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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3 2016-01-30 23:59:04 0
이제는 멸종한 작업방식 [새창]
2016/01/30 20:02:22
https://namu.wiki/w/%EB%A7%88%EB%B2%95%EA%B8%B0%EC%82%AC%20%EB%A0%88%EC%9D%B4%EC%96%B4%EC%8A%A4

작품 소개는 대강 위와 같습니다, 아무튼 본문을 보니 방송 시간 맞춰볼려고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6162 2016-01-30 23:57:52 0
이제는 멸종한 작업방식 [새창]
2016/01/30 20:02:22
마법기사 레이어스요.
6161 2016-01-30 23:18:43 4
왠일로 차단 유저들이 생겼네요... [새창]
2016/01/30 20:42:51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22328

재가입하셨나요? 화이트피그님? 아 낙타파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아니면 김진수 님이라고 해야할까요? 요즘 예토전생 시즌인지 많은 분들이 돌아오시네요.
6160 2016-01-30 21:27:45 0
왠일로 차단 유저들이 생겼네요... [새창]
2016/01/30 20:42:51
아 저는 그 동안 아무리 신고가 들어가도 안되길래 운영자님이 손대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고 누적 차단이던가요?
6159 2016-01-30 20:59:17 5
왠일로 차단 유저들이 생겼네요... [새창]
2016/01/30 20:42:51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기는 합니다, 아예 잊어버리신건 아닌가 봅니다.
6158 2016-01-30 14:11:08 0
몽골 군대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새창]
2016/01/29 10:45:48
상기 답글과 묶어서 답변 드리자면 카사르가 충성심이 없다고 말씀드린바 없습니다, 카사르와 징 기스칸 그러니까 테무친 간의 불화를 말씀드린 것이지요, 카사르의 경우 집사와 몽골 비사를 통틀어 냉대가 지속됩니다, 말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보답받지 못하는 충성만 지속될뿐 카사르에 대한 어떠한 옷치긴과 같은 다른 형제와 같은 대우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가령 카사르를 죽이려 했던 사건을 보자면 "영원한 하늘의 목소리가 칸을 계시해 말합니다, 한번은 테무진이 세상을 쥐지만 그 뒤는 카사르가 잇습니다, 지금 카사르를 막지 않으면 어찌될지 알수가 없습니다." 라는 텝 텡그리의 발언 하나입니다, 그 이전에도 불화는 지속되었으나 이 사건으로 그는 어머니 후엘룬의 절규마저도 무시하고 그의 분봉을 빼앗고 내쫓다시피 하게 되지요.

다만 그러한 태도는 비단 카사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 후엘룬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은 립 서비스만 존재할뿐 몽골 부족을 지탱해온 그녀와의 뿌리 깊은 갈등을 해결할 어떠한 노력도 무엇도 없었습니다,

칭기즈 칸이 어머니에게, 아들들에게, 아우들에게 백성을 나누어 주겠다며. "나라를 모으며 고생하신 것은 어머니다. 내 아들들 가운데 맏이는 조치다. 내 아우들 가운데 가장 어린 것은 테무게 막내다." 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막내의 몫과 함께 1만의 백성들을 주었다.

어머니는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몽골비사

두번째로 몽골 제국이 유목민 계의 혁신인 이유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성문법 야삭 Jasaq, 암살이 일상화된 초원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왕권을 뒷받침 해줄 친위대 케식Kheshig, 초원 특유의 이기주의에서 기반하는 분리적 성격을 근멸해줄 천호제도의 도입, 그리고 기존의 귀족들에게서 특권을 박탈하고 새로운 지도층을 만들고자 한 분봉제도에 따른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말 그대로 유목 민족을 그대로 담습하여 크기만 키운 세력이 반복된바 이와 같은 체계적인 건국 사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번째로 몽골군이라고 무조건 기마 궁수로 이루어진 군대는 아닙니다, 기마 궁수는 전통적인 이미지 일뿐 실상 몽골군은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병종을 혼합하여 효율을 극도로 이끌어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경도 땅도 없다 하시지만 유목민 시절부터 영역 다툼은 전통적인 문제였고 국가를 이룬 후에도 원정에 앞서 보급로를 정비하고 병참 기지를 건설하는 등 전쟁에 앞서 어떠한 경우에도 보급을 유지할수 있도록 치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6157 2016-01-29 22:03:31 0
몽골 군대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새창]
2016/01/29 10:45:48
본문에 첨언하자면 카사르는 징 기스칸의 최대의 적 중 하나였고, 카사르 역시 징기스칸에게 어떠한 충성심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는 카사르의 문제가 아니라 돌아오지 못하는 보답 받지 못하는 충성과 혈연 관계 마저도 하나의 이용 가치 있는 무언가로 바라보았던 문제에서 비릇되는 것으로 이미 이복 동생을 죽인 전적이 있는 그에게 두번째 세번째의 숙청은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문제는 몽골 비사의 후엘룬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전기에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6156 2016-01-28 18:59:08 1
조선왕조가 생존하는데 성공했다면이란 문제제기가 더 정확하죠. [새창]
2016/01/28 18:34:34
문제는 그렇게 버틸 여력이 되는가 입니다, 생각해봐도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요, 거기에 외교적 관념도 청나라와 대동소이하게 옛 관념을 고수하고 있으니 참 그렇지요, 물론 당시에 일본을 마땅히 견제할 국가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6155 2016-01-28 18:51:50 0
조선왕조가 생존하는데 성공했다면이란 문제제기가 더 정확하죠. [새창]
2016/01/28 18:34:34
뭐 이래저래 계기가 부족했지요, 세계 유수의 강대국이 되어버린 일본을 견제할 어떠한 외교적 노력, 물론 당시 세계 정세로는 일본을 견제할 방안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아무튼 그러한 최소한의 노력도 너무나 늦게 자각해버렸고, 그렇다고 뭔가 국가의 근간을 뒤엎고 새롭게 정립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터부요 금기인 상황에서 어떠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그러니까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한 새로운 나라, 정치 체제라던가 하는 것들은 30년대에 이르러서야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니 말입니다.
6154 2016-01-27 20:25:57 0
어깨 방어구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새창]
2016/01/27 14:52:18
어떻게 본다면 언급하신 팔랑기타이와 매우 흡사합니다, 둘 다 대 기병이 아닌 대 보병을 고려하여 장창병이 탄생, 발전하였고 창 길이나 패용법도 유사하지요, 다만 다른 점은 가령 일본의 경우 오티스모스 즉 가벼운 구보로 체중을 실어 밀어 찌르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인데, 실상 그 것만 빼면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6153 2016-01-27 20:02:08 1
어깨 방어구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새창]
2016/01/27 14:52:18

제가 필력이 부족하고 글이 두서 없어 어떻게 전달이 안될것 같아 자료 하나 첨부해봅니다, 보시다시피 집단전의 기본은 일본도 역시나 방진이기는 한데, 장창의 사용법에는 비단 찌르기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6152 2016-01-27 19:56:26 1
어깨 방어구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새창]
2016/01/27 14:52:18
휘둘러 내려치는 것은 나가에야리의 다양한 사용법 중 하나입니다, 일부 가문에서는 무게추까지 달아 위력을 증대시킬정도로 4.5m~6m 에 이르는 긴 창을 원심력을 담아 휘둘러 내려치는것은 꽤나 위력적이었지요, 다만 통상적인 전법은 야리부스마 라고 하는 밀집 진형입니다, 네 우리가 생각하는 장창병의 방진 이지요,
6151 2016-01-27 17:54:15 0
오늘 영화 '사도'를 봤는데요... [새창]
2016/01/27 17:47:32
권력이라는게 가족이고 뭐고 없고 사실 그럴수 밖에 없으니 참 왕위 계승 서열이 높은 왕족이라는게 불쌍하지요.
6150 2016-01-27 17:52:45 1
조선-대한제국 군사제도 개혁 글 보충- 기기창 운영을 중심으로 [새창]
2016/01/26 16:27:52
뒤늦게 답글을 보니 오해할 만한 구석이 있어 덧붙이자면 말씀하신 것 처럼 어떤 경우가 아니라 20mm를 제외하면 전부 각 케이스가 동일한 기관총을 복제한거라는 겁니다, 89식/97식은 비커즈 E 기관총을 면허 생산했는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89식 선회 기관총과 89식 고정 기관총은 원본이 호치키스 기관총과 영국산 비커즈 E 기관총으로 서로 다른 종류이고 개발 시기도 다릅니다,

Ho-103/3식은 브라우닝 M2를 베이스로 했는데 육군은 정식으로 수입한 것을 해군은 노획한 것을 두고 복제 한정도인데, 여기에서 육군은 그 교리에 있어 전투기에 큰 화력을 중요시 않은 탓에 뒤에 화력 부족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에 대구경 화기의 도입을 서두르는바 그에 따라 사용되던 것이 중일 전쟁 당시 수입한 이탈리아산 폭격기 피아트 BR20의 대공 기총을 복제한 Ho-102 였고 그때 사용하던 12.7mm 작렬탄을 보급상의 잇점과 위력등을 이유로 그대로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반면 해군은 브라우닝 M2를 역설계한 3식 13mm 기관총과 브레다, 스코티 그리고 윌리콘 14mm 기관총 중에 하나를 고르려 했는데 브레다는 위력도 낮으면서 30kg에 육박할 정도로 무거워서, 스코티는 기능 불량으로 배제되었고 윌리콘 14mm는 3식 13mm과 비슷한 성적을 보였으나 93식 기관총의 탄환을 그대로 쓸수 있는 군수 보급 상의 잇점탓에 3식 13mm 기관총이 채택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시기를 보면 Ho-103은 개전 초기에 이미 도입된 바 있지만 3식 13mm 기관총은 44년 4월에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육군이 처음에 고를수 있는 선택지에는 해군의 99식 1호,2호 20mm 기관총 같은 것도 있었다는 말인데 지리하게 나오는 양측의 갈등과 기타 문제로 분리된 군수산업의 문제와 기존에 잘 쓰고 있던 탄환의 보급상의 잇점등을 이유로 배제되었지요, 반대로 해군 역시 Ho-103을 고를수 있었습니다만 역시나...그렇습니다.;
6149 2016-01-27 17:15:59 6
[새창]
소말리아, 무주공산 분위기에 걸맞게 돌아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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