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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8 2016-03-06 18:34:17 1
그러고보니 명왕조는 원왕조의 여러 유산을 많이 계승했죠. [새창]
2016/03/06 16:12:20
원나라도 송나라의 도시 시설과 문화들을 고스란히 계승받았지요, 아 물론 금나라의 것들에 더해서요, 그 내역을 보면 참 행정력이 부실하다 보니 해당 지역의 토착 세력과의 융합이 필수적인 터라 혈연 등으로 엮인 세습제를 기반으로 하는 자치제를 도입할수 밖에 없었지요;
6327 2016-03-06 18:31:40 3
원나라의 예술과 과학의 발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다 [새창]
2016/03/06 13:35:21
그러니까 답글에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초기의 대규모 인구 감소는 행정력의 문제에서 오는 유민의 파악 부재가 원인일 가능성을 배재할수 없고, 경제 기반의 파괴과 기타 폭압적 정치를 말씀하시지만 정작 중원의 대부분은 그 지역의 토속 세력?의 세습적인 시스템에 기반을 둔 자치로 돌아갔다고 말입니다, 또 민생경제의 시궁창을 말씀하시지만 나름나름 멀쩡하게 잘 돌아갔습니다,

가령 원나라 시대에 황하가 변동을 일으킨게 13세기 말과 14세기 초입니다, 그런데 13세기 말엽의 변동은 인근 지역의 관개시설이 무력화 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생산성 감소나 기타 문제들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고난과 개죽음을 말씀하시며 철저한 일방적 수탈적 관계에 따른 폭거를 말씀하시지만 정작 강남 일대를 비릇한 자치 지역들에 있어서 민생이 의외의 사실일지 모르나 안정되어 있었다는 논증이라고 볼수 있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허세 정복광으로 비하하십니다만 지금 언급하시는 그 백성들의 다리가 썩어 나갈정도로 수탈을 가했던 시기가 언제이신지 아십니까? 2차 일본 원정입니다, 그리고 그 일본 원정은 충렬왕 스스로가 권문세족들로 대표되는 친원파에 의해 나라가 무너져가자 이를 배제하고 최대한 고려의 가치를 알려 수탈을 줄여보고자 간청드린것이고 말이지요, 그 이전의 1차 원정을 본다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남송과의 전쟁에 있어 남송의 주요한 협력 국가라는 보고에 따라 전쟁을 벌인겁니다, 아무 이유가 없는게 아니에요; 심지어 그 전쟁에 앞서 외교적으로 해결해보려고 노력도 했지요,
6326 2016-03-06 15:05:06 3
원나라의 예술과 과학의 발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다 [새창]
2016/03/06 13:35:21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급격한 생산 인구의 감소라는 부분이 제가 기억하기로는 원 초의 인구 파악 결과일텐데 혼란스러웠던 사회상에 있어 파악되지 않는 인구가 모두 사망 처리 한다는건 좀 아닌것 같습니다; 비단 그러한 파악되지 않은 유민들이 존재하였던 것이 원나라가 들어섰던 시기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6325 2016-03-06 14:57:02 4
원나라의 예술과 과학의 발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다 [새창]
2016/03/06 13:35:21
원나라의 인구 감소는 비단 몽골 발호 이래 몽골인들의 폭거가 주된 원인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인구의 감소의 문제는 1300년대에 중엽에 걸쳐 널리 전파된 흑사병과 같은 원인을 제할수 없을뿐 더러 원나라의 경우 언급하신 행정 체계의 문제로 인하여 강남을 비릇한 주요한 지역은 세습을 기반으로 하는 해당 지역의 자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특정민족을 죽이고 노예로 부리는 인종차별과 폭탈을 언급하시나 정작 원나라의 바탕은 카스트 제도의 교조주의화가 아니라 현실에 맞게 수정되어진 체제입니다, 일부 상류층의 야망 실현 가능 여부와 별개로 그 들 역시 철저하게 현실에 순응할수 밖에 없었어요; 생산 인구의 감소와 생산 기반의 초토화를 말씀하시지만 당장 그렇다면 어떻게 각지의 지방 군벌들이 황금 씨족 체제하에서 중앙 정부를 무시할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워나갔겠습니까?
6324 2016-03-06 14:27:02 7
원나라의 예술과 과학의 발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다 [새창]
2016/03/06 13:35:21
원나라의 근간이 인종차별과 폭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생각보다 원나라의 카스트 제도는 예컨데 널널한 측면이 많습니다, 주요한 지방들은 대개 그 지역의 군벌 및 세도가 들에 의하여 자치 정부 수준의 정치 체제가 성립되어 운영되었으며 그 들은 다시금 혼약 등으로 중앙 정부 및 각 지방 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비단 군벌 및 세도가의 일원이 아니라 할지라도 과거 제도나 각종 군공 등을 통하여 그 능력됨을 입증할수 있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허황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6323 2016-03-06 11:28:07 1
조선시대 과학기술력! [새창]
2016/03/02 20:22:19
진지 먹고 이야기 해보자면 이순신 장군님은 그 뛰어난 업적을 남기심에 있어 조선 수군의 기본적인 전술적 틀에서 벗어나신적이 없으십니다, 사실 원균에게 통제사를 넘길때 그 동안 정말 장졸들과 백성들을 갈아넣다시피 하여 열심히 모아 배비한 화약이 4000근 정도 되지만 현자총통 20문을 기준으로 볼때 1회 사격당 화약이 250근이나 소모되는 현실에서 볼수 있다 시피 경제적 여건도 물론 안되었던게 현실입니다만 임진장초의 기록들에서 볼수 있다 시피 그 전술의 기반은 기존의 화력 투사를 기반으로 하는 백병전을 회피하되 거부하지 않는 전술적 체계를 기반으로 전쟁을 치루어 나갔습니다.

가령 몇가지를 들어보자면 이렇습니다.

當日曉頭, 移到唐項浦外口, 俄有一倭船, 果自海口而出爲白去乙, 僉使不意突衝. 一船所騎, 幾至百有餘名, 而我船先放地·玄字銃筒, 一邊長·片箭·鐵丸·蒺藜炮·大發火等, 連續射投爲白乎亦中, 賊倭等, 奔遑罔措, 退遁設計次, 要鉤金以牽出中洋, 半餘投水沈死.

당항포에 도착했더니 왜선 한척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여 접근한 뒤' 총통을 쏘고 질려통을 비릇한 활과 철환등 개인화기를 투척하여 적을 살상하며 이후 접선을 위해 요구금(쇠갈고리)를 던져 끌어내었더니 반수 이상이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

出洋中, 更令諸將, 鶴翼列陣, 一時齊進, 各放地·玄字·勝字, 各樣銃筒, 先破其二三隻, 則諸船之倭, 挫氣退遁. 而諸將軍吏, 乘勝踴躍, 爭先突進, 箭丸交發, 勢若風雷, 焚船殺賊, 一時殆盡.

바다 가운데 나와 장수들에게 명하여 학익진을 벌려 각종 총통을 각각 쏘아 적선 2~3척을 격침시키니 여러척의 일본군이 그 사기가 떨어져 일시에 도망가려 하여 이에 흥분한 장수들이 승세를 타고 흥분하며 앞다투어 돌격하여 화살과 탄환을 쏘아 적선을 분멸하고 적을 해치웠다.

예컨데 새로운 발명이나 전술의 패러다임 혁파와 같은 요인이 아니라 그럴 여건도 안되었습니다만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인적, 물적 자원을 잘 활용하여 기존의 조선군이 가진 가장 큰 문제라고 할수 있는 훈련도와 시쳇말로 모랄빵을 극복하여 승리를 이끌어내셨지요;
6322 2016-03-06 11:17:37 2
조선시대 과학기술력! [새창]
2016/03/02 20:22:19
그냥 웃자고 하신 이야기 맞지요? 하향사격도 불가능 하던 조선 시대의 장약 시스템 같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6321 2016-03-05 00:56:17 1
2차대전 종전후 한국은 연합국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나요? [새창]
2016/03/04 21:01:20
몇가지 첨언을 두서없이나마 해보자면 존 리드 하지는 그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한 것 처럼 군인이었지 행정가는 아니었지요, 사실 미군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운게 소련 역시 진주한 이래로 온갖 만행을 저지른바 있습니다, 예컨데 행정 실무와 현지의 세력과의 정치적 조율 등을 담당할 유능한 인재의 배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일본 탓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 리드 하지는 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괌이 아닌 미 본토에 5 군단장으로 가있었습니다, 즉 답글에서와 같은 과정은 존재할수 없다고 봐야 하겠지요.; 사실 미 정부의 구체적 업무 지시를 받게 된 것은 한달이 훌쩍 넘은 뒤의 일이고 군정이 가진 한국에 대한 자료라고는 정보부 쪽에서 만든 지리부도 한권과 비행기 안에서 끄적여본 백과사전에 실린 수백년전 조선의 자료가 전부인 상황이니 어쩔수 없는 부분도 있기는 있었겠습니다만 그러한 무지를 분명 협조적 관계를 가질수 밖에 없기는 하나 일본의 문제로만 보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미군정의 선발대가 상륙했을때 환영 행사차 행군하던 노동 조합원을 향해 발포한 것은 일본 경찰의 독단적 행보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와전이 된 것인지 미 군정이 상륙하던 중에 민중을 향해 발포를 했다 라고 되어 있더군요;
6320 2016-03-04 21:16:20 0
2차대전 종전후 한국은 연합국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나요? [새창]
2016/03/04 21:01:20
솔직하게 말해서 한반도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고 거기에 더하여 망명 정부가 존재한다고 하나 통일된 정부도 아닐뿐더러 자주 독립국으로 독립을 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있어 그 것에 따라오는 명확한 시기, 계획, 구성안, 예산 등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의견 일치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자가 누구인지 조차도 명확하지 않았지요, 예컨데 점령군으로 들어온 사실에 대하여 우리가 뭐라고 할 내용이 없기는 합니다,;
6319 2016-03-04 21:07:46 0
2차대전 종전후 한국은 연합국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나요? [새창]
2016/03/04 21:01:20
일단 해방 직후의 상황이라면 포츠담 선언 제 8항의 내용에 기인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일본 제국의 영토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별도의 독립국이 아닌 순수하게 미군이 점령한 지역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카이로 선언에 의거하여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 독립국으로서 독립 시켜야 하기는 했습니다만 그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시된바 없습니다,
6318 2016-03-03 20:33:18 1
구한말 왕실의 재정적자 규모 [새창]
2016/03/02 23:08:52
반쯤은 조롱하는 의미로 쓴 건 맞습니다만 부적절한 측면이 없다고는 못하겠지요.
6317 2016-03-03 20:30:55 3
식민지 근대화론 정면 비판 일제가 두려워한 '일본의 양심' 후세 다쓰지 [새창]
2016/03/03 15:38:55
그렇게 역사 게시판을 비난하시면서 뭐하러 재 가입하십니까, CCKK 님? 아참 잠룡815 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6316 2016-03-03 10:47:47 1
구한말 왕실의 재정적자 규모 [새창]
2016/03/02 23:08:52
하 참 대단하시네요, 싸울 생각이 있네 없네 하시면서 별....
6315 2016-03-03 10:45:21 3
구한말 왕실의 재정적자 규모 [새창]
2016/03/02 23:08:52
그 쪽이 일본 제국에 부들거리는건 잘 알겠는데 지금 하시는 행동은 시쳇말로 말하는 기레기 같은 생각이고 궁예질이에요, 제 답글이 불편하다 뭐다하시는데 하시는 걸 보면 그냥 지난 번 제게 하신 말 그대로 병신같아 보여요.
6314 2016-03-03 10:40:19 3
구한말 왕실의 재정적자 규모 [새창]
2016/03/02 23:08:52
그 건 그 쪽의 되먹지 못한 망상질이고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하다는 말이 어떻게 텐노 헤이카 반자이 같은 일본 제국 측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 되는지 참 신기하기까지 하네요.

덧붙이자면 그 개틀링건을 쏜건 대한 제국군입니다, 수입 루트도 일본 제국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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