불과했습니다만 만주국 산업 개발 5개년 계획에는 약 29억엔, 그 개정안에는 약 50억엔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이 돈이 있느냐 하면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바 있지만 타 병과와의 공조, 보다 원활한 지휘 통제를 위한 통신 수단의 구비, 지원 화력과 백병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수 있는 야간전의 강조, 그리고 임무형 지휘 체계, 정신력을 뒷받침 해줄 든든한 지원 화력이라는 육군 교리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사각 편제를 돈이 없어 삼각 편제로 수정하는 상황에서 돈을 더 짜낼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 아유카와 요시스케는 미국에서의 출자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아유카와 요시스케의 지적과 개선안 제시는 '육군성'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 들은 아유카와 요시스케의 닛산이 이 5개년 계획에 참여하여 자동차 및 항공기 산업 분야를 맡아주기를 원했습니다만 아유카와 요시스케는 더 나아가 5개년 계획의 중공업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고나리를 원했고, 그 댓가로 당시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닛산 그룹 전체를 만주국으로 이전 할것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상호간의 요구 사항을 조율 한 끝에 37년 10월 첫째로 원철 및 제철, 경금속, 항공기, 제탄 등의 분야를 관할하는 정부와 닛산 그룹이 지분의 반씩을 나누어 가지는 새로운 기업체를 만들며 두번째로 해당 기업은 해외 자본 유치에 주력하고, 세번째로 본 산업과 해당 기업에 대한 만주국의 특별 조치가 보장되며 네번째로 이 산업은 일본 재계에서 뽑힌 적임자인 아유카와 요시스케에게 일임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주국 중공업 수립 개요가 수립됩니다.

이에 따라 닛산 본사는 만주국의 수도 신킹으로 이전하는 한편 만주국 중공업 개발사 관리법에 따라 만주국의 특수 기업으로 등록되었고, 닛산의 사명은 만주국 중공업 개발사 MHID 로 개명되게 됩니다, 그리고 만주국으로 부터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로 부터 Showa Steel, Manchuria Coal Mining, Manchuria Light Metals, Dowa Auto mobile 을 인수 하는 한편 Manchuria Mining, Manshu Magnesium, Dongbiandao Development, Manchuria Aircraft Manufacturing 등을 설립하여 대규모 중공업 기업체를 이룩하는데 문제는 이후의 상황이 아유카와 요시스케나 육군성이 예상한 그 것 처럼 이상적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중일 전쟁이 장기화 되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난징 점령 이후 고노에 후지마로 수상이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고 선포한 이래에 단기 결전은 꿈도 못꿀일로 변해버린게 문제인데, 중일 전쟁이 장기화 됨에 따라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사실상 파탄이 나버렸고, 이미 시행되고 있던 국제 무역 및 자본에 대한 제제가 더욱 가열차게 변해버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만주국의 경우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75%에 달할정도로 매우 높았던 터라 전쟁이 장기화 되며 자본주의는 사라지고 계획 경제만이 남은 일본의 수출입 통제는 만주국의 경제에 더할나위없는 큰 타격을 안겨주었고 직접적인 외화와의 교환이 불가능하기에 일본을 거쳐야 했던 외국 자본의 도입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개발 5개년 계획은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물자 징발과 통제를 더할수 있겠지요, 38년 6월 일본의 물자 징발령에 따라 만주국은 일본의 물자징발령에 대한 민주국의 기여에 대한 제반 지침을 수립합니다, 예컨데 물자 징발령에 전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것으로 일본과의 이어진 회담을 통해 합의한 내용을 보면 기존의 외국으로 부터 수입해온 전략 물자중 선철, 석탄, 식량 등은 일본의 요구에 되도록 따르도록 하며, 산업 개발에 필요한 장비의 대부분은 일본을 통해서만 수입하도록 한다는 것이 그 것입니다.
5954 2016-01-18 22:57:41 4
일제시기 조선과 아시아 식민국가 경제성장률 비교 [새창]
2016/01/18 22:04:59
예컨데 이제 막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던 과도기이기는 합니다, 중국의 방적업의 발전과 대對엔화 블록 그리고 수입 관세 인상에 직면한 일본이 현지에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자 하였고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위하여 조선과 만주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였지요, 더 나아가 날이 갈수록 뒤틀리는 세계 질서 속에 미국과 영국의 블록을 떠나 자체적인 원료 수입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그 과실이 무르익지는 않았지요.

그저 만주국의 개발에 따라 위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만 금속류와 기계 등 각종 자재의 수출이 늘었고 수출 시장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로 넒어졌습니다, 대 중국 무역시장이 줄어든 만큼 이제 만주국을 비릇한 제 3세계로 눈을 돌린 것인데 뭐 아시다시피 이후의 상황은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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