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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3 2016-02-14 10:31:17 0
100년전 감기약.jpg [새창]
2016/02/13 19:52:04
10~20년대 말에 유통된 라듐 강장제로군요, 참 지금봐도 재밌는게 어떻게 라듐을 먹고 마시고 그 빛을 쬔다고 일광욕을 하는 것처럼 피부 미용과 피로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봤는지 말입니다.
6252 2016-02-14 10:16:14 2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병신같은 인식이니 알바니 하는 개소리를 내뱉으셨으니 좋은 소리를 들으실려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네 그런 의미에서 좀 거칠게 위의 것 까지 묶어서 답변드리자면 가서 답글이나 읽어보세요, 헤게모니니 뭐니 하는 헛소리 내뱉기 이전에 누가 일본은 나쁘지 않다, 군부의 폭주가 문제다 같은 개 소리를 했는지 부터 설명하는게 우선 아닌가요? 어디서 일본을 옹호하고 있는지 부터 설명하시지요? 뉴라이트 알바니 뭐니 하는 개소리를 내뱉으시기 이전에 독해력부터 키우세요.

그리고 태평양 전쟁 발발 이전에 헐 노트니 뭐니 하는 미국과의 교섭에 있어 일본의 식민지 문제가 거론 됬을것 같아요? 진심으로? 자기가 뭘 말하는지 정도는 좀 조사를 해보고 오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는게 그 렇게 당당한 일인지 참 궁금하네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if는 없다지만 미국의 요구 교섭을 받아들였으면 지금 만주국과 우리나라 당시 조선 식민지 일체는 미 독립 상태로 흘러갔습니다, 이건 일본을 옹호하고 뭐하는 지랄같은게 아니라 애시당초 미국의 요구 사항에 독립이니 뭐니 하는 그런거 없다는 사실입니다.
6251 2016-02-14 10:12:11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일단 왜 명분, 실리, 계획이 없다고 생각하시는지 부터 설명을 해주셔야 할것 같은데요? 노구교 사건이 조작이라 밝혀진 것은 뒤의 일이고, 만주 사변이후에 정전협약이 맺어졌음에도 물론 군벌들 간에 통일 노선은 없다지만 끊임없는 분쟁이 반복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요, 아 물론 이게 전쟁이 된 것은 그러니까 중국이 일본에게 정식으로 선전 포고를 한 것은 태평양 전쟁 발발 전쟁 이후의 일이니 사실 태평양전쟁 이전의 그 것을 전쟁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것도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실리가 없다 라고 하시는데 중일전쟁을 이야기 하자면 만주국을 제외하면 이야기 할수 없는바 만주국이 왜 만들어졌고, 거기에 무슨 이득이 있는지 아실텐데요?
끝으로 계획이 없다고 하시는데 중일 전쟁을 이야기하셨으니 3대 섬멸전이나 대륙 타통 작전, 일본군의 진격 등에 대하여 잘 아실텐데 왜 없다 라고 단언하시는지요? 아 물론 자원 및 인프라의 부족 등에서 비릇되는 문제나 이를테면 국가 레벨의 플랜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중일 전쟁의 여러 작전 계획들을 무시할건 아닐텐데요?
6250 2016-02-13 22:25:30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일단 일본의 입장에서는 중일 전쟁은 명분도 있었고, 실리도 있었으며,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난 군부의 폭주를 이유로 이러한 사실들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요, 두번째로 켈로그-브리앙 조약이나 중일 전쟁동안 벌어진 민간인 문제를 두고 오갔던 이야기를 보면 알수 있지만 서구 열강의 현실 정치인들도 인도적인 마인드는 있었습니다,

세번째로 중일 전쟁 만이 이유는 아닙니다, 가령 미국은 일본의 남방 진출을 가속화 시킬 추축군과의 동맹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일본은 중국을 비릇한 동 아시아에서의 이권 보장을 요구 하고 있었고, 그걸 보장할수 있는 추축군과의 동맹을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해군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가 영국과 미국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여 추축군과의 동맹을 반대하고 있었지만 육군을 중심으로 하는 찬성파는 추축군과의 동맹이 영국과 미국을 견제하여 그 들로 하여금 아시아로의 침탈을 막을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번째로 외교전을 펼쳤던건 사실인데요? 고노에 수상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정상 회담이 비단 양측의 시각차로 인하여 불발되었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약속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몇개월간 벌어진 외교전 결과 부각된 양측의 입장은요? 그리고 미국은 중일전쟁 자체를 반대한게 아닙니다, 사실 헐 노트를 보면 아시겠지만 거기에 대하여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국 및 동맹국 민간인들에 대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대중의 여론을 빼고는 별반 관심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2차세계대전 발발 직후의 독일이 독일은 중국에 대한 문호 개방 원칙을 지지하여 중일 전쟁을 끝낼것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에게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는가 하면 군수 물자의 수출을 거리낌 없이 행하였는 등 중일전쟁에 대하여 일본의 반대측에 있었지요.

끝으로 답글은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계신건지 잘 모르겠네요, 2차 고노에 개각이 단행되며 일본의 전제 주의 정권은 이 시점을 시작으로 내달리게 되니 말이지요, 비단 이 시기부터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만 국민들은 어려운 경제를 이유로 끝없는 근검 절약을 요구 받았고, 노동 운동은 사회악으로 치부되었으며 국가는 정권 유착을 통한 제계를 정부의 손아귀에 쥐게 되었고, 각 정당들은 해체되어 대정익찬회로 통합되었는데 모든 국가에 대한 영토 및 주권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내정 간섭 금지, 문호 개방 원칙을 포함한 일체의 평등을 골자로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겠습니까? 그랬으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을리가 없겠지요.
6249 2016-02-13 22:07:38 0
100년전 감기약.jpg [새창]
2016/02/13 15:38:51
일단 미국의 상황을 놓고 보자면 대마초의 이용 자체는 30년대 중엽에 금지되었습니다만 40년대 초에도 공공연하게 유통되는 형편이었고 의료적 행위에 대한 이용은 70년대 초 부터 알콜 중독 및 헤로인, 암페타민 등 각종 마약 중독에 대한 치료제로서 주목 받으며 점차 인가되고 있는 상황이지요.

헤로인을 비릇한 마약은 1910년인가 인종 차별주의자 해밀턴 라이트가 마약을 복용한 흑인들이 백인 여성을 강간하고 약탈을 일삼는다는 내용의 조작된 보고서를 올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바 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19세기 말엽부터 샌프란시스코와 버지니아등 각 지역마다 아편을 금지하는 자체적인 조례와 법안을 통과 시키기는 했습니다만 사회적으로 아편을 떠나 보다 저렴하고 규제도 적었기에 수요가 급증했던 헤로인과 모르핀까지 화두가 된건 이 인종차별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지요.;

아무튼 국제 마약 협약인 헤이그 협약을 전후하여 1911년에 발안자인 프랜시스 버튼 해리슨의 이름을 딴 해리슨 법안이 통과되어 의사와 약제사, 판매상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각 판매 상황을 기록하는 것이 의무화 되었습니다만 문제는 법안의 허점이 너무나 큰 탓에 1910년대 말엽에 오히려 진료소가 폐쇄되고 의사들이 구속되는 등 마약 근절에는 별 효용도 없었고 인식도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6248 2016-02-13 21:10:19 0
100년전 감기약.jpg [새창]
2016/02/13 19:52:04
https://ceb.nlm.nih.gov/fdanj/handle/123456789/65401

일단 연도에 대한 출처는 상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대마초는 상기 언급된 미국에서 30년대 중엽~말기에 의료 연구 행위를 비릇한 모든 이용이 불법이 되었다 70년대 초엽부터인가? 점차 의료용으로 풀려나는 분위기였고 지금은 미국의 주별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 물론 비슷한 사정의 영국은 단 한차례도 금지된바 없지만요;
6247 2016-02-13 21:00:04 0
100년전 감기약.jpg [새창]
2016/02/13 15:38:51
https://ceb.nlm.nih.gov/fdanj/handle/123456789/65401

좀 더 찾아보니 산업 혁명까지는 아니고 미국에서 1930년대 초반에 나온 감기약 이더군요.
6246 2016-02-13 20:58:06 0
100년전 감기약.jpg [새창]
2016/02/13 19:52:04
100년 전은 아니고 1930년대 초반 미국에서 나온 감기약입니다, 우리가 마약이라 부르는 의약품이 터부시 된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지요.
6245 2016-02-13 20:56:45 3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굽시니스트의 명 대사에 가려진 사실이지만 당시에 일본 제국은 미국에게 사실상 거의 모든 물자를 차단 당한 상황이라 정말 멸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지요, 그러하기에 외교적으로 미일 양국에서 치열하게 외교전을 펼치며 상황을 해결하기를 갈망했지만 이해하기에는 서로의 시각이 너무나 달랐고 무엇보다 군부의 폭주를 막을 길이 없어 전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보면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와는 좀 거리가 먼게 사실입니다, 오히려 협상은 더 이상 없다는 사실만을 말해줄 따름이지요.

아 물론 인적, 물적 인프라나 각종 물자의 배비, 그에 따른 기술적 발전 등을 놓고 볼때 결과론적으로 답이 없던것도 맞고 무엇보다 당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켜 준 탓에 우리가 그나마 독립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6244 2016-02-12 23:46:58 4
삼별초의난은 민족적 항쟁인가 [새창]
2016/02/12 21:32:25
대칸 계승에 앞서 분봉에 따른 여러 문제가 앞을 가리기에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가 아니더라도 황금씨족이 됬으리라 봅니다, 사실 몽골이 전쟁 초기부터 줄곧 요구하던 사실들에서도 볼수 있습니다만 그 들이 원한건 제후국으로서 예속된 자신을 위해 한표를 던져줄 고려라는 결과물이지 해체되어 각 제후들에게 분배되어 자신들의 목을 물어뜯을 무언가는 아니었지요.

아 물론 세조구제는 정말 신의 한수이기는 합니다, 제후국으로서 예속되 있는 상황에서 쿠빌라이의 손을 잡으며 얻은 이 세조구제로 정통성을 지킬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수 없지요.
6243 2016-02-12 23:06:41 3
삼별초의난은 민족적 항쟁인가 [새창]
2016/02/12 21:32:25
혹여나 덧붙이자면 고려를 멸망시킨다면 전통에 따라 분봉을 해야하는데 가뜩이나 남송 등 원정지마다 분봉을 통하여 국력을 키워나가는 가신들을 배부르게 해줄 이유나 여유 같은게 없었지요.; 특히나 유목민의 전통에 따라 가문을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재산을 상속 받는데다, 징기스칸의 직계 혈족중 가장 순위권 높으신 분이 수도의 지근거리에서 이를 들어내고 있으니 고려를 멸망 시킬 이유가 없는게 사실입니다, 차라리 거의 유일무이하게 제대로 된 국가에 말을 그나마 알아듣는 고려를 살려두고 황금씨족으로 삼아 자신의 패를 늘리는게 더 이득이지요;
6242 2016-02-12 23:04:24 3
삼별초의난은 민족적 항쟁인가 [새창]
2016/02/12 21:32:25
항복 타이밍이 좋았다기 보다는 그냥 지리학적 여건이 끝내줬습니다, 동방 3왕가라고 하는 정통성과 국력을 두루 가진데다 무엇보다 원나라를 탐탁치 않게 여기시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칸의 자리를 노리는 징기스칸의 막내 옷치긴을 필두로 하여 모인 나라들이 바로 위에 있기에 원나라로서는 손을 내밀지 않을수 없었고 그러하기에 전쟁 내내 멸망과 복속이 아닌 대화를 요구했지요.
6241 2016-02-11 23:52:49 5
실증적인 이병도의 식민사관 서술 ( 48년 새국사교본 ) [새창]
2016/02/11 17:41:46
미안한데 진짜 난독증 심하신것 같아요, 아 신고를 하시던 말던 그건 상관없습니다, 님께서 훈제 청어던지고 눈가리고 귀막은채 빼애액 거리시는게 어디 하루 이틀일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최소한 뭔가 상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정도는 들어야지요, 본인 할말만 내뱉고 부들거리실게 아니라 말입니다.
6240 2016-02-11 23:51:23 4
실증적인 이병도의 식민사관 서술 ( 48년 새국사교본 ) [새창]
2016/02/11 17:41:46
아 미안한데 말입니다 답글은 좀 읽으세요, 여기서 주류학계를 지켜야 한다고 나선 사람이 누구입니까? 더불어 교과서는 역사 학계의 팜플렛도 무엇도 아니에요, 경전처럼 떠받들기 이전에 그 말씀하시는 상식을 좀 가지세요, 학습의 방향성과 목적을 설정하고 만들어지는 교재가 정말 학계의 모든 걸 대변해준다고 보세요? 그렇게 따지자면 누차 드는 사례이고 구렁이 담넘어가듯 피하시는 주제입니다만 대체 60-70년대 학계에서 한창 구석기 연구를 할때 교과서에 한줄 실리지 못하고 교과서 마다 서로 의견이 갈렸던건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6239 2016-02-11 23:42:43 5
실증적인 이병도의 식민사관 서술 ( 48년 새국사교본 ) [새창]
2016/02/11 17:41:46
그러니까 일제 시대에 진단 학회를 창립한 것을 비릇한 그의 학문적 성과는 뭐냐니까 왜 대답을 못하시고 어물쩍 넘기십니까? 그의 학문적 성과에 식민 사관이 들어간게 뭐가 있냐니까요? 딴소리 운운하며 훈제청어 던지시는데 조선사 편수회와 조선사에 대하여 위 답글에 반론이나 해보세요, 조선사 편찬 요지부터 그 내용에 이르기까지 지금 님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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