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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3 2016-04-28 15:29:31 2
충격) 6.25때 중국의 인해전술로 당한거 사실 아니였어여? [새창]
2016/04/28 14:51:01
그리고 6사단이 적과 조우할때까지 7,8사단이 괴멸 당한줄도 몰랐다고 하는데 초산 전투때 항공 지원은 그럼 누가 요청한것일까요? 초산 전투 첫날에 예비대를 기동시키려다 전력차와 공세 조짐을 파악하고 7사단을 회목동으로 이동지시를 내린건 누구일까요? 까내리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6552 2016-04-28 15:20:58 2
충격) 6.25때 중국의 인해전술로 당한거 사실 아니였어여? [새창]
2016/04/28 14:51:01
그리고 청천강 전투에 대해서도 뭔가 핀트가 엇나간 듯하여 첨언을 넣자면 이미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가 시작된 첫날인 11월 25일에 중공군과 교전을 벌여 적의 규모 등 정보를 습득한바 있습니다, 온정리는 1차 공세의 수많은 전투 중 하나일뿐 첫 전투가 아니지요,

또한 1차 공세 당시 중공군의 문제점은 공군과 해군이 전무하여 지상 전력에 의존할수 밖에 없었으며, 그 지상 전력은 차량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갑전력이 전무하였고 미군 1개 사단과 비교시 군단이 열세에 처할정도로 지원화력이 저렴했으며 그 화력마저 구 일본 제국군과 소련군등 다양한 출처를 통하여 편제된 탓에 통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해 지속력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쉽게 말해서 포탄이 없었습니다, 덧붙이자면 통신장비나 기타 시설, 장비 모두 사단과 비교를 해도 떨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유엔군이 가진 최악의 약점인 넒은 전선에 대비하여 부족한 전력 즉 얆은 전선을 이용하여 기동전과 포위전을 펼쳐 큰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문제는 이 당시 제 8군의 주요한 화력 지원은 모두 미국이 전담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군은 기갑전력이 전무하였으며 지원 화력이 열악했습니다, 영국군의 경우 그럭저럭 편제되었으나 홍콩에서 급하게 파견된 27여단은 오직 보병뿐이었고 이 탓에 군의 좌 우측 최전선에 배비된 한국군은 매우 열악한 상황속에서 악전 고투를 벌일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지요, 이걸 오합지졸로 단순히 낙인찍는건 좀 무리라고 봅니다.;
6551 2016-04-28 14:57:14 1
충격) 6.25때 중국의 인해전술로 당한거 사실 아니였어여? [새창]
2016/04/28 14:51:01
덧붙이자면 전작권 회수와 관련되어 파생된 이 떡밥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으로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적 잔존 병력 소탕 실패를 비릇하여 심지어는 장진호 전투라는 미 해병대 사상 최악의 참사를 만드셨고 이루신바 있는 중공군이 단순한 인해전술로 승리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시켜주시는 유명한 정치 군인이시지요, 인천 상륙 작전의 현실적 문제를 보고 반대했던 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을 약화 시키기 위하여 8군 참모장과 해병대 1사단을 포함한 10군단 군단장의 자리를 안겨주셨던 맥아더 장군의 인선이 여러모로 빛을 발했다 라고도 생각해볼수 있겠습니다.;
6550 2016-04-28 14:55:49 5
충격) 6.25때 중국의 인해전술로 당한거 사실 아니였어여? [새창]
2016/04/28 14:51:01
이전의 답글을 빌어 첨언을 하나 해보자면 현리 전투 떡밥은 참 끊이지 않고 나오네요; 일단 유재흥 장군이 도주했다는건 어디서 나온건지 논거 없는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그렇다 카더라가 이제는 기정 사실화되는 문제로 흡사 쇠말뚝 이야기와 비슷하다고도 생각해볼수 있겠지요.

간략하게 당시 상황을 보자면 오마치 고개는 3군단의 관할 지역으로 거의 유일한 제대로 된 보급로이자 작계상 퇴각로로 지정되어 3군단에서 예비 병력을 일부를 쪼개어 사수하고 있었습니다만 인접한 10군단에게 관할 지역이 넘어가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말 그대로 군단의 생명줄을 타 군단에게 넘겨주면 우리는 어떻게 하냐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결국 8군 사령부까지 개입하게 되었습니다만 문제는 10군단으로서는 별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탓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문제가 터져나온게 현리전투입니다, 중공군이 10군단 지역을 돌파 오마치 고개를 점령하면서 3군단은 유일한 보급로이자 퇴로 상실하여 괴멸의 위기에 봉착하였고 이에 유재흥 장군은 연락기를 타고 고립된 현리에 돌아와 그 지역을 사수하던 3사단 및 9사단장과 작전 회의를 거쳐 오마치 고개를 통한 포위망 돌파를 결정하고 복귀한바 이게 유재흥 장군 적전 도주설의 실체입니다.;

물론 문제가 여기에서 그치는건 아닙니다, 증언을 교차 검증해보자면 좁은 지역에 많은 물자와 장비, 인력이 밀집한 상태에서 적의 포위망 돌파에 실패하자 9사단의 붕괴를 시작으로 3사단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혼란 속에 집단 탈주가 시작됩니다, 네 군단이 붕괴했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이게 유재흥 장군이 적전 도주를 해서 벌어진 문제라 볼수 있을지 저는 일단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휘하의 9사단장의 문제부터 인접한 10군단장 알몬드 장군에 이르기까지 소위말하는 유재흥 찌라시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인물들을 조명하지 못하는게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6549 2016-04-28 08:52:46 1
[단독]연해주서 기원전 3∼4세기 부여 銅劍 첫 발견 [새창]
2016/04/28 08:44:43
발해 유적지에서 수레바퀴 부속품이 발굴된 그 곳이군요, 부여의 유물까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지역적으로 최소한 유서 깊은 정주 지역이었나봅니다.;
6548 2016-04-28 00:01:43 0
태평양전쟁 말기 한국인 출신 카미카제 특공대원.jpg (스압) [새창]
2016/04/27 18:40:59
덧붙여 혹여나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몇글자 적자면 일본에서 조선인과 같은 외지인이 파일럿이 되기 위한 과정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앞서 언급된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관 과정과 뒤에 김재규씨나 본문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무학력자 혹은 저학력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년 비행병 제도로 해군은 문호가 닫혀있었기에 다들 육군에서 지원하는 수 밖에 없었지요.
6547 2016-04-28 00:00:04 3
태평양전쟁 말기 한국인 출신 카미카제 특공대원.jpg (스압) [새창]
2016/04/27 18:40:59
끝으로 재밌는 사실 하나 남겨보자면 많은 유머 커뮤니티 사이트 들에서 반신 살해자(....)로 알려진 전 한국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씨는 육사 60기생이기도 합니다만 소년 비행병 파일럿으로 지원하였다 본대에 편입되기 이전에 전쟁이 끝났지요, 즉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거나 지원이 조금 더 빨랐다면 그 분의 업적은 없었을수 있었다는 겁니다.
6546 2016-04-27 23:57:34 2
태평양전쟁 말기 한국인 출신 카미카제 특공대원.jpg (스압) [새창]
2016/04/27 18:40:59
그리고 씁슬한 이야기입니다만 증언을 본다면 꼭 이렇게 강압적으로 끌려가신 분만 있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가령 하야시 나가모리 그러니까 임장수 라는 분은 그 부친이 평안북도 용천군 남시 시의장을 역임한 골수 친일파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분으로 통신사 였으나 자진하여 특공기에 탑승하고 내지 근무를 권장하는 지휘관을 뿌리치고 아버지에게 이 임무를 반드시 해내겠다는 열의가 담긴 편지를 남기시고 임무에 임하셨습니다,

88년 당시 재일 한국인 2세인 이름이 잘 생각이 안납니다만 아무튼 그 분이 출판 목적으로 조선인 특공대원을 취재 정리하는 과정에서 서울에 생존해 계시던 박병식 씨를 취재한 기록 역시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데 대개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지원제로 운영된 이 특공대에 징병 유예가 종식되는 시점에서 자진 입대를 선택하였고 후에 군 장성을 비릇하여 대한 항공 사장을 비릇한 각계 각층의 생존자를 배출한 이 과정에서 강제 징집은 없었고 지금은 비판 받아 마땅하나 당시에 특공 명령이 내려졌다면 기꺼이 행했을 것이라는 증언을 남기시고 계셨습니다, 예컨데 당시의 연령대를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강압적 선택지만이 존재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거죠.
6545 2016-04-27 23:42:14 0
태평양전쟁 말기 한국인 출신 카미카제 특공대원.jpg (스압) [새창]
2016/04/27 18:40:59
여담입니다만 본문에 언급되는 다찌이라이 육군비행학교의 비화는 비단 2차 세계 대전에서 그치는게 아닙니다, 2천여명의 학생중 60여명 가량 입교해있던 조선인 소년병 파일럿들은 전후 대개 간략한 포로 생활을 거쳐 남북한 공군 근간을 이룬바 한국 전쟁 내내 서로의 목숨을 거둬나갔지요, 그나마 남측에 귀순하거나 혹은 남측에서 군 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은 다행이지 북측에서 군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은 한국 전쟁에서 살아남으신 이후에도 김일성의 숙청과 가열찬 충성 경쟁 속에서 숱하게 쓰러져 가셨습니다.
6544 2016-04-26 16:24:30 11
실제로 존재했던 그랜드소드마스터 [새창]
2016/04/26 09:23:38
어찌보면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렀습니다만 문제는 여진인들이 정말 강성했고 국가 숙원 사업급으로 추진했던 이주 및 개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전력을 무리하게 긁어모은 결과 후방 그러니까 해안가의 전력이 공백이었고 국력이 이 모든 계획에 따라가지 못하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점이지요.
6543 2016-04-26 16:21:13 12
실제로 존재했던 그랜드소드마스터 [새창]
2016/04/26 09:23:38
여진입니다, 정확히는 고려와 통교를 맺은 여진 완안부가 갈라전 그러니까 함경도 일대를 정벌함에 있어 이에 갈라전 일대의 여진인들의 대규모 귀순이 있었는데 완안부에서는 이 들을 받아들이지 말고 돌려 주길 청했습니다만 뭔 생각인지 완안부의 사신을 구금하고 선빵을 올려 칩니다, 그러나 역으로 천리장성이 뜷리고 장주, 정주가 불타며 윤관을 필두로 하는 중앙군 마저 갈려 버려 화친을 맺게 됩니다, 여기서 끝나면 차라리 좋은데...

야만인들에게 진 원한을 잊지못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분을 이기지 못해 천지 신명에 맹세코 저 들을 정벌하겠다고 말 그대로 나라의 모든 남자를 긁어모으고 군수 물자를 짜내어 역습에 나섭니다.

그 것도 앞서 귀부한 여진인들을 마저 돌려주는 한편 친목 좀 다지자고 친 고려 성향의 여진족 족장들과 완안부 사신들을 불러모아 그 수백명을 참살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여진족 영내로 돌진하여 여진족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추살하거나 노예로 삼으며 말입니다.
6542 2016-04-26 14:14:14 27
실제로 존재했던 그랜드소드마스터 [새창]
2016/04/26 09:23:38
난세가 영웅을 낳기는 하는 법인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난세가 본문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이미 그 국력이 능히 일국을 세울 상대를 두고 심지어 그 상대는 친하게 지내자고 손을 내미는 상황에서 먼저 싸다구를 올리고 무리한 원정을 벌여 남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은 물론이고 국력까지 갈려나가던 고려의 상황이라 참 안타까울 뿐이지요.
6541 2016-04-26 14:10:25 3
조선총 VS 왜놈총 [새창]
2016/04/24 16:01:30
일단 현존해 내려오는 사용법을 보면 둔기로 쓰지는 않습니다,; 물론 다급하면 쓸수야 있겠습니다만 그러라고 있는게 아니지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떡밥이 디씨 기갑 갤러리에서 올라왔던 것으로 압니다만 결국 실제 사용례라던가 기록에 이르기까지 그 사실을 입증할 내용이 전무한 그렇게 생겼더라 혹은 쓸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if 단계의 수준에서 끝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총통에는 없으나 소 승자총통에는 가늠좌가 존재합니다.
6539 2016-04-26 14:01:38 0
조선총 VS 왜놈총 [새창]
2016/04/24 16:01:30
화승권총을 늘리는 개량을 통해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개머리판이 생략되는 방식으로 개량된 겁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동남아서 유격전 등의 목적에 적합하게 개량된 말라카 방식이 유입되었다는 주장과 반대로 일본에서 동남아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있지요.

덧붙이자면 일본에서 제련의 문제로 강철 대신 황동이 주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화승 파트를 개량하여 불이 잘 꺼지는 약점을 개량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 사수에 의존한다거나 탄약통 그러니까 하야고우의 사용법이 조금 다르다거나 하는 등 자잘한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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