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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3 2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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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본의 입장에서는 중일 전쟁은 명분도 있었고, 실리도 있었으며,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난 군부의 폭주를 이유로 이러한 사실들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요, 두번째로 켈로그-브리앙 조약이나 중일 전쟁동안 벌어진 민간인 문제를 두고 오갔던 이야기를 보면 알수 있지만 서구 열강의 현실 정치인들도 인도적인 마인드는 있었습니다,
세번째로 중일 전쟁 만이 이유는 아닙니다, 가령 미국은 일본의 남방 진출을 가속화 시킬 추축군과의 동맹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일본은 중국을 비릇한 동 아시아에서의 이권 보장을 요구 하고 있었고, 그걸 보장할수 있는 추축군과의 동맹을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해군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가 영국과 미국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여 추축군과의 동맹을 반대하고 있었지만 육군을 중심으로 하는 찬성파는 추축군과의 동맹이 영국과 미국을 견제하여 그 들로 하여금 아시아로의 침탈을 막을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번째로 외교전을 펼쳤던건 사실인데요? 고노에 수상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정상 회담이 비단 양측의 시각차로 인하여 불발되었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약속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몇개월간 벌어진 외교전 결과 부각된 양측의 입장은요? 그리고 미국은 중일전쟁 자체를 반대한게 아닙니다, 사실 헐 노트를 보면 아시겠지만 거기에 대하여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국 및 동맹국 민간인들에 대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대중의 여론을 빼고는 별반 관심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2차세계대전 발발 직후의 독일이 독일은 중국에 대한 문호 개방 원칙을 지지하여 중일 전쟁을 끝낼것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에게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는가 하면 군수 물자의 수출을 거리낌 없이 행하였는 등 중일전쟁에 대하여 일본의 반대측에 있었지요.
끝으로 답글은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계신건지 잘 모르겠네요, 2차 고노에 개각이 단행되며 일본의 전제 주의 정권은 이 시점을 시작으로 내달리게 되니 말이지요, 비단 이 시기부터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만 국민들은 어려운 경제를 이유로 끝없는 근검 절약을 요구 받았고, 노동 운동은 사회악으로 치부되었으며 국가는 정권 유착을 통한 제계를 정부의 손아귀에 쥐게 되었고, 각 정당들은 해체되어 대정익찬회로 통합되었는데 모든 국가에 대한 영토 및 주권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내정 간섭 금지, 문호 개방 원칙을 포함한 일체의 평등을 골자로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겠습니까? 그랬으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을리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