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8
2016-01-30 14:11:08
0
상기 답글과 묶어서 답변 드리자면 카사르가 충성심이 없다고 말씀드린바 없습니다, 카사르와 징 기스칸 그러니까 테무친 간의 불화를 말씀드린 것이지요, 카사르의 경우 집사와 몽골 비사를 통틀어 냉대가 지속됩니다, 말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보답받지 못하는 충성만 지속될뿐 카사르에 대한 어떠한 옷치긴과 같은 다른 형제와 같은 대우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가령 카사르를 죽이려 했던 사건을 보자면 "영원한 하늘의 목소리가 칸을 계시해 말합니다, 한번은 테무진이 세상을 쥐지만 그 뒤는 카사르가 잇습니다, 지금 카사르를 막지 않으면 어찌될지 알수가 없습니다." 라는 텝 텡그리의 발언 하나입니다, 그 이전에도 불화는 지속되었으나 이 사건으로 그는 어머니 후엘룬의 절규마저도 무시하고 그의 분봉을 빼앗고 내쫓다시피 하게 되지요.
다만 그러한 태도는 비단 카사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 후엘룬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은 립 서비스만 존재할뿐 몽골 부족을 지탱해온 그녀와의 뿌리 깊은 갈등을 해결할 어떠한 노력도 무엇도 없었습니다,
칭기즈 칸이 어머니에게, 아들들에게, 아우들에게 백성을 나누어 주겠다며. "나라를 모으며 고생하신 것은 어머니다. 내 아들들 가운데 맏이는 조치다. 내 아우들 가운데 가장 어린 것은 테무게 막내다." 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막내의 몫과 함께 1만의 백성들을 주었다.
어머니는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몽골비사
두번째로 몽골 제국이 유목민 계의 혁신인 이유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성문법 야삭 Jasaq, 암살이 일상화된 초원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왕권을 뒷받침 해줄 친위대 케식Kheshig, 초원 특유의 이기주의에서 기반하는 분리적 성격을 근멸해줄 천호제도의 도입, 그리고 기존의 귀족들에게서 특권을 박탈하고 새로운 지도층을 만들고자 한 분봉제도에 따른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말 그대로 유목 민족을 그대로 담습하여 크기만 키운 세력이 반복된바 이와 같은 체계적인 건국 사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번째로 몽골군이라고 무조건 기마 궁수로 이루어진 군대는 아닙니다, 기마 궁수는 전통적인 이미지 일뿐 실상 몽골군은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병종을 혼합하여 효율을 극도로 이끌어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경도 땅도 없다 하시지만 유목민 시절부터 영역 다툼은 전통적인 문제였고 국가를 이룬 후에도 원정에 앞서 보급로를 정비하고 병참 기지를 건설하는 등 전쟁에 앞서 어떠한 경우에도 보급을 유지할수 있도록 치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