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두서 없게 나마 자료를 정리할수 있네요.
3대대의 목표점령상황은 무선으로 연대에 보고되었다. 이때에는 현리 일대에 2개 사단이 집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선망의 혼선이 심하여 통화가 매우 어려웠다.
3대대의 뒤를 이어 736고지의 남서쪽에 있는 785고지를 점령할 임무를 띤 1대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용포 교량을 건너지 않고 내린천을 따라 남하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30연대 전술지휘소에서는 어둠이 깔린 이후부터는 1대대와의 통신마저 두절된 관계로 1대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 확인된 일이지만 이 시각에 1대대는 방대산 중턱으로 철수하고 있었으나 그 사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1대대가 785고지를 점령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30연대장 손희선 대령과 1대대장 김상의 중령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1대대장은 군단 주력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방대산에 병력을 배치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30연대장은 지금까지도 1대대장이 785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제 18연대장 유양수 대령은 그에게 부여된 포위망 돌파임무의 중요성과 이를 수행하는데 수많은 난관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비장한 각오 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연대는 2100에 9사단 30연대가 공격을 개시하면 이 연대를 후속하다가 오마치(오미재) 부근에서 30연대를 초월공격하여 오마치를 점령한다.
제 2대대는 도로를 기준으로 하여 오마치 우반부를 점령하라.
제 3대대는 도로를 기준하여 오마치 좌반부를 점령하라.
제 1대대는 연대 예비로 공격준비태세를 갖추고 공격제대를 후속하라.
각 부대는 야간전투에 필요한 무장만을 갖추어 작전에 임하라.
이와 같이 18연대의 작전명령은 30연대와는 달리 포위망 돌파를 위한 적극적인 것이었으며 이에는 필승을 다짐하는 연대장의 의지가 스며있었다. 연대장은 명령을 하달하고 용포 부근에 전술지휘소를 설치한 후 공격 준비 상태를 점검하면서 30연대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 9사단장이 18연대 전술지휘소를 방문하여 연대장에게 “돌파작전에 자신이 있느냐?”고 질문하였다. 이때 18연대장은 9사단장이 돌파작전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중략)
이러던 중 3사단장은 18연대장의 보고를 받고서야 30연대가 공격을 하지 않고 방대산으로 철수하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3사단장은 군단의 주력이 혼란상태에 빠져들어 이미 통제력을 잃고 있었으며 돌파공격부대인 30연대마저 공격을 하지 않고 철수하고 있는 상황 아래서는 돌파작전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장비와 병력을 모두 철수시키지 못할 바에는 병력이라도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 그는 18연대의 공격을 취소하고 방대산을 경유하여 창촌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전쟁 전투사 현리전투> 1988 p16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