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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3 2016-05-05 21:19:06 0
파리코뮌 무너질 때 사상자 비율이 말입니다. [새창]
2016/05/05 20:41:02
두서 없는 답글인데 예컨데 파리 코뮌의 참상을 보면 그렇습니다.

압도적인 숫적 열세, 부족한 물자, 모든 퇴로의 상실 등 내분을 제외한 상상할수 있는 거의 모든 패배의 요인들이 주요한 원인이지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사상자의 다수는 절대로 파리코뮌군 만이 아닙니다, 어린이, 여성등 진압군의 입장에서 협력자 내지는 잠재적 참가자로 볼수 있는 모든 이들이 학살당했습니다.
6612 2016-05-05 21:12:36 0
파리코뮌 무너질 때 사상자 비율이 말입니다. [새창]
2016/05/05 20:41:02
이미 파리의 상황은 최악이었지요, 앞서 벌어진 전쟁에서 네 발달린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잡아 먹을 정도로 열악했던 상황속에서 간신히 수습 국면으로 접어 들었을때 각 지방에서 6만 독일에서 포로로 잡혀있다 귀환한 40만명을 기반으로 파리 외곽의 방어선을 우회 진격하여 들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차근 차근 블럭 단위로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포로는 없고, 자비도 없었지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불태우며 진격해 들어간 셈입니다, 그렇다고 파리 코뮌군이 탈출할 여지가 있었는가 하면 이미 동쪽 외곽에는 1만여명의 프로이센 군이 탈출구를 틀어 막고 있었습니다,

탄약도 물자도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상황속에서 그 들에게는 선택지가 존재할리 없었지요, 물론 그 들이 온건하게 포로를 살려두고 한건 아닙니다, 그 들 역시 포로도 자비도 무엇하나 없기는 매한가지였고 말 그대로 파리 시내에 수라장이 펼쳐지게 됩니다.
6611 2016-05-05 20:49:45 0
일본의 조선인 징집에 대해 [새창]
2016/05/05 13:42:20
덧붙이자면 언급하신 표현을 빌자면 시대적 정신병자들도 있었습니다만 내선 일체 교육이 빛을 발한 것인지 이후의 기록들에서 종종 나오는 바입니다만 20-30년대 출생자와 당시에 초, 중등 교육을 받고 자라신 분들중에는 정말 순수한 마음의 지원자들도 계시기는 했지요, 그 것을 구태여 친일 행적으로 보아야 하는가는 글쎄요. 참 일단 제가 보기에는 애매하기는 합니다. 그 분들은 교육을 받고 자라는 그 정체성의 확립에 있어 자신의 조국을 일본으로 생각하고 계셨으니 말이지요.
6610 2016-05-05 20:46:38 0
일본의 조선인 징집에 대해 [새창]
2016/05/05 13:42:20
네 38년 이전에는 조선에서 징병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20년대 중반 시행된 제국국방방침 재개정, 명칭과 연도가 당장 정확히는 기억 안나는데 아무튼 이 것을 통해 1차 세계 대전의 교훈에 따른 방대한 화력 투사와 정예병력에 근거한 단기결전, 속전속결을 모토로 하여 다수의 상비군을 완편 상태로 보유하게 되었고 그러하기에 외지 주둔 부대 그러니까 조선이나 대만의 그 것 역시 철저히 국내 사단을 통하여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것이 한계를 보이는 바람에 38년을 기점으로 지원제..사실상 징병제를 실시하게 되었지요, 까놓고 말해서 그 방대한 지역들을 고작 17개 사단으로 커버를 할려고 하니 이건 뭐 견적이 안나오지요, 당장 전선을 맞댄 주적 1순위인 소련군만 하더라도 즉시 동원 가능한 병력이 30개 사단을 상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6609 2016-05-05 18:47:33 0
일본의 조선인 징집에 대해 [새창]
2016/05/05 13:42:20
막장 공업 구조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막장인건 맞아요, 이전에 관련글에서 작성한 답글을 옮겨보자면 20-30년대 기준으로 일본은 세계의 공장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가령 영국의 경우 직공 1인당 기기는 평균 6대가 배비되는 반면 일본은 평균 40대가 배비됩니다, 근무시간도 영국은 8시간인데 반해 일본은 8시간 반에 2교대이지요, 거기다 직공들의 임금도 30-36년 동안 절반 이상 떨어질 정도로 낮은터라 가격이 매우 저렴하였고 매년 10%이상씩 가격을 낮춰가며 덤핑을 시도하여 인도, 이집트 가릴것 없이 유럽 열강과 미국 등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에 인도는 일본 면포에 50%의 관세를 영국은 75%의 관세를 매기는 등 불공평 관세를 매기는 것으로 화답하였고 호주, 네덜란드 등은 수입 할당제를 매겨버렸습니다, 비단 면포에만 그러한 경제 제제가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구, 고무신, 종이, 전구 등의 제품군에 있어서도 관세 인상과 비관세 정책 강화등으로 나가는 터라 미래가 암담하기는 매한가지였지요.

그러한 상황속에서 육군성에서 중요 산업에 대한 5개년 계획의 개요를 발표, 일본과 만주 일대를 묶어 하나의 경제 블록화를 추구하는 목표를 세우면서 중공업 관련 플랜이 시작되는데...이때 이제 기나긴 전쟁의 서막이 올랐지요, 사실 경제 제제를 비릇하여 여러 갈등으로 인하여 외화 유치도 어렵고 암담하다는 표현이 맞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6608 2016-05-05 18:37:03 0
일본의 조선인 징집에 대해 [새창]
2016/05/05 13:42:20
이미 지원병 제도가 징병제도나 다를바 없었으며 그러한 지원병 제도라는 명칭 자체에서 볼수 있듯이 병역의 의무가 없었던 것은 언급하신 천황의 적자와 같은 자부심 문제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깐깐하게 따지는게 아니라 사실이 그런걸 어떻게 하나요?

또한 일본의 막장 공업 구조라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실력에 따라 제품의 질이 결정된다는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알수가 없는데 왜 영 연방을 비릇하여 세계의 각국에서 일본에게 대대적인 무역 제제를 가했는지 생각을 해본다면 그러한 이야기는 나오기 힘들텐데요;
6607 2016-05-05 17:50:23 0
일본의 조선인 징집에 대해 [새창]
2016/05/05 13:42:20
덧붙이자면 일본 제국군의 징집률 그러니까 동원가능인력 대비 실제동원률은 상당히 낮은편이었습니다, 36년 이전까지는 25% 남짓한 상황을 유지하다 태평양 전쟁에 가서야 50%를 겨우 찍었지요, 즉 일본군이 구태여 병역 자원을 조선에서 찾을 필요가 없기는 했습니다, 지원병제도에서 볼수 있듯이 본디 조선에는 병역의 의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러던게 43년에 지원 유예제도가 사실상 폐지되어 각종 고학력자 분들도 군대에 가게 되었고 44년부터 본격적으로 징집령이 내려지게 되어 비로소 의무가 생겨나게 됩니다.
6605 2016-05-05 17:41:16 0
일본의 조선인 징집에 대해 [새창]
2016/05/05 13:42:20
일본 제국군의 군 입대는 외지인 내지인 가릴 것 없이 자유로웠습니다, 어떤 레퍼런스를 가지고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38년 2월 2일에 천황칙령 95조의 시행과 함께 동년 4월3일부터 시행된 육군특별지원병 제도에 따라 당시 식민지 조선령에서 공식적으로 지원을 받기 시작합니다, 물론 해군은 지원을 꺼리거나 장교로서의 배비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어 그 문턱이 상당하였으나 관동군을 포함한 육군은 그 허들이 자유로운 편이었지요.

두번째로 반자이 어택은 말 그대로 보병 돌격입니다,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병과와의 공조와 보다 원활한 지휘 통제를 위한 통신 수단의 구비와 지원 화력과 백병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수 있는 야간전의 강조, 그리고 각 지휘관들의 이를테면 임무형 지휘 체계를 기본 조건을 깔고 들어갔던 그 들의 화고한 이상과 다르게 열악했던 현실에서 부족한 부분을 정신력으로 메우던 이 들의 보병 돌격이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로 도는 반자이 어택입니다,

세번째로 사실 일본의 공업력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비단 기술자들의 전선에서의 소모만을 이야기 할게 아니라 말 그대로 기술 개발에 투자되는 총괄적인 자원의 양부터 시작하여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게 된 계기가 이미 보유하고 있던 자원이 국가의 존립을 논하는 상황이었던 것 등 태평양 전쟁은 말 그대로 정말 무리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6604 2016-05-03 20:18:55 3
6.25초반은 발릴만 하네연 [새창]
2016/05/03 17:27:38
군대의 무장 수준 자체가 비교가 안되는데 개개의 참모장을 바꾼다 한들 뭐 전황에 큰 영향이 있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숱한 실전 경험과 엘리트 교육을 거친 북한군이 얼마나 졸속으로 운영되고 또 제대로 싸우지 못해 국군이 전열을 정비할수 있었던 사실들을 보면 딱히 장교 개개인의 능력에 좌우된 전쟁이라 보기도 어렵고 그 능력을 높게 평가하기도 어렵기도 하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북한군 역시 국군 못지 않게 그 경력과 행적을 불문하고 인재를 모은 사실을 볼때 구태여 친일 행적이 전황에 영향을 주었다 보기도 어렵지요.
6603 2016-05-03 09:06:42 1
중동에 부는 히잡거부 운동...jpg [새창]
2016/05/02 18:12:14
여기에서 이제 비밀경찰 사바크가 종교경찰과 현 정권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혁명 수비대로 바뀌었고, 왕정 국가가 일단은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 달라진건 사실 별반 없지요, 하메이니가 정체성을 확립한 콤에서는 이맘 레자의 누이 파테메가 묻힌 하자라테 마수메 사원이 여전히 가장 큰 성세를 보이고 있고 길거리에서는 히잡은 말 그대로 스카프를 얹은 수준으로 멋을 내고 다니는 여성들이나 성형 수술을 고민하고 또 이행하는 젊은 여성들로 가득합니다, 당장 신정국가를 운운하나 라마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연일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고 자신의 비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주소를 더 나아가 VPN을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는 더 어려운 나라이고 말입니다, 아 물론 종교도시나 시골은 좀 상황이 다른게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좀 더 보수적인 측면이 없지 않은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억압된 신정 국가로서의 면모는 그 이전과 다를바가 없어요, 주어만 좀 바꾸면 거의 이전 그대로 입니다, 아니 어떻게 본다면 그 이전보다는 좀 낫아진 것도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그 거죠, 이렇게 오랜 시간 꾸준히 개혁을 진행해오면서 과연 어떠한 측면에서 그 이전의 팔레비 왕조보다 더 낫아졌는가 말입니다.
6602 2016-05-03 08:57:49 1
중동에 부는 히잡거부 운동...jpg [새창]
2016/05/02 18:12:14
다만 분명한건 당시에 지나친 서구화에 따른 전통의 붕괴와 경제 정책의 잇따른 실패, 지도층의 오랜 부정 부패와 고질적인 왕실의 억압 그리고 비밀경찰들에 대한 사회 각계 각층의 총괄적인 시민 운동과 대대적인 혁명의 결과에 있어 호메이니는 자신의 후계자, 동료, 친구들을 배척하고 혁명을 통해 세워진 문민 정부를 다시금 갈아 엎으며 그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성직자들이 무정부 상태에서 국정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선례와 그 종파에 따라 신정 국가를 만든 것뿐입니다.
6601 2016-05-03 08:51:57 1
중동에 부는 히잡거부 운동...jpg [새창]
2016/05/02 18:12:14
이란이 혁명 이후에 인권이 악화되었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데 사실 그렇게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지금도 신정 연휴 그러니까 노루즈니 뭐니 하는 휴일마다 터키 행 비행기나 여객선은 자리가 없는데 그 이유가 뭔가 하면 여성들입니다, 상기 사진들 처럼 있는 집 아가씨들이나 남정네들은 히잡을 벗어던진 여유로운 휴가를 만끽하고 다녀요, 아니 그냥 집에서 그렇게들 놉니다,

다만 달라진건 공공장소에서의 제약 등의 문제일뿐 그네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변한게 없지요.
6600 2016-05-02 18:37:29 1
일본 빵의 달인 [새창]
2016/05/02 07:33:01
제 의견은 인공 효모니 자연 효모니 구분 짓고 나누고 자연 효모만을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등 의 일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빵이라고 하는 음식의 역사를 보면 물과 곡물가루로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 것과 별개로 인공에 대한 무조건 적인 배척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거죠
6599 2016-05-02 15:33:01 4
일본 빵의 달인 [새창]
2016/05/02 07:33:01
그런 의미에서 과연 버터가 무조건 나쁘고 빼야 건강한 빵이고 음식이라고 보는건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설탕도 마찬가지 이고 말이지요, 빵이라는 것의 원류를 따라가자면 애시당초 효모 자체가 큰 의미가 없지요, 미터 단위의 사이즈로 동네 빵집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그 것도 저런 하얗게 잘 정제된 밀가루는 커녕 밀가루가 퍼센티지로 따질 정도 더 나아가 이런 말은 뭐합니다만 말 그대로 밀가루를 간신히 먹을만한 수준으로 구워만든게 원래의 빵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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