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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8 2016-02-14 23:07:57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네 당사자끼리 정전 협약을 통하여 매듭 지었습니다, 즉 중국이나 일본이나 모두가 당시에 벌어진 일련의 국지전에 따른 사건으로 당사자끼리 인정한 사실을 당시의 상황으로 볼때 명분이 안된다는 사실은 뭘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여타 부타 말할것도 없이 그 사실을 입증하시면 깔끔하게 해결될 문제이지요, 지금이야 그 사건에 대하여 결과론적으로 일본측의 조작이나 제대로된 조사가 없었던 점을 말할수 있겠습니다만 당시의 상황으로 볼때 명분이 안될게 뭐가 있나요?
6267 2016-02-14 22:57:22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답글을 다는 사이에 이어서 답글을 달아주셨는데 앞서도 수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총격을 당했다는 사건에 대한 증거가 병사가 아닙니다, 병사는 총격에 대한 피해자로 추정되었을따름이고 보고가 올라간 뒤 얼마 안되어 확인되었으나 묵인되었습니다, 그게 전부에요, 총격을 포함한 일련의 문제는 당시 이어진 일련의 국지전으로 중국측의 행동으로 상호 간에 확인되고 정전이 협의되어 매듭지어졌지요,
6266 2016-02-14 22:54:38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윗 답글에서 설명드린 내용 반복하실 필요 없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사건을 가지고 일본군이 명분을 들고 나왔다는 사실이지요, 당시 중국군은 앞서 하응음 우메즈 협정의 배경처럼 현실적으로 벌어질 사태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안고 있었고 더 나아가 송철원은 자신의 세력을 보전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일본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에 따라 소극적으로 나온 것은 당연한 문제인터 왜 같은 문제에 있어 중국이 일본과 같은 대응을 하지 않았느냐는 반문은 이 사건이 당시의 명분이 될수 없었다는 논증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6265 2016-02-14 22:47:45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답글이나 읽어보세요, 그 총격에 관하여 바로 윗 답글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지금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 명분을 가질만 한 상황에서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에 따라 벌어진 국지전에 있어 중국 측도 그러한 일본 제국의 입장을 수긍했습니다, 여기에서 일본 제국의 명분이 당시에 성립될수 없는 이유가 뭔가요? 지금이야 그 것이 가진 문제를 말할수 있고 저도 인정합니다만 당시에 그 것이 명분이 될수 없었다고 볼수 있습니까? 뭘 가지고요? 당사자들도 합의하고 인정했는데요?
6264 2016-02-14 22:29:35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당시 당고 정전 협정과 하응흠 - 우메즈 협정을 통해 북평은 무주공산이었고 일본군은 북평 동북지역과 만리 장성을 잇는 지역을 점유하여 삼면에 걸쳐 북평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북평은 오로지 노구교를 통해 내륙과 연결된 섬과 같은 형태로 하북성 일대는 총 병력 8만여명의 송철원의 서북군 그러니까 제 29군이 맡고 있었으며 영정하와 완평성, 노구교 일대는 제29군 산하 풍치안의 제37사단이 날로 가열화 되어 가는 관동군의 압박에 대하여 마지노선이나 다를바 없는 일촉즉발의 태세로 틀어 막고 있었습니다, 물론 국지전은 시시때때로 발발하여 뒤에 가서는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까지 불거졌으니 할말 다한셈이지요, 증거가 있느냐고 하시면 오히려 참 당황스러운게 당시의 정황은 확인하시고 하는 말씀이신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그러한 상황속에 발생한 이 문제를 쉽게 말해서 비유를 들자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GDP에 누군가 총격을 가했는데 이 것을 가지고 북한의 소행이라 단정 짓는 거에요, 물론 총기 오발사고 일수도 있고 어떤 다른 문제가 있을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러한 조사를 일절 생략하고 그냥 북한이라고 하는 겁니다,

당시 일본 제국의 입장이 그거에요, 누군가 총격을 가했는데 현재 우리의 상황을 놓고 볼때 중국군외에는 대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는 이후의 중국 측과의 현장 협정에서도 확인된바, 중국측의 기록에는 언급하신대로 총성을 빌미로 사건을 일으킨 일본측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당시에 양측 모두 여지껏 벌어져온 국지전을 상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회담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별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 하에 본군에게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노구교 일대의 중국군을 철수시키는 한편 배일운동을 자제해 달라는 일본측의 요구에 따랐습니다.

그게 이 사건의 전부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볼때 일본의 자작극이거나 혹은 과잉 반응일수 있겠지요, 네 그런데 당시 일본 제국의 입장 하에서는 아군이 공격받은 사건이며 명분이 될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중국측도 현장에서 전정 협의를 통해 동의를 했지요.
6263 2016-02-14 22:12:32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그럼 대체 누가 총을 쏜걸까요? 상식적으로 그 것이 일본 군의 자작 행위라 판단할 소지가 무엇이 있었습니까? 당장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협정이 맺어진 배경에서 볼수 있듯이 이러한 무력 충돌은 그러니까 일본과 중국 측의 국지전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으며 비록 진지 공사를 하던 수십명 노무자들을 철수 시켰다고 하나 야간 훈련을 하던 곳은 중국군의 작전 관할 지역으로 협의 없이 무단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고 중국측은 일단 묵인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거기에 지나 주둔군에서 다른 부대가 사격 훈련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 뭔가 착각을 하시는데 중국군이 공격을 했고, 병사 한명이 무단 이탈을 하였다는게 당시 중일 양측의 결론이었습니다, 지금 하시는 판단은 작금의 시각에서 내리는 결과론적 이야기에 불과하지요.
6262 2016-02-14 22:05:35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네 그러니까 병사의 실종과 별개로 그 공격이 중국군에 의하여 가해진 것에 대하여 어떤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이후의 협정에서 볼수 있다시피 이건 중국군의 행동이라는 결론이 당시의 사실이었어요, 우리야 이후에 보니 이게 조작극이다 뭐다 할뿐이지요.
6261 2016-02-14 21:54:33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답글을 다는 사이에 이어 답글을 작성해주셨는데 실종 타이밍에 우연히 총성이 난게 아니라 훈련 도중 가해진 공격 이후에 병사들을 수습하여 피해 상황을 확인해보니 이등병 한명이 사라져 있었던 겁니다, 진짜 이 사건에 대하여 전혀 모르시고 계셨네요;
6260 2016-02-14 21:53:25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지금 뭔가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데 노구교 사건의 요지는 훈련을 하던 일본군이 공격을 받았고, 그 공격 이후에 확인을 해보니 병사 한명이 실종되었다 입니다, 여기서 병사의 문제를 두고 이후 중국 측과 합동 수사반을 조직하여 찾아보니 그 병사는 설사를 이유로 점호에서 무단으로 빠졌다는게 확인이 되었지요, 그런데 일본군이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떠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까? 그 공격을 가한 상대가 당시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중국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뭘로 입증이 되었나요? 결국 이후에 이 것은 일본군의 자작극임이 밝혀졌지 당시에는 아무 것도 밝혀진바 없습니다, 오히려 노구교 사변 현지 협정을 통하여 그 것이 기정 사실화 되었을뿐이지요.
6259 2016-02-14 21:44:08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상기 답글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병사의 실종에 관하여 뭐라고 적어놓았던가요?
6258 2016-02-14 20:57:01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저기 말입니다, 사실의 정의 운운하시는데 노구교 사건이 조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건 뒤에 일입니다, 당시에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국지전 및 야간 훈련 지역 등의 상황을 고려할때 가장 유력한 대상은 중국 군이었고 그 외의 대상을 고려하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당장 그 뒤에 맺어진 노구교 사변 현지 협정 내용만 보더라도 일본군에게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 노구교 일대에서 중국군의 철수, 배일운동의 단속 등 일련의 억지를 안고 있는 내용들에 있어 그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조사에 앞서 상호간에 피아문제가 확실한 것을 확인할수 있고 이 사건의 용의자로 중국군이 물망에 올랐던게 사실입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당시 남경 정부의 영향력이 상실된 일대에 있어 어느 군벌인가까지 될수도 있었겠지만 그 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에 밝혀진 사실로 볼때 일본의 자작극임이 밝혀졌지 당시에 일본의 자작극임을 확인할수 있는 어떠한 논거도 없었지요, 저는 여기서 오히려 반문드리고 싶으신데 당시에 일본의 자작극이었다는 것을 중일 모두가 확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뭘로 주장하시는겁니까? 자작극임이 확인되었다면 왜 중국 정부가 그 억지를 들어주며 협정을 맺은 것이며 별도의 조사를 요구하지 않은거죠?
6257 2016-02-14 19:55:27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지금 노구교 사건이 뭔지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개략적으로 기술해보자면 7월 7일 노구교 동쪽 중국군 관할 지역에서 별도의 협의 없이 무단으로 야간 훈련 중인 지나 주둔군 소속 제 1연대 산하 8중대를 향해 수 발의 총탄이 날아 들었고 이에 훈련을 중지하고 병력을 수습한 이후에 중대장 시미즈 대위가 병력을 점호하니 이등병 1명이 실종 상태인 것을 확인하였고 성급하게 사상자로 판단하여 본대에 보고하였고 이치키 소좌를 거쳐 무다구치 대좌까지 보고가 올라갔는데 이에 무다구치는 완평현성에 주둔한 중국군과의 교섭을 명령하였고 다음날 새벽 4시에 완평현장 왕냉제와 일본측 특무기관장 마쓰이 다쿠로가 만나 실종된 병사를 찾기 위한 합동 수사반을 조직할 것을 협의합니다, 그에 따라 발견된 병사가 사실은 설사를 이유로 자리를 비웠던 것임이 확인 된 것이지 누가 사격을 가했는가는 확인된게 아니지요,

이것이 확인된 것은 중후일인터 당시에 명분이 되지 않는다고 볼수가 없는데다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나 여타 시각에서 사실로 판단된게 아니라고 주장하는건 이 사건이 어떻게 발생되었고 해결되었으며 흘러갔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에요,
6256 2016-02-14 18:47:36 2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그러니까 제가 지금 노구교 사건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건가요? 뒤에 조작이라 밝혀졌지만 당시에는 아니라는 것이고 이는 당시에 벌어진 사건에 있어 얼마든지 명분이 될수 있다는 겁니다,
네 유일한 방법도 아니지요, 그래서 신멸작전과 같은 제노사이드가 중일 전쟁 내내 지속되던가요? 남녕 작전이나 대륙 타통 작전등 당시에 입안되고 실천되었던 작전들이 오로지 제노사이드를 중심으로 계획되고 시행되었습니까? 또한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도 미군과 소련군은 비슷한 상황에 내몰린게 사실입니다, 갖다 댈걸 갖다대는게 맞지요, 왜 일본군이 중국군을 그토록 처절할 정도로 무너뜨림에도 졌는지 중일 전쟁의 경과에 대하여 아무런 배경 이해가 안되시는 것 같은데 합리적 전제를 따질 것 없이 산간오지나 인근 지역으로 적 병력을 밀어내기만 하여 점령지에 늘 잔존한 중국군과 침투한 적병력이 상주해있던 당시의 경과를 보면 너무나 당연한 문제인데요?
끝으로 노구교 사건은 전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맞는데 개전을 결정한건 그 뒤의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것 까지 설명드리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대략적으로 간추려보자면 노구교 사건 이후 진덕순과 마츠이의 정전 협약에 따라 양 병력은 철수하여 원 위치로 돌아갑니다, 물론 그 배경을 보자면 2개 연대에 불과한 지나 주둔군의 전력상 문제로 시간을 벌기 위한 일본의 생각과 하응흠 우메즈 협정으로 하북성에 대한 남경 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된 중국의 현실이 맞아 떨어진 것으로 30여개 사단과 항공 지원 전력을 북상 시킨 장개석의 강경한 태도와는 별개로 하북일대의 방비 태새는 오히려 해제되는 상황을 낳고 당시 군벌들 간의 극히 이기적인 현실을 말해주고 있지요.

이런 문제와 더불어 노구교 사건은 처음 보고되었을때도 그 이후 9일의 임시 각의에서도 확전을 불가하고 외교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11일 육군 강경론자들의 의견에 밀려 확전을 결의하였는데 그 안에서 다시 화북을 제 2의 만주국으로 만드는 의견과 소련을 경계하여 확전을 경계하는 의견이 갈등을 빚었으나 장개석의 대군의 북상 소식에 따라 확전이 보다 우세한 입장에 놓여졌고 그에 따라 관동군 2개 여단 및 조선군 제 20사단의 파병이 승인되었으며 본토에서도 3개 사단 파병이 심의에 올랐습니다.

그러한 정부의 분위기에 지나 주둔군은 처음에는 결사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만 결국 제 29군에 대한 전면 공격 및 북평 공략을 결정하였으며 이와 비슷한 시기에 본토의 3개 사단 파병이 결정되었지요, 거기에 더하여 마치 기름을 붓듯이 8월 9일 일본 해군 육전대 소속 병사가 홍교 공항에서 중국 공군에 의하여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하여 4일 후에 상해에 대한 전면전이 발생하는데 그것과 별개로 이러한 문제 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냐 하면 여산 담화입니다, 왕정위의 친일 유화파를 누르고 장개석, 손자문 등의 구미파가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해 여타 군벌들을 규합하기 위해 연 이 여산 국방 회의에서 장개석의 패기 넘치는 발언에 대하여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무력 사용이 승인되었으며 이후의 북평 천진 일대의 국지전과 북평선에서의 전투 등을 시작으로 전쟁이 벌어지게 됬지요, 지금 노구교 사건 이전에 개전이 결정되었다 말씀하시는건 이 사건에 대하여 전혀 이해는 커녕 배경 지식도 없으시다는 이야기에요,
6255 2016-02-14 16:10:26 1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변호하는게 뭐냐니까요? 일본은 개새끼다 만 반복하0는게 정의입니까? 그게 올바른 기술이에요? 그럼 물자 차단으로 멸망의 위기에 몰린게 거짓이라거나 군부의 폭주가 전쟁의 시발점이 아니라는 논증을 해보세요, 뭔 보는 입장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뭐가 어떻길래 뉴라이트 알바니 뭐니 하는 개소리가 나옵니까?
6254 2016-02-14 16:09:16 1/4
"내가 선빵 때리면 쫄아서 나랑 협상 하겠지?" [새창]
2016/02/13 18:00:28
-조작된 사건이기에 대외적 명분이 없었다는 건 결과론적 주장이지 당시에는 정전 협약중에 일본군이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만 존재하지요, 일본군의 대외 명분이 없었다는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의 문제는 점과 점을 연결하는 사실을 골자로 한 작전 계획과 일선의 장교들의 폭주 등이 문제일따름이지요, 제노사이드 만이 중원을 점령하는 유일한 방법도 무엇도 아닙니다, 당장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에서 미국과 소련 등이 문제가 된 사실만 봐도 명확한 걸요.
- 그러니까 계획이 없다고 단언하시는 이유가 뭐냐니까요? 당장 지나 주둔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본토와 조선 그리고 관동 일대에서 파견된 병력과 물자들은 무엇이며 중국군은 무엇을 위하여 창현-보정방면의 병력을 북경으로 집결시키고 화남, 화중의 병력을 광주에 집결시키는 한편 찰합이성의 병력을 집결시켜 일본군의 측면을 저지하며 평수철도를 사수하고자 했고 유치의 병력으로 제 2방어선을 구축하겠습니까? 사실 이런 문제를 떠나 지금 노구교사변 현지협정과 그에 따른 변화를 전혀 인지하고 계시지 못한게 확실해 보이는데 노구교 사건 이후 중국과 일본은 바로 전쟁을 일으킨게 아니에요,

장제스와 각 군벌간에 의견이 달랐고 생각이 달랐으며 행동이 달랐습니다, 일본이라고 바로 확전을 개시한게 아니라 내부의 해결방침과 확전파와 비확전파의 의견이 또 달랐지요, 시발에 계획성이 없다는건 중일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흘렀는지 전혀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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